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273자)
실린더를 아느냐
공대생, 세종 밑에서 증기기관 만들다 · 도경
군사 둘이 나를 끌고 궁 남쪽 큰 문을 나섰을 때, 해는 막 지붕 위로 올라와 있었다. 문 앞으로 넓은 길이 곧게 뻗었고, 길 양편으로 기와지붕을 얹은 관청들이 담을 맞대고 줄지어 섰다. 나라의 여섯 관청이 늘어선 육조 거리라고 했다. 나는 그 길을 세종로라는 이름으로만 알았다. 광화문 광장에 서 있던 세종 동상 자리쯤에서 소달구지 하나가 똥을 누고 지나갔다. 묶인 채로 끌려가면서도 나는 그걸 보고 웃음이 나서 군사한테 뒤통수를 한 대 맞았다.
공조 관아의 뜰은 생각보다 좁았다. 마당 가운데 나무 형틀이 하나 엎드려 있었고, 그 옆에 붉은 칠을 한 곤장이 담에 기대 있었다. 곤장은 노 같았다. 사람을 때리는 물건이 아니라 배를 젓는 물건처럼 넓적했다. 마루 위 의자에 권억이 앉아 있었고, 어제의 서리가 그 아래 붓을 들고 섰다.
“이름.”
“한도진이요. 아니, 한도진이옵니다.”
“어디서 왔느냐?”
나는 언년이 가르쳐 준 대로 죽을죄를 지었다고 말하려다가, 이름 다음에 죽을죄를 붙이면 순서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입을 다물었다. 서리가 붓끝을 든 채 기다렸다. 매미가 울었다. 내 대답이 너무 늦자 권억이 손을 들었고, 나졸 하나가 내 과잠 주머니를 뒤집었다.
샤프 한 자루, 접은 종이 한 장, 휴대폰 하나가 마당에 떨어졌다.
서리가 종이를 주워 마루에 올렸다. 권억은 종이를 펼쳐 한참 들여다보았다. 내 졸업 작품 도면이었다. 실린더와 피스톤, 들보, 솥, 냉각수 꼭지, 칸마다 숫자와 영어 약자가 깨알같이 들어가 있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증기기관 도면입니다. 물을 끓여서, 그 김으로 쇠를 움직이는 기계요.”
“김으로 쇠를 움직여?”
“네. 여기 이 통이 실린더인데요.”
“실을 린다고?”
서리가 되물었다. 나는 실린더를 다시 천천히 말했다. 서리는 「실린다」라고 받아 적었다가 권억의 눈치를 보고 지웠다. 나는 손이 묶여 있어서 턱으로 도면을 가리켰다. 이 통 안에 꼭 맞는 쇠마개가 들어가는데, 그 마개를 피스톤이라고 부르고, 김이 차면 피스톤이 올라가고 식으면 내려가고, 그 오르내림을 들보가 받아서 펌프를 움직인다고. 말을 하면 할수록 마당의 얼굴들이 하나씩 굳었다. 나졸 하나는 「피스톤」을 듣고 제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펌프는 또 무엇이냐?”
“물을 퍼 올리는 거요. 우물에서 두레박 대신.”
“두레박이 있는데 왜 그런 것이 필요하냐?”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정확히는 대답이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탄광, 산업혁명, 철도, 1712년. 아무것도 이 마당에 맞는 말이 아니었다.
그때 마당 바닥의 휴대폰이 켜졌다. 누가 건드린 것도 아닌데 혼자 켜져서, 화면 가득 배터리가 1퍼센트 남았다는 붉은 글씨를 띄우고, 잠금 화면의 엠티 사진을 한 번 비춘 다음 꺼졌다. 마당이 얼어붙었다. 서리가 붓을 떨어뜨렸다. 나졸 하나가 뒷걸음질 치다가 곤장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사람이 들어 있었다.”
권억이 낮게 말했다. 나는 그게 사진이라고, 사람이 들어 있는 게 아니라 그림 같은 거라고 말했지만, 그림이 왜 혼자 켜졌다 꺼지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배터리가 다 됐다는 말은 이 마당에서 주문과 다를 바 없었다.
“요망하다.”
권억은 그 한마디로 정리했다.
“궁 담 안에 오랑캐 글자를 지고 들어와, 사람을 가둔 거울을 품고, 김으로 쇠를 움직인다는 그림을 그렸다. 열 대를 쳐서 바른 말이 나오는지 보아라.”
*
형틀에 엎드리자 나무에서 오래된 땀 냄새가 올라왔다. 나보다 먼저 엎드린 사람들의 냄새였다. 나졸들이 내 두 팔을 형틀 다리에 묶었다. 과잠 등판이 하늘을 향했고, 나는 등판의 영어 글자가 이 마당에서 얼마나 쓸모없는지 생각했다. 곤장을 든 나졸이 내 옆에 섰다. 그의 그림자가 내 머리를 덮었다.
“하나.”
서리가 셈을 불렀다. 곤장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가르는 소리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영감.”
대문 쪽에서 목소리가 났다. 크지 않은데 마당 끝까지 왔다. 곤장이 올라간 채로 멈췄다. 눈을 떠 보니 장영실이 갓을 쓰고 대문 안에 서 있었다. 어제 공방에서 걷어 올렸던 소매를 내려 손목을 덮었고, 숨이 조금 가빴다. 경복궁에서 여기까지 뛰지 않고 빨리 걸어온 숨이었다.
“이 자 말을 들어 보겠소.”
권억이 의자에서 몸을 조금 앞으로 뺐다.
“들어서 무엇 하려고?”
“쓸모가 있으면 공방이 쓰고, 없으면 그때 치시지요.”
“그 사이 이 요망한 자가 궁 안에서 일을 저지르면?”
“제가 받겠습니다.”
장영실은 그 말을 할 때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마당의 나졸들이 서로 눈을 맞췄다. 서리는 떨어뜨린 붓을 줍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권억은 오래 장영실을 보았다. 장영실은 그 눈을 피하지 않았고, 대신 허리를 깊이 숙였다. 숙인 채로 기다렸다.
“동래 관노가 이름을 건단 말이지.”
권억이 웃었다. 어제 공방에서 본 그 웃음이었다.
“좋다. 팔월 보름 전까지 그 쇠통이 쓸모를 보이지 못하면 이자는 이 형틀에 다시 엎드리고, 자네는 공방에서 손을 뗀다. 그리고 요망한 것 먹일 숯은 공조에 없다. 공방에 내리는 숯을 오늘부터 삼 분의 일 줄여라.”
마지막 말은 서리에게 한 것이었다. 서리가 그것만은 빠르게 받아 적었다.
나졸들이 내 팔을 풀었다. 나는 일어서다가 다리가 풀려 형틀을 짚었다. 맞지도 않았는데 다리가 떨렸다. 장영실은 마당에 떨어진 내 샤프와 도면과 휴대폰을 하나씩 주워 소매에 넣었다. 휴대폰을 집을 때 그의 손이 잠깐 멈췄다가, 다른 것들과 똑같이 넣었다.
*
돌아오는 길에 장영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뒤를 반 걸음 떨어져 따라갔다. 육조 거리 끝에서 궁 문이 다시 보였을 때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저를 데려가세요?”
“자네 손톱이 홈을 먼저 짚었네.”
“그거 하나로요?”
“그 홈은 내가 사흘을 들여다봤네.”
궁 문 앞 길가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아낙 셋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맨 앞의 아낙이 두레박 줄을 손바닥에 감아 당겼다. 줄이 한 번 올라올 때마다 그녀의 어깨가 앞으로 말렸다. 물동이 둘을 채우는 데 두레박이 여덟 번 오르내렸다. 그녀는 물동이 하나를 머리에 이고 하나를 옆구리에 끼더니, 젖은 손바닥을 치마에 문지르며 골목으로 사라졌다. 손바닥 가운데가 줄에 쓸려 벌겠다.
두레박이 있는데 왜 그런 것이 필요하냐고 권억이 물었었다. 나는 그 대답을 여기서 찾았다. 마당에서는 그 말이 안 나왔는데, 우물가에서는 아낙의 손바닥이 먼저 대답을 하고 있었다. 장영실도 그 우물을 보고 있었다. 무엇을 보았는지는 묻지 않았다.
장영실은 그 말만 하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문턱 앞에서 잠깐 섰다. 사흘을 들여다본 사람 옆에서 나는 반나절 만에 짚었고, 짚을 수 있었던 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줄질 거스러미를 「버」라는 이름으로 배웠기 때문이었다. 이름 하나를 더 안다는 것으로 저 사람이 오늘 제 이름을 걸었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 값인지 그때는 다 몰랐다. 다만 숨이 조금 가빴던 그의 얼굴은 오래 기억했다.
*
그날 밤 공방 화덕에 솥 하나가 걸렸다. 저녁밥을 짓고 남은 불이었다. 장인들은 반쯤 돌아가고 반쯤 남았는데, 남은 이들은 나를 구경하러 남은 얼굴이었다. 돌석은 화덕 옆에 쭈그려 앉아 팔짱을 꼈다. 언년은 설거지물 바가지를 든 채 문간에 기대섰다.
나는 솥에 물을 붓고 뚜껑을 덮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무쇠 뚜껑이 달각거리며 들썩였다.
“저 힘이에요.”
나는 뚜껑을 가리켰다.
“물이 김이 되면 천육백 배가 넘게 불어나요. 한 되짜리 물이 김이 되면, 음, 이 공방 큰 항아리로 열 개쯤 되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해요. 그런데 뚜껑이 막고 있으니까 뚜껑을 밀어 올리는 거예요.”
“그럼 뚜껑을 무겁게 하면 되겠구먼.”
돌석이 말했다.
“무겁게 하면 솥이 터져요.”
“그러니까 솥을 두껍게 하면.”
“그러면 더 크게 터져요.”
장인들이 웃었다. 돌석은 웃지 않고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했다. 셈을 하다 막히면 그렇게 한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보았다. 나는 그를 놔두고 다음 말로 넘어갔다. 미는 힘을 쓰는 건 위험하니까, 우리 기계는 반대로 간다고. 김이 식을 때 줄어드는 힘을 쓴다고. 그런데 그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나는 손으로 허공에 통을 그렸다가 지웠다.
“솥이 식으면 뚜껑이 안 열려요.”
문간에서 언년이 말했다. 다들 그쪽을 보았다.
“밥 짓고 뚜껑 덮어 두면요, 식은 다음에 안 열려요. 손이 아파요, 그거 떼려면.”
장영실이 일어섰다. 그는 화덕 옆의 부지깽이를 집어 흙바닥에 동그라미를 하나 그렸다. 그 위에 긴 네모를 세웠다. 솥과 통이었다. 그리고 부지깽이 끝으로 통 안에 가로줄 하나를 그었다.
“김을 채우고, 식혀서 뚜껑을 당기게 한다.”
“네.”
“그러면 그 뚜껑이 솥 안에 있지 않고 통 안에 있어야 하겠군. 오르내려야 하니.”
“네. 그게 피스톤이에요.”
“통 안을 얼마나 고르게 깎아야 하나?”
나는 그 질문이 나오리라는 걸 알았어야 했다. 뉴커먼도 그것 때문에 고생했다. 머리카락 두 올 차이면 김이 새고, 김이 새면 끝이라고 나는 대답했다. 장영실은 흙바닥의 가로줄을 오래 보았다. 그러다 부지깽이를 내려놓고 솥뚜껑을 손바닥으로 덮어 보았다. 뜨거워서 금방 뗐다. 그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그가 말했다.
“거푸집은 칠복이가 잡게. 놋쇠는 내일 녹이지.”
화덕 뒤에서 젊은 장인 하나가 벌떡 일어났다. 어제 내 과잠 이야기에 웃다가 집게를 떨어뜨린 그 장인이었다. 스물하나라고 했고, 공방에서 놋쇠 거푸집을 가장 곱게 다지는 손이라고 돌석이 투덜대듯 칭찬했다. 칠복은 흙바닥의 그림 앞에 쪼그려 앉아 손가락으로 통의 둘레를 재 보더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한 서방, 이 통 속을 머리카락 두 올로 깎으려면 거푸집부터 반듯해야 하오. 근데 반듯한 게 어디까지가 반듯한 거요?”
“물을 부었을 때 한쪽으로 안 쏠리는 데까지요.”
칠복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가락을 입에 넣어 침을 묻히고, 흙바닥 그림의 가로줄을 조금 더 곧게 고쳐 그었다. 장영실은 그것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것이 이 사람의 칭찬이라는 것을 나는 나중에 알았다.
이튿날 새벽 공조에서 숯 수레가 왔다. 늘 여섯 가마니가 오던 수레에 넷이 실려 있었다. 수레꾼이 공조 서리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요망한 것 먹일 숯이 빠졌다고. 장인들이 수레를 둘러싸고 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돌석이 가마니 하나를 어깨에 메며 말했다.
“숯이 줄면 풀무를 덜 밟소. 덜 밟으면 쇠가 덜 나오고, 쇠가 덜 나오면 우리가 덜 필요하지.”
그는 가마니를 내려놓고 내 앞에 섰다.
“한 서방. 그 실 린다는 통, 빨리 만드시오.”
장가도 안 갔는데 한 서방이었다. 나는 정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