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12자) · 닫힌 3번 방
삼십일 도
당신을 위한 두 번째 심장 · 문가온
사월 이십칠일 밤 아홉 시 반, 천도율의 문자가 먼저 왔다. 리안의 개인 번호로.
314 출하 취소. 오늘 22:00 폐기. 본사 입회. 서리안 씨 해고 통보는 내일 우편으로.
출하가 폐기로 바뀌었다. 리안은 그 두 줄을 오래 봤다. 비행기를 태우던 심장을 이제 태운다. 싱가포르에 팔 돈보다 싱가포르까지 들고 갈 증거가 더 무거워진 것이다. 소장 출입증 기록이 본사 화면에 떴을 것이다. 사흘 전 밤 열한 시 사십 분, 뒷문.
리안은 택시를 탔다. 열 시 이 분에 연구동 뒷문에 섰다. 소장 출입증을 댔다. 빨간 불. 막혔다. 당연했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편도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기도 전에 뒷문이 안에서 열렸다. 편도하가 서 있었다. 당직 가운 차림에 얼굴이 하얬다.
“본사 사람 둘 올라갔어요. 폐기 약물 키트 들고. 소장님은 안 나오셨고요. 조찬 씨 사물함에 열쇠 있어요. 0214.”
“도하 씨는 여기 없었던 거예요.”
“알아요. 근데 나 있었어요.”
사물함에서 열쇠를 꺼낸 것이 열 시 오 분. 이 층 복도 끝에서 무균복 입은 남자 둘이 1번 방 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3번 방이 어디인지 몰라서. 리안은 그들보다 서른 걸음 가까이 있었다. 3번 방 문을 열고 들어가 안에서 걸쇠를 내렸다. 무균실 문은 안에서 잠그는 장치가 있다. 오염 사고가 나면 안의 사람이 스스로 방을 봉쇄하라고. 칠 년 동안 한 번도 내려 본 적 없는 걸쇠였다. 무거웠다. 철컥.
손을 씻지 않고 들어왔다. 무균복도 안 입었다. 칠 년 동안 한 번도 줄이지 않은 일 분을 처음으로 건너뛰었다. 314번 배양기는 닫힌 계통이라 괜찮았다. 그래도 손이 떨렸다. 규칙을 어길 때보다 순서를 건너뛸 때 손이 더 떨렸다.
314번이 뛰고 있었다. 분당 육십오. 모니터에 이식 기한까지 이 일 열여섯 시간.
유리창 밖에 두 남자가 섰다. 한 사람이 문손잡이를 돌렸다. 안 열렸다. 다른 사람이 전화를 걸었다. 오 분 뒤 천도율이 왔다. 정장 차림 그대로. 시계 없는 손목. 그는 유리창 앞에 서서 리안을 봤다. 화난 얼굴이 아니었다. 계산하는 얼굴이었다.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방 안 스피커에서 그 매끄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서리안 씨. 거기서 뭐 하시는지 압니다. 소용없는 일이에요. 그 배양체는 회사 자산입니다. 폐기 지시는 소유자 권한이고요. 문 여세요.”
리안은 벽의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세포 주인은 저예요.”
“세포는 기증되는 순간 연구기관 소유가 됩니다.”
“기증한 적 없어요.”
“그건 법정에서 다툴 문제고요. 지금은 업무 방해입니다. 무단 침입이고. 경찰 부를까요?”
“부르세요.”
천도율이 잠깐 말을 멈췄다. 경찰이 오면 경찰이 이 방을 본다. 이 방의 심장을 본다. 이식 대상 미정인 심장을. 그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리안도 그걸 알았다.
“서리안 씨, 방 안이 몇 도죠.”
“이십일 도요.”
“공조 끕니다.”
천도율이 뒤의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복도 끝 제어판 쪽으로 걸어갔다. 일 분 뒤 머리 위에서 늘 돌던 소리가 멈췄다. 순환 공조. 칠 년 동안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소리. 배양기 안의 펌프는 따로 돌았다. 배터리로. 314번은 괜찮았다. 방이 괜찮지 않았다.
무균실은 밀폐된 방이다. 공조가 멈추면 열이 빠질 데가 없다. 배양기 셋이 내는 열, 조명이 내는 열, 사람 하나가 내는 열. 삼십 분 만에 이십사 도. 한 시간 만에 이십칠 도. 리안은 가운을 벗었다. 셔츠가 등에 달라붙었다. 이마에서 땀이 흘러 눈썹 끝에 맺혔다. 흡음재 방이라 자기 숨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났다. 한 번 나고 없어지는 소리. 가쁘게.
그리고 열한 시 반에 알았다. 밤 약. 흰 알 두 개, 노란 알 하나. 가방은 택시에서 내리면서 조찬 사물함 옆에 내려놓았다. 이십삼 년 동안 네 시간 늦게 먹은 적이 두 번 있었다. 오늘이 세 번째가 될 것이다. 한 번 거르면 괜찮다. 두 번 거르면 괜찮지 않을 수 있다. 몸이 남의 심장을 알아채기 시작한다. 이십삼 년이 지나도 몸은 잊지 않는다. 가슴뼈 가운데가 조이기 시작했다. 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봉합 자리가 칼로 긋듯 아팠다. 숨을 크게 쉬면 더 아팠다. 작게 쉬었다.
유리창 밖에서 천도율이 시계를 보는 척 손목을 봤다. 없는 시계를.
열한 시 사십 분. 이십팔 도. 천도율 뒤의 남자 하나가 무균복 모자를 벗고 부채질을 했다. 복도도 더워지고 있었다. 이 층 공조는 한 계통이었다. 3번 방을 끄자 복도도 같이 꺼졌다. 밖에 선 사람들도 같이 땀을 흘렸다. 천도율만 셔츠 단추를 하나도 더 풀지 않았다. 이마에 땀이 맺혔는데 닦지도 않았다. 더운 걸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정. 이십구 도. 리안은 바닥에 앉았다. 벽이 따뜻했다. 314번 배양기에 등을 대면 조금 나았다. 배양기 외벽은 삼십칠 도를 품은 유리라 방보다 오히려 미지근했다. 그녀는 그 유리에 등을 댄 채 휴대폰을 꺼냈다. 배터리 사십일 퍼센트. 조찬이 서고에서 찍은 발주 목록 캡처, 편도하의 조직형 결과지 사진, 강목훈의 출하 확인서 세 장. 전부 휴대폰 안에 있었다. 식약처 인체유래물 불법 사용 신고 창구. 누리집 양식이 너무 길었다. 칸이 스무 개. 리안은 한 칸씩 채웠다. 신고인 이름. 서리안. 피해 내용. 동의 없는 세포 채취와 배양, 해외 출하. 건수. 스물아홉. 첨부 파일 세 개. 제출 버튼 앞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이 버튼을 누르면 1번 방과 2번 방의 열두 개가 멈춘다. 예순일곱 살 할머니가 유월 손녀 결혼식에 못 걸어 들어간다. 내년 백구십 명이 없어진다. 강목훈의 강준 같은 아이가 대기 번호 이 번에서 다시 멈춘다.
누르지 않으면 314번은 오늘 밤 폐기된다. 아니면 다음 주에 다른 이름으로 싱가포르에 간다. 스물아홉 명은 끝까지 모른다. 칠백십이 호 세아는 반 층도 못 간다. 그리고 다음 사월에 누군가 또 팔을 걷는다. 삼십 밀리리터.
리안은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대신 다른 번호를 눌렀다. 한결대병원 이식 코디네이터실. 새벽 영 시 이십 분. 당연히 아무도 받지 않았다. 음성 사서함이 열렸다.
“정미경 선생님. 서리안이에요. 서류를 만들게요. 제 이름으로요. 기증자 동의서. 그 심장이 어디서 왔는지 제가 다 적을게요. 그러면 받아 주세요. 칠백십이 호. 삼십일 오후 두 시 십일 분까지예요.”
전화를 끊고 나서야 식약처 제출 버튼을 눌렀다. 눌렀다기보다 손가락이 거기 닿았다. 화면이 넘어갔다. 접수 번호가 떴다. 리안은 그 번호를 소리 내어 읽었다. 흡음재가 먹었다. 한 번 나고 없어졌다. 그래도 읽었다.
한 시. 삼십 도. 유리창 밖에 사람이 하나 늘었다. 편도하였다. 본사 남자들이 막으려 했지만 편도하는 당직 연구원이었다. 당직은 모든 방 앞에 설 권리가 있다. 편도하는 3번 방 옆 벽의 물품 반입구를 열었다. 무균실에 물건을 넣는 작은 상자. 바깥 문을 열고 넣으면, 안쪽 문을 열어 꺼낸다. 두 문이 동시에 열리지 않는다. 편도하가 무엇을 넣고 바깥 문을 닫았다. 인터폰이 켜졌다.
“약이요. 가방에서 꺼냈어요. 흰 거 두 개, 노란 거 하나. 맞죠? 그리고 물. 물은 뚜껑 땄다가 다시 닫았어요. 손으로 따기 힘들 거 같아서. 아 그리고 초콜릿. 이건 무균 아니에요. 먹지 마요. 아니 먹어요. 에이 몰라요.”
리안은 반입구 안쪽 문을 열었다. 약봉지와 생수와 초콜릿 하나. 약을 삼켰다. 물이 미지근했다. 목구멍으로 알약이 내려가는 자리가 쓰렸다. 초콜릿 포장을 뜯었다. 더위에 반쯤 녹아 있었다. 손가락에 묻은 걸 핥았다. 달았다. 그 단맛이 혀에서 퍼지는 순간 눈물이 났다. 왜 초콜릿에서 울음이 나는지 몰랐다. 녹아 있어서였을 것이다.
천도율이 편도하에게 뭐라고 말했다. 편도하가 대답했다. 인터폰이 꺼져 있어서 안 들렸다. 대신 입 모양이 보였다. 편도하는 형용사 없이 한 단어를 말했다. 두 번. 리안은 그 입 모양을 읽었다. 싫어요.
두 시 반에 조찬이 왔다. 휴가 중인 사람이 슬리퍼 차림으로. 손에 스케치북을 들고 있었다. 유리창 앞에 서서 한 장씩 넘겼다. 매직으로 쓴 글씨.
휴가 첫날 새벽 두 시 반 할머니가 그랬음 더울 땐 머리를 차게 (그 방엔 얼음 못 넣음 미안) 대신 이거
마지막 장에는 삼각김밥 그림이 있었다. 참치마요. 서툰 그림이었다. 김이 한 군데도 안 찢어진. 리안은 웃었다. 웃다가 가슴뼈가 당겨 허리를 숙였다. 조찬이 스케치북을 내리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리안은 손을 들어 괜찮다고 흔들었다. 조찬은 스케치북 뒷장에 한 줄을 더 써서 들어 보였다. 웃지 마요 아프면.
세 시에 천도율이 다시 인터폰을 눌렀다. 목소리가 조금 쉬어 있었다. 그도 여섯 시간째 서 있었다.
“서리안 씨. 신고하셨죠. 접수 알림이 법무팀에 왔어요. 잘하셨어요. 이제 이 연구소는 조사 들어갑니다. 공정 전부 멈추고요. 열두 개 멈추고, 내년 백구십 명도 멈춰요. 그 사람들한테 서리안 씨가 뭐라고 하실지 궁금하네요.”
“대표님이 싱가포르에 판 스물아홉 개로 버틴 공정이면, 그 공정은 원래 멈춰야 했던 거예요.”
“누가 그걸 정하죠?”
“이번에는 제가요. 제 세포니까요.”
천도율은 대답하지 않고 버튼에서 손을 뗐다. 그 사람이 처음으로 손을 무겁게 뗐다.
새벽 네 시. 삼십일 도. 리안은 314번 배양기에 등을 댄 채 졸다 깼다. 모니터 숫자. 분당 육십오. 이식 기한까지 이 일 열 시간. 314번은 한 번도 박자를 놓치지 않았다. 방이 몇 도든, 밖에 누가 서 있든. 그 무심함이 그날 밤 그녀를 붙잡았다. 심장은 누구 편도 아니었다. 그냥 뛰었다. 그래서 믿을 수 있었다.
다섯 시 사십 분. 창밖 복도가 소란스러웠다. 본사 남자들이 누군가를 막고 있었다. 리안은 몸을 일으켜 유리창 쪽을 봤다.
서른여덟쯤 된 남자가 종이 상자 하나를 안고 서 있었다. 머리가 짧아졌고 살이 빠졌지만 리안은 알아봤다. 삼 층 끝자리. 창가 화분에 물을 주던 사람. 커피를 반만 마시던 사람. 그 사람 옆에 강목훈이 서 있었다. 넥타이를 매고. 구겨진 넥타이를.
나정원이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목소리가 떨렸다.
“서리안 씨. 백구십칠 번 거, 전부 가져왔어요. 일 년 동안 못 버린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