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201자)
두 배로 녹는 쇠
공대생, 세종 밑에서 증기기관 만들다 · 도경
소가 없는 공방에서 제일 먼저 바뀐 것은 수레였다. 숯과 놋쇠를 나르던 수레를 이제 사람이 끌어야 했다. 돌석이 멍에 자리에 들어가 끌채를 두 손으로 잡았고, 칠복이 뒤에서 밀었다. 수레는 공방 대문에서 화덕까지 서른 걸음을 가는 데 두 번 멈췄다. 두 번째 멈췄을 때 돌석이 끌채를 내려놓고 하늘을 보며 말했다.
“참판 대신 내가 참판이 됐구먼.”
“영감 들으면 어쩌려고요.”
언년이 말했다. 돌석은 들으라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끌채를 들었다. 그날부터 공방에서 수레 끄는 사람을 「참판」이라고 불렀고, 하루에 세 번 참판이 바뀌었다. 나는 첫날 한 번 참판이 되었다가 스무 걸음 만에 쓰러졌다. 돌석은 한양 사람이 아니라 한양 도련님이라고 정정했다.
*
증기기관을 골풀무에 잇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들보 한쪽 끝은 피스톤이 끌어내리고, 다른 쪽 끝에는 원래 돌을 달았다. 그 돌을 떼고 대신 긴 나무 막대를 매달아, 막대 아래 끝을 골풀무 널빤지 한쪽에 걸었다. 피스톤이 내려가면 들보 반대쪽이 올라가고, 막대가 널빤지 한쪽을 들어 올린다. 피스톤이 올라가면 들보 반대쪽이 내려가고, 막대가 널빤지를 누른다. 사람이 왼발 오른발 번갈아 디디던 것을 들보가 대신 디디는 셈이었다.
간단하지 않은 것은 꼭지였다.
이 기관은 한 번 오르내릴 때마다 꼭지 둘을 돌려야 했다. 피스톤이 올라갈 때는 솥에서 통으로 가는 김 꼭지를 열고, 꼭대기에 닿으면 김 꼭지를 닫고 찬물 꼭지를 열고, 피스톤이 내려오면 찬물 꼭지를 닫고 다시 김 꼭지를 연다. 이걸 사람이 손으로 해야 했다. 칠복이 그 일을 맡았다. 처음 한 식경, 그러니까 밥 한 끼 먹을 동안은 신이 나서 했다. 두 식경째에는 꼭지 돌리는 손을 바꿔 가며 했다. 세 식경째에 칠복은 꼭지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 손만 돌렸고, 김 꼭지를 열어야 할 때 찬물 꼭지를 열어서 피스톤이 덜컥 서고 통 속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칠복아!”
“예, 예! 지금 엽니다!”
그날 저녁 나는 공방 구석에서 칠복이 하는 짓을 보았다. 그는 삼실을 꼬아 끈 두 가닥을 만들고 있었다. 한 가닥을 김 꼭지 손잡이에 묶고, 다른 가닥을 찬물 꼭지 손잡이에 묶은 다음, 두 끈의 다른 끝을 들보의 서로 다른 자리에 맸다. 들보가 내려가면 한 끈이 당겨지고, 들보가 올라가면 다른 끈이 당겨지게. 그리고 꼭지 앞에 벌렁 드러누웠다.
기관이 돌았다. 피스톤이 올라가자 들보가 끈을 당겨 김 꼭지를 닫고 찬물 꼭지를 열었다. 피스톤이 내려오자 들보가 다른 끈을 당겨 찬물 꼭지를 닫고 김 꼭지를 열었다. 아무도 손대지 않는데 기관이 제 꼭지를 제가 돌렸다. 칠복은 누운 채로 한쪽 눈만 뜨고 그걸 보았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뉴커먼 기관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꼭지를 돌리던 소년 하나가 놀고 싶어서 꼭지를 끈으로 들보에 묶었더니 기관이 저절로 돌더라는 이야기였다. 그 소년의 이름이 험프리 포터였다는데, 진짜 있던 일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교수님이 수업에서 말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교재 귀퉁이 상자 글로 읽었다. 칠복은 그 교재를 읽은 적이 없었다. 졸려서 했다.
“한 서방, 나 혼나오?”
“아뇨. 칠복 씨는 지금 역사를 삼백 년 당겼어요.”
“그게 혼나는 거요, 안 혼나는 거요?”
“안 혼나는 거요.”
칠복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날 밤 그는 공방에서 제일 먼저 코를 골았다.
*
시험은 이튿날 했다. 장영실은 쇠가 녹는 시간을 향으로 재자고 했다. 공방 화덕 옆에 향 한 대를 꽂고, 그것이 다 타면 다음 향을 꽂는다. 먼저 사람의 풀무로 놋쇠 한 도가니를 녹였다. 돌석과 풀무꾼 둘이 번갈아 골풀무를 밟았고, 향이 네 대 타고 다섯 대째에 막 불이 붙었을 때 쇠가 녹았다. 돌석은 땀에 젖은 저고리를 벗어 짜며 그 자리에 앉았다.
다음에 기관의 풀무로 같은 양을 녹였다. 솥 밑에 장작과 왕겨를 넣었다. 들보가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막대가 널빤지를 들었다 눌렀다. 풀무 구멍에서 사람이 넣는 바람보다 고르고 쉬지 않는 바람이 나왔다. 사람의 발은 지치면 느려지고, 느려지면 불이 한 번씩 수그러든다. 들보는 지치지 않았다. 화덕 불이 수그러들 틈 없이 하얗게 계속 섰다.
향이 두 대 탔다. 세 대째 향에 칠복이 불을 붙이려는데, 장영실이 손을 들어 막았다. 도가니 속 놋쇠가 다 녹아 있었다.
공방 안에 아무 소리가 없었다. 들보만 삐걱거리며 오르내렸다. 그때 돌석이 일어났다. 그는 기관이 밟고 있는 골풀무 널빤지 쪽으로 걸어가더니, 널빤지 한쪽 끝에 올라섰다. 스물두 해 동안 제 발로 디딘 널빤지였다. 이제 널빤지가 그를 실은 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돌석은 두 팔을 벌리고 중심을 잡았다. 널빤지가 올라갈 때 그의 몸이 하늘 쪽으로 들렸고, 내려갈 때 무릎이 접혔다.
“허, 허허.”
돌석이 웃었다. 처음에는 낮게 웃다가 점점 크게 웃었다. 큰 몸이 아이처럼 널빤지 위에서 출렁였다. 그는 발을 하나도 쓰지 않고 있었다. 스물두 해 만에 처음으로 풀무 위에서 발을 쉬고 있었다. 칠복이 따라 웃었고, 풀무꾼 둘이 따라 웃었고, 나중에는 언년까지 문간에서 웃었다. 장영실만 웃지 않고 향 두 대의 재를 손바닥에 받아 보았다. 재는 아직 따뜻했다.
“두 배요.”
나는 장영실에게 말했다. 장영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숯도 덜 들었네.”
*
웃음이 다 가라앉기 전에 권억이 왔다. 장영실이 시험 날을 공조에 미리 알려 두었다. 약속한 팔월 보름 전에 쓸모를 보이려면 공조 사람이 그것을 봐야 했다. 권억은 이번에는 코를 막지 않았다. 공방 안의 김이 지난번보다 훨씬 적었다. 그는 오르내리는 들보와 하얗게 선 화덕 불과, 널빤지에서 막 내려와 숨을 고르는 돌석을 차례로 보았다.
“얼마나 빨리 녹였느냐?”
“향 네 대 걸리던 것이 두 대에 녹았습니다.”
장영실이 대답했다. 권억은 손가락 넷을 폈다가 둘을 접었다. 그리고 공방 안의 풀무를 손가락으로 세었다. 골풀무 셋. 풀무꾼은 돌석까지 여섯.
“두 배로구나. 그럼 사람은 반이면 되겠다.”
나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권억은 서리에게 몸을 돌리고 있었다.
“풀무꾼 여섯 가운데 셋을 원래 관청으로 돌려보내라. 저 김 먹는 풀무가 밟아 주니 공방이 셋을 놀려 둘 까닭이 없다.”
“잠깐만요.”
나는 화덕 앞으로 나섰다. 장영실이 내 소매를 잡았지만 나는 이미 입을 열었다.
“쇠가 두 배 빨리 녹으면 쇠가 두 배로 나오는 거잖아요. 그럼 일이 두 배가 되는 거지, 사람이 반이 되는 게 아니에요. 그 쇠로 연장을 더 만들고, 기관을 더 만들고….”
“쇠를 두 배 쓸 데가 공조에 있느냐?”
권억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라의 쇠는 나라가 쓸 만큼만 나온다. 얼마나 쓸지는 공조가 정한다. 두 배로 나온 쇠를 너는 어디에 쓰겠느냐?”
“그건, 팔든지….”
말이 나온 순간 나는 알았다. 공방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장영실의 손이 내 소매를 놓았다. 권억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관물을 팔겠다고.”
권억은 그 한마디를 서리가 받아 적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장영실을 보았다.
“약속은 약속이다. 쓸모를 보였으니 이자는 형틀에 안 엎드린다. 다만 쓸모가 있다고 사람이 다 쓸모 있는 건 아니지. 쇠가 넉넉하니 다음 달부터 공방에 내리던 쇠는 끊는다. 쇠가 두 배 빨리 녹으니 쌀도 반이면 될 것이고. 아니, 반도 많지. 김이 일을 하는데 사람이 왜 밥을 먹나?”
“영감, 기관을 돌리는 것도 사람입니다.”
장영실이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다. 그러나 그 앞에 서 있던 권억이 처음으로 그 목소리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면 그 사람만 남겨라.”
권억은 돌아섰다. 문턱을 넘다가 그는 들보에 매인 칠복의 끈 두 가닥을 보았다. 그 끈이 들보가 오르내릴 때마다 저절로 꼭지를 당기고 놓는 것을 한참 보았다.
“꼭지 돌리는 놈도 필요 없겠구나.”
*
풀무꾼 셋이 짐을 싼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셋 다 관노 출신이었고, 원래 매여 있던 관청이 저마다 달랐다. 하나는 사복시, 그러니까 나라의 말과 수레를 맡은 관청으로 간다고 했다. 마구간 똥을 치우던 자리로 돌아간다고. 그는 짐이랄 것도 없는 보따리 하나를 들고 공방 문간에 서서, 돌석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돌석은 그 인사를 받지 않고 돌아앉았다.
“형님, 나 갑니다.”
“가.”
“형님 탓 아니오.”
“알아. 가.”
풀무꾼이 나가고 나서 돌석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돌아앉아 있었다. 그 등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이든 하려고 그 등 뒤로 갔다. 돌석이 먼저 말했다.
“한 서방 탓도 아니오.”
“….”
“근데 한 서방 기계 탓은 맞소.”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기계가 성공하면 사람이 남는다는 것을 나는 교과서로 배웠다. 산업혁명, 러다이트, 기계를 부순 직공들. 시험에 나오는 단어였다. 오늘 그 단어가 보따리 하나를 들고 공방 문을 나갔다. 돌석의 등에는 아까 널빤지 위에서 출렁이던 웃음이 아직 땀자국으로 남아 있었다.
밤이 깊어 다들 돌아간 뒤에도 장영실은 공방에 남아 꺼진 화덕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조금 떨어져 앉았다. 식은 들보에서 쇠기름 냄새가 내려왔고, 담 너머에서 물시계 종이 한 번 울었다. 장영실이 먼저 물었다.
“자네 사는 곳에서는 기계가 사람 일을 가져가면, 그 사람은 어디로 가나?”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다. 다들 더 좋은 일을 찾아간다고. 나는 그러지 않았다. 새 일을 찾는 사람도 있고 못 찾는 사람도 있다고, 못 찾은 사람들이 기계를 부순 일도 있었고, 나라가 그 사람들을 붙잡아 벌을 준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뒤로 백 년쯤 지나서야 사람들이 기계가 만든 쇠로 새 일을 잔뜩 만들었다고.
“백 년이라.”
장영실은 그 말을 되뇌었다. 손가락으로 무릎을 두 번 두드렸다.
“사복시 마구간에서 백 년을 기다릴 수는 없지. 그 새 일을, 우리가 먼저 만들어야겠군.”
“어떻게요?”
“그건 자네가 알 일이네. 나는 쇠를 알고, 자네는 김을 알지 않나.”
그는 일어나 갓을 쓰고 나갔다. 나는 꺼진 화덕 앞에 혼자 남아 손가락으로 재 위에 「새 일」이라고 썼다가, 그 위에 들보 하나를 그렸다가, 다 지웠다.
이튿날 아침 공조에서 문서 한 장이 왔다. 서리가 공방 마당에 서서 소리 내어 읽었다. 다음 달 초하루부터 공방에 내리던 쌀과 쇠를 끊는다. 쓸 것은 공방이 알아서 마련하라. 서리는 읽고 나서 문서를 장영실에게 건넸다. 장영실은 그것을 받아 접지도 펴지도 않고 들고 서 있다가, 들보 쪽으로 걸어가 칠복의 끈 두 가닥을 손으로 한 번씩 당겨 보았다. 끈은 단단하게 매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