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206자)
열 사람의 손
공대생, 세종 밑에서 증기기관 만들다 · 도경
언년이 판때기 하나를 공방 기둥에 세웠다. 세 번 화덕 재에 문질러 지운 그 판때기였다. 나무결 사이에 숯 자국이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어서, 들여다보면 지워진 통과 들보가 겹겹이 보였다. 그녀는 그 앞에 숯 토막 한 줌을 놓고 내 쪽을 보았다. 나는 공방 바닥에 깐 거적 위에 엎드려 있었다. 등이 무명 저고리에 닿을 때마다 이를 물었다.
돌석이 데려온 장인은 열이었다. 열여덟 가운데 열. 나머지 여덟은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은 사람을 탓하지 말라고 돌석이 먼저 말했다. 요망한 자 옆에 앉아 있다가 공조 눈에 띄면 다음에 짐을 싸는 건 자기라는 것을 다들 알았다. 온 열은 그걸 알고도 왔다. 칠복이 맨 앞에 앉았고, 줄질을 하는 윤 노인이 맨 뒤에 앉았다. 윤 노인은 예순이 넘었는데 공방에서 가장 가는 줄을 쓰는 손이었다. 그 손으로 자격루의 구슬 홈도 깎았다고 했다.
“자, 이게 실린더고요.”
나는 엎드린 채 손가락으로 판때기를 가리켰다. 언년이 통을 그렸다.
“김이 차면 압력이 생겨서….”
“압력이 뭐요?”
윤 노인이 물었다. 나는 누르는 힘이라고 했다. 윤 노인은 무엇이 무엇을 누르느냐고 물었다. 나는 김이 통 벽을 누른다고 했다. 윤 노인은 김이 어떻게 벽을 누르느냐, 김은 손으로 잡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나는 대답하려고 숨을 들이켰다가 등이 당겨서 말을 놓쳤다.
“솥뚜껑 들썩이는 거요.”
언년이 말했다. 윤 노인이 아, 하고 무릎을 쳤다.
그날 수업은 내내 그랬다. 내가 말하면 장인들이 못 알아듣고, 언년이 한 번 옮기면 알아들었다. 진공은 「식은 솥뚜껑」이 되었다. 효율은 「숯 아끼기」가 되었다. 내가 피스톤의 왕복운동이라고 하자 언년은 「디딜방아 밟듯」이라고 했고, 내가 냉각수 분사 시점을 맞춰야 한다고 하자 그녀는 「찬물은 꼭대기에서 끼얹어야 한다」고 했다. 그녀가 옮긴 말이 내 말보다 짧고 정확했다. 내가 석 달 동안 교수님 앞에서 한 설명보다 그녀의 한 마디가 더 잘 먹혔다.
“한 서방은 말을 길게 하는 병이 있소.”
칠복이 말했다. 장인들이 웃었다. 언년은 웃지 않고 판때기에 들보를 그렸다. 웃지 않는 입 끝이 조금 올라가 있었다.
*
닷새 동안 그렇게 했다. 낮에는 공방 일을 하고, 해가 지면 공방 문을 닫고 판때기 앞에 모였다. 내 등의 딱지가 앉는 동안 장인 열은 저마다 한 가지씩을 손에 쥐었다. 칠복은 통의 거푸집을, 돌석은 피스톤의 가죽을, 윤 노인은 꼭지의 구멍을, 목수 말복은 들보의 나무를 맡았다. 나머지 여섯도 이음새, 솥, 장작, 찬물 홈, 받침돌, 끈을 하나씩 맡았다. 나는 그들이 저마다 맡은 것을 판때기 앞에 나와 남에게 다시 설명하게 했다. 대학에서 조별 과제를 할 때 쓰던 방법이었다. 자기가 남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아는 거라고, 교수님이 늘 그랬다.
“한 서방, 그 교수님이라는 분은 대체 뭐 하는 분이오?”
“학당 훈장님이요.”
“훈장이 그렇게 말이 많소?”
“네. 제일 많아요.”
말복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들보를 깎을 나무를 고르는 데만 사흘을 들였다. 결이 곧아야 하고, 옹이가 없어야 하고, 마른 지 세 해는 넘어야 한다고 했다. 내 도면에는 그런 말이 한 줄도 없었다. 나는 「목재」라고만 써 놓았다.
그 닷새 사이에 장영실이 나를 한 번 화덕 앞으로 불렀다. 그는 도가니 속 놋쇠의 빛을 가리키며 지금 부으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온도계가 없으니 몇 도인지 알 수 없다고. 장영실은 그 말을 듣고 도가니 쪽으로 손바닥을 펴 보였다.
“눈으로 보게. 이 빛이 흰 쪽으로 가면 아직 이르고, 붉은 쪽으로 기울면 늦네. 그 사이, 볕에 비친 놋대야 빛이 될 때 붓게.”
나는 그 빛을 오래 보았다. 볕에 비친 놋대야 빛. 내가 아는 숫자는 하나도 없는 말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 나서 도가니 속이 다르게 보였다. 그는 나한테 김을 배우고, 나는 그한테 빛을 배웠다. 그 거래가 공방에서 제일 공평했다.
*
공조에서 놋쇠가 온 것은 엿새째 아침이었다. 권억은 임금 앞에서 쇠가 넉넉하다고 아뢰었다. 넉넉하다고 아뢴 이상 경회루 시연에 쓸 쇠까지 끊을 수는 없었다. 수레에 놋쇠가 실려 왔고, 그 뒤에 권억이 직접 왔다. 서리가 놋쇠 덩이를 한 덩이씩 저울에 달며 근수를 불렀다. 장영실이 그 앞에 서서 근수를 하나하나 따라 셌다.
“시연에 쓸 만큼만이다. 한 근이라도 다른 데 쓰면 그 근수만큼 매를 친다.”
권억은 그렇게 말하고 공방 안을 둘러보았다. 판때기가 기둥에 그대로 서 있었다. 지난밤의 들보 그림이 다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권억의 눈이 판때기에 오래 머물렀고, 그 옆에 쪼그려 앉아 숯을 줍던 언년에게로 옮겨 갔다. 언년은 얼른 숯을 치마폭에 감췄다. 권억은 그 손을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더 무서웠다.
권억은 마당 한가운데 섰다. 장인들이 하나둘 일을 멈추고 그쪽을 보았다.
“내 들은 것이 있다.”
권억의 목소리가 마당 끝까지 갔다.
“이 요망한 자가 밤마다 공방 문을 닫고 무언가를 외운다고 한다. 무엇을 외우는지 아무도 모르는 말로. 공방 장인 가운데 그것을 들은 자가 있다면, 들은 대로 공조에 와서 말하라.”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 서리가 저울질을 멈췄다.
“바른 말을 한 자는, 내가 전하께 아뢰어 면천을 받게 해 주겠다.”
면천은 관노의 신분을 벗겨 양인으로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 말이 마당에 떨어지자 공방의 소리가 다 멎었다. 화덕 불 소리까지 줄어든 것 같았다. 열 사람 가운데 아홉이 관노 출신이었다. 돌석도, 칠복도, 윤 노인도. 그들의 자식들도 관노로 났고, 그 자식들도 그럴 것이었다. 그것을 벗겨 준다는 말이었다. 증언 한 번으로.
나는 거적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등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참고 권억 앞으로 갔다.
“주문 같은 거 안 외웠어요. 밤에 한 건 수업이에요. 저 판때기 앞에서….”
“네 말은 묻지 않았다.”
권억은 나를 보지도 않았다. 그는 장인들의 얼굴을 하나씩 훑고 있었다.
“우리는 본 게 없소.”
돌석이 말했다. 그는 풀무 앞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밤에 한 서방이 떠든 건 솥뚜껑 얘기요. 주문이면 우리가 먼저 도망갔지.”
장인 몇이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윤 노인은 줄을 쥔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늙어서 면천이 되어도 쓸 데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권억은 돌석의 말을 다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돌석 대신 그 옆의 칠복을 보았다.
칠복은 바닥을 보고 있었다.
“네 어미가 아직 사복시에 매여 있다지.”
권억이 말했다. 다정한 목소리였다.
“마구간 똥을 치운 지 스무 해가 넘었다고 들었다. 아들이 면천되면 어미도 함께 풀어 달라고 아뢰는 것이 사람의 도리다. 나는 그 도리를 막지 않는다.”
칠복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권억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돌아섰다. 서리가 저울을 챙겼다. 권억은 문턱을 넘으며 판때기를 한 번 더 보았다. 그리고 그 앞의 언년을.
그날 오후 나는 칠복을 찾았다. 그는 공방 뒤 헛간, 내가 첫날 묶여 있던 그 숯 가마니 사이에 앉아 있었다.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턱을 얹고, 손톱으로 가마니 새끼를 하나씩 뜯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손을 멈췄다.
“한 서방, 하나만 물읍시다.”
“네.”
“밤에 혼자 기관 돌릴 때 흥얼거리는 거, 그거 진짜 주문 아니오?”
나는 잠깐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러다 생각났다. 피스톤이 오르내리는 박자를 셀 때 나는 늘 노래를 흥얼거렸다. 학과 엠티에서 백 번은 부른 아이돌 노래였다. 박자가 기관과 얼추 맞아서, 후렴이 한 번 돌면 피스톤이 여덟 번 오르내렸다. 그걸로 기관이 빨라졌는지 느려졌는지 쟀다.
“노래예요. 그냥 노래.”
“무슨 노래가 그렇소? 말이 하나도 안 들리던데.”
“제가 살던 데 노래예요.”
칠복은 나를 오래 보았다. 그리고 가마니 새끼를 다시 뜯기 시작했다.
“한 서방은 돌아갈 데가 있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칠복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우리 어미는 돌아갈 데가 사복시 마구간이오. 나도 공방 닫히면 거기요. 한 서방 노래가 노래든 주문이든, 나는 그걸 모르오. 아는 건 그거 하나요.”
그는 일어나서 숯가루를 털고 헛간을 나갔다. 나는 그 자리에 남아 칠복이 뜯어 놓은 새끼 부스러기를 보았다. 한 줌이 넘었다.
*
그날 밤에도 수업을 했다. 장인 열 가운데 아홉이 왔다. 칠복이 오지 않았다. 다들 칠복의 빈자리를 보았지만 아무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언년은 판때기에 양수기 그림을 그렸다. 경회루 못 옆에 세울 큰 통, 그 통 옆에 물을 끌어올릴 펌프 통, 들보와 받침, 못물이 올라가 흘러내릴 열두 자 높이의 홈대. 그녀는 그 그림을 세 장 더 종이에 옮겨 그렸다. 나무판은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종이는 내가 공방 창고 구석에서 찾아낸 누런 종이였다.
수업이 끝나 갈 무렵 윤 노인이 손을 들었다. 예순이 넘은 사람이 학생처럼 손을 드는 것을 보고 다들 웃었다. 윤 노인은 웃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판때기의 큰 통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이 통이 식으면, 바깥 하늘이 이 마개를 누른다 그 말이구먼. 솥뚜껑을 하늘이 누르고 있었던 거여.”
공방 안이 조용해졌다. 나는 그 말을 대기압이라고 배웠다. 대기압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그것을 그렇게 말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 언년이 숯 토막을 쥔 채 윤 노인을 보았다. 윤 노인은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예순 넘은 장인이 스물셋 관비에게, 학당에서 훈장에게 하듯이.
“언년이 선생 덕이오.”
다른 장인들이 웃으며 따라 숙였다. 언년 선생, 언년 선생. 처음에는 놀리는 소리였는데, 돌석이 진지하게 따라 숙이자 웃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언년은 숯 토막을 떨어뜨렸다. 줍지도 않고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부엌에서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 물 붓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그날 밤 장인들에게 쌀밥에 누룽지까지 긁어 주었다.
자정이 넘어 다들 돌아간 뒤, 나는 언년이 종이에 옮긴 그림 세 장을 판때기 뒤에 끼워 두었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두 장뿐이었다. 칠복이 늘 앉던 맨 앞자리 거적이 한쪽으로 젖혀져 있었고, 거적 밑 흙에 맨발 자국이 판때기 쪽으로 났다가 문 쪽으로 돌아 나가 있었다. 공방 문은 안에서 빗장을 걸어 두었는데, 그 빗장이 밖에서 가는 막대로 밀어 올린 듯 반쯤 빠져 있었다. 칠복은 공방 빗장을 밖에서 여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 법을 장인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 칠복이었다.
없어진 한 장은 언년이 그린 것이었다. 관비가 그린 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