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298자)

아 그거 어렵지 않아요

공대생, 세종 밑에서 증기기관 만들다 · 도경

쌀이 끊기기까지 이레가 남은 날, 공방 문간에 임금을 곁에서 모시는 내관이 왔다. 수염 없는 얼굴에 목소리가 가늘었고, 문턱 밖에 서서 한 번도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전하께서 오늘 보루각의 새 물시계를 보러 납시는데, 그 길에 공방에 들러 김으로 돈다는 풀무를 보시겠다고 했다. 내관은 그 말만 전하고 갔다. 공방 안의 모든 사람이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았다.

그다음 한 식경 동안 공방에서 일어난 일은 내가 본 어떤 시험 전날 밤보다 빨랐다. 장인들이 마당을 쓸고, 화덕 재를 퍼내고, 바닥에 물을 뿌렸다. 칠복은 들보에 맨 끈을 풀었다가 다시 맸다가 다시 풀었다. 돌석은 웃통을 입었다가 땀이 차서 벗었다가 언년한테 등짝을 맞고 다시 입었다. 언년은 내 과잠을 벗기고 어디서 구해 왔는지 모를 무명 저고리를 내 머리에 씌웠다. 소매가 손등을 덮었다.

“임금님 앞에서 뭐라고 해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물으시면요?”

“그래도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언년은 진지했다. 나는 사극에서 본 대로 성은이 망극하다는 말을 연습했다. 혀가 꼬였다. 망극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끝이 없다는 뜻이라고 칠복이 알려 주었는데, 무엇이 끝이 없는지는 칠복도 몰랐다.

*

임금은 생각보다 조용히 왔다. 앞에 내관 둘, 뒤에 승지 하나와 군사 몇이 따랐다. 왕명을 받들어 전하는 신하를 승지라고 한다고, 공방 장인들이 바닥에 엎드리는 사이 언년이 엎드린 채로 속삭였다. 그 뒤에 권억이 있었다. 공방 일은 공조 일이니 참판이 모시는 것이 법도라고 했다. 권억은 문턱을 넘을 때 이번에는 신코 끝으로 딛지 않았다. 흙을 아무렇지도 않게 밟았다.

나는 엎드리는 게 반 박자 늦었다. 언년이 뒤에서 내 무명 저고리 자락을 잡아당겼고, 나는 무릎을 꿇다가 이마를 바닥에 박았다. 쿵 소리가 났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이마가 얼얼했다.

“일어나라. 일을 보러 왔지 절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임금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고, 말끝이 조금 쉬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마흔이 조금 못 된 사내가 공방 한가운데 서서 들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앉으라고 가져온 의자에는 앉지 않았다. 손을 등 뒤로 모으고, 들보에서 막대로, 막대에서 널빤지로, 널빤지에서 화덕으로 눈을 천천히 옮겼다. 그 눈길이 한 군데도 건너뛰지 않았다.

“영실아, 돌려 보아라.”

장영실이 칠복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솥 밑에 불이 들어갔다. 김이 올랐다. 피스톤이 올라가고 내려오고, 들보가 오르내리고, 칠복의 끈이 꼭지를 당기고 놓고, 골풀무 널빤지가 움직이고, 화덕 불이 하얗게 섰다. 공방 안에는 그 소리만 있었다. 삐걱, 퍽, 쉭. 삐걱, 퍽, 쉭.

임금은 끈을 오래 보았다. 들보가 내려갈 때 어느 끈이 당겨지는지, 올라갈 때 어느 끈이 당겨지는지 두 번을 확인하고 나서야 칠복을 보았다.

“저것을 네가 매었느냐?”

칠복은 대답하지 못하고 바닥에 더 납작하게 엎드렸다. 장영실이 대신 그렇다고 아뢰었다. 졸려서 맸다는 말은 빼고.

임금은 다시 들보를 보았다. 그리고 장영실에게 물시계를 처음 만들 때처럼 이것도 물을 가지고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장영실은 물시계는 물이 흘러내리는 힘을 쓰고, 이것은 물이 김이 되었다가 식는 힘을 쓴다고 아뢰었다. 임금이 그 둘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고, 장영실은 솥뚜껑 이야기를 했다. 언년의 솥뚜껑이었다. 식으면 안 열리는 뚜껑. 임금은 그 대목에서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처음 한 자가 누구냐?”

장영실이 문간 쪽을 보았다. 언년이 엎드린 채 굳었다. 장영실은 공방에 밥을 대는 관비라고만 아뢰었다. 임금은 그쪽을 한 번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년의 등이 오래 떨렸다.

*

“물을 높은 데로 올릴 수 있느냐?”

임금이 그렇게 물었을 때 그 물음은 장영실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알았어야 했다. 알았는데도 입이 먼저 움직였다. 석 달 동안 내 졸업 작품이 하던 일이 바로 그것이었고, 교수님 앞에서 하루에 열 번은 한 말이었고, 지난 사흘 동안 공방에서 그 생각만 했다.

“아, 그거 어렵지 않아요.”

공방 안의 공기가 멈췄다. 들보만 혼자 삐걱거렸다. 승지의 눈썹이 이마 끝까지 올라갔다. 내관 하나가 숨을 들이켰다. 장영실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그의 목덜미가 굳는 것이 보였다. 언년은 바닥에서 들리지 않는 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욕이었다.

임금이 나를 보았다.

“너는 누구냐?”

“한, 한도진이옵니다.”

“어렵지 않다 하였느냐?”

그 물음에는 노여움이 없었다. 진짜로 궁금해하는 목소리였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나는 대답하려다가, 대답할 말을 고르는 사이 권억이 먼저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보았다.

“전하, 저자가 어렵지 않다 하였으니 그 말에 책임을 지게 하소서.”

권억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마침 올겨울 명나라 사신이 온다는 기별이 있습니다. 사신을 경회루에서 맞을 때, 저자의 기계로 그 못물을 퍼 올려 보이게 하소서. 조선 공방의 솜씨를 사신 앞에 보이면 나라의 자랑이 될 것이옵니다.”

권억은 자랑이라고 했다. 실패하면 무엇이 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서 공방 안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들었다. 사신 앞에서 기계가 서면 그것은 공방의 망신이 아니라 나라의 망신이 되고, 나라의 망신을 낸 공방은 남아날 수가 없었다. 성공해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이 이상한 기계를 가졌다는 말이 북경까지 가면, 그 말을 감당하는 것은 권억이 아니었다.

“전하.”

장영실이 입을 열었다. 아직 그런 큰 기계는 시험해 보지 않았다고 아뢰려는 것 같았다. 임금이 손을 들어 그를 멈추게 하고, 다시 나를 보았다.

“너에게 물었다.”

나는 숨을 한 번 쉬었다. 이마가 아직 얼얼했다.

“어렵습니다.”

내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다시 말했다.

“아까는 말이 헛나왔습니다. 어렵습니다, 전하. 통을 지금보다 세 배는 크게 부어야 하고, 그만큼 고르게 깎아야 하고, 김이 새지 않게 막아야 합니다. 지금 공방에는 쇠도….”

장영실의 발이 내 발등을 밟았다. 아주 세게.

“…쇠도 다루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습니다.”

임금은 한참 나를 보다가 권억을 보았다. 그리고 쇠는 넉넉하냐고 권억에게 물었다. 권억은 넉넉하다고 아뢰었다. 망설임이 없었다. 나는 입을 열려다가 발등이 다시 밟혔다. 장영실은 끝내 쌀과 쇠가 끊긴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까닭을 그날 밤에야 들었다. 임금 앞에서 공조를 고발하면, 임금이 공조 편을 들든 공방 편을 들든 공방은 그다음 날부터 공조와 원수가 된다고.

“어렵다는 말이 먼저 나왔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임금이 말했다.

“어렵지 않다 했다가 어렵다 하니, 이제 반쯤은 믿겠다. 경회루 못물을 올려 보아라. 날은 공조와 의논하라.”

권억이 깊이 허리를 숙였다. 숙인 얼굴이 내 쪽을 향해 있었고, 나는 거기서 그 입꼬리를 보았다. 날은 공조와 의논하라. 날을 정하는 사람은 권억이었다.

*

임금은 나가기 전에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그 물음도 나에게 왔다.

“네가 온 곳에서는 백성이 물을 어찌 긷느냐?”

나는 대답을 고를 수가 없었다. 무엇을 말해도 거짓말처럼 들릴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있는 대로 말했다. 집집마다 벽에 꼭지가 달려 있고, 그것을 돌리면 물이 나온다고. 우물에 가지 않아도 되고, 두레박을 당기지 않아도 된다고. 찬물도 나오고 더운물도 나온다고.

공방 안이 조용했다. 승지가 나를 미친 사람 보듯 보았다. 권억은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임금은 웃지 않았다. 그는 내 말을 끝까지 듣고 나서, 공방 문 쪽으로 몸을 돌리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러면 아낙들 손바닥이 덜 벗겨지겠구나.”

그 말을 들은 것은 아마 나와 장영실뿐이었을 것이다. 나는 육조 거리 우물가의 아낙을 떠올렸다. 줄에 쓸려 벌겋던 손바닥을. 저 사람은 그 손바닥을 본 적이 있을까? 나는 모른다. 기록에도 그런 말은 없다. 다만 그날 공방에서 임금은 꼭지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손바닥을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이 기계를 무엇에 쓰려고 만드는지 남의 입으로 들었다.

*

임금이 나가고 장인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제일 먼저 일어난 것은 언년이었다. 그녀는 무릎의 흙을 털지도 않고 곧장 내 앞으로 와서, 내 무명 저고리 앞섶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어렵지 않아요? 임금님한테? 어렵지 않아요?”

“헛나왔어요.”

“헛나온 말로 사람이 죽어요. 한 서방 혼자 죽는 게 아니고, 여기 다 같이요.”

그녀는 앞섶을 놓고 돌아섰다가, 다시 돌아서서 한 번 더 움켜쥐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낮았다.

“전하께서 나를 보셨어요.”

“솥뚜껑 얘기 때문에요.”

“관비를 보신 거예요. 관비가 한 말을.”

언년은 그 말을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마음인지 나는 다 알 수 없었다. 기쁜 얼굴인지 겁먹은 얼굴인지도 가려지지 않았다. 그녀는 내 앞섶을 마저 펴 주고, 아무 말 없이 부엌 쪽으로 갔다. 걸어가다가 한 번 제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돌석은 그동안 칠복의 뒤통수를 쓰다듬고 있었다. 임금이 칠복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이 돌석에게는 칠복이 장가가는 일보다 큰일이었다. 칠복은 쓰다듬을 받으면서도 아직 엎드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다리가 풀렸다고 했다.

나는 공방 문간까지 따라 나가 행렬의 뒷모습을 보았다. 보루각 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길가 그늘에 가마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지붕이 있고, 앞뒤로 긴 채가 달려 있고, 채 끝마다 가마꾼이 서서 기다리는 임금의 가마였다.

나는 그 가마를 보고 문간에 그대로 섰다.

임술년. 교양 수업 기말 범위의 맨 마지막 쪽에 있던 이야기였다. 장영실이 만들기를 맡은 임금의 가마가 부서진다. 장영실은 그 일로 벌을 받고, 그 뒤로 기록에서 그의 이름이 사라진다. 어디서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가마가 왜 부서졌는지도 기록은 말하지 않는다. 그를 시기한 사람들이 있었을 거라고, 그 수업의 강사는 조심스럽게 덧붙였었다.

지금은 갑인년. 임술년까지는 여덟 해가 남아 있었다.

“한 서방.”

장영실이 뒤에서 불렀다. 나는 돌아보았다. 그는 내 발등을 밟은 발로 문턱을 넘어오며, 오늘 일은 잘했다고도 못 했다고도 하지 않았다. 대신 경회루 못가에 가서 물이 얼마나 깊은지부터 재 보자고 했다. 나는 대답 대신 가마 쪽을 한 번 더 보았다. 가마꾼 하나가 채를 어깨에 올리며 하품을 했다.

권억이 정한 날짜가 공방에 온 것은 이튿날이었다. 명나라 사신을 맞는 경회루 연회 날. 그 날짜 아래 권억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이름보다 내 손바닥을 더 오래 보았다. 김이 피스톤을 누르면 들보가 오르고, 들보가 오르면 물이 오르고, 물이 오르면 누군가 이 공방을 더 미워하게 될 것이었다. 여덟 해를 당기는 것은 나일지도 몰랐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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