14화(5,369자)

3세트

경로당 게임단 코치 · 류시안

3세트 시작 신호가 울렸다⁠. 분옥의 돌격꾼이 레드혼 실버 진영에서 가장 먼저 뛰어나갔다⁠. 돌격꾼은 짧은 창을 든 역할이었다⁠. 멀리서 기다리는 사냥꾼과 달리 상대에게 붙어서 찔러야 했다⁠. 막대를 밀고⁠, 단추를 누르고⁠, 다시 밀고⁠. 쉬지 않고 손을 움직여야 했다⁠.

분옥은 막대를 밀었다⁠. 돌격꾼이 가까운 길로 달렸다⁠. 남궁석이 연습장에서 일주일 동안 그려 준 길이었다⁠. 바위를 지나 가운데 거점까지 가장 빠른 길⁠. 분옥의 엄지가 막대 위에서 미끄러졌다⁠. 돌격꾼이 바위에 어깨를 부딪히고 반 박자 늦게 돌았다⁠.

거점 한복판에 춘봉의 방패가 버티고 있었다⁠. 분옥이 창을 찔렀다⁠. 방패에 막혔다⁠. 다시 찔렀다⁠. 점례의 물약이 춘봉 머리 위로 날아왔다⁠. 분옥은 단추를 연달아 눌렀다⁠. 손목에서 뜨거운 것이 팔꿈치로 올라갔다⁠. 파스가 보호대 안에서 들떠 살갗을 긁었다⁠. 창이 세 번째로 방패에 부딪혔을 때⁠, 진배의 화살이 분옥의 등에 꽂혔다⁠. 「⁠처치⁠」

화면이 잿빛으로 바뀌었다⁠. 부활까지 남은 시간이 떴다⁠. 분옥은 패드를 무릎에 내려놓고 손목을 감쌌다⁠. 헤드셋 너머로 캐스터의 목소리가 멀게 들렸다⁠.

“⁠엄분옥 선수⁠, 돌격이 쉽지 않습니다⁠. 손이 안 따라가요⁠.⁠”

“⁠원래 기다리시는 분을 뛰게 하니까요⁠. 화투 치시는 분한테 윷을 던지라는 거예요⁠.⁠” 해설이 덧붙였다⁠. 객석 어딘가에서 웃음이 터졌고⁠, 화투 담요 응원단의 누군가가 “⁠윷도 잘 던져⁠!⁠” 하고 소리쳤다⁠.

분옥은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았다⁠. 레드혼 연습장에서 일주일 동안 백 번⁠, 이백 번 찔렀던 창이었다⁠. 백 번을 찔러도 손은 빨라지지 않았다⁠. 아침마다 고무줄 대신 보호대를 감고⁠, 저녁마다 남궁석이 파스를 붙여 주었다⁠. 파스를 붙이는 손은 다정했다⁠. 다정한 손이 다음 날 또 백 번을 시켰다⁠.

부활했다⁠. 다시 뛰었다⁠. 다시 쓰러졌다⁠. 두 번째였다⁠. 세 번째에 분옥은 진영에서 나오자마자 막대에서 엄지를 뗐다⁠.

돌격꾼이 진영 앞에서 멈췄다⁠. 레드혼 실버의 다른 두 선수가 분옥 옆을 지나 거점으로 달려갔다⁠. 총알 영감이 반깁스 낀 손으로 마우스를 쥐고 헤드셋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누님⁠! 앞으로⁠! 단장님이 앞으로 가라고 했잖아요⁠!⁠”

분옥은 대답하지 않았다⁠. 패드를 쥔 손에서 힘을 뺐다⁠. 쥐지 않고 얹었다⁠. 엄지를 막대 위에 가만히 올려놓고⁠, 돌격꾼을 천천히 돌렸다⁠. 거점이 아니라 지도 왼쪽 아래로⁠. 처음 경로당 밥상 앞에서 화면이 하늘과 땅을 빙빙 돌던 날⁠, 분옥이 처음으로 상대를 잡았던 자리로⁠.

*

코치석의 남궁석이 서류 위에서 펜을 멈췄다⁠. 경기 중에는 코치가 말할 수 없었다⁠. 남궁석은 말하지 않았다⁠. 대형 화면 속에서 빨간 돌격꾼이 거점과 반대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펜을 서류 위에 내려놓고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았다⁠.

강현은 다섯 걸음 떨어진 코치석에서 남궁석의 손을 보았다⁠. 네 해 전 결승 날⁠, 남궁석은 경기 내내 펜을 놓지 않았다⁠. 숫자를 적고 또 적었다⁠. 오늘은 펜이 서류 위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

점례는 화면 왼쪽 아래 구석에서 빨간 옷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거점에서 멀어지는 길이었다⁠. 뛰지 않고 걸었다⁠. 막대를 살살 밀 때의 걸음이었다⁠.

“⁠언니가 돌아간다⁠.⁠”

“⁠어디로⁠?⁠” 춘봉이 방패를 든 채 물었다⁠.

점례는 대답하기 전에 숨을 한 번 쉬었다⁠. 화투판에서 사십 년 동안 본 얼굴이 머릿속에 떴다⁠. 판이 안 풀리면 분옥은 처음 앉았던 방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김장 날 배추가 모자라면 처음 절인 통부터 다시 들여다보았다⁠. 남편 장례식 날⁠, 분옥은 사흘 내내 부엌에 들어오지 않고 처음 시집와 살던 방에만 앉아 있었다⁠.

“⁠언니는 힘들면 처음 자리로 가⁠.⁠” 점례가 말했다⁠. “⁠바위⁠. 맨 처음 바위야⁠. 레드혼 연습장에서 처음 매복한 데⁠.⁠”

“⁠거기는 우리가 가위표 친 데잖아⁠.⁠”

“⁠그러니까 가는 거야⁠. 다들 거기는 안 간다고 생각하니까⁠. 언니는 그런 사람이야⁠.⁠”

진배가 초시계를 보았다⁠. 분옥이 세 번째로 부활한 지 이십 초⁠. 바위까지 걸어가면 사십 초⁠.

진배는 사냥꾼을 돌렸다⁠. 바위의 등 뒤⁠, 파란 점을 찍었던 자리였다⁠. 춘봉이 거점에 엉덩이를 붙인 채 버텼다⁠. 레드혼 실버 둘이 방패를 두드렸다⁠. 춘봉의 체력이 반으로⁠, 반의 반으로 떨어졌다⁠. 점례가 물약을 던지며 소리쳤다⁠.

“⁠춘봉 씨⁠, 버텨⁠! 등기는 반송 없다며⁠!⁠”

“⁠반송 없어⁠! 수취인 부재여도 문 앞에 둔다⁠!⁠”

점수는 팔십 대 팔십사였다⁠. 시계는 일 분 반을 남기고 있었다⁠.

*

분옥은 바위 뒤에 돌격꾼을 앉혔다⁠. 돌격꾼에게는 활이 없었다⁠. 창은 짧았다⁠. 바위 모서리를 지나는 사람이 있으면 지나는 순간 뛰어나가 찌를 수밖에 없었다⁠. 분옥은 모서리를 보았다⁠. 기다렸다⁠.

헤드셋에서 총알 영감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거점이 밀린다고⁠, 누님이 와야 한다고⁠. 분옥은 헤드셋 한쪽을 귀에서 조금 내렸다⁠. 객석의 함성이 귀로 밀려왔다⁠. 함성 속에서 아주 작게⁠, 익숙한 목소리가 섞여 들렸다⁠. 청춘오락실 부스였다⁠. 점례였다⁠.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 높이만 들렸다⁠. 사십 년 동안 김장하며 들은 높이였다⁠.

바위 모서리로 방패가 나타났다⁠. 춘봉의 방패꾼이었다⁠. 체력이 거의 바닥이었다⁠. 거점에서 밀려 뒤로 물러나는 길이었다⁠. 이 바위 옆을 지나 진영으로 가는 길⁠. 분옥의 엄지가 단추 위에 있었다⁠. 누르면 창이 춘봉의 옆구리를 찌른다⁠. 춘봉이 쓰러지면 거점에는 점례 하나만 남는다⁠.

분옥은 눌렀다⁠.

창이 춘봉의 방패 가장자리를 스쳤다⁠. 「⁠처치⁠」가 뜨기 직전⁠, 바위 등 뒤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진배의 화살이었다⁠. 열한 번 중에 한 번 맞히던 화살이 분옥의 돌격꾼 등에 꽂혔다⁠. 「⁠처치⁠」

분옥의 화면이 잿빛으로 바뀌었다⁠. 춘봉은 쓰러지지 않았다⁠. 체력 한 칸을 남기고⁠, 거점으로 다시 걸어 들어갔다⁠.

*

강현은 코치석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는 줄도 모르고 일어났다⁠. 대형 화면의 시계가 삼십 초를 남겼다⁠. 점수는 구십오 대 구십육⁠. 레드혼 실버가 한 점 앞이었다⁠. 거점 한복판에 춘봉이 엉덩이를 붙였고⁠, 점례가 춘봉 뒤에 붙어 물약을 던졌고⁠, 진배가 바위 등 뒤에서 거점까지 걸어오고 있었다⁠. 셋이 거점에 들어가자 점수가 하나씩 올라갔다⁠. 구십칠⁠, 구십팔⁠.

총알 영감이 거점으로 뛰어들었다⁠. 반깁스 낀 손이 마우스를 놓쳤다⁠. 총알 영감의 사냥꾼이 거점 가장자리에서 멈췄다⁠.

구십구⁠. 백⁠.

「⁠청춘오락실 100 : 레드혼 실버 98⁠」

경기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만 석 중 칠천 석이 차 있었다⁠. 저녁 프로 결승을 기다리던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화투 담요 응원단이 담요를 머리 위로 들고 객석 통로를 뛰어 내려왔다⁠. 주무관이 노란 티셔츠 차림으로 디지털카메라를 든 채 울었다⁠. 셔터를 누르면서 울었다⁠.

춘봉이 넥타이를 감은 손목으로 패드를 높이 들었다⁠. 진배는 패드를 무릎에 놓고 초시계만 보았다⁠. 초시계가 아직 돌고 있었다⁠. 진배는 초시계를 멈추지 않았다⁠.

총알 영감이 레드혼 실버 부스에서 일어나 청춘오락실 부스로 걸어왔다⁠. 반깁스 낀 손을 춘봉에게 내밀었다가⁠, 손을 바꿔 왼손을 내밀었다⁠. 춘봉이 넥타이를 감은 손목으로 총알 영감의 왼손을 잡았다⁠.

“⁠방패 양반⁠, 끝까지 엉덩이를 안 떼더라⁠.⁠”

“⁠집배원은 엉덩이로 버텨요⁠. 오토바이 위에서 서른 해⁠.⁠”

총알 영감이 웃었다⁠. 웃다가 반깁스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이제 좀 쉬어야겠어⁠. 손자 놈이 할아버지 깁스 사진을 학교에 가져갔대⁠. 자랑한다고⁠.⁠”

춘봉이 손목에 감았던 우체통 넥타이를 풀어 총알 영감의 반깁스 위에 한 바퀴 감아 주었다⁠. 매듭은 지어 주지 않고 끝을 쥐여 주었다⁠.

“⁠부적이에요⁠. 목에 매면 손이 굳는대서 손목에 감는 거예요⁠.⁠”

객석 통로 계단에서 우람이 난간을 넘었다⁠. 진행 요원 둘이 막아섰지만 우람이 팻말 두 개를 동시에 흔들자 어느 팻말을 막아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객석 세 번째 줄에서 강현의 어머니가 김밥 도시락 보자기를 무릎에 얹은 채 일어나 있었다⁠. 어머니는 박수를 치지 않았다⁠. 무대 위의 아들을 보며 손목을 문지르는 시늉을 했다⁠. 강현이 어머니를 찾아냈을 때⁠, 어머니는 입 모양으로 한마디만 했다⁠. 말로 해⁠.

*

점례가 헤드셋을 벗었다⁠. 부스에서 일어나 무대를 가로질러 걸었다⁠. 두 부스 사이는 무대 위로 스무 걸음이었다⁠. 진행 요원이 막으려다 점례의 얼굴을 보고 길을 비켜 주었다⁠.

레드혼 실버 부스에서 분옥은 헤드셋을 벗지 못하고 있었다⁠.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감싸 쥐고 있었다⁠. 보호대 안의 파스가 떨어져 소매 밖으로 비어져 나왔다⁠.

점례가 분옥 앞에서 멈췄다⁠. 분옥의 손목을 잡았다⁠. 보호대의 찍찍이를 뜯었다⁠. 파스를 떼어 냈다⁠. 손목에 붉은 자국이 둘⁠, 고무줄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빨간 옷 벗어⁠. 덥잖아⁠.⁠”

분옥이 점례를 올려다보았다⁠. 입술이 움직였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분옥은 빨간 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내렸다⁠. 꽃무늬 조끼가 드러났다⁠. 점례가 분옥의 헤드셋을 벗겨 탁자 위에 놓았다⁠.

“⁠언니가 바위로 갈 줄 알았어⁠.⁠”

“⁠알았으면 왜 춘봉이를 보냈어⁠. 내가 찌를 거 알면서⁠.⁠”

“⁠언니가 찌를 줄도 알았지⁠.⁠” 점례가 분옥의 손목을 두 손으로 감쌌다⁠. “⁠찌르라고 보낸 거야⁠. 찌르고 나서 회장님한테 잡히라고⁠. 언니가 우리 편 사람을 그냥 지나가면 그게 더 서운하지⁠.⁠”

분옥이 웃었다⁠. 소리 내어 웃었다⁠. 웃다가 눈가를 손등으로 훔쳤다⁠. 남궁석이 레드혼 실버 코치석에서 걸어왔다⁠. 둘 앞에 멈추어⁠, 양복 주머니에서 새 파스 한 장을 꺼냈다⁠. 점례에게 내밀었다⁠. 점례가 남궁석을 보고⁠, 파스를 보고⁠, 받았다⁠. 비닐을 반만 벗겨 분옥의 손목 안쪽에 붙였다⁠.

“⁠이렇게 붙이는 거 맞아요⁠?⁠” 점례가 물었다⁠.

“⁠네⁠. 반만 벗기고 안쪽부터요⁠.⁠” 남궁석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

무대 한가운데에 시상대가 올라왔다⁠. 사회자가 큰 상금 판을 들고 나왔다⁠. 「⁠우승 상금 10⁠,000⁠,000원⁠」 진배가 상금 판을 받아 들고 화투 담요 응원단을 향해 흔들었다⁠. 춘봉이 진배 옆에서 상금 판 귀퉁이를 잡았다⁠. 점례는 분옥의 손을 잡고 시상대 옆에 서 있었다⁠. 분옥은 빨간 점퍼를 팔에 걸치고⁠, 꽃무늬 조끼 차림이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강현에게 다가왔다⁠.

“⁠위강현 코치님⁠, 우승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이 장면⁠, 저녁 프로 결승 중계와 같이 생방송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마이크가 강현의 손에 들어왔다⁠. 오른손이었다⁠. 객석 칠천 명이 조용해졌다⁠. 저녁 경기를 앞두고 무대 뒤에서 몸을 풀던 프로 선수들이 커튼 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손목에 보호대를 찬 얼굴도 둘 있었다⁠. 무대 옆 레드혼 실버 코치석에서 남궁석이 일어나 있었다⁠. 금테 안경 너머의 눈이 강현을 보았다⁠. 분옥과 점례가 시상대 옆에서 강현을 보았다⁠. 객석 통로 계단에서 우람이 두 팻말을 다시 들고 있었다⁠.

강현은 마이크를 쥔 채 왼손을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두 조각으로 찢어진 종이를 꺼냈다⁠. 종이를 겹쳐 손바닥 위에 폈다⁠. 대형 화면이 강현의 손을 크게 잡았다⁠. 검은 보호대⁠, 보호대 위의 찢어진 종이⁠.

“⁠제 손목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1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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