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07자) · 소장의 이유
강준
당신을 위한 두 번째 심장 · 문가온
판교역에서 연구소까지 걸어서 이십 분이었다. 밤 열한 시가 넘자 제2테크노밸리의 유리 건물들은 층마다 불이 꺼져 검은 거울이 되었다. 그 거울마다 가로등과 리안이 비쳤다. 걸을 때마다 가슴뼈 가운데가 조금씩 당겼다. 저녁에 편도하가 보낸 문자가 휴대폰에 떠 있었다. 오늘 소장님이 하루 종일 3번 방 앞을 지나다녔어요. 들어가지는 않고. 세 번. 네 번. 이상하고 쓸쓸하고 좀 무서웠어요. 리안은 답을 안 했다. 대신 걸음을 빨리했다. 봄밤 공기가 생각보다 따뜻해서 무균복 안에 입은 셔츠가 등에 붙었다.
소장 출입증은 밤 열한 시 사십 분에 연구동 뒷문을 열었다. 초록 불이 한 번 깜빡였다. 리안은 그 불빛을 보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삐 소리가 너무 컸다. 밤의 연구동은 낮보다 소리가 멀리 갔다. 계단을 올라 이 층 복도에 서자 형광등 절반이 꺼져 있었고, 바닥 배수 격자가 발밑에서 얇게 울렸다. 배양액 냄새가 났다. 염분과 쇠 맛이 섞인. 칠 년 동안 맡은 냄새인데 그날 밤은 코끝이 따가웠다.
3번 방 유리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 대기등 오십 럭스. 물속 같은 빛. 그 안에 누가 앉아 있었다. 리안은 걸음을 멈췄다.
강목훈이었다. 예비 배양기 앞 바닥에, 벽에 등을 대고. 사흘 전 밤 리안이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넥타이를 풀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유리 너머 314번이 뛰고 있었다. 분당 육십오. 모니터 한쪽에 숫자가 떠 있었다. 이식 기한까지 오 일 십사 시간. 출하까지 삼 일 여섯 시간.
리안은 탈의실에서 무균복을 입었다. 모자, 마스크, 덧신. 손을 씻는 데 일 분. 칠 년 동안 한 번도 줄인 적 없는 일 분이었다. 그날도 줄이지 않았다. 리안은 들어갔다. 강목훈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출입증 잘 쓰셨네요. 삐 소리 여기까지 들렸어요.”
“두고 가셨어요.”
“두고 갔죠. 나이 들면 잘 두고 다닙니다.”
“왜요?”
강목훈은 대답 대신 옆자리 바닥을 손바닥으로 두 번 두드렸다. 앉으라는 뜻이었다. 리안은 앉지 않았다. 314번과 소장 사이에 섰다. 순환 펌프가 돌았다. 흡음재가 두 사람 숨소리를 먹었다.
“서 기술자, 작년에 이 공정으로 몇 명이 살았는지 압니까?”
“백구십 명이요. 제가 기록했어요.”
“재작년에는 백십이 명. 그 전해에는 육십 명. 처음 해에는 일곱 명이었습니다. 일곱 명. 나는 그 일곱 명 이름을 다 압니다. 서류에는 번호만 있지만.”
“그게 스물아홉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이 연구소는 적자입니다. 처음부터. 환자 한 명 심장을 여섯 주 키우는 데 드는 돈을 보험이 반도 안 줍니다. 나머지는 본사가 메웠습니다. 본사가 어디서 메웠는지는.”
그는 거기서 말을 끊었다. 끊은 자리가 대답이었다. 리안의 목이 뜨거워졌다.
“싱가포르에서요.”
“스물아홉 개로 이 년을 버텼습니다. 백구십 명, 백십이 명. 그 사람들 심장이 그 돈으로 자랐어요. 서 기술자가 이걸 식약처에 들고 가면 이 연구소는 내일 문을 닫습니다. 임상 전부 중단. 지금 1번 방, 2번 방에서 자라는 열두 개도. 그 열두 개 주인들도. 내년 백구십 명도.”
리안은 1번 방 쪽 벽을 봤다. 벽 너머 정규 배양기 열둘. 전부 주인이 있었다. 환자 번호가 적힌. 그녀가 키운 것도 다섯. 그 다섯의 주인들은 지금 어느 병원 침대에서 날짜를 세고 있었다. 이 연구소가 내일도 문을 열 거라고 믿으면서. 그 다섯 중 하나는 이번 주 금요일에 박동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예순일곱 살 할머니의 것. 리안은 그 할머니 손녀가 보낸 감사 편지를 휴게실 게시판에서 읽은 적이 있다. 할머니가 손녀 결혼식에 걸어서 들어가고 싶어 한다고. 결혼식은 유월이었다.
“한 아이하고 백구십 명입니다.”
강목훈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화를 낼 때처럼 짧지 않았다. 오래 준비한 말이었다.
“그 병원 칠 층 아이, 알아요. 정미경 코디가 오늘 오후에 나한테 전화했습니다. 서리안이 다녀갔다고. 조직형 물었다고.”
리안은 숨을 멈췄다. 가슴뼈 가운데가 조였다. 정미경이 왜 소장에게 전화했는지 알 수 없었다. 걱정했든 막으려 했든.
“세아요. 윤세아.”
“이름은 모릅니다. 알고 싶지 않아요. 이름을 알면.”
“다르게 다루니까요.”
리안이 먼저 말했다. 소장이 사흘 전에 한 말이었다. 강목훈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대기등 아래 그의 얼굴이 물속처럼 푸르스름했다. 눈가가 젖어 있었다. 리안은 그것을 못 본 척하지 않았다.
“소장님은 왜 이걸 시작하셨어요.”
긴 침묵이었다. 순환 펌프가 네 번쯤 숨을 쉬었다. 314번이 뛰었다.
“열두 해 전에 아들이 있었습니다.”
강목훈이 말했다. 314번을 보면서.
“확장성 심근병증. 아홉 살에 진단. 대기자 명단에 이 년. 조직형이 까다로웠어요. 맞는 심장이 안 나왔습니다. 열한 살 되던 해 겨울에 죽었어요. 대기 번호 이 번일 때.”
“이름이 뭐였어요.”
“강준. 외자.”
그는 이름을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칠 년 동안 이 연구소에서 누구도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번호만 붙이는 곳이니까.
리안은 서 있던 자리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서가 아니었다. 그 말을 서서 들을 수가 없었다.
“내 세포로 심장을 키우는 방법이 있었으면 그 애는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걸 했어요. 누구든 자기 세포로. 대기 없이. 약 없이. 그게 전부였어요. 그런데 돈이 안 됐습니다. 천도율이 방법을 가져왔을 때 나는 반대했습니다. 한 달. 그리고 그달에 대기자 둘이 죽었어요. 우리 공정으로 살릴 수 있었던. 나는 서명했습니다. 셋. 그다음부터는 서명도 안 하게 됐고요. 본사가 알아서.”
강목훈은 셔츠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출하 확인서 사본 세 장. 자기가 서명한 셋. 이름은 없고 나이와 도시만 있었다. 싱가포르, 쉰두 살 남자. 두바이, 아홉 살 여자아이. 상하이, 서른한 살 여자. 그는 그 종이를 리안에게 건네지 않고 자기 무릎 위에 펼쳐 두었다. 리안은 서서 내려다봤다. 아홉 살. 두바이. 그 아이는 지금 거기서 아침을 먹고 있을 것이다. 여기보다 다섯 시간 늦은 아침을.
“그 애도 열한 살이었네요.”
“예.”
“세아도 열한 살이에요.”
강목훈이 눈을 감았다. 리안은 314번을 봤다. 유리 속 분홍빛 덩어리가 오므라들었다 펴졌다. 그녀의 세포. 그녀의 칠 년 치 사월. 그 안에 소장의 열두 해도 있었다. 스물아홉 개의 돈도. 백구십 명도. 한 덩어리 안에 너무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심장은 그걸 다 모르고 제 박자로 뛰었다.
“소장님.”
“예.”
“소장님 아들이 대기 번호 이 번일 때, 누가 심장을 싱가포르로 먼저 팔았으면요. 그 애 조직형에 맞는 걸, 돈 많은 다른 나라 사람한테. 그 돈으로 연구소가 버텼으면. 소장님은 그 연구소를 지키셨을 거예요?”
강목훈의 얼굴이 무너졌다. 소리 없이. 입이 열렸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대기등 오십 럭스 아래에서 쉰다섯 살 남자가 무릎에 넥타이를 쥔 채 몸을 앞으로 접었다. 넥타이가 구겨졌다. 리안은 손을 뻗지 않았다. 뻗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 사람의 열두 해를 그녀가 만질 수는 없었다.
오래 지나서 강목훈이 몸을 폈다. 넥타이를 무릎 위에 반듯하게 폈다. 주름이 안 펴졌다.
“이십팔일 새벽 다섯 시에 물류 기사가 옵니다. 본사 사람 둘하고. 3번 방 열쇠는 정비가 갖고 있죠.”
“조찬 씨요.”
“그 사람한테 이십칠일 밤에 휴가를 주겠습니다. 열쇠는 사물함에 넣고 가라고요. 사물함 비밀번호는 내가 모릅니다.”
리안은 그 말을 두 번 되새겼다. 소장이 무엇을 하려는지, 무엇을 안 하려는지. 그 사람은 막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돕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 둘 사이에 칠 년 동안 이 연구소를 지탱한 사람의 선이 있었다.
“소장님이 식약처에 가시면요.”
“나는 못 갑니다.”
“왜요?”
“가면 백구십 명이 끝나는 걸 내 손으로 하는 거니까요. 나는 그 애 대기 번호를 지우는 손은 못 됩니다. 두 번째는.”
그는 일어섰다. 무릎이 먼저 펴지고 몸이 나중에 따라왔다. 문 앞에서 멈췄다. 돌아보지 않았다.
“서 기술자가 가세요. 서 기술자는 그 손이 될 수 있어요. 그 애가 서 기술자 거니까.”
문이 닫혔다. 대기등 아래 리안 혼자 남았다. 강목훈의 출하 확인서 세 장은 바닥에 그대로 있었다. 그는 두고 갔다. 출입증처럼.
리안은 장갑을 끼고 예비 배양기의 관을 하나씩 확인했다. 들어가는 관, 나오는 관, 대동맥 자리에 이은 관. 오늘은 꺾인 데가 없었다. 배양액 온도를 쟀다. 삼십칠 도. 사람 몸 안과 같은 온도. 유리 바깥 방은 이십일 도였다. 이 유리 한 장이 두 온도를 나눴다. 그녀가 칠 년 동안 한 일이 그것이었다. 차가운 방 안에 뜨거운 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 그리고 떨어진 것을 이어서 흐르게 하는 일. 그녀는 314번 앞에 앉았다. 이십삼 년 전 열세 살 남자아이가 떠올랐다. 그 애가 죽던 날, 같은 병원 칠 층에서 열한 살 리안은 대기 번호 일 번이었다. 그 애가 죽어서 그녀가 살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 집 엄마가 아들의 가슴을 열어 주기로 한 것 말고는, 아무도 아무것도 고르지 않았다. 고른 사람은 그 엄마 하나였다. 그래서 그 선택만이 선물이 됐다. 스물아홉 개에는 고른 사람이 없었다. 그녀가 고르지 않았으니까.
흉터 위에 손을 얹었다. 뛰었다. 남의 것. 이제 네 거야. 엄마가 그랬다. 유리 너머에서 그녀의 것이 뛰었다. 이제 누구 거지.
모니터 숫자가 바뀌었다. 출하까지 삼 일 다섯 시간.
리안은 휴대폰을 꺼냈다. 조찬에게 문자를 썼다. 썼다가 지웠다. 다시 썼다.
이십칠일 밤 휴가 받으면, 사물함 비번 알려 줘요.
일 분 뒤 답이 왔다.
휴가요? 나 휴가 받아요? 인생 최대의 참을성 보상인가. 비번은 0214. 내 생일 아니고 우리 할머니 생일.
곧이어 편도하에게서도 문자가 왔다. 조찬이 단체 대화방에 뭘 올린 모양이었다.
이십칠일 밤이면 나 당직이에요. 원래 아니었는데 방금 바꿨어요. 무섭고 떨리고 이상하게 기뻐요. 형용사 셋 다 진짜예요.
리안은 휴대폰을 가슴에 대고 눈을 감았다. 휴대폰이 따뜻했다. 그 밑에서 심장이 뛰었다. 빨랐다. 이번에는 아무도 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