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246자)

쌀 없는 공방

공대생, 세종 밑에서 증기기관 만들다 · 도경

초하루 아침, 언년의 솥에는 물만 끓었다. 그녀는 솥 앞에 서서 한참 김을 보다가, 부엌 시렁에서 보리 자루를 내려 거꾸로 털었다. 보리 두 줌과 쥐똥 세 알이 떨어졌다. 그녀는 쥐똥을 골라 아궁이에 던져 넣고, 보리 두 줌을 솥에 넣었다. 그날 공방 장인 열여덟이 먹은 것은 그 두 줌으로 끓인 멀건 죽이었다. 숟가락을 넣으면 바닥이 보였다.

장인들은 죽을 다 먹고도 그릇을 놓지 않았다. 칠복이 제 그릇 바닥을 혀로 핥다가 돌석과 눈이 마주쳐서 그만두었다. 돌석은 그릇을 내려놓고 제 배를 두 번 두드렸다. 소리가 북처럼 울렸다.

“이 배가 원래 이 소리가 안 나는 배요.”

나는 그날 하루 동안 이 공방에서 쌀이 나올 수 있는 길을 다 셈해 보았다. 공조는 끊었다. 임금에게 고하는 길은 장영실이 막았다. 쇠를 팔 수는 없었다. 관물을 팔겠다는 말을 한 번 했다가 무슨 일이 났는지 나는 기억했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하나였다. 공방의 물건이 아닌 기계를, 공방의 일이 아닌 일에 쓰는 것.

“돌석 아저씨 사는 동네에 방앗간 있어요?”

돌석은 내 얼굴을 보다가, 그건 왜 묻느냐고 묻지 않고 대답했다. 있다고. 장인들 모여 사는 골목 끝에 디딜방아 둘 놓은 방앗간이 있는데, 거기 할멈이 사람을 사서 방아를 찧고 찧은 삯을 곡식으로 받는다고. 할멈은 셈이 빠르고 이가 셋밖에 없다고. 셈 이야기와 이 이야기가 왜 같이 나오는지는 가 보면 안다고 했다.

*

장인 마을은 궁 담에서 한참 걸어 나간 개천가에 있었다. 지붕은 거의 다 초가였고, 집과 집 사이가 어깨 하나 들어갈 만큼 좁았다. 골목마다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놋그릇 두드리는 소리, 쇠 두드리는 소리, 짚신 삼는 소리. 개천에서는 빨랫방망이 소리가 났다. 냄새는 공방보다 사람 냄새가 많았다. 된장 냄새와 아이들 오줌 냄새와 쇠똥 냄새가 한 골목에 섞여 있었다.

돌석의 집은 그 골목 중간에 있었다. 돌석의 아내는 키가 돌석 어깨에도 못 미쳤는데, 돌석이 문간에서 나를 소개하기도 전에 그의 귀를 잡아당겼다. 쌀 끊긴 날 손님을 데려오는 게 어떤 사람이냐고. 돌석은 귀를 잡힌 채로 이 사람이 쌀을 가져올 사람이라고 했다. 아내가 나를 위아래로 보았다. 아이 셋이 그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가, 제일 작은 아이가 왜놈이다 하고 소리치며 도망갔다.

방앗간 할멈은 정말로 이가 셋이었다. 앞니 하나와 송곳니 둘. 그 셋으로 웃으면 무척 사나워 보였다. 나는 할멈 앞에 쪼그려 앉아 내 생각을 말했다. 방아를 사람 대신 김이 찧게 하는 기계를 놓겠다고. 그 기계로 마을 곡식을 찧고, 찧는 삯의 절반을 공방이 받겠다고.

“그 기계는 뉘 것이오?”

“지금은 없어요. 만들어야 돼요.”

“없는 기계로 삯을 반 떼어 간다?”

할멈이 이 셋으로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돌석이 왜 이 이야기를 같이 했는지도 알았다.

공방의 기관은 공방 것이었다. 그것을 들고 나오면 관물을 빼돌린 것이 된다. 새로 부을 놋쇠도 공방에는 없었다. 쇠는 끊겼다. 나는 할멈 앞에서 입만 벌리고 있었고, 그때 돌석의 아내가 부엌에서 무언가를 들고 나왔다. 귀가 떨어져 나간 놋대야였다. 그녀는 그것을 할멈 앞마당에 내려놓았다.

“이거 녹이면 되오?”

그날 저녁까지 그 마당에 놋그릇이 쌓였다. 금이 간 주발, 바닥이 뚫린 대야, 귀 떨어진 수저, 시집올 때 가져왔는데 찌그러져서 못 쓰는 요강 뚜껑까지 있었다. 장인 마을의 아낙들은 하나같이 놋그릇을 고치지 않고 모아 두었다. 언젠가 녹여서 쓸 데가 있다고. 놋쇠 장인 동네의 버릇이었다. 할멈은 쌓인 그릇을 한 바퀴 돌며 손가락으로 세었다. 그리고 삯은 반이 아니라 셋에 하나만 떼라고 했다. 그릇 낸 집 곡식은 공짜로 찧어 주고.

“기계가 반을 떼면 사람이 서운하오. 사람 서운하게 하면 기계도 오래 못 가오.”

할멈이 이 셋으로 그렇게 말했다.

*

기관은 공방 것보다 작게 부었다. 공방 장인들이 밤에 몰래 나와서 마을 대장간 화덕을 빌렸다. 칠복이 거푸집을 다졌고, 돌석이 바람을 넣었다. 사람 풀무였다. 김 풀무는 궁 안에 있었다. 실린더 속은 소 대신 마을 아이들이 번갈아 바퀴를 돌려 깎았다. 아이들에게는 한 바퀴에 엿 한 조각씩을 주기로 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열심히 돌려서 내 엿값이 쌀값을 넘을 뻔했다.

피스톤에는 돌석의 첫 풀무 가죽을 또 잘라 감았다. 가죽이 이제 손바닥 여섯 개만큼 남았다. 들보는 방앗간 대들보 옆에 걸었고, 들보 반대쪽 끝에 디딜방아 공이를 이었다. 사람이 디딜방아 끝을 밟아 공이를 올리고, 발을 떼면 공이가 떨어져 확 속의 곡식을 찧는다. 그 밟는 일을 들보가 했다.

처음 기관이 돈 날 마을 개들이 다 짖었다. 퍽, 하고 통이 식는 소리가 날 때마다 개들이 한꺼번에 짖었다가, 한 식경이 지나자 지쳐서 엎드렸다. 아이들은 방앗간 담에 줄줄이 매달려 공이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다. 할멈은 확 옆에 앉아 공이가 몇 번 떨어지는지 세다가, 사람 둘이 하루 찧을 것을 반나절에 찧는다는 셈을 냈다.

그 주에 공방 부엌에 쌀이 들어왔다. 많지는 않았다. 장인 열여덟이 하루 두 끼를 먹을 만큼이었다. 언년은 그 쌀을 솥에 안치기 전에 한 줌 쥐어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솥에 넣었다. 그날은 죽이 아니라 밥이었다.

장영실은 그 방앗간에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적어도 낮에는. 닷새째 밤, 내가 기관 불을 끄고 방앗간 문을 닫으려는데 개천 쪽 어둠에서 갓 하나가 걸어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들보 아래로 들어가 공이가 확에 떨어지는 높이를 손으로 재어 보았다. 그리고 공이를 매단 끈을 한 뼘 줄였다.

“너무 높이 들면 쌀이 부서지네. 겨만 벗기면 되는 걸세.”

나는 그걸 몰랐다. 할멈도 몰랐을 리는 없는데 말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언제 알아채나 보고 있었을 것이다. 장영실은 끈을 고쳐 매고 나서 확 속의 곡식을 한 줌 쥐어 손바닥에서 굴려 보았다. 그다음에 방앗간 문간에 앉아 졸고 있던 할멈에게 허리를 숙였다. 할멈이 깨어나 이 셋으로 웃었다.

“공조가 알면 오네.”

돌아가는 길에 장영실이 말했다. 언제 오느냐고 묻자 그는 대답 대신 하늘을 보았다. 달이 반쯤 차 있었다.

“그래도 밥은 먹였으니.”

그 말만 하고 그는 개천을 따라 궁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말이 칭찬인지 걱정인지 끝내 가리지 못했다.

*

권억은 엿새째 되는 날 방앗간에 왔다. 서리만 보낼 줄 알았는데 본인이 왔다. 말에서 내려 방앗간 마당에 들어서는데, 이번에는 신코 끝으로 딛지도 않고 흙을 밟지도 않았다. 서리가 깔아 놓은 거적 위로만 걸었다. 마당에 곡식 자루를 지고 줄을 섰던 마을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섰다.

권억은 오르내리는 공이를 한참 보았다. 들보를, 통을, 김을. 그리고 그 옆에서 장작을 넣던 돌석을 보았다.

“공방 장인이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방아를 찧소.”

“공방 장인은 공방 일을 하라고 공방에 있다. 공방 일을 버리고 저잣거리에서 삯을 받는 것은 사사로운 돈벌이다. 궁 안의 요물을 궁 밖에 퍼뜨린 죄도 있고.”

“공방에 쌀이 끊겨서….”

“끊긴 것을 사사로이 메우라고 한 사람은 없다.”

권억이 서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 둘이 돌석의 팔을 잡았다. 돌석은 뿌리치지 않았다. 뿌리치면 일이 더 커진다는 것을 그는 스물두 해 동안 배웠다. 권억이 말했다.

“매 열 대. 이 마당에서.”

나는 그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다리가 떨렸다. 공조 뜰 형틀에서 흘린 식은땀이 다시 등을 따라 흘렀다. 그래도 걸었다.

“제가 시켰습니다.”

권억이 나를 보았다.

“이 기계 만들자고 한 것도 저고, 여기 놓자고 한 것도 저고, 삯 받자고 한 것도 저예요. 돌석 아저씨는 제가 시켜서 장작 넣은 거예요. 맞을 사람은 저예요.”

“요망한 자가 대신 맞겠다는구나.”

권억은 잠시 나를 보더니, 생각보다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은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매 맞은 관노 장인은 내일 다시 풀무를 밟지만, 매 맞은 요망한 자는 공방의 이름에 흠이 된다. 권억에게는 내 쪽이 더 남는 장사였다.

“그러면 네가 엎드려라. 그리고 이 마당에서 찧은 삯은 공조가 거둔다. 관에서 먹인 장인이 번 곡식이니 관의 것이다.”

나는 방앗간 마당 흙바닥에 엎드렸다. 형틀도 없었다. 군사 하나가 내 등을 무릎으로 눌렀다. 마당에 늘어선 마을 사람들의 짚신 발끝이 내 눈앞에 줄지어 있었다. 아이들이 담에서 내려와 어른들 다리 뒤에 숨었다.

첫 대는 소리가 먼저 왔다. 그다음에 등이 뜨거워졌다. 아픔은 셋째 대쯤에야 따라왔는데, 오고 나서는 가지 않았다. 다섯째 대에 나는 흙을 깨물었다. 흙에서 쌀겨 맛이 났다. 일곱째 대에 숨이 들어가지 않았다. 여덟째 대가 떨어질 때 공이가 확 속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겹쳤다. 들보는 내가 맞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오르내렸다. 아무도 그 기계를 멈추라고 하지 않았다.

열 대가 끝났다. 권억은 곡식 자루를 실은 수레를 앞세우고 거적을 밟고 나갔다. 마당을 나서다가 그는 공이가 오르내리는 방아를 한 번 돌아보았다. 부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마당에 마을 사람이 너무 많았다.

*

돌석이 나를 업었다. 내가 걸을 수 있다고 하자 그는 대답 대신 나를 한 번 추슬렀다. 그 바람에 등이 쓸려서 나는 비명을 질렀고, 돌석은 미안하다는 말 대신 걸음을 조금 늦췄다. 그의 등은 넓고 뜨거웠고, 땀과 숯 냄새가 났다. 공방 화덕 앞에서 맡던 냄새가 사람한테서 났다.

“한 서방.”

골목 중간쯤에서 돌석이 말했다. 아이 셋이 우리 뒤를 졸졸 따라왔다.

“내가 그때 한 서방 기계 탓이라고 했지.”

“네.”

“그 말은 무르겠소.”

그는 그것만 말하고 다시 걸었다. 나는 그의 어깨에 턱을 얹고 있었다. 골목이 흔들렸다. 개천에서 빨랫방망이 소리가 났다. 업혀 가는 동안 나는 울지 않으려고 이를 물었는데, 그건 등이 아파서였는지 다른 것 때문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제일 작은 아이가 뒤에서 돌석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물었다. 왜놈이 왜 우느냐고. 돌석이 왜놈 아니라고, 한 서방이라고 했다.

돌석의 집에서 나는 엎드려 누웠다. 돌석의 아내가 무언가 차가운 것을 내 등에 발랐는데, 냄새를 맡아 보니 된장이었다. 나는 웃다가 아파서 다시 엎드렸다.

“아저씨.”

“말하지 마시오.”

“공방 사람들 다 모아 주세요. 내일요.”

“그 등으로 무얼 하려고?”

“기계를 저 혼자 알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오늘 권억이 저 하나만 때리면 되는 걸 알았잖아요.”

돌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문간에 가서 쪼그려 앉아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했다. 공방 장인이 열여덟, 그 가운데 몇이나 올지 세는 손이었다. 손가락이 열 개를 다 접고 나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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