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18자) · 조직 적합 검사

여섯 자리

당신을 위한 두 번째 심장 · 문가온

리안의 지갑에는 카드가 한 장 더 있다. 신용카드와 사원증 사이, 모서리가 닳아 흰 속살이 비치는 코팅 카드. 이식 수혜자 카드다. 열한 살 때 병원에서 만들어 준 것을 스물세 번 새로 코팅했다. 앞면에는 이름과 혈액형과 복용 약이, 뒷면에는 조직형이 적혀 있다. HLA-A, B, DR. 숫자와 알파벳이 두 쌍씩. 리안의 것은 두 쌍이 똑같다. 아빠 쪽에서 받은 것과 엄마 쪽에서 받은 것이 우연히 같은 사람. 동형접합. 수술 전에 의사가 엄마한테 설명했다. 이런 분은 드물어요. 받기는 어려워도 주기는 쉬워요. 여러 사람한테 맞거든요.

열한 살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서른넷은 이해했다.

사월 이십삼일 오전 아홉 시. 이식 기한까지 칠 일 다섯 시간. 출근하자마자 3번 방부터 들렀다. 314번은 밤새 같은 박자로 뛰고 있었다. 분당 육십오. 리안은 품질 검사 신청서를 올렸다. 배양 심장은 이식 전에 조직 적합성을 한 번 더 확인한다. 기술자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검사다. 대상 칸에 314를 적고, 비교 대상 칸은 비워 뒀다. 이식 대상이 미정이니 비교할 사람이 없었다. 원래는.

검사실은 삼 층 끝이었다. 편도하가 먼저 와 있었다. 서른넷, 리안과 동갑이고 같은 해 입사했다. 이 사람은 무엇이든 형용사 셋을 붙여 말한다.

“리안 씨, 이거 진짜 이상하고 무섭고 좀 신나는 일이죠.”

“신나는 건 빼요.”

“빼면 무섭기만 하잖아요.”

편도하는 314번 조직 샘플을 받아 유전체 분석기에 걸었다. 여섯 시간. 분석기는 냉장고만 했고, 돌아가는 동안 낮게 웅웅거렸다. 편도하가 분석기 옆면을 쓰다듬었다.

“기다리는 동안 뭐 해요?”

“다른 거 볼게요.”

“다른 거 뭐요?”

“제 피요.”

편도하의 손이 분석기 위에서 멈췄다.

리안은 사내 의무실로 내려갔다. 새빛오가노이드 직원은 해마다 사월에 건강검진을 받는다. 사내 의무실에서, 사내 간호사가 피를 뽑는다. 칠 년 동안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연구소가 직원 건강을 챙긴다. 좋은 회사다. 그렇게 생각했다.

의무실 기록 조회는 본인 권한이다. 자기 검진 결과는 누구나 본다. 리안은 칠 년치를 띄웠다. 혈압, 혈당, 간 수치. 면역억제제 혈중 농도. 그리고 채혈량.

2023년 4월 채혈량 30ml 2024년 4월 채혈량 30ml 2025년 4월 채혈량 30ml

그 위로 네 해가 더 있었다. 일곱 줄 모두 삼십이었다.

다른 사람 것은 볼 수 없었다. 대신 검진 안내문을 찾았다. 해마다 사월 초 전 직원에게 오는 메일. 안내문에는 채혈량이 적혀 있었다. 기본 검사 10ml.

삼십과 십. 해마다 이십 밀리리터. 리안은 팔 안쪽을 내려다봤다. 주삿바늘 자국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자리를 엄지로 눌렀다. 아무것도 아프지 않았다. 아프지 않아서 더 이상했다. 칠 년 동안 아무 데도 아프지 않은 채로 뭔가를 내줬다.

조찬이 의무실 문간에 기대 서 있었다. 3번 방 예비 배양기 필터를 갈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리안의 화면을 넘겨다봤다.

“삼십이면 많은 거예요?”

“검진에는 십이면 돼요.”

“나머지 이십은요?”

“세포 배양에는 이십이면 충분해요.”

조찬이 휘파람을 불려다가 말았다. 입술만 오므렸다 폈다.

“나는 작년에 피 뽑을 때 간호사 선생님이 한 통 더 뽑길래, 아 나 인기 많구나 했는데.”

“조찬 씨도 삼십이에요?”

“몰라요. 안 봤어요. 보기 싫어요. 봤다가 삼십이면 나 오늘 일 못 해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필터 상자를 들고 갔다. 복도 끝에서 한 번 돌아봤다.

“리안 씨, 오늘 3번 방 필터는 내가 갈았다고 적어 줘요. 그래야 나도 뭘 한 사람이 되지.”

열한 시 반에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전화한다. 오늘은 수요일이었다.

“약은 먹었니.”

“먹었어.”

“노란 거까지?”

“노란 거까지.”

“목소리가 왜 그래. 감기야? 감기면 바로 병원 가. 너는 감기가 감기가 아니야.”

“엄마.”

“응.”

“나 수술하고 병원에 있을 때, 엄마 밤마다 내 가슴에 손 올려놓고 잤지.”

전화 너머가 조용했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한 번도 먼저 꺼낸 적이 없었다.

“그걸 기억해?”

“왜 그랬어?”

“뛰나 볼라고. 남의 거라 언제 멈출지 몰라서.”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웃음 끝이 조금 떨렸다.

“근데 이십삼 년 뛰었으니까 이제 네 거야.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리안은 전화를 끊고 한동안 휴대폰 화면을 봤다. 이제 네 거야. 그 말이 가슴뼈 가운데 어딘가에 걸렸다. 받은 것이 오래되면 내 것이 되는가. 그러면 가져간 것도 오래되면 가져간 사람 것이 되는가.

점심은 구내식당 창가 자리에서 셋이 먹었다. 조찬이 제육볶음을 반쯤 먹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휴대폰을 꺼냈다. 한참 화면을 넘기더니 얼굴을 들었다.

“봤어요. 결국.”

“몇이에요?”

“십.”

편도하도 휴대폰을 꺼냈다. 삼 초 만에 말했다.

“나도 십이요. 칠 년 내내 십. 안심되고 서운하고 이상하게 미안해요.”

“서운한 건 또 뭐예요?”

“아무도 내 피는 안 탐냈잖아요.”

조찬이 웃다가 사레가 들렸다. 편도하가 등을 두드려 줬다. 리안은 웃지 않았다. 식판의 미역국이 식어서 표면에 기름이 얇게 굳었다. 셋 가운데 삼십은 하나였다. 이 연구소에서 여섯 자리가 다 같은 사람도 하나였을 것이다. 리안은 숟가락으로 국 표면의 기름막을 깨뜨렸다. 깨진 자리로 김이 조금 올라왔다. 다 식은 줄 알았는데 아래는 아직 뜨거웠다.

“리안 씨.”

조찬이 목소리를 낮췄다. 농담이 빠진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

“그거 확인되면 어떻게 할 거예요?”

“몰라요.”

“모르면 확인 안 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모르는 걸 폐기하면 계속 모른대요. 어제 제가 소장님한테 그랬어요.”

“멋있는 말 했네. 그 말 때문에 내 라면이 불었어요.”

오후 세 시. 분석기가 멈췄다. 편도하는 결과지를 뽑아 들고 한참 서 있었다. 리안이 들어가자 결과지를 뒤집어서 건넸다. 뒤집어서. 차마 먼저 못 보게 하려는 것처럼.

리안은 종이를 폈다. 314번 조직형. HLA-A, B, DR. 두 쌍. 두 쌍이 똑같았다.

지갑에서 수혜자 카드를 꺼냈다. 뒷면. 코팅 아래 숫자와 알파벳을 결과지 옆에 나란히 놓았다. 편도하가 숨을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리안은 한 글자씩 짚었다. 손가락이 떨려서 두 번 짚었다. 여섯 자리가 같았다. 여섯 자리가 전부.

동형접합은 드물다. 여섯 자리가 다 같은 동형접합은 더 드물다. 리안의 몸에서 나온 세포가 아니고서는 이 숫자가 나올 확률을 계산할 수도 없었다.

가슴뼈 한가운데가 조였다. 이번에는 오래 조였다. 리안은 검사대 모서리를 잡았다. 편도하가 의자를 밀어 주었다. 앉지 않았다. 앉으면 못 일어날 것 같았다.

“리안 씨, 괜찮아요? 얼굴이 하얗고, 아니 파랗고, 아니.”

“형용사 하나만 해요.”

“…무서워요.”

“저도요.”

두 사람은 결과지를 사이에 두고 오래 서 있었다. 분석기가 식으면서 딸깍 소리를 냈다. 창밖으로 판교 제2테크노밸리의 유리 건물들이 오후 햇빛을 받아 하얗게 번들거렸다. 저 건물들 어딘가에서도 누군가의 세포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주인의 동의를 받은 세포가. 대부분은.

편도하가 결과지를 가리켰다.

“이거 제가 봤다고 적혀요. 분석기 로그에.”

“알아요.”

“그러니까 저도 이제 아는 사람이에요.”

“미안해요.”

“아니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편도하는 말을 멈췄다. 형용사를 고르는 얼굴이었다. 결국 형용사 없이 말했다.

“나는 모르는 사람으로 있고 싶었어요.”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음을 알았다. 어제까지 그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모르는 사람은 편하다. 모르는 사람은 폐기 서류에 서명할 수 있고, 출하 예약을 못 본 척할 수 있고, 해마다 사월에 팔을 걷을 수 있다.

편도하가 분석기 로그 화면을 닫으려다 말았다. 닫는 것도 기록에 남는다. 그 사람은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화면이 저절로 꺼질 때까지 기다렸다.

리안은 결과지를 반으로 접어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삼 층 복도를 걸었다. 소장실까지 스물여섯 걸음. 걸음마다 흉터가 당겼다. 숨을 크게 쉬면 갈비뼈를 벌렸다 붙인 자리가 오래된 칼자국처럼 욱신거렸다. 이십삼 년 전 그 병실처럼 복도가 더웠다. 공조 설정은 그대로였다. 더운 것은 그녀였다.

소장실 문은 열려 있었다. 강목훈은 창을 등지고 서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분석기 로그는 소장 화면에도 뜬다. 그는 리안을 보고 의자를 가리켰다. 리안은 앉지 않았다.

결과지를 책상에 놓았다. 옆에 수혜자 카드를 놓았다. 강목훈의 눈이 카드에서 멈췄다. 코팅이 벗겨진 모서리, 열한 살 아이 사진. 그는 그 카드가 무엇인지 알았다. 이 연구소 사람들은 다 안다. 그 카드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이 연구소가 생겼으니까.

“소장님.”

“예.”

“314번은 제 겁니까?”

강목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책상 서랍을 열었다가 닫았다. 무엇을 꺼내려다 만 손이었다. 방이 조용했다. 소장실에는 배양기가 없어서 펌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조용하면 조용한 것이 소리처럼 들렸다.

“해마다 사월에 이십 밀리리터씩요.”

리안이 말했다.

“칠 년이면 백사십 밀리리터예요. 그걸로 심장을 몇 개 만들 수 있는지 저는 알아요. 제가 키웠으니까요.”

강목훈이 의자에 앉았다. 앉는 데 오래 걸렸다. 무릎이 먼저 접히고 몸이 나중에 따라갔다. 그는 책상 위 결과지와 카드를 오래 봤다. 그리고 리안을 봤다. 처음으로 똑바로.

“예.”

그 한 음절이 방에 떨어졌다. 무거웠다. 칠 년치 사월이 한꺼번에 떨어진 소리였다. 리안은 그 대답을 예상했다. 예상했는데도 앉을 데를 찾았다. 의자는 바로 뒤에 있었다. 그래도 앉지 않았다. 대신 책상 모서리를 잡았다. 커피 자국이 동그랗게 말라 있는 자리를. 손바닥 밑에서 그 동그라미가 까슬했다.

리안은 숨을 한 번 크게 쉬었다. 갈비뼈를 벌렸다 붙인 자리가 칼로 긋듯 아팠다. 열한 살 겨울과 같은 자리, 같은 아픔이었다. 그 아픔 덕분에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몇 개입니까?”

리안이 물었다. 강목훈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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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차2026.05.06· 2화

    대사 하나하나가 인물을 만들어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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