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010자) · 제5장

대조 배양

당신을 위한 두 번째 심장 · 문가온

강목훈은 대답 대신 모니터를 돌렸다. 관리자 권한으로만 열리는 규정집 제5장. 리안은 칠 년 동안 그 장 제목만 알았다. 관리 운영. 기술자가 볼 일 없는 장.

제5장 제3조(대조 배양) ① 공정 안정성 검증을 위하여 연 2회 대조 배양을 실시한다. ② 대조 배양체의 세포는 내부 인원 중에서 무작위로 선정한다. ③ 선정된 인원에게는 통보하지 아니한다. ④ 대조 배양체는 검증 종료 후 폐기한다.

“통보하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알면 다르게 다루니까요.”

리안은 그 대답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알았기 때문에 목이 뜨거워졌다. 자기 세포로 자란 것을 자기 손으로 키우면서 모르는 것. 그래야 공정이 공정대로 검증된다. 과학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그녀가 칠 년 동안 믿고 일한 것도 그런 말들이었다.

“연 2회면 칠 년에 열넷입니다. 무작위면 스무 명 넘는 내부 인원 가운데 제가 열네 번 다 걸릴 수는 없습니다.”

강목훈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 번 두드렸다. 말을 줄이기 전에 하는 버릇이었다.

“무작위가 아니었습니다.”

“누가 골랐습니까?”

“입사 검진 때 조직형이 나왔습니다. 본사가 봤습니다. 여섯 자리 동형접합은 이 나라에 천 명쯤이라고 합니다. 그중 세포 배양 공정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은 서 기술자 하나였고요.”

“그래서 대조 배양이라는 이름으로.”

“그 이름으로.”

“소장님도 대상이셨습니까?”

“두 번.”

강목훈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것만은 준비된 대답이었다.

“내 조직형은 흔합니다. 그래서 진짜로 검증용이었습니다. 두 번 다 내 세포인 줄 알고 키웠고, 두 번 다 내 손으로 폐기했습니다. ④항대로.”

“힘드셨습니까?”

“칠 주 동안 내 것이 뛰는 걸 봤습니다. 폐기하는 날 약물 주사기를 들고 십 분을 서 있었어요.”

그는 거기서 말을 끊었다. 그다음은 말하지 않았다. 리안도 묻지 않았다. 십 분 뒤에 그가 무엇을 했는지는 ④항에 적혀 있었다.

“폐기한다는 ④항은요.”

강목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결과지를 반으로 접어 리안 쪽으로 밀었다. 가져가라는 뜻인지 치우라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소장님이 서명한 출하는 몇 개입니까?”

“셋입니다.”

그 숫자가 방바닥에 떨어졌다. 셋. 리안은 그 숫자를 입 안에서 굴렸다. 셋이면 세 사람이다. 어딘가에서 세 사람이 그녀의 세포로 뛰는 심장을 달고 지금 이 시각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나머지는요?”

“나머지는 본사 물류가 직접 했습니다. 나는 셋만 압니다.”

“나머지가 있다는 건 아시네요.”

강목훈은 창을 봤다. 콘크리트 벽면뿐인 창을.

“서 기술자, 하나 제안하겠습니다.”

“말씀하세요.”

“모르는 사람으로 돌아가세요. 314번은 이십구일에 나갑니다. 그 뒤로 대조 배양은 내가 끊겠습니다. 본사에 공정 검증 끝났다고 올리면 됩니다. 서 기술자 세포는 이제 아무도 안 씁니다. 약속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쓴 건요.”

“지금까지 쓴 건 이미 사람 가슴 안에 있습니다. 꺼낼 수 없어요.”

그 말도 맞았다. 리안은 흉터를 생각했다. 이십삼 년 전 누군가 자기 아들의 가슴에서 꺼낸 것이 지금 그녀 안에 있었다. 꺼낼 수 없다. 꺼내면 그녀가 죽는다. 싱가포르 어딘가의 셋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모르는 사람으로 돌아가면요.”

리안이 말했다.

“다음 사월에 누가 또 삼십 밀리리터를 뽑혀도, 저는 모르는 척할 수 있겠죠. 조찬 씨가, 편도하 씨가. 여섯 자리가 같은 누가 새로 들어오면.”

“끊는다고 했습니다.”

“소장님이 칠 년 동안 못 끊은 걸요.”

강목훈의 얼굴이 굳었다. 이번에는 핏기가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붉어졌다. 목 아래부터 천천히. 그 사람도 뜨거운 사람이었다. 칠 년 동안 리안은 그걸 몰랐다.

“내일 아침 아홉 시에 인사위원회 엽니다. 서고 무단 열람, 무단 이송. 서 기술자 징계 건으로.”

“서고는 아직 안 갔습니다.”

“갈 거잖아요.”

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강목훈이 먼저 알았다. 그녀가 다음에 무엇을 할지. 그 사람은 칠 년 동안 이 연구소의 모든 순서를 알았다.

리안은 소장실을 나와 곧장 2층으로 내려갔다. 3번 방. 314번은 분당 육십오로 뛰고 있었다. 그녀는 장갑을 끼고 예비 배양기의 연결 관을 하나씩 확인했다. 대동맥 자리에 이은 관, 폐동맥 자리에 이은 관, 배양액이 들어가고 나오는 관. 심장은 혼자 뛰지만 혼자 살지는 못한다. 관을 이어 줘야 산다. 관 하나가 조금 꺾여 있었다. 리안은 꺾인 자리를 손끝으로 펴서 다시 고정했다. 이 일을 칠 년 동안 했다. 잇는 일. 떨어진 것을 흐르게 하는 일. 그녀의 가슴 안에서도 누군가 이십삼 년 전 같은 일을 했다. 모르는 사람의 대동맥을 모르는 아이의 대동맥에 이었다. 그 봉합 자리는 지금도 그녀 안에 있다. 추운 날이면 거기서부터 아팠다.

관을 다 확인하고 나서야 그녀는 314번 앞에 앉았다. 이 안의 것이 자기 몸에서 나왔다. 칠 년 동안 해마다 사월에 걷은 팔 안쪽에서. 유리에 비친 자기 얼굴 너머로 분홍빛 덩어리가 오므라들었다 펴졌다. 낯설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칠 년 동안 이 방의 모든 심장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를 그녀는 그날 처음 의심했다.

해 질 무렵 리안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사 층 위 철문을 밀면 판교 쪽 하늘이 한 번에 열렸다. 사월 말 저녁 바람은 아직 서늘했지만 콘크리트 바닥은 낮 동안 받은 열을 품고 있어서 운동화 밑창이 따뜻했다. 난간에 팔을 걸었다. 저 멀리 경부고속도로 위로 차들이 빨간 줄을 그으며 서울 쪽으로 기어갔다. 퇴근길. 저 차 안의 누구도 자기 피가 어디에 쓰였는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할 이유가 없다. 어제까지 그녀도 그랬다.

철문이 삐걱 열렸다. 편도하였다. 손에 캔커피 두 개. 하나를 건넸다. 차가웠다. 손바닥이 따끔했다.

“인사위원회 연대요. 메일 왔어요. 참고인에 제 이름 있어요.”

“미안해요.”

“아까부터 미안하대. 리안 씨 미안하다는 말 칠 년 동안 들은 거 오늘 하루에 다 들었어요.”

편도하는 난간에 등을 기댔다. 캔을 따지 않고 손에서 굴렸다.

“근데 리안 씨. 소장님 말이 틀린 건 아니잖아요.”

“알아요.”

“이미 사람 가슴 안에 있다는 거. 우리가 여기서 떠들어도 그 셋이 살아 있는 건 바뀌지 않잖아요. 오히려 떠들면 그 사람들이 곤란해질 수도 있고. 불법으로 받은 심장이 되잖아요. 그 사람들 잘못도 아닌데.”

리안은 캔을 땄다. 치익 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 한 모금 마셨다. 너무 달았다. 혀끝에 단맛이 남고 목구멍에서 쓴맛이 올라왔다.

“도하 씨.”

“네.”

“나는 누구 심장을 받았는지 몰라요. 이십삼 년 동안. 그 집 엄마한테 고맙다는 편지 한 장 못 썼어요. 법이 막아서. 그래서 늘 빚진 채로 살았어요. 갚을 데를 몰라서.”

편도하가 캔 굴리던 손을 멈췄다.

“그 셋도 똑같이 살 거예요. 누구 건지 모르고. 근데 그 셋은 모르는 게 아니라 속은 거예요. 준 사람이 준 적이 없으니까. 나는 준 적이 없어요. 줬으면 좋았을 거예요. 물어봤으면 줬을 거예요. 그런데 아무도 안 물어봤어요.”

바람이 불었다. 편도하의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었다. 그 사람은 머리를 치우지 않고 한참 있었다.

“물어봤으면 줬을 거라는 거, 진짜예요?”

“진짜예요.”

“그럼 그게 제일 화나겠네요. 뺏긴 게 아니라, 줄 기회를 뺏긴 거라서.”

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편도하는 형용사 없이 말할 때 가장 정확했다.

편도하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나 하나 봤어요. 작년 겨울에. 새벽 당직 끝나고 나가는데 로비에 냉장 캐리어가 세 개 있었어요. 파란 스티커 붙은 거. 물류 기사님이 싣고 있길래 폐기물인 줄 알았어요. 폐기물은 지하로 가잖아요. 로비로 안 가는데. 그때 이상하다고 생각만 하고 집에 갔어요. 졸려서.”

“셋이었어요?”

“셋이었어요.”

그 겨울의 셋과 소장이 서명한 셋이 같은 셋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같지 않다면 셋이 아니었다.

철문이 또 열렸다. 조찬이었다. 숨이 찼다. 계단을 뛰어 올라온 얼굴. 손에 편의점 봉지가 들려 있었다. 삼각김밥 셋.

“인사위원회 전날엔 참치마요래요. 우리 할머니가 그랬어요.”

“할머니가 인사위원회를 아세요?”

“할머니는 뭐든지 참치마요래요.”

“리안 씨. 서고 열쇠, 내가 갖고 있는 거 알죠.”

“알아요.”

“내일 인사위원회면 오늘 밤이 마지막이에요. 내일부터는 열쇠 뺏길 거니까.”

“조찬 씨는 안 가도 돼요.”

“나 안 가요. 열쇠만 가요.”

그는 열쇠 꾸러미를 흔들었다. 짤랑. 그리고 한마디를 더 했다.

“근데 오다가 전산에서 봤는데, 작년 사월 백구십칠 번 폐기 서류에 담당 기술자 이름이 있었는데. 나정원이라고. 작년 오월에 그만둔 사람. 리안 씨 알아요?”

리안은 그 이름을 알았다. 삼 층 끝자리. 창가 화분에 물을 주던 사람. 말이 없고 커피를 늘 반만 마시던 사람. 어느 날 책상이 비어 있었다. 아무도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리안도 묻지 않았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냈다. 사내 연락처에 아직 그 번호가 남아 있었다. 신호가 세 번 갔다. 받았다. 아무 말도 없었다. 숨소리만.

“나정원 씨. 서리안이에요. 2층 배양실.”

전화가 끊겼다. 끊기기 직전에 저쪽에서 누가 아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 먹자고. 나정원에게는 저녁을 같이 먹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을 지키려고 끊었을 것이다.

리안은 옥상 난간에 기대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삼 분 뒤 문자가 왔다. 번호는 방금 그 번호였다.

백구십칠 번은 제 거였어요. 그 사람들이 당신 걸 찾기 전까지는.

해가 완전히 졌다. 콘크리트 바닥의 온기가 빠르게 식었다. 리안은 가슴뼈 가운데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 밑에서 받은 심장이 뛰었다. 셋. 어딘가에서 셋이 같은 박자로 뛰고 있을까. 그럴 리 없었다. 박자는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세포에서 자라도.

조찬이 삼각김밥 하나를 리안 손에 쥐여 주었다. 비닐 포장을 뜯는 순서가 적힌 1, 2, 3 숫자가 저녁 가로등 불빛에 희미하게 보였다. 리안은 그 순서대로 뜯었다. 김이 한 번도 안 찢어졌다. 오늘 처음으로 뭔가가 순서대로 됐다.

조찬이 열쇠를 다시 흔들었다. 짤랑.

“가요, 안 가요.”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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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만더2026.05.07· 3화

    조용한데 계속 긴장돼요. 이런 톤 좋아합니다.

    • 달밤에책2026.05.08

      저는 오히려 그 앞 문단이 더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