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247자)

쇠 냄새 사흘

공대생, 세종 밑에서 증기기관 만들다 · 도경

첫날은 놋쇠를 녹였다. 공방에서 제일 큰 도가니에 놋쇠 조각을 채우고, 숯을 덮고, 돌석이 골풀무에 올라섰다. 골풀무는 바닥에 묻은 나무 상자 위에 널빤지를 걸쳐 놓고 사람이 양쪽 끝을 번갈아 디뎌 바람을 넣는 큰 풀무였다. 돌석이 왼발을 디디면 화덕 구멍에서 불이 하얗게 일었고, 오른발을 디디면 또 일었다. 넉 가마니로 줄어든 숯이라 한 줌도 헛되이 태울 수 없었다. 돌석은 한 번 디딜 때마다 숯이 얼마나 줄었는지 화덕 속을 들여다봤다.

놋쇠는 해가 머리 꼭대기에 올라서야 녹았다. 녹은 쇠는 내가 생각한 색이 아니었다. 주황도 아니고 노랑도 아닌, 들여다보면 눈이 시려서 고개를 돌리게 되는 빛이었다. 그 빛에서 냄새가 났다. 쇠 냄새였다. 혀끝에 동전을 올려놓은 것 같은 맛이 코로 들어왔고, 그 맛은 그날 밤 잠자리까지 따라왔다.

칠복이 다진 거푸집은 공방 바닥에 반쯤 묻혀 있었다. 가운데에 진흙으로 빚은 심이 박혀 있어서, 쇠를 부으면 속이 빈 통이 나오게 되어 있었다. 안지름 여섯 치, 길이 두 자. 내 졸업 작품 모형보다 세 배쯤 컸다. 장인 넷이 도가니를 쇠막대에 걸어 들고 거푸집 위로 가져갔다. 장영실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쇠가 쏟아졌다. 거푸집 입에서 연기와 불꽃이 같이 솟았고, 칠복은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연기 속으로 귀를 들이밀었다. 쇠가 차오르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나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

둘째 날은 속을 깎았다. 이 일에 공방의 소가 불려 나왔다.

소는 누렁이였고, 원래는 공방에 숯과 쇠를 나르는 수레를 끌었다. 장인들은 그 소를 「참판」이라고 불렀다. 물론 공방 안에서만, 문을 닫고, 목소리를 낮춰서. 언년이 알려 주기로는 작년 겨울 그 소가 공조 서리의 갓을 뿔로 걸어 똥 무더기에 던진 날부터 그렇게 불렀다고 했다. 고집이 세고, 남의 밥을 먼저 먹고, 한 번 서면 안 움직인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었다.

장영실은 통을 단단한 틀에 눕혀 묶고, 통 속으로 긴 쇠막대를 넣게 했다. 막대 끝에는 강철 날이 박혀 있었다. 막대 반대쪽 끝에 나무 바퀴를 끼우고, 바퀴에 줄을 감고, 줄 끝을 소의 멍에에 맸다. 소가 마당을 한 바퀴 돌면 막대가 몇 바퀴 돌고, 날이 통 안을 아주 조금씩 긁어 나갔다. 나는 그 장치를 보고 한참 말을 못 했다. 내가 설명하지도 않았는데 장영실이 그걸 하룻밤 사이에 짜 놓았다.

“이거, 보링 머신이에요.”

“보링이 무엇인가?”

“구멍을 넓히는 거요. 영국에서는 이걸 사람들이 대포 구멍 넓히다가….”

나는 거기서 말을 멈췄다. 언년이 공방 문간에서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대포라는 말이 이 마당에서 어떻게 들릴지 그제야 생각났다. 장영실은 내 말을 끝까지 기다리다가, 내가 끝내지 않자 소 쪽으로 돌아섰다.

“참판아, 가자.”

칠복이 소 엉덩이를 두드렸다. 소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두드렸다. 소가 고개를 돌려 칠복을 보더니 꼬리로 칠복 얼굴을 쳤다. 장인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돌석이 나가서 소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이자 그제야 소가 걷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오늘 안 걸으면 진짜 참판 영감한테 보낸다고 했다고 했다.

날은 하루 종일 통 속을 긁었다. 저녁 무렵 막대를 빼내고 통 속을 들여다보니, 놋쇠가 노랗게 번들거렸다. 나는 손가락을 넣어 둘레를 훑었다. 매끈했다. 그런데 얼마나 매끈한지를 잴 것이 없었다. 공방에는 머리카락 굵기를 잴 자도 없고, 쇠붙이 두께를 백분의 일 밀리미터까지 재는 버니어캘리퍼스도 없었다.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언년을 불렀다.

“머리카락 한 올만 주실래요?”

언년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 눈에서 나는 이 시대에 남자가 여자 머리카락을 달라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제 머리에서 한 올을 뽑아 내 손바닥에 놓았고, 그다음에 내 정강이를 걷어찼다.

머리카락을 통 벽에 대고 피스톤으로 쓸 놋쇠 마개를 넣어 보았다. 머리카락이 끼는 자리와 안 끼는 자리가 있었다. 안 끼는 자리에 먹으로 표시했다. 표시가 열한 군데 나왔다.

그날 밤 나는 쇠 냄새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 공방으로 나갔다. 꺼져 가는 화덕 앞에 언년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판때기 하나를 올려놓고 숯 토막으로 무언가를 그리다가, 내 발소리에 판때기를 치마폭으로 덮었다. 덮는 손이 늦어서 다 보였다. 통 하나, 그 위에 들보 하나, 들보 끝에 매단 돌. 장영실이 흙바닥에 그렸다가 지운 그림을 그녀는 하루 지나 기억으로 다시 그리고 있었다. 들보 받침의 자리까지 맞았다.

“그거, 저 주시면 안 돼요? 제 것보다 잘 그리셨는데.”

“관비가 그림 그렸다고 하면 경을 칩니다.”

“경이 뭐예요?”

“매 맞는 거요. 한 서방은 몰라도 되는 거.”

그녀는 판때기를 뒤집어 그림을 화덕 재에 문질러 지웠다. 지우면서 내 과잠 등판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 오랑캐 글자를 하나만 읽어 달라고 했다. 나는 맨 앞 글자가 엠이라고 했다. 그녀는 엠, 하고 따라 했다. 그리고 그 글자의 모양을 손가락으로 허공에 두 번 그렸다. 산이 둘 붙은 모양이라고 했다. 공방에서 처음 글자를 배운 사람은 장인이 아니라 밥 짓는 관비였다.

*

셋째 날 피스톤을 맞추고 처음 김을 넣었다. 그리고 셋째 날 내내 샜다.

솥을 걸고 통을 솥 위에 세우고, 들보를 걸고, 들보 반대쪽에 돌을 매달았다. 물이 끓자 김이 통으로 올라갔다. 피스톤이 올라가야 했다. 피스톤은 올라가지 않았다. 대신 피스톤 가장자리 사방에서 김이 피익 하고 뿜어져 나왔다. 그 소리가 심사장에서 들은 소리와 똑같았다. 나는 교수님 얼굴이 떠올라 머리를 감싸 쥐었다.

삼베를 감았다. 샜다. 밀랍을 발랐다. 녹았다. 삼베에 밀랍을 먹여 감았다. 조금 덜 샜다. 공방 안이 김과 쇠 냄새와 녹은 밀랍 냄새로 뿌옇게 찼다. 장인들은 하나둘 제 일로 돌아갔고, 해가 질 무렵에는 장영실과 돌석과 칠복과 나만 남았다.

공방 문이 열린 것은 그때였다.

권억이 서리를 데리고 들어왔다. 김 때문에 안이 잘 안 보였는지 단령 소매로 코를 막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순간 마당에서 소가 길게 울었고, 마당에 있던 장인 하나가 영문도 모르고 소리쳤다.

“참판이 또 똥 쌌다!”

공방 안의 숨소리가 한꺼번에 멎었다. 권억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마당 쪽을 보았다. 마당의 장인은 그제야 공방 문간의 단령을 보고 그 자리에 굳었다. 서리가 무어라 하려고 입을 열었고, 칠복이 잽싸게 말했다.

“소 이름입니다, 영감. 누렁이 참… 참외. 참외라고.”

“참외가 똥을 쌌다고.”

“예, 영감.”

권억은 한참 칠복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일은 그냥 두었다. 대신 김을 뿜는 통 앞으로 다가왔다. 피익, 피익. 통이 그를 향해 김을 뱉었다. 권억은 한 걸음 물러섰다가, 물러선 것이 싫었는지 도로 한 걸음 나섰다.

“사흘을 썼다지.”

“예.”

장영실이 대답했다.

“팔월 보름까지 열흘 남짓 남았다. 이 통은 아직 숨도 제대로 못 쉬는군.”

권억은 통 대신 돌석을 보았다. 돌석은 골풀무 널빤지 옆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자네가 풀무를 맡은 지 몇 해인가?”

“스물두 해요.”

“저것이 되면 쇠를 녹일 바람도 저것이 넣는다고 들었다. 그럼 자네 풀무는 누가 밟나?”

돌석의 팔짱이 풀렸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권억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이미 들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서 장영실에게 말했다.

“동래 관노가 공방에 관노를 불러 모으더니, 이제 관노 일감을 김에게 넘기는구나. 넘기고 나면 남은 사람은 원래 있던 관청으로 돌아가면 되겠지. 그게 법도다.”

권억은 그 말을 남기고 나갔다. 마당에서 소가 또 울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소리치지 않았다.

*

나는 그날 밤 돌석이 공방에 다시 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는 왔다. 해가 지고 한참 뒤에, 등에 무언가를 둘둘 말아 지고 왔다. 화덕 불빛 아래 펼친 것은 가죽이었다. 손바닥 열 개를 이은 것만 한 소가죽인데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했고, 가운데에 다른 가죽을 덧대어 꿰맨 자국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실밥은 몇 겹으로 겹쳐서 검게 굳어 있었다. 바늘땀마다 쇠기름이 배어 번들거렸다.

“내 첫 풀무 가죽이오.”

돌석은 그것만 말했다. 그 가죽을 처음 단 풀무는 이제 없다고, 나무는 썩어서 땔감이 됐는데 가죽은 버릴 수가 없어서 집 시렁에 얹어 두었다고, 그건 칠복이 나중에 알려 주었다. 돌석은 그날 밤 그 가죽에서 한 뼘 너비로 띠를 잘라 냈다. 칼이 오래 기름 먹은 가죽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그는 띠를 쇠기름에 한 번 더 담갔다가 꺼내 피스톤 가장자리에 두 겹으로 감고, 삼실로 단단히 묶었다.

“바람 새는 데는 이게 제일이오. 풀무도 바람 새면 끝이니까.”

나는 그 위에 하나를 더했다. 뉴커먼이 쓴 방법이었다. 피스톤 윗면에 물을 한 치 높이로 고이게 해서, 가죽과 통 벽 사이로 김이 새어 나오려 하면 그 물이 먼저 틈을 막게 했다. 돌석의 가죽이 새는 길을 좁히고, 물이 그 남은 길을 덮었다.

솥에 불을 넣었다. 칠복이 장작을 밀어 넣었다. 김이 통으로 올라갔다. 피스톤 가장자리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대신 피스톤이 아주 천천히, 들보에 매단 돌의 무게에 끌려 올라갔다. 꼭대기에 닿았다. 나는 꼭지를 돌려 통 속에 찬물을 한 바가지 뿌렸다.

통 안에서 무언가 꺼지는 소리가 났다. 퍽, 하고 둔하게. 그리고 피스톤이 내려왔다. 무겁게, 확실하게, 들보 한쪽 끝을 끌어내리면서. 반대쪽 끝에 매단 돌이 허공으로 들렸다.

공방 안에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돌석이 들린 돌을 보았다. 그다음에 피스톤 둘레에 감긴 제 가죽을 보았다. 기름 먹은 가죽이 화덕 불빛에 젖은 듯 빛났다. 그는 손을 들어 제 코밑을 한 번 문지르더니, 고개를 돌려 화덕 쪽 어둠으로 갔다. 한동안 그쪽에서 코를 푸는 소리만 났다.

장영실이 들보를 손으로 짚었다.

“한 번 했군.”

“네. 한 번요.”

“이 힘으로 무엇을 먼저 하겠나?”

나는 물을 퍼 올리겠다고 하려 했다. 그런데 장영실이 먼저 솥 밑의 장작을 가리켰다.

“솥 밑엔 숯 아니라 장작이 들어갔네. 왕겨도 들어가겠지. 공조가 숯을 깎았으니, 숯은 쇠 녹이는 데만 쓰고 바람은 이것이 넣게 하세. 풀무부터 하지.”

돌석이 어둠 속에서 코를 한 번 더 풀었다.

이튿날 아침, 공조 서리가 군사 둘을 데리고 와서 마당의 소를 끌어 갔다. 공조 소이니 공조로 돌린다고 했다. 소는 순순히 따라가지 않았다. 대문 앞에서 네 발로 버텨 군사 하나를 끌고 반 마당을 되돌아오다가, 결국 고삐에 끌려 나갔다. 마당에 소똥 한 무더기와 뿔에 걸렸다 떨어진 서리의 갓끈 하나가 남았다. 칠복이 그 갓끈을 주워 들고 중얼거렸다.

“참판이 참판을 데려갔소.”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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