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232자)
경회루 못
공대생, 세종 밑에서 증기기관 만들다 · 도경
서리는 경회루 못에 먼저 내렸다. 공방 마당은 아직 하얗지 않은 아침에, 못가의 돌난간에는 이미 소금을 뿌린 것 같은 서리가 앉아 있었다. 손가락으로 쓸면 쓸린 자리만 검게 젖었다. 못물은 잔잔했다. 누각의 돌기둥들이 거꾸로 물속에 서 있었고, 그 사이를 잉어 몇 마리가 천천히 지나갔다. 사람이 다가가자 잉어들은 놀라지도 않고 입만 뻐끔거렸다. 사신 연회 때마다 사람들이 떡을 던져 준다고 했다.
나는 못의 깊이부터 재야 했다. 장대 끝에 먹줄을 감고 못가 돌계단 맨 아래 칸에 섰다. 장대를 물속에 찔러 넣었다. 바닥에 닿지 않았다. 조금 더 몸을 숙였다. 아직 닿지 않았다. 조금 더.
그다음은 기억이 짧다. 물이 귀로 들어왔다. 차가웠다. 너무 차가워서 아픈 줄도 몰랐다. 발이 바닥의 진흙에 박혔고, 내 얼굴 앞으로 잉어 한 마리가 입을 뻐끔거리며 지나갔다. 그 눈이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자 못가에서 웃음이 터졌다. 돌석은 난간을 잡고 허리를 꺾었다. 말복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윤 노인만 웃지 않고 내가 빠진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가 깊이요. 한 서방 키에 한 자 더.”
언년이 바가지를 던져 주었다. 그걸 붙잡으라는 건지 그걸로 물을 퍼내라는 건지 몰라서 나는 바가지를 안고 헤엄쳐 나왔다. 무명 저고리가 몸에 달라붙었다. 이가 딱딱 부딪쳤다. 언년이 마른 거적을 내 어깨에 씌우며 말했다. 잉어가 한 서방보다 헤엄을 잘 친다고. 잉어는 원래 헤엄을 잘 친다고 내가 말했다. 그녀는 그러니까 하는 말이라고 했다.
*
못가에 양수기 자리를 잡는 데 열흘이 걸렸다. 받침돌을 묻고, 그 위에 큰 통을 세울 나무 틀을 짰다. 말복이 사흘 동안 고른 들보가 그 틀 위에 걸렸다. 들보 반대쪽에는 펌프 통이 매달릴 자리를 만들었다. 펌프 통은 못물 속에 반쯤 잠기게 하고, 거기서 퍼 올린 물이 열두 자 높이의 나무 홈대를 타고 올라가 맨 위에서 다시 못으로 쏟아지게 했다. 홈대는 못가 담장보다 높았다. 다 세우고 나니 누각 이층 난간에서 손을 뻗으면 홈대 끝에 닿을 것 같았다.
그 열흘 사이에 칠복을 두 번 보았다. 한 번은 공방 대문 밖이었다. 해 질 녘에 담 모퉁이에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발에 언년이 떨어뜨리고 간 머릿수건을 감고 있었다. 돌석이 대문을 나서다가 그를 보았다. 둘은 한참 서로를 보았다. 돌석이 먼저 고개를 돌려 대문을 닫았다. 빗장 거는 소리가 담 밖까지 들렸다. 두 번째는 못가였다. 새벽에 못가로 나가 보니 누각 돌기둥 뒤에서 누가 후다닥 달아났다. 맨발이었다. 받침돌 옆 진흙에 발자국이 남아 있었는데, 그 발자국이 큰 통을 한 바퀴 돌아서 나가 있었다. 나는 그 발자국을 돌석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보여 주면 돌석이 무엇을 할지 알았다.
큰 통의 속은 아직 깎지 못했다. 소가 없었다. 공방 장인 아홉이 번갈아 바퀴를 돌려도 하루에 손가락 한 마디만큼 깎일까 말까 했다. 그날 밤 나는 공방 작은 기관을 못가로 옮겨 오자고 했다. 장영실은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기관의 들보에 줄을 감아 바퀴를 돌렸다. 바퀴가 쇠막대를 돌리고, 쇠막대 끝의 날이 큰 통 속을 긁었다. 작은 통이 김을 먹고 큰 통을 깎았다. 돌의 진자가 갔다 왔다 했고, 들보가 그 박자에 맞춰 삐걱거렸고, 큰 통 안에서는 사각사각 놋쇠 긁히는 소리가 밤새 났다. 소 한 마리가 하던 일을 기계가 했고, 그 기계로 더 큰 기계를 만들었다. 공방 장인들은 그게 무슨 일인지 처음에는 몰랐다. 윤 노인이 먼저 알았다.
“이놈이 제 형을 낳고 있구먼.”
*
권억은 사흘째 밤에 왔다. 못가에 등롱 둘이 다가왔다. 앞의 등롱은 서리가 들었고, 뒤의 등롱은 군사가 들었다. 그 사이에 권억이 걸어왔다. 그는 못가 돌계단 위에 서서 김을 뿜는 작은 기관과 그 옆에 누운 큰 통과 열두 자 홈대를 차례로 올려다보았다. 등롱 불빛이 그의 얼굴을 아래에서 비춰서 눈두덩이 깊어 보였다.
“여기가 어디인지 아느냐?”
권억은 나에게 묻지 않았다. 장영실에게 물었다.
“사신을 맞는 자리다. 나라에서 제일 높은 손님이 앉아 술을 드는 자리. 그 못에 관노가 쇳덩이를 박아 놓고 밤마다 김을 뿜는다.”
장영실은 큰 통 옆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숙인 채로 말했다.
“전하께서 못물을 올려 보라 하셨습니다.”
“올려 보라 하셨지, 밤에 궁 안을 휘젓고 다니라 하시지는 않았다.”
권억은 서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서리가 종이 한 장을 그 손에 놓았다.
“오늘부터 해가 지면 못가에서 손을 뗀다. 궁 담 안에서 밤에 불을 피우는 것은 공조가 맡은 일이다. 공조가 금한다.”
나는 숨이 막혔다. 낮에만 일하면 날짜가 반으로 줄었다. 반으로 줄면 시연 날까지 큰 통 속을 다 깎을 수 없었다. 나는 한 걸음 나섰다. 장영실이 이번에는 내 소매를 잡지 않았다. 대신 그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
“영감.”
장영실이 권억을 똑바로 보았다. 그가 권억을 그렇게 보는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쇠는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관노가 깎든 양반이 깎든 놋쇠는 머리카락 두 올이면 새고, 한 올이면 섭니다. 이 통이 그 한 올에 닿으려면 밤이 필요합니다. 시연이 그르치면 신이 벌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 벌은 받겠습니다. 다만 그르치게 만들지는 마십시오.”
등롱 불이 흔들렸다. 서리가 권억의 얼굴을 살폈다. 권억은 한참 장영실을 보다가, 웃었다. 입꼬리만 올라가는 그 웃음이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늦게 올라갔다.
“동래 관노가 이제 공조에 말을 가르치는구나.”
권억은 종이를 접어 소매에 넣었다. 금한다는 말을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등롱 쪽으로 돌아서다가 한마디를 더 했다.
“그리고 공방 관비 언년은 내일부터 공조 관아 부엌으로 옮긴다. 공조 관아에 손이 모자라다.”
못가 저쪽에서 장작을 나르던 언년이 그 자리에 섰다. 장작 하나가 그녀 품에서 떨어져 돌계단을 굴러 못에 빠졌다. 퐁 하는 소리가 났다.
“관비 하나 옮기는 것도 공조가 맡은 일이다.”
권억은 그 말을 남기고 갔다. 등롱 둘이 멀어졌다. 언년은 못에 떨어진 장작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남은 장작을 기관 옆에 내려놓고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가려다가 멈췄다. 따라가서 할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공조 관아 부엌은 권억의 집 마당이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그린 그림을 권억이 소매에 넣고 다닌다는 것을 우리는 둘 다 알았다.
*
그날 밤 우리는 손을 떼지 않았다. 장영실이 불을 끄지 말라고 했다. 공조가 금한다는 말을 들은 바로 그 밤에, 그는 작은 기관 솥 밑에 장작을 하나 더 밀어 넣었다. 장인들은 돌려보냈다. 벌을 받을 사람은 둘이면 된다고 했다. 못가에는 그와 나만 남았다. 진자가 갔다 왔다 했고, 큰 통 속에서 날이 사각거렸다.
자정이 조금 지나 언년이 왔다. 주먹밥 두 개를 싼 보자기를 들고 있었다. 장영실 앞에 하나, 내 앞에 하나를 놓고, 그녀는 못가 돌계단에 앉았다. 한동안 셋 다 말이 없었다. 언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 서방, 밥 할 줄 알아요?”
“전기밥솥으로는요.”
“그게 뭔지는 안 물을게요. 쌀 씻어서 물을 손등까지 부어요. 손등 뼈 있는 데까지. 끓으면 불을 빼고, 뜸은 길게. 장인들은 누룽지를 좋아해요. 돌석 아저씨는 진밥 싫어하고, 윤 노인은 된밥 못 씹어요. 둘 다 맞추려면 솥 가운데를 떠서 윤 노인 주고 가장자리를 돌석 아저씨 줘요.”
나는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뼈가 어디 있는지 손가락으로 짚어 보았다. 언년이 그 손을 잡아 뼈 자리를 눌러 주었다. 여기요. 그녀의 손가락은 차갑고 거칠었다. 물을 너무 많이 만진 손이었다.
“그리고 공조 관아 부엌에 가면요.”
언년은 내 손을 놓고 못물을 보았다.
“거기도 귀가 있고 입이 있어요. 영감 사랑채에 상 들고 들어가는 사람이 나예요. 무슨 말이 들리면 가져올게요.”
“위험해요.”
“관비가 위험하지 않은 데가 있으면 알려 줘요.”
그녀는 일어나 치마의 흙을 털었다. 그리고 장영실에게 허리를 숙였다. 장영실은 주먹밥을 든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언년은 돌계단을 올라가다가 한 번 돌아보았다. 진자를 보았다. 갔다 오고, 갔다 오는 돌을.
나는 그 옆에 앉아 무릎을 안았다. 저고리는 낮에 빠진 물에서 다 마르지 않았다. 입김이 하얗게 나왔다. 머릿속에서 강의실이 떠올랐다. 교양 수업 강의실, 화요일 오후 세 시. 강사는 슬라이드 마지막 장에 자격루 사진을 띄우고 장영실의 생애를 한 줄로 요약했다.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임술년 이후 행적 불명. 그 줄 아래에 강사가 덧붙인 말이 있었다. 이 사람은 그 뒤로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졸고 있었다.
“장 나리.”
나는 처음으로 그렇게 불렀다. 장영실이 고개를 돌렸다.
“동래는 어떤 데예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큰 통 속에 손을 넣어 방금 깎인 자리를 손끝으로 쓸어 보았다. 손을 빼고 쇳가루를 불었다. 그리고 못물을 보았다. 누각의 돌기둥들이 거꾸로 서 있는 검은 물이었다.
“바다가 있지.”
그것뿐이었다. 그는 그 뒤로 동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바다를 보며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 바다에서 무엇을 두고 왔는지 나는 모른다. 기록에도 없다. 그는 쇳가루 묻은 손을 무릎에 문질러 닦고, 진자를 한 번 손으로 고르게 밀어 주었다.
나는 그때 말하려고 했다. 임술년에 가마가 부서진다고. 그 가마를 만드는 일은 맡지 말라고. 아니면 맡더라도 이음새마다 두 번 세 번 보라고.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지금 등롱을 들고 온 저 사람 같은 사람이. 입을 열었다. 찬 공기가 목으로 들어갔다.
“나리, 나중에….”
장영실이 나를 보았다. 기다리는 눈이었다. 나는 그 눈을 보다가 깨달았다. 내가 말하면 그는 믿을 것이다. 이 사람은 내 손이 짚은 홈을 믿고 제 이름을 두 번 걸었다. 내 입에서 나온 말도 믿을 것이다. 그리고 여덟 해 동안 그 말을 지고 살 것이다. 가마를 볼 때마다, 이음새를 만질 때마다.
“…나중에 동래 바다, 같이 가 봐요.”
장영실은 잠깐 나를 보다가 다시 큰 통 쪽으로 돌아앉았다. 대답은 없었다. 진자가 갔다 왔다 했다. 나는 하려던 말을 삼켰고, 삼킨 말이 목에서 내려가지 않아서 한참 동안 침을 삼켰다. 말하지 않은 것이 그를 위해서였는지 내가 겁이 나서였는지, 나는 지금도 가리지 못한다.
새벽이 가까워 올 무렵 못가로 사람이 뛰어왔다. 공방 장인 말복이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궁 안에 기별이 돌았다고 했다. 명나라 사신 일행이 의주를 지났다고. 조선과 명나라의 국경에 있는 고을이었다. 연회 날이 당겨질지 모른다고.
장영실은 대답 대신 솥 밑에 장작을 하나 더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