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23자)
쐐기
공대생, 세종 밑에서 증기기관 만들다 · 도경
사신 일행이 한양에 든 날, 궁 안에서는 아침부터 북이 울렸다. 나는 그 북소리를 경회루 못가에서 들었다. 서대문 밖에서 임금이 사신을 맞는다고 했다. 궁 담 밖 하늘에 깃발 끝이 몇 개 보였다가 사라졌고, 말발굽 소리가 먼 데서 오래 이어졌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그게 다였다. 나머지는 언년이 전해 주었다. 사신은 둘인데 하나는 늙고 하나는 젊고, 그 뒤로 수레가 서른이 넘고, 수레마다 비단을 덮었다고. 공조 관아 부엌에서 들은 말이었다.
“그리고 통사가 하나 있대요. 조선말을 조선 사람보다 잘한대요.”
통사는 두 나라 말을 옮기는 사람이었다. 언년은 그 말을 하고 나서 내 얼굴을 살폈다.
“어젯밤 그 통사가 공조 영감 사랑채에 왔어요. 늦게. 상을 들고 들어갔는데 둘이 말을 멈추더라고요. 나올 때 한마디 들었어요. 기계가 서면, 이라고.”
“서면 뭐요?”
“거기까지요. 문 닫혔어요.”
언년은 그 말만 하고 공조 관아로 돌아갔다. 그녀가 공방을 떠난 지 열이틀째였다. 손등 뼈까지 물을 붓는 법을 배운 뒤로 나는 밥을 세 번 태웠고, 두 번은 설익혔고, 한 번은 돌석이 이 정도면 먹겠다고 했다.
*
마지막 시험은 연회 전날 낮에 했다. 해가 났고, 바람이 없었다. 못물이 거울 같았다.
큰 통 속은 밤마다 깎았다. 공조가 금한 밤이었다. 장영실은 끝내 손을 떼지 않았고, 권억은 끝내 그 일을 문제 삼지 않았다. 문제 삼지 않는 것이 더 무서웠다. 금한 것을 어긴 일은 언제든 꺼낼 수 있게 소매 속에 접혀 있었다. 큰 통 속에는 머리카락이 한 올도 끼지 않았다. 윤 노인이 마지막 열흘을 줄 하나로 다듬었다. 돌석은 첫 풀무 가죽의 마지막 남은 자락을 큰 피스톤 둘레에 감았다. 가죽이 모자라서 새 가죽을 이어 붙였다. 이음매에 쇠기름을 세 번 먹였다. 그의 시렁에는 이제 가죽이 없었다.
솥 밑에 불이 들어갔다. 김이 올랐다. 큰 피스톤이 올라가는 데 작은 기관보다 한참 오래 걸렸다. 꼭대기에 닿았다. 꼭지 끈이 당겨지고, 찬물이 뿌려지고, 통 안에서 퍽 하는 소리가 작은 기관보다 훨씬 깊게 울렸다. 못가 돌바닥이 발밑에서 떨렸다. 피스톤이 내려오고 들보가 기울고, 들보 반대쪽 끝에 매단 펌프 대가 못물 속에서 들렸다.
물이 올라왔다. 홈대 맨 아래 칸에 못물이 찰랑 고였다. 두 번째 박자에 그 물이 한 칸 위로 밀려 올라갔다. 세 번째, 네 번째. 진자가 갔다 오는 박자에 맞춰 물이 한 칸씩 올라갔다. 장인들이 고개를 젖혀 홈대를 올려다보았다. 여덟 번째 박자에 물이 열두 자 꼭대기에 닿았고, 아홉 번째 박자에 넘쳤다.
못물이 열두 자 위에서 못으로 쏟아졌다. 볕을 받아 하얗게 부서지며 떨어졌다. 떨어진 자리에 물보라가 일었고, 그 물보라 속에 작은 무지개가 섰다. 열두 자 아래 못가에 선 장인 아홉의 얼굴에 물방울이 튀었다. 아무도 닦지 않았다.
그때 홈대 꼭대기에서 무언가 퍼덕였다. 은빛이었다. 그것이 물줄기와 같이 떨어져 못에 첨벙 빠졌다. 잉어였다. 펌프 통으로 빨려 들어간 잉어 한 마리가 열두 자 홈대를 타고 올라갔다가 꼭대기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못가가 한순간 조용했다가 터졌다. 돌석이 난간을 붙잡고 웃었다. 말복이 주저앉았다. 윤 노인이 손뼉을 쳤다.
“저놈 용 되겠소!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면 용이 된다 하지 않소!”
“열두 자 올라가서 용 되면 우리는 다 정승이오!”
장인들이 웃는 사이에도 기관은 쉬지 않았다. 물이 계속 열두 자를 올라가 계속 떨어졌다. 나는 홈대를 올려다보다가 장영실을 보았다. 그는 웃지 않았다. 물보라 쪽으로 손바닥을 펴 들고 서 있었다. 손바닥에 물방울이 고였다. 그는 그것을 오래 보았다.
못가에서 이렇게 물을 올리는 데 쓴 것은 피스톤 하나와 들보 하나였다. 풀무를 밟던 기계가 방아를 찧었고, 방아를 찧던 기계가 큰 통을 깎았고, 이제 그 큰 통이 못물을 올렸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었다. 그 넷을 가르친 손은 열이었다.
*
통사가 온 것은 그 물보라가 아직 가라앉지 않았을 때였다. 권억이 앞에 서고, 그 뒤에 비단 옷을 입은 사내가 따랐다. 서른 남짓이었고, 웃는 얼굴이 묘하게 권억과 닮았다. 입은 웃는데 눈은 못물처럼 가만히 있었다. 통사는 못가 돌계단에 서서 열두 자 홈대와 쏟아지는 물과 오르내리는 들보를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연회 자리를 미리 살피러 왔습니다.”
통사가 말했다. 언년의 말대로 조선말이 매끄러웠다. 한양 사람보다 한양 사람 같았다. 그는 나를 보았다.
“이 기계를 만든 사람이 당신이오?”
“여기 계신 분들이 다 같이요.”
“겸손하시군.”
통사는 웃으며 큰 통 쪽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통이 뜨거워서 손이 닿기 전에 멈췄다. 그는 손을 거두며 권억을 돌아보았다.
“내일 사신께서 이걸 보시면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황제께서도 진기한 물건을 좋아하시지요. 다만 이런 물건은 한 번 보고 마는 게 아니라, 바칠 만하면 바치는 게 예입니다. 그리고 기계만 바치면 소용이 없지요. 돌릴 줄 아는 사람이 같이 가야 하니까.”
못가가 조용해졌다. 기관만 삐걱거렸다. 나는 장영실을 보았다. 장영실은 통사를 보지 않았다. 들보를 보고 있었다.
“사람째 데려가겠다는 말씀이오?”
내가 물었다. 권억이 나를 보았다. 통사가 대답하기 전에 권억이 먼저 말했다.
“사신 앞에서 예를 모르는 소리를 하는구나.”
“예를 몰라서가 아니라 물어보는 거예요. 기계를 바치면 사람도 가는 거냐고요.”
“그것은 전하께서 정하실 일이다.”
“영감은 어떻게 아뢸 건데요?”
권억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나에게 대답하지 않고 통사에게 몸을 돌렸다. 통사도 웃었다. 두 사람은 같은 웃음을 웃었다. 그 웃음을 보고 나는 알았다. 권억에게 이 시연은 이겨도 되고 져도 되는 판이었다. 기계가 서면 공방이 무너진다. 기계가 돌면 기계와 함께 장영실이, 나와 함께 장영실이 북경으로 간다. 어느 쪽이든 공방에는 관노만 남고, 관노는 원래 있던 관청으로 돌아간다.
“기계가 잘 돌면 좋겠습니다.”
통사가 말했다.
“아주 잘.”
그들은 누각 쪽으로 걸어갔다. 연회 자리를 살핀다고 했다. 권억이 누각 계단을 오르다 말고 한 번 돌아보았다. 그는 나를 보지 않았다. 못가 가장자리, 솥이 놓인 받침돌 쪽을 보았다. 한 번. 짧게.
해 질 녘 장인들이 연장을 챙기는 동안, 돌석은 못가에 엎드려 물속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무엇을 찾느냐고 물었더니 아까 그 잉어라고 했다. 내일 연회 상에 잉어찜이 오른다는 말을 부엌에서 들었다고. 용 될 놈이 찜이 되면 안 되지 않느냐고. 그는 결국 그 잉어를 찾지 못했고, 대신 못물에 떡 부스러기를 한 줌 뿌려 주고 일어났다. 어느 놈인지 모르니 다 먹이면 된다고 했다.
장영실은 큰 통 옆에서 꼭지 끈을 하나씩 당겨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섰다. 한참 서 있다가 물었다.
“북경 가라고 하시면 어떡해요?”
“가라 하시면 가야지.”
그는 끈을 놓지 않고 대답했다. 너무 쉽게 나와서 나는 다음 말을 잃었다.
“그건 내일 일이 끝나고 걱정하세. 내일 일이 안 끝나면 걱정할 일도 없네.”
그는 마지막 끈을 당겨 보고 나서 손을 털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 어깨를 한 번 짚었다. 짚었다기보다 손바닥을 얹었다가 뗐다. 쇠기름 냄새가 났다. 그는 보루각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내가 지금 그에게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셌다. 하나였다. 그 하나가 오늘따라 무거웠다.
*
그날 밤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장인들은 공방으로 돌려보냈다. 내일 새벽에 와서 불을 넣기로 했다. 나는 못가에 혼자 남아 진자를 보았다. 줄에 매달린 돌은 멈춰 있었다. 기관이 서 있으니 아무도 그 돌을 밀지 않았다.
권억이 마지막에 본 받침돌 쪽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등롱을 들고 솥으로 갔다.
솥은 큰 통 아래 받침돌 위에 앉아 있었다. 무쇠와 놋쇠를 겹쳐 부은 큰 솥이었다. 솥 어깨에 작은 구멍이 하나 있었고, 그 구멍을 무거운 놋쇠 뚜껑이 덮고 있었다. 숨구멍이었다. 김이 너무 많이 차면 그 뚜껑이 들려 김을 내보낸다. 솥이 터지지 않게 하는 마지막 뚜껑이었다. 내가 도면에 제일 먼저 그린 것이 그 뚜껑이었다. 교수님이 그것 없으면 졸업 못 한다고 했다.
등롱을 가까이 댔다. 뚜껑 가장자리가 반짝였다. 뚜껑과 솥 어깨 사이 이음새에 무언가가 박혀 있었다. 손가락으로 만져 보았다. 차갑고, 매끈하고, 끝이 얇았다. 쐐기였다. 놋쇠 쐐기 하나가 뚜껑 이음새에 단단히 박혀서, 뚜껑이 들리지 않게 물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손이 떨려서 등롱 불이 같이 흔들렸다.
내일 정오 연회가 무르익을 때 불을 넣는다. 김이 찬다. 피스톤이 오르내리는 동안에는 괜찮을 것이다. 그러다 무엇이 하나 어긋나서, 꼭지 끈 하나가 늦거나 찬물이 한 번 덜 뿌려져서 김이 솥에 갇히면 뚜껑이 들려야 했다. 뚜껑이 들리지 않으면 솥이 터진다. 경회루 못가에서, 임금과 사신이 내려다보는 누각 아래에서. 무쇠 조각이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
쐐기를 뽑으려고 손가락을 걸었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망치로 쳐서 박은 것이었다. 뽑으려면 뚜껑을 뜯어야 했다. 뚜껑을 뜯으면 이음새를 다시 맞춰야 했다. 다시 맞추려면 돌석의 가죽이 있어야 하는데, 돌석의 시렁에는 이제 가죽이 없었다. 새벽까지 남은 시간은 밤을 다섯으로 나눈 경으로 두 경이 채 못 되었다. 나는 그 셈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등롱을 쐐기에 더 가까이 댔다. 쐐기의 빛깔이 보였다. 볕에 비친 놋대야 빛. 공방에서 부은 놋쇠였다. 공조 서리가 저울에 달아 근수를 불러 가며 보낸 놋쇠, 다른 데 쓴 만큼 매를 맞기로 한 그 놋쇠였다. 쐐기 옆면에는 줄질 자국이 남아 있었다. 가늘고 고른 자국이었다. 공방에서 이렇게 가는 줄을 쓰는 손은 몇 되지 않았다.
나는 등롱을 받침돌 아래 진흙으로 내렸다.
발자국이 있었다. 솥 앞에서 멈췄다가 돌아 나간 발자국이었다. 두 줄이었다. 하나는 맨발이었다. 발가락 다섯이 진흙에 뚜렷이 찍혀 있었다. 다른 하나는 신을 신은 발이었다. 신코가 뾰족하고, 뒤꿈치가 깊게 박혀 있었다. 흙을 밟기 싫어하는 사람처럼 앞쪽만 얕게 디딘 걸음이 아니라, 무거운 것을 들고 선 사람의 걸음이었다.
담 너머에서 물시계가 시각을 쳤다. 나는 그 소리를 세지 않았다. 쐐기를 손가락으로 쥔 채 진흙의 발자국 두 줄을 보고 있었다. 맨발은 솥 앞에서 오래 서 있었고, 신발은 잠깐 서 있었다. 누가 먼저 왔는지는 진흙이 말해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