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514자)
놋쇠 깎는 소리
공대생, 세종 밑에서 증기기관 만들다 · 도경
졸업 작품 심사장의 형광등은 사흘 밤을 새운 눈에는 너무 하얬다. 나는 강의실 맨 앞 탁자에 내 모형을 올려놓고 그 옆에 섰다. 1712년 영국의 토머스 뉴커먼이라는 철물상이 탄광 물을 퍼내려고 만든 증기기관을 십 분의 일 크기로 줄인 모형이었다. 알코올 램프 위에 놋쇠 솥이 있고, 솥 위에 놋쇠 통이 서 있고, 통 안 피스톤이 나무 들보 한쪽 끝을 잡아당기게 되어 있었다. 석 달을 깎았다. 마지막 사흘은 에너지 음료 다섯 캔으로 버텼다.
“한도진 학생, 시작하세요.”
램프에 불을 붙였다. 물이 끓을 때까지 나는 준비한 말을 했다. 솥에서 끓은 김이 통을 채우면 피스톤이 올라가고, 거기에 찬물을 뿌리면 김이 식어 물방울로 줄어들면서 통 안이 비고, 그러면 바깥 공기가 위에서 피스톤을 누른다. 높은 압력이 필요 없는 기관이었다. 그래서 삼백 년 전 기술로도 돌았다.
통에서 피식 하는 소리가 났다. 피스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거 김 새는 소리 아닌가요?”
가운데 앉은 교수님이 물었다. 나는 원래 1712년에도 샜다고 대답했다. 뒷줄에서 웃음이 터졌고, 나는 같이 웃으려다가 형광등이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늘어나는 것을 보았다. 탁자 모서리를 잡으려던 손이 허공을 쥐었다.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램프가 넘어지지 않게 하라는 누군가의 고함이었다.
*
깨어나서 처음 들은 소리는 쇠를 줄로 미는 소리였다. 사각, 사각, 하고 일정하게 가다가 한 번씩 멎었고, 멎을 때마다 누가 후 하고 쇳가루를 불었다. 그 소리 뒤에 매미가 있었다. 서울 매미보다 훨씬 많고 훨씬 시끄러웠다. 코로는 숯 냄새가 들어왔고, 뺨에는 짚이 닿았다. 나는 흙바닥에 깐 짚자리 위에 누워 있었다.
눈을 뜨자 나무 기둥이 보였다. 기둥 위로 서까래가 비스듬히 지나갔고, 서까래 사이로 기와 밑면이 거뭇하게 보였다. 기둥 옆에는 내 키보다 큰 나무 틀이 서 있었다. 틀 맨 위에 커다란 항아리가 있고, 그 아래 조금 작은 항아리, 그 아래 길쭉한 구리 통이 층층이 놓여 있었다. 맨 아래 통 옆으로 구리 홈이 비탈져 흘러내렸고, 홈 끝에서 웬 사내가 쇠구슬 하나를 손가락으로 굴리고 있었다.
사내는 갓을 벗어 기둥 못에 걸어 두고, 망건 아래 이마에 땀을 매달고 있었다. 흰 무명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었고, 팔뚝에 오래된 데인 자국이 둘 있었다. 그가 구슬을 홈 위쪽에 놓았다. 구슬은 굴러 내려가다가 홈이 꺾이는 자리에서 딱 멈췄다. 사내는 구슬을 집어 다시 놓았다. 또 멈췄다.
나는 그 틀을 안다고 생각했다. 교양 수업 「한국 과학기술사」 화면에서, 그리고 국립고궁박물관 유리 너머에서 본 적이 있었다. 거기 있던 것은 복원품이었고, 마른 나무에 니스가 칠해져 있었고, 내가 본 날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 있는 것은 젖어 있었다. 항아리 입에서 물이 가늘게 흘러내렸고, 구리 통 안에서 막대가 아주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자격루였다. 스스로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
나는 몸을 일으켰다. 사내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일어났으면 물부터 마시게.”
“저기, 그거요.”
나는 손가락으로 홈이 꺾이는 자리를 가리켰다. 말을 하고 나서야 내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것을 알았다. 공방 안의 줄질 소리가 한꺼번에 멎었다. 둘러보니 웃통을 벗은 장인이 여럿, 화덕 앞에, 모루 앞에, 거푸집 앞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버가 있어요. 꺾이는 데. 깎은 자리에 쇠가 살짝 일어나 있을 거예요.”
“버가 무엇인가?”
나는 대답 대신 기어가서 홈에 손톱을 댔다. 꺾이는 자리의 안쪽 모서리에서 손톱이 걸렸다. 머리카락 굵기만 한 쇠 거스러미가 거기 일어나 있었다. 이 기계 전체를 놓고 보면 먼지만 한 것이었지만, 구슬 하나가 넘어가기엔 그걸로 충분했다.
사내는 내 손톱이 걸린 자리를 제 엄지로 다시 쓸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가는 줄을 집어 그 자리를 세 번 밀었다. 후 하고 쇳가루를 불었다. 구슬을 놓았다. 구슬은 꺾이는 자리를 소리도 없이 넘어가 홈 끝의 작은 숟가락 위에 떨어졌다. 숟가락이 기울었고, 기울어진 끝이 막대 하나를 쳤고, 틀 옆에 서 있던 나무 인형의 팔이 올라갔다가 내려오며 종을 쳤다.
땡.
종소리가 공방 안을 한 바퀴 돌고 매미 소리 속으로 들어갔다. 장인 하나가 낮게 탄성을 냈다. 나는 종을 친 인형의 나무 팔을 보았다. 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팔꿈치 이음새에 쇠기름이 번들거렸다. 내가 유리 너머에서 본 인형은 팔을 든 채 서 있기만 했다. 이 인형은 지금 막 쳤다. 눈 밑이 뜨거워져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짚을 한 줌 쥐었다.
“자네 손이 먼저 짚었군.”
사내가 줄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것이 장영실과 내가 처음 나눈 말이었다. 이름은 조금 뒤에 장인들이 불러서 알았다. 나는 그 이름을 듣고 짚을 한 줌 더 쥐었다.
*
“왜놈이오, 되놈이오?”
물을 마시고 나자 장인 하나가 다가와 물었다. 어깨가 문짝만 하고 팔뚝에 풀무 손잡이 자국이 굳은살로 박힌 사내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름이 박돌석이고, 풀무를 맡은 지 스무 해가 넘었다.
“서울 사람인데요.”
“한양 사람이 그런 말을 쓴단 말이오?”
“어, 네. 한양. 한양 사람이요.”
돌석은 믿지 않는 얼굴로 내 등 뒤로 돌아갔다. 나는 학과 이름과 학번을 박은 대학 점퍼, 이른바 과잠을 입고 있었다. 등판에는 영어로 「MECHANICAL ENGINEERING」이 반원을 그리며 박혀 있었다. 돌석이 그 글자를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었다.
“오랑캐 글자요.”
“그건, 기계 공학이라는 뜻인데요.”
“기계를 공부하는 학당이란 말이오?”
“비슷해요. 학당 맞아요. 졸업반이에요.”
“졸업이 뭐요?”
“학당을 나가는 거요.”
“쫓겨났구먼.”
장인들이 웃었다. 화덕 앞에서 웃음을 참던 젊은 장인 하나는 끝내 집게를 떨어뜨렸다. 돌석은 웃지 않고 내 과잠 지퍼를 위아래로 두 번 올렸다 내렸다. 지퍼가 올라갈 때마다 그의 눈썹도 같이 올라갔다.
밥은 언년이라는 여자가 가져왔다. 공방에 밥을 대는 관비, 그러니까 관청에 매인 여자 종이라고 했다. 남자 종은 관노라고 불렀고, 공방 장인들 가운데에도 관노 출신이 많았다.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였고, 보리밥 한 그릇과 된장 한 종지를 내 앞에 내려놓는 손이 빨랐다. 내가 고맙다고 하자 그녀는 내 얼굴을 한참 보더니, 고맙다는 말을 그렇게 높게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나는 보리밥을 먹으며 주머니를 뒤졌다. 샤프 한 자루, 졸업 작품 도면을 접은 종이 한 장, 휴대폰 하나. 휴대폰 화면에는 신호가 없었고 배터리는 9퍼센트였다.
“올해가 무슨 해예요?”
“갑인년이지요.”
언년은 이상한 걸 묻는다는 듯 대답했다. 나는 숟가락을 든 채 셈을 했다. 갑인년, 자격루. 교양 수업 기말고사에 나온 문제였다. 자격루가 완성되어 보루각, 그러니까 물시계를 들이려고 지은 전각에 들어간 해. 세종 16년, 1434년. 나는 이 공방이 경복궁 담 안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담 너머로 보이는 큰 지붕이 임금이 잔치를 여는 누각, 경회루였다.
*
공조 참판이 공방에 온 것은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공조는 나라의 공사와 장인을 맡은 관청이고, 참판은 그 관청에서 판서 다음가는 자리라고, 장인들이 서둘러 웃통을 걸치는 사이 언년이 내 귀에 대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하나를 덧붙였다. 저 영감 앞에선 숨도 작게 쉬라고.
권억은 쉰 남짓한 사내였다. 관리가 입는 깃 둥근 겉옷, 단령 자락을 손으로 걷어 쥐고 공방 문턱을 넘었는데, 흙이 묻을까 봐 신코 끝으로만 디뎠다. 뒤로 공조에서 문서를 맡은 아전, 서리 하나가 붓통을 차고 따랐다. 권억은 장인들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세었다. 셈이 끝나자 서리에게 숫자를 불러 주었고, 서리가 받아 적었다.
“스물하나. 지난달에는 스물이었지.”
권억의 눈이 짚자리 위의 나에게서 멎었다.
“저것은 무엇이냐?”
장영실이 앞으로 나와 허리를 숙였다. 오늘 새벽 공방 뒷마당에 쓰러져 있던 자라고, 물시계 구슬 홈의 흠을 먼저 짚었다고, 그것까지만 말했다. 권억은 끝까지 듣고 나서 웃었다. 소리 없이 입꼬리만 올라가는 웃음이었다.
“궁 담 안에 정체 모를 자가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자네는 그자에게 밥을 먹이고 있었고.”
“날이 밝으면 궁을 지키는 내금위에 알리려 했습니다.”
“동래 관노가 임금의 은혜를 입더니 이제 궁 담 안의 일까지 날이 밝으면 하겠다는구나.”
공방 안이 조용해졌다. 매미만 울었다. 장영실은 허리를 숙인 채로 있었다. 숙인 등이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대신 화덕 앞의 돌석이 집게를 쥔 손을 천천히 내렸다.
“영감, 저자는 홈을 짚었을 뿐입니다.”
장영실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고르게 나왔다.
“홈을 짚는 손이면 담도 짚겠지.”
권억이 서리에게 턱짓을 했다. 서리가 문밖의 군사 둘을 불렀다. 군사들은 내 팔을 뒤로 꺾어 새끼로 묶었다. 과잠 소매가 새끼에 쓸려 지익 소리를 냈다. 권억은 그 소리에 눈썹을 찌푸리고, 내 등판의 영어 글자를 오래 보았다.
“오랑캐 글자를 등에 지고 다니는 자로구나. 날이 밝으면 공조 뜰로 끌고 오너라. 곤장부터 치고 묻겠다.”
“영감.”
장영실이 한 번 더 불렀다. 권억은 돌아보지 않고 신코 끝으로 문턱을 넘었다. 넘어가다가 문턱 밖에 서서 한마디를 남겼다.
“스물하나라. 공방이 자꾸 는다. 늘면 줄일 때가 오는 법이지.”
그 말을 듣고 장인들 몇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그 눈빛을 나는 그때는 읽지 못했다.
*
나는 공방 뒤 헛간에 묶여 밤을 났다. 헛간에는 숯 가마니가 쌓여 있었고, 가마니마다 검은 가루가 새어 나와 숨을 쉴 때마다 코가 맵게 저렸다. 문틈으로 달빛이 한 줄 들어왔다. 언년이 그 문틈으로 물 바가지를 밀어 넣어 주었다. 묶인 손으로 받을 수가 없어서 나는 바가지에 얼굴을 박고 개처럼 마셨다.
“곤장 열 대면 사람이 죽어요?”
“맞는 사람 나름이지요.”
“저는 어느 나름인데요?”
언년은 대답하지 않고 문틈으로 내 얼굴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은 아까처럼 높게 하지 말고, 영감 앞에선 죽을죄를 지었다고만 하라고 했다. 죄가 없어도 그렇게 하라고.
언년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다른 발소리가 왔다. 무겁고, 한 걸음마다 땅을 눌렀다. 돌석이었다. 그는 문틈 앞에 쪼그려 앉아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홈을 짚은 건 잘한 일이라고 했다.
“근데 왜 하필 참판 영감 오는 날 짚었소?”
“날을 골라서 쓰러진 게 아니라서요.”
“그러니까 왜놈 아니면 되놈이지. 한양 사람은 날을 고를 줄 아오.”
그는 혀를 한 번 차고 일어서다가, 문틈으로 주먹만 한 주먹밥 하나를 밀어 넣었다. 내 손은 여전히 등 뒤에 묶여 있었다. 돌석은 그걸 보고 잠깐 서 있더니 주먹밥을 도로 집어 가서 제 입에 넣었다. 우물거리는 소리가 멀어졌다.
그가 가고 나서 나는 묶인 손을 비틀어 과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이 켜졌다. 신호 없음, 배터리 8퍼센트. 잠금 화면 사진은 지난봄 학과 엠티에서 찍은 것이었다. 다들 웃고 있었다. 나는 화면을 껐다. 8퍼센트로는 아무도 부를 수 없었다.
담 너머에서 종이 울렸다. 낮에 장영실이 고친 그 물시계였다. 나무 인형이 칠이 벗겨진 팔로 시각을 치고 있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몇 번을 더 칠지 나는 세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