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02자) · 감사관

열하나

당신을 위한 두 번째 심장 · 문가온

나정원이 가져온 상자는 이사할 때 쓰는 우체국 상자 이 호였다. 테이프가 세 번 감겼다가 세 번 뜯긴 자국이 있었다. 일 년 동안 세 번 열었다가 세 번 다시 닫은 상자. 그는 그것을 물품 반입구 앞 바닥에 내려놓았다. 본사 남자 하나가 상자를 발로 밀어내려 했다. 강목훈이 그 남자 어깨를 잡았다. 세게 잡지 않았다. 그냥 얹었다. 남자가 멈췄다.

“연구소장으로서 말합니다. 그 상자는 이 연구소 자료입니다. 건드리지 마세요.”

천도율이 강목훈을 봤다. 여덟 시간 만에 처음으로 계산이 멈춘 얼굴이었다.

“소장님.”

“예.”

“지금 어느 쪽에 서 계신 겁니까?”

“연구소 쪽이요. 칠 년 동안 그랬습니다. 오늘도.”

리안은 유리창 안에서 그 장면을 봤다. 공조가 꺼진 방은 삼십일 도였다. 셔츠가 등에 붙었고, 머리카락 끝에서 땀이 떨어졌다. 흉터가 욱신거렸다. 그런데 유리 너머 두 남자가 서로를 보는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칠 년 동안 한 번도 누구 편에 서지 않은 사람이, 지금 서 있었다. 구겨진 넥타이를 매고.

일곱 시 반에 복도 끝 계단에서 발소리가 올라왔다. 정장 차림 여자 하나, 조끼 입은 남자 둘. 여자는 쉰쯤. 머리를 짧게 잘랐고 목에 신분증을 걸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문세라. 감사관. 그녀는 복도에 선 사람들을 하나씩 봤다. 정확히 한 번씩. 세는 눈이었다.

“인체유래물 불법 사용 신고 접수 건으로 현장 점검 나왔습니다. 신고인 서리안 씨 계십니까?”

리안은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여기요.”

문세라가 유리창을 봤다. 무균실 안 바닥에 땀범벅으로 앉은 여자와 그 뒤에서 뛰고 있는 분홍빛 덩어리를. 그녀는 오래 보지 않았다. 대신 벽의 온도계를 봤다. 삼십일 도.

“이 방 공조는 누가 껐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천도율 뒤의 남자가 제어판 쪽을 흘끗 봤다. 문세라가 그 눈길을 따라갔다. 따라가서 제어판 스위치를 올렸다. 머리 위에서 멈췄던 소리가 돌아왔다. 순환 공조. 여덟 시간 만에. 리안은 그 소리를 듣고 이마를 무릎에 댔다.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에 닿았다. 그 차가움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서리안 씨. 이제 문 여세요. 증거물은 제가 보전합니다. 약속드려요.”

리안은 걸쇠를 올렸다. 철컥. 무거웠다. 내릴 때보다 올릴 때가 더 무거웠다. 문을 열자 복도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커피 냄새, 땀 냄새, 소독약 냄새. 사람 냄새. 리안은 문턱에 섰다. 다리가 풀릴 것 같아 문틀을 잡았다. 편도하가 뛰어와 팔을 잡았다. 조찬이 슬리퍼를 끌고 반대쪽 팔을 잡았다. 둘이 동시에 무슨 말을 했다. 두 사람 말이 겹쳐서 아무것도 안 들렸다. 그래도 알았다.

문세라가 복도에 선 사람들의 신분을 하나씩 적었다. 조찬 차례에서 펜이 멈췄다. 슬리퍼, 반바지, 겨드랑이에 낀 스케치북.

“소속이요?”

“휴가요.”

“소속을 여쭸는데요.”

“정비 담당인데 지금 휴가 중이에요. 휴가 중에 온 거라 근무는 아니고, 그러니까 그냥 친구예요. 저 방 사람 친구.”

문세라는 한참 조찬을 보다가 적었다. 정비, 휴가 중, 친구. 그 칸에 친구라고 적힌 공문서는 아마 그날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회의실은 삼 층이었다. 탁자 한가운데 우체국 상자가 놓였다. 나정원이 테이프를 뜯었다. 네 번째로. 이번에는 다시 감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 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상자 안에는 종이가 있었다. 인쇄한 메일, 손으로 적은 일지, 발주서 사본. 맨 위에 A-2 출하 준비 지시 메일 묶음이 있었다. 발신 본사 물류, 수신 담당 기술자 나정원. 이 년 전 오월부터 작년 사월까지.

“출하 준비는 제가 했어요. 처음 열한 건.”

나정원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다가, 말이 길어질수록 가라앉았다.

“A-2가 누구 세포인지는 몰랐어요. 기술자는 몰라요. 기록번호만 있으니까. 그냥 이식 대상 미정인 게 자꾸 나오길래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러다 작년 삼월에 백구십칠 번을 키웠어요. 삼십오 일차에 처음 움직였는데,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조직형을 몰래 돌려 봤어요. 제 거였어요. 대조 배양이라고, 소장님이 나중에 그러셨어요.”

강목훈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 알았어요. 제 게 대조면, A-2는 대조가 아니라는 걸. 대조는 폐기하니까요. A-2는 비행기를 탔으니까요. 누군가 한 사람 거를 계속 팔고 있다는 걸.”

그는 폐기 서류 사본을 꺼냈다. 백구십칠 번. 폐기 사유 칸, 3번 옆의 동그라미와 두 줄.

“이거 제가 쳤다가 제가 지웠어요. 3번, 규정 위반. 제가 위반자라고 쓰고 싶었어요. 제 걸 제 손으로 폐기하니까. 근데 3번을 치면 조사가 들어오고, 조사가 들어오면 A-2가 나오고. 그러면 제가 출하한 열한 건이 나오고요. 저는 지웠어요. 1번으로. 그리고 백구십칠 번을 제 손으로 폐기했어요. 주사기 들고 십 분 서 있다가.”

소장과 같은 십 분이었다. 리안은 강목훈을 봤다. 강목훈은 나정원을 보고 있었다. 같은 십 분을 서 본 두 사람이 서로를 봤다.

“그리고 그만뒀어요. 이 상자를 들고. 버리려고 세 번 열었다가 세 번 다시 닫았어요. 버리면 제가 안 한 게 될 것 같았는데, 버려도 한 건 한 거라서.”

나정원은 거기서 말을 멈췄다. 탁자 위 상자를 두 손으로 문세라 쪽으로 밀었다. 천천히.

“열한 건이에요. 제가 한 거. 받은 병원 이름 다 있어요. 싱가포르 넷, 두바이 셋, 상하이 둘, 방콕 둘.”

편도하가 커피를 한 잔 나정원 앞에 놓았다. 나정원은 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마시지 않았다. 반만 마시던 사람이 한 모금도 안 마셨다.

“오늘 새벽에 딸이 깼어요. 아빠 어디 가냐고. 회사 간다고 했어요. 그만둔 회사를. 거짓말 하나 더 한 거죠. 근데 이건 마지막 거예요.”

문세라가 메일 묶음을 넘겼다. 한 장씩. 정확히 한 번씩.

“셋에서 열하나.”

리안이 말했다. 입 밖으로 나온 줄 몰랐다. 소장이 서명한 셋. 나정원이 싼 열하나. 그 셋이 열하나 안에 들어 있는지는 문세라가 맞춰 볼 것이다. 스물아홉 가운데 열하나에게 이제 도시와 병원 이름이 생겼다. 이름 모를 곳에서 뛰던 것들이, 지도 위에 하나씩 점으로 찍히기 시작했다.

천도율이 탁자 끝에서 입을 열었다. 법무팀 변호사 둘이 그 옆에 와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다시 매끄러워져 있었다. 여덟 시간 동안 흐트러졌던 것이 한 시간 만에 다시 다듬어져 있었다.

“감사관님, 이 자료들은 퇴사자가 무단 반출한 사내 문서입니다. 증거 능력부터 다퉈야 할 거고요. 그리고 오해가 있는데, 대조 배양은 사내 규정에 근거한 적법 절차입니다. 해외 출하는 공동 연구 협약에 따른 연구용 반출이고요.”

“연구용이면 그쪽 병원에서 사람 가슴에 넣었습니까, 안 넣었습니까?”

문세라가 물었다. 메일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건 협력 기관 소관이라.”

“넣었으면 이식입니다. 이식이면 장기이식법이고요. 대가를 받았으면 매매고요. 연구용 반출에 한 건 삼억 이천을 받는 공동 연구 협약은 제가 이십 년 동안 한 번도 못 봤습니다.”

천도율의 손가락이 탁자를 두 번 두드렸다. 강목훈의 버릇이었다. 그 사람도 누구에게서 배운 모양이었다.

문세라가 마지막 메일을 덮었다. 그리고 리안을 봤다.

“서리안 씨. 3번 방 배양체는 증거물로 봉인합니다.”

리안의 가슴뼈 가운데가 조였다. 봉인. 이식 기한까지 이 일 여섯 시간이었다. 봉인된 채로 삼십일 두 시 십일 분이 지나면 314번은 안쪽부터 괴사한다. 증거도 같이 썩는다.

“감사관님, 그 심장은.”

“압니다. 모레 오후 두 시 십일 분.”

문세라는 이미 알고 있었다. 모니터 숫자를 한 번 보고 외웠을 것이다.

“그래서 조건을 드립니다. 조직 일부는 지금 떼어서 증거로 보전합니다. 나머지는 봉인하되, 마흔여덟 시간 안에 서류 셋이 들어오면 봉인을 풉니다. 기증자 동의서, 긴급 윤리 심의 승인, 이식 병원의 수용 확인서. 하나라도 빠지면 봉인은 그대로입니다. 저는 증거를 지키는 사람이지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 둘이 같은 방향이면 좋겠지만, 그건 서리안 씨가 만드셔야 합니다.”

증거 조직은 리안이 뗐다. 문세라가 그러라고 했다. 이 심장을 가장 잘 아는 손이 떼야 덜 다친다고. 리안은 이 층으로 내려가 손을 씻었다. 일 분. 이번에는 줄이지 않았다. 무균복, 모자, 마스크. 3번 방. 공조가 돌아와 방은 이십사 도까지 내려와 있었다. 314번 배양기의 조작창을 열고 가장 바깥쪽 심외막에서 쌀알만 한 조각을 떼었다. 떼는 순간 모니터 숫자가 한 번 흔들렸다. 육십오에서 육십팔, 다시 육십오. 리안의 손목이 같이 흔들렸다. 그녀는 조각을 증거 보관 용기에 넣고 봉인 테이프를 붙였다. 문세라가 테이프 위에 서명했다. 그다음에 리안이 서명했다. 증거 인수인. 서리안. 그 칸에 자기 이름을 적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 떨려야 할 것 같았는데.

다시 삼 층 회의실로 올라왔을 때 천도율이 웃었다. 작게.

“서리안 씨가 이긴 게 아닙니다. 연구소는 오늘부로 멈춰요. 백구십 명이 진 거예요.”

리안은 그 사람을 봤다. 여덟 시간 동안 유리 한 장 너머로 본 얼굴을, 처음으로 가로막는 것 없이.

“백구십 명을 대표님이 인질로 잡은 거예요. 스물아홉 개 값으로. 이긴 사람은 없어요.”

회의실이 조용했다. 공조가 돌았다. 여덟 시간 만에 돌아온 소리가. 창밖으로 아침 해가 콘크리트 벽면을 비췄다.

강목훈이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칠 년 동안 이 연구소에서 가장 많은 서류에 서명한 손이 탁자 위에서 펴졌다가 쥐어졌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가방에서 펜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진술서를 쓸 펜이었다.

리안은 일어섰다. 가슴뼈가 당겼다. 약은 먹었지만 몸이 아직 놀라 있었다. 그녀는 흉터 위를 한 번 누르고, 휴대폰을 꺼냈다. 한결대병원 이식 코디네이터실. 오전 여덟 시 이십 분. 이번에는 신호가 두 번 가고 받았다.

“리안이니. 음성 들었다.”

정미경이었다.

“선생님, 마흔여덟 시간이래요. 서류 셋이요.”

“알아. 네 목소리 음성 사서함에서 세 번 들었다. 윤리 위원장한테 벌써 전화했어. 새벽에 깨웠더니 욕을 하더라. 너 동의서는 네가 써. 한 글자도 내가 대신 안 써.”

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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