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02자)

요망한 자

공대생, 세종 밑에서 증기기관 만들다 · 도경

큰 통은 아홉 사람의 손으로 부었다. 칠복이 없는 거푸집은 말복이 다졌다. 말복은 나무를 다루는 사람이라 흙을 다지는 손이 서툴렀고, 첫 거푸집은 쇠를 붓기 전에 금이 갔다. 두 번째 거푸집은 윤 노인이 옆에서 한 줌씩 흙을 집어 주며 다졌다. 쇠를 붓던 날 나는 칠복이 쇠 차오르는 소리를 듣던 자리에 쪼그려 앉아 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연기만 눈에 들어갔다.

칠복이 사라진 지 사흘째 되는 날 승지가 공방에 왔다. 공조 참판이 아뢴 일이 있으니, 전하께서 보루각 앞뜰에서 친히 물으시겠다고 했다. 요망한 자 한도진, 공방 장인 장영실, 공방 관비 언년. 셋을 불렀다. 언년의 이름이 불렸을 때 그녀는 부엌 문간에서 들고 있던 바가지를 떨어뜨렸다. 바가지가 두 번 튀고 엎어졌다.

“나는 왜요?”

언년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가 그린 그림 한 장이 어디로 갔는지 우리는 둘 다 알고 있었다.

*

보루각 앞뜰에는 볕이 하얗게 깔려 있었다. 전각 안에서 물시계의 물소리가 났다. 항아리에서 항아리로 물이 떨어지는 가는 소리. 그 소리 위로 이따금 쇠구슬 구르는 소리가 지나갔다. 내가 첫날 손톱으로 짚은 홈을 지금도 구슬이 넘어가고 있었다.

임금은 전각 처마 아래 앉아 있었고, 그 곁에 승지가 섰다. 권억은 뜰 왼편에, 우리는 뜰 가운데에 엎드렸다. 뜰 오른편 끝에 누가 하나 엎드려 있었다. 고개를 깊이 묻어서 얼굴이 안 보였지만 나는 그 등을 알았다. 수업 첫날 맨 앞에 앉던 등이었다.

권억이 먼저 아뢰었다. 목소리가 차분하고 길었다. 저 자는 어디서 왔는지 끝내 말하지 않는다. 등에 오랑캐 글자를 지고 왔고, 사람이 들었다가 사라지는 거울을 품고 있었다. 공방 장인들에게 알 수 없는 말을 가르치며 밤마다 공방 문을 닫는다. 관비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여 천한 손에 나라의 기물을 맡겼다. 그리고 이제 명나라 사신 앞에 그 요망한 기계를 세우려 한다. 사신 앞에서 요망한 것이 드러나면 나라가 그 값을 치른다.

“하여 청하옵니다. 저 자를 공방에서 내치시고, 시연은 공방이 맡던 대로 장영실에게 맡기소서.”

나는 그 말을 듣고 엎드린 채로 숨을 멈췄다. 시연을 장영실에게 맡기라는 것은 나를 빼고 시연을 하라는 말이었고, 나 없이 큰 통이 김을 먹을 리 없었다. 시연이 무너지면 무너진 이름은 장영실의 것이 된다. 권억은 나를 치는 게 아니라 나를 비켜서 장영실을 치고 있었다.

“증언할 자가 있다 하였느냐?”

임금이 물었다. 권억이 뜰 오른편을 가리켰다.

“공방 놋쇠 장인 칠복이옵니다.”

칠복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승지가 말해 보라고 하자 그는 땅에 대고 말했다. 목소리가 떨려서 처마 아래까지 잘 들리지 않았고, 승지가 크게 하라고 두 번 말했다. 칠복은 세 번째에 크게 말했다. 한 서방이 밤마다 혼자 기관 앞에 앉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외웠다. 그 말을 외우면 기관이 빨라졌다. 장인들은 그 말을 몰랐다. 그런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게 더 아팠다. 칠복이 한 말은 다 사실이었다. 빠진 것은 그게 노래라는 것 하나였는데, 그 하나를 칠복은 알고 있었다. 헛간에서 내가 말해 주었다.

권억이 소매에서 종이를 꺼내 승지에게 건넸다. 누런 종이였다. 승지가 그것을 임금 앞에 펼쳤다. 언년이 그린 양수기 그림이었다. 큰 통, 펌프 통, 들보, 열두 자 홈대. 언년이 내 옆에서 바닥에 이마를 댄 채로 굳었다. 이마 밑의 흙이 그녀의 숨으로 조금씩 날렸다.

“관비가 그린 것이옵니다. 저 자가 관비에게 그림을 가르쳤습니다.”

*

임금은 그림을 오래 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들었다.

“한도진.”

“예, 전하.”

“외운 것이 무엇이냐? 여기서 외워 보아라.”

뜰이 조용해졌다. 물시계 물소리만 났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처마 아래 임금이 나를 보고 있었다. 권억도, 승지도, 장영실도, 언년도. 칠복만 보지 않았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로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불렀다.

학과 엠티에서 백 번 부른 그 노래였다. 반은 영어고 반은 한국말인데, 한국말 쪽도 이 뜰에서는 영어나 다름없었다. 처음 한 소절은 목이 잠겨서 쉰 소리가 나왔다. 두 번째 소절부터는 박자가 붙었다. 나는 무릎 위에 손바닥으로 박자를 짚었다. 하나, 둘, 셋, 넷. 후렴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였다. 엠티 노래방에서 하던 버릇이었다.

승지가 기침을 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오래. 처마 기둥 뒤에 섰던 내관 하나의 어깨가 떨렸다. 권억의 얼굴은 처음에는 굳었다가, 내가 후렴에서 팔을 한 번 뻗자 무언가를 잘못 삼킨 얼굴이 되었다. 언년은 엎드린 채 내 무명 저고리 자락을 잡아당겼다. 그만하라는 건지, 잘하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후렴이 끝났다. 나는 노래를 멈추고 다시 엎드렸다. 뜰에 아무 소리가 없었다. 물시계에서 구슬이 하나 굴렀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

임금이 물었다. 나는 엎드린 채 대답했다.

“너를 처음 본 날부터 가슴이 뛰었다는, 뭐, 그런 말입니다.”

승지가 다시 기침을 했다. 이번에는 오래 그치지 않았다.

“그것으로 무엇을 하였느냐?”

임금의 목소리에는 웃음이 없었다. 진짜로 묻는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박자를 셌습니다. 이 노래는 박자가 고릅니다. 후렴이 한 번 도는 동안 피스톤이 여덟 번 오르내리면 기관이 제대로 도는 겁니다. 일곱 번이면 김이 모자라고, 아홉 번이면 찬물이 모자랍니다. 제가 살던 데서는 그걸 재는 기계가 따로 있었는데, 여기는 없어서….”

임금이 고개를 돌려 전각 안쪽을 보았다. 물시계가 있는 쪽이었다.

“영실아.”

“예, 전하.”

“물시계 없이 시각을 재는 것이로구나. 노래로.”

장영실이 그렇다고 아뢰었다. 나는 그 말을 하는 장영실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풀린 것을 들었다. 임금은 언년의 그림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이번에는 들보 받침 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 그림을 그린 관비가 누구냐?”

언년이 바닥에 이마를 댄 채로 말했다. 저이옵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림이 바르다.”

임금은 그 한마디만 했다. 벌을 내린다는 말도, 그리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권억이 무어라 아뢰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임금이 이미 다른 쪽을 보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숙였다. 언년의 등이 한 번 들썩였다. 그녀는 이마를 땅에 댄 채 그대로 있었다.

*

권억은 물러서지 않았다. 노래가 주문이 아니라 해도, 저 자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는 것은 그대로라고 아뢰었다. 출신을 모르는 자를 사신 앞 시연에 세우는 것은 나라를 거는 일이라고.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나는 끝내 내가 어디서 왔는지 말할 수 없었다. 말하면 그때야말로 요망한 자였다.

임금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장영실을 불렀다.

“영실아, 이 자를 믿느냐?”

장영실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엎드린 채로 잠깐 있다가,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

“신이 믿는 것은 이 자의 손이옵니다. 이 자가 어디서 왔는지는 신도 모릅니다. 다만 그 손이 짚은 홈을 지금 구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전각 안에서 구슬이 하나 굴렀다.

“시연이 그르치면 신이 함께 받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장영실을 보았다. 그는 나를 보지 않았다. 처마 아래를 향해 엎드린 등이 공조 뜰에서처럼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나는 그 등을 보다가 보루각 담 너머를 보았다. 그날 길가에 놓여 있던 임금의 가마는 거기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 가마를 보았다. 임술년. 여덟 해. 이 사람은 지금 나 때문에 제 이름을 두 번째로 걸고 있었다. 첫 번째는 공조 뜰 형틀 앞이었다.

“그리하라.”

임금이 말했다. 승지가 그 말을 받아 크게 알렸다. 경회루 시연은 장영실과 한도진이 함께 맡는다. 시연이 그르치면 둘이 함께 벌을 받는다. 권억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원하던 것을 반만 얻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는 장영실의 이름을 시연 위에 올려놓았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

뜰을 나서는 길에 칠복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그는 권억의 서리 뒤를 따르고 있었다. 증언을 마쳤으니 면천을 아뢰어 주겠다던 말이 있었다. 서리는 칠복을 돌아보지도 않고 걸었다. 보루각 문 앞에서 서리가 멈추더니, 칠복에게 무어라 짧게 말하고 혼자 나가 버렸다. 칠복은 문 앞에 그대로 섰다.

나는 그 앞을 지나가며 칠복을 보았다. 칠복은 땅을 보고 있었다. 그의 맨발 발등에 흙이 묻어 있었다. 짚신이 없었다.

“칠복 씨.”

칠복은 대답하지 않았다. 돌석이 뒤에서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는 칠복을 보지 않고 지나갔다. 장영실도 지나갔다. 언년은 칠복 앞에서 잠깐 멈췄다가, 제 머릿수건을 풀어 칠복의 발 앞에 떨어뜨리고 지나갔다. 발을 싸라는 건지 땀을 닦으라는 건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공방에는 소문이 우리보다 먼저 와 있었다. 문턱을 넘자마자 남아 있던 장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임금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게 참말이냐고. 돌석이 대답 대신 나를 앞으로 떠밀었다. 불러 보라고. 나는 싫다고 했다. 돌석은 임금님은 들으셨는데 우리는 못 듣느냐고, 그건 법도가 아니라고 했다.

결국 나는 화덕 앞에서 후렴을 한 번 더 불렀다. 장인들이 따라 부르려고 했다. 아무도 못 따라왔다. 돌석은 박자를 손뼉으로 치다가 두 박을 늘 늦게 쳤고, 말복은 영어 대목에서 혀를 깨물었다. 윤 노인이 손을 들었다. 또 학생처럼.

“노래는 사람마다 빠르기가 다르오. 한 서방이 지치면 노래가 늘어지고, 그럼 기관이 느린지 한 서방이 느린지 모르지 않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다. 윤 노인은 공방 구석으로 가서 삼실 한 가닥을 들보에 매고, 그 끝에 주먹만 한 돌을 묶었다. 돌을 옆으로 당겼다가 놓았다. 돌이 흔들렸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한 번 가고 오는 사이가 처음에도 나중에도 같았다.

“줄 길이가 같으면 흔들리는 빠르기도 같소. 우물 두레박 줄 보고 안 거요.”

나는 그 돌을 오래 보았다. 진자였다. 이탈리아 학자 갈릴레오가 성당의 등잔을 보고 알았다는 그것을, 이 노인은 우물가에서 알았다. 그날부터 기관 옆에 돌 하나가 매달렸고, 돌이 여덟 번 갔다 오는 동안 피스톤이 여덟 번 오르내리면 기관이 제대로 도는 것이 되었다. 내 노래는 공방에서 은퇴했다. 돌석이 제일 아쉬워했다.

밤이 되어 나는 큰 통 옆에 앉았다. 막 거푸집에서 꺼낸 통은 아직 따뜻했다. 나는 손바닥을 통 벽에 대고 셈을 했다. 경회루 연회까지 남은 날, 통 속을 깎는 데 드는 날, 펌프 통과 홈대를 세우는 데 드는 날. 날짜가 모자랐다. 그리고 그 셈의 맨 끝에, 내가 셈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따라붙는 숫자가 하나 있었다. 여덟.

그날 밤 나는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았다. 기관도 돌리지 않았다. 담 너머에서 물시계가 시각을 칠 때마다 장영실이 공조 뜰에서 숙이던 허리를 떠올렸다.

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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