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11자) · 소급 동의서

스물아홉

당신을 위한 두 번째 심장 · 문가온

서고는 지하 일 층이다. 온도는 십팔 도, 종이 보존 온도. 형광등이 하나뿐이라 선반 사이는 물속처럼 어둑했다. 조찬이 열쇠를 돌리자 철문이 무겁게 밀렸다. 먼지와 오래된 종이와 방습제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 나왔다. 리안은 기침을 참았다. 차가운 공기가 가슴뼈에 닿자 흉터가 먼저 반응했다. 오래된 봉합 자리가 가늘게 쓰렸다. 그녀는 가운 앞섶을 여몄다.

“나는 문 앞에 있을게요. 누가 오면 기침 두 번.”

“기침 안 하면요?”

“아무도 안 온 거죠.”

“그럼 조찬 씨가 기침하고 싶을 땐요.”

“참아야죠. 오늘 밤 내 인생 최대의 참을성을 보여 줄게요.”

전자 기록은 권한이 필요하지만 종이 사본은 삼 년까지 서고에 남는다. 백구십칠 번 파일을 찾는 데 사십 분이 걸렸다. 선반 번호가 연도순이 아니라 폐기 사유순이었다. 1번 칸, 이식 대상 소멸. 거기 있었다.

기록번호 197 배양 개시 작년 3월 4일 · 박동 개시 4월 15일 09:32 이식 대상: 미정 폐기일 4월 23일 · 폐기 사유: 1) 이식 대상 소멸 담당 기술자 나정원 · 승인자 강목훈

폐기 사유 칸에 볼펜 자국이 하나 더 있었다. 3번, 규정 위반 옆에 동그라미를 쳤다가 두 줄로 지운 자국. 그 위에 1번. 나정원이 3번을 골랐고 누군가 1번으로 바꿨다. 아니면 나정원 스스로 바꿨다. 그 두 줄이 누구 손인지 종이는 말하지 않았다.

파일 맨 뒤에 배양 일지 사본이 있었다. 삼십오 일차 줄에서 리안의 손가락이 멈췄다.

35일차 자발 수축 관측 16:10 ※ 오늘 처음 움직였다. 내 것이.

내 것이. 나정원은 알고 있었다. 삼십오 일차에 이미. 리안은 그 세 글자를 오래 봤다. 알면서 키우고, 알면서 폐기 서류에 3번을 쳤다가, 지웠다. 그리고 한 달 뒤 책상을 비웠다.

“리안 씨.”

조찬이 문 앞에서 속삭였다. 기침이 아니었다.

“구매 쪽 봐요. 배양액. 세포 종류마다 배양액 코드가 달라요. 그건 권한 없어도 봐요. 구매팀 자료는 창고 재고랑 같이 올라가서 정비도 보거든요.”

조찬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정비 계정 화면이었다. 구매 발주 내역. 리안은 314번 배양액 코드를 찾았다. A-2. 197번은 A-7이었다. 다른 코드. 그녀는 A-2를 검색했다.

화면이 한참 돌았다. 결과가 떴다.

A-2 · 발주 2027년 5월 ~ 2029년 3월 · 서른한 건 비고: 특정 세포주 전용

서른한 건. 리안은 스크롤을 내렸다. 건마다 배양 기록번호가 붙어 있었다. 그 번호들을 전자 기록에서 하나씩 쳐 봤다. 기술자 권한으로 보이는 것은 물류 상태 한 칸뿐이었다. 그 한 칸이면 충분했다.

출하 완료 · 출하 완료 · 출하 완료 · 배양 실패 · 출하 완료 …

리안은 하나씩 셌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짚으면서. 서고의 형광등이 가끔 떨렸다. 떨릴 때마다 숫자가 흐려졌다가 돌아왔다. 출하 완료가 스물아홉. 배양 실패가 하나. 그리고 마지막 한 건, 314번. 출하 예약.

스물아홉.

소장이 아는 것은 셋이었다. 편도하가 본 것도 셋이었다. 스물아홉. 이 년 동안. 한 달에 하나 넘게. 리안이 여섯 주씩 키운 심장들 가운데 이식 대상 칸에 환자 번호가 적힌 것들 사이사이에, 그녀가 모르는 척 지나친 것들이 있었다. 그녀가 키운 것도 있을 것이다. 모르고.

리안은 선반을 짚고 섰다. 차가운 철제 선반이 손바닥을 식혔다. 식는 게 좋았다. 몸이 너무 뜨거웠다. 이마에 땀이 났다. 십팔 도짜리 방에서.

“스물아홉이에요.”

리안이 말했다. 조찬이 문간에서 돌아봤다. 농담을 고르는 얼굴이었다가, 고르지 못했다.

“…스물아홉 명이 살아 있다는 거네요.”

“스물아홉 명이 모른다는 거예요. 자기 가슴에 누구 게 들어 있는지.”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습기가 딸깍 켜졌다. 조찬이 태블릿 화면을 캡처했다. 캡처하는 소리가 서고에 크게 울렸다. 셔터 소리. 조찬이 흠칫하더니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꿨다. 늦었다. 둘 다 웃음이 터질 뻔했다. 참았다. 오늘 밤 조찬 인생 최대의 참을성이었다.

새벽 두 시에 집에 왔다. 원룸 부엌 불만 켰다. 싱크대 위 약통을 열었다. 흰 알 두 개, 노란 알 하나. 밤 약을 네 시간 늦게 먹었다. 이십삼 년 동안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아빠 장례식 날이었다. 물을 한 컵 다 마셨다. 목구멍으로 알약이 내려가는 자리가 오래 쓰렸다.

잠이 안 왔다. 휴대폰으로 그 싱가포르 클리닉 누리집을 다시 열었다. 영어 문장 사이에서 숫자를 찾았다. 대기 없는 이식 패키지. 미화로 적힌 값을 원화로 바꾸자 삼억 이천만 원이 나왔다. 스물아홉을 곱해 봤다. 계산기 화면에 숫자가 너무 길어서 한 번에 읽히지 않았다. 리안은 휴대폰을 엎어 놓았다. 엎어 놓아도 숫자는 안 사라졌다. 천장을 보며 누웠다.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엄마가 그랬듯이. 뛰었다.

아침 아홉 시. 삼 층 회의실. 인사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

대신 회의실 가운데 자리에 처음 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마흔아홉. 회색 정장에 넥타이 없이 셔츠 단추 하나를 푼 사람. 손목에 시계가 없었다. 요즘 시계를 안 차는 사람은 시간을 남이 알려 주는 사람이다. 강목훈이 그 옆에 서 있었다. 앉지 않고.

“서리안 씨. 천도율입니다. 앉으세요.”

리안은 앉았다. 탁자 위에 서류가 한 장 놓여 있었다. 천도율은 그것을 리안 쪽으로 밀었다. 손가락 두 개로. 가볍게.

인체유래물 연구 기증 동의서(소급) 기증자: 서리안 기증 기간: 2022년 4월 ~ 2029년 4월 보상: 배양체 1건당 1,000만 원 · 향후 로열티 별도

“인사위원회는 없던 일로 했습니다. 서고도, 예비 배양기도. 좋은 기술자를 징계할 이유가 없죠.”

천도율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강목훈처럼 짧지도 않았다. 말이 매끄럽게 이어져서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서리안 씨 세포는 특별합니다. 여섯 자리 동형접합. 그 세포로 만든 심장은 한국 사람 여덟 명에 한 명꼴로 거부 반응 없이 맞아요. 대기 없이. 약도 거의 없이. 서리안 씨는 약을 먹죠. 아침저녁으로. 그 약 먹는 사람을 줄이는 세포예요.”

“그래서 몰래 뽑으셨어요.”

“물어봤으면 줬겠습니까?”

“줬을 거예요.”

천도율이 웃었다. 처음으로 진짜 웃음이었다. 믿지 않는 사람의 웃음.

“다들 그렇게 말해요. 줬을 거라고. 그런데 물어보면 시간이 걸려요. 윤리 심의, 동의서, 철회 가능성, 변호사. 그 사이에 기다리던 사람들이 죽어요. 스물아홉 명. 서리안 씨 세포로 스물아홉 명이 대기 없이 살았어요. 싱가포르, 두바이, 상하이. 그중 셋은 열 살 안 된 애들이었고요.”

리안의 가슴뼈 가운데가 조였다. 열 살 안 된 애들. 천도율은 그 말이 어디에 꽂히는지 알고 골랐다. 그 사람은 그녀의 서류를 다 읽고 왔다. 수혜자 카드까지.

“보상은 소급합니다. 스물아홉 건, 이억 구천. 앞으로 한 건마다 천만 원. 314번부터요. 서명하시면 서리안 씨는 기증자가 됩니다. 도둑맞은 사람이 아니라. 그 편이 서리안 씨한테도 낫잖아요. 스물아홉 명한테도.”

리안은 강목훈을 봤다. 소장은 창가에 선 채 한 번도 탁자 쪽을 보지 않았다. 칠 년 동안 이 연구소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이 방에서는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손이 바지 옆선을 따라 내려가 있었다. 주먹을 쥐지도 펴지도 않은 손. 리안은 그 손을 기억해 두었다.

리안은 서류를 봤다. 기증자. 그 단어가 목에 걸렸다. 이십삼 년 동안 그녀가 가장 되고 싶었던 것. 받은 사람이 아니라 준 사람.

“한 건마다 천만 원이면.”

리안이 말했다.

“그 심장은 얼마에 파세요.”

천도율의 웃음이 멈췄다. 이 초. 강목훈이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건 서리안 씨가 알 필요 없는 영역이에요.”

“싱가포르 클리닉 누리집에 대기 없는 이식 비용이 나와 있던데요. 한국 돈으로 삼억 이천. 거기서 천만 원 주시는 거네요. 제 몫으로.”

“서리안 씨.”

“기증자는 돈을 안 받아요. 법이 그래요. 받으면 매매예요. 제가 받은 심장도 그랬어요. 그 집 엄마는 한 푼도 안 받았어요. 그래서 저는 이십삼 년 동안 갚을 데를 몰랐어요. 대표님은 저한테 기증자가 되라고 하시면서 값을 매기셨어요. 그 서류에 서명하면 저는 기증자가 아니라 파는 사람이 돼요. 스물아홉 명은 산 사람이 되고요.”

회의실이 조용했다. 공조가 돌았다. 천도율이 서류를 도로 끌어갔다. 손가락 두 개로. 가볍게. 아까와 똑같이. 그 사람은 거절당해도 손이 무거워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천도율은 손목을 봤다. 시계가 없는 손목을. 버릇이었다.

“314번은 이십구일 새벽에 나갑니다. 서리안 씨는 오늘부로 대기 발령이고요. 연구동 출입증은 정오까지 반납하세요. 인사위원회 없이. 조용히.”

천도율이 일어섰다. 문 앞에서 한 번 돌아봤다.

“서리안 씨 약값, 한 달에 얼마 나오죠. 사십만 원쯤? 평생. 한번 계산해 보세요.”

문이 닫혔다. 문틀이 한 번 떨렸다.

강목훈이 그제야 의자에 앉았다. 리안의 맞은편. 둘 사이에 서류가 있던 자리가 비어 있었다. 탁자에 서류 모서리가 눌렸던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정오까지입니다.”

소장이 말했다.

“알아요.”

“이식 기한은 삼십일 두 시 십일 분이고요.”

“그것도 알아요.”

강목훈은 한참 말이 없다가, 탁자 위에 무엇인가를 내려놓았다. 출입증이었다. 리안 것이 아니었다. 소장 것. 관리자 권한 출입증. 그는 그것을 리안 쪽으로 밀지도, 도로 가져가지도 않았다. 그냥 탁자 한가운데 두었다. 서류가 있던 그 자리에.

그리고 일어나서 나갔다. 문을 닫지 않고.

열린 문 밖에 조찬과 편도하가 서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른다. 편도하는 커피 세 잔이 꽂힌 캐리어를 들고 있었고, 조찬은 빈손이었다. 조찬이 회의실 탁자 위 출입증을 봤다. 소장 사진이 붙은 것을.

“저거 떨어뜨리고 가신 거죠. 그렇죠. 그런 거죠.”

“몰라요.”

“나도 정오까지 반납해야 돼요? 열쇠?”

“조찬 씨는 대기 발령 아니에요.”

“아직은요.”

편도하가 커피 한 잔을 리안 앞에 놓았다. 뜨거웠다. 컵 옆면을 쥐자 손바닥이 따끔했다. 리안은 손을 떼지 않았다. 따끔한 것이 좋았다. 몸이 아직 여기 있다는 것 같아서.

4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스물아홉 · 당신을 위한 두 번째 심장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