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14자) · 이식 대상 미정
314번
내 세포로 만든 심장이 남의 가슴에서 뛴다 · 문가온
삼백십사 번째 심장은 오후 두 시 십일 분에 뛰기 시작했다.
서리안은 그 순간 유리 앞에 서 있었다. 배양기 안의 것은 주먹만 했다. 여섯 주 동안 배양액 속에서 조금씩 두꺼워지던 분홍빛 덩어리가, 그날 두 시 십일 분에 한 번 오므라들었다가 펴졌다. 첫 박동은 늘 딸꾹질처럼 온다. 칠 년 동안 삼백열세 번 봤다. 그래도 매번 손끝이 먼저 반응했다. 리안은 유리에서 손을 떼고 단말에 적었다.
기록번호 314 박동 개시 14:11:07 초기 리듬 안정 · 분당 65 이식 대상: 미정
마지막 줄에서 손이 멈췄다.
새빛오가노이드 연구소는 심장을 만든다. 정확히는 키운다. 환자 세포를 받아 여섯 주 동안 배양하면 심장은 스스로 뛴다. 뛰기 시작하면 여드레 안에 그 환자 가슴에 들어가야 한다. 여드레가 지나면 안쪽부터 괴사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이 방의 모든 심장에는 주인이 있다.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심장은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다. 세포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면 배양을 시작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314번의 이식 대상 칸은 비어 있었다. 미정.
배양실은 섭씨 이십일 도, 습도 사십오 퍼센트로 고정되어 있다. 순환 펌프가 이십사 시간 돈다. 흡음재 때문에 목소리가 벽에서 돌아오지 않아서, 이 방에서 혼잣말을 하면 소리가 한 번 나고 없어진다. 리안은 그 서늘한 공기 속에서 가슴뼈 한가운데가 조이는 것을 느꼈다. 추운 방에 오래 있으면 흉터가 먼저 안다. 명치에서 쇄골 사이까지 곧게 내려간 오래된 흉터. 열한 살 겨울에 생긴 것이다. 그해 그녀는 남의 심장을 받았다. 누구 것인지는 모른다. 법이 알려 주지 않는다. 열세 살 남자아이였다는 것만, 수술 다음 날 간호사가 실수로 말해 줬다. 그 겨울 병실은 너무 더웠다. 라디에이터가 쉬지 않고 돌았고, 가슴에 붙은 거즈 밑이 땀으로 가려웠는데 긁을 수가 없었다. 숨을 크게 쉬면 갈비뼈를 벌렸다 붙인 자리가 칼로 긋듯 아팠다. 엄마는 침대 옆 간이의자에서 잤다. 새벽에 깨면 엄마가 리안의 가슴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뛰는지 확인하려고. 뛰는 것이 남의 것이라는 걸 엄마도 알았다. 그래도 손을 떼지 않았다. 리안은 그때 처음 생각했다. 이걸 누구한테 갚아야 하지. 받은 곳을 모르면 갚을 곳도 모른다.
그 뒤로 이십삼 년 동안 리안은 아침저녁으로 면역억제제를 먹었다. 흰 알 두 개, 노란 알 하나. 그리고 이 연구소에 들어왔다. 남의 심장이 아니라 자기 세포로 만든 심장을 넣어 주는 곳. 거부 반응도 약도 필요 없는 심장. 그녀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물으면 늘 연봉이 괜찮아서라고 대답했다.
“또 유리에 코 박고 있네.”
정비 담당 조찬이 공구 가방을 끌고 들어왔다. 스물아홉. 이 층 전체에서 농담을 하는 사람은 이 사람 하나다. 조찬은 314번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오, 뛰네. 축하해요, 삼백십사 번. 근데 주인이 없네?”
“오류 같아요.”
“오류면 좋겠다. 주인 없는 애는 불쌍하잖아.”
“심장이에요. 애가 아니라.”
“리안 씨가 그 표정으로 그 말 하면 설득력이 없어요.”
리안은 대답하지 않고 태블릿을 들고 삼 층으로 올라갔다.
소장실 창은 배양동 쪽으로 나 있어서 밖이 콘크리트 벽면뿐이었다. 강목훈 소장은 쉰다섯이었고, 화를 낼 때 소리를 키우지 않고 말을 짧게 줄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태블릿 화면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폐기하세요.”
“대상이 미정입니다.”
“그러니까 폐기요. 규정상 대상 없는 배양체는 즉시 폐기입니다.”
“대상이 없으면 처음부터 배양이 시작되면 안 됩니다. 삼월 십일일에 누가 접종을 승인했습니까?”
강목훈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서 기술자. 세포 출처 조회는 관리자 권한입니다. 기술자가 볼 필요 없는 항목이에요.”
“제가 여섯 주 키웠습니다.”
“키우는 게 기술자 일이고, 어디서 왔는지는 내 일입니다.”
“그럼 어디서 왔습니까?”
“폐기하세요.”
같은 말이 세 번째였다. 리안은 소장 책상 모서리를 봤다. 모서리에 커피 자국이 동그랗게 말라 있었다. 이 사람은 칠 년 동안 이 책상에서 폐기 서류 백 장 남짓에 서명했다. 그중 리안이 가져온 것이 여든 장쯤이었다. 그녀는 한 번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식 대상 사망, 배양 실패, 기형. 이유는 언제나 서류에 있었다.
“오늘 여덟 시까지 폐기 절차 올리겠습니다.”
리안이 말했다. 강목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에 안도가 섞여 있었다. 리안은 그것을 봤다. 폐기 지시를 받아들인 부하에게 안도하는 소장은 처음이었다.
여덟 시. 배양동 이 층 복도는 형광등 절반이 꺼져 있었다. 바닥 배수 격자를 밟으면 발밑에서 얇은 금속 소리가 났다. 리안은 폐기 절차 화면을 열었다. 표준 절차 B. 배양액을 빼고, 박동을 멈추는 약물을 넣고, 조직을 지하 이 층 폐기물실로 내린다. 칠 년 동안 여든 번쯤 했다. 손이 순서를 안다.
폐기 절차를 올리려면 해당 배양체의 물류 상태가 「보관」이어야 한다. 그 칸을 확인하는 것도 손이 아는 순서였다. 리안은 물류 탭을 눌렀다. 평소라면 초록 글씨로 보관이라고 떠 있어야 했다.
기록번호 314 · 물류 상태: 출하 예약 출하 예정 4월 29일 06:00 · 인천 화물터미널 · 냉장 항공 수신처: SGP-MC-07 출하 승인: 천도율
리안은 화면을 오래 봤다. 눈이 한 줄씩 내려가다가 맨 아래에서 멈췄다. 천도율. 새빛바이오 대표. 연구소 모회사 대표의 이름이 기술자 화면에 떠 있었다. 이 탭이 기술자 권한으로 열린 것 자체가 누군가의 실수였다. 폐기하라는 심장에 출하 예약이 걸려 있었다. 폐기되는 심장은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리안은 수신처 코드를 휴대폰으로 검색했다. SGP-MC-07. 세 번째 결과에 싱가포르 마리나 해안의 사설 심장 클리닉이 나왔다. 영어 누리집 첫 화면에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와 금색 글씨. 대기 없는 이식. 누리집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협력 연구기관 목록이 있었다. 세 번째 줄에 새빛바이오가 있었다.
가슴뼈 가운데가 다시 조였다. 이번에는 추워서가 아니었다. 배양실 온도계는 이십일 도 그대로였다. 리안은 손바닥을 흉터 위에 대고 누른 채 한참 서 있었다. 누르면 조금 덜 아팠다. 열한 살 때부터 그랬다.
그녀는 폐기 절차를 올리지 않았다. 대신 314번 배양기의 이송 모드를 켰다. 정규 배양기에서 예비 배양기로 옮기는 것은 판단 착오로 기록된다. 은폐는 해고지만 판단 착오는 징계로 끝난다. 칠 년 동안 한 번도 그 차이를 셈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 밤에는 셈이 빨랐다.
3번 방 열쇠는 조찬이 갖고 있었다. 리안이 전화하자 조찬은 야식으로 먹던 컵라면을 들고 나타났다.
“밤 열 시에 예비 배양기? 리안 씨, 그거 판단 착오예요.”
“알아요.”
“판단 착오는 징계예요.”
“알아요.”
“나는 열쇠만 연 거예요. 판단은 리안 씨가 착오한 거고.”
“그렇게 적을게요.”
“그리고 이 라면은 내가 먹은 걸로.”
조찬은 컵라면을 3번 방 문 밖 바닥에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무균실에 음식은 못 들어간다. 그 사람은 그 규정만은 입사 오 년 동안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다른 건 다 어겼다고.
이송용 배양 캐리어는 무겁다. 배양액과 순환 장치와 배터리가 한 몸에 들어 있어서 두 손으로 들어도 팔꿈치가 떨렸다. 1번 방에서 3번 방까지 복도 서른두 걸음. 리안은 캐리어를 가슴 앞에 안고 걸었다. 투명한 창 너머로 314번이 뛰었다. 분당 육십오. 캐리어가 흔들릴 때마다 배양액이 찰랑였고, 그 안의 것은 찰랑임과 상관없이 제 박자로 뛰었다. 리안의 가슴에서도 무엇인가가 뛰었다. 이십삼 년째 남의 것인 박동이.
3번 방 예비 배양기에 연결하고 문을 닫았을 때 밤 열한 시였다. 리안은 기록을 남겼다. 남기지 않으면 은폐다.
314 · 정규 → 예비 배양기 이송 · 담당 서리안 사유: 폐기 전 추가 확인 필요(판단)
그녀는 3번 방 바닥에 앉았다. 등을 벽에 댔다. 벽이 차가웠다. 순환 펌프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314번 모니터의 숫자가 바뀌지 않았다. 육십오, 육십오, 육십사, 육십오.
“미안해요.”
리안이 말했다. 소리가 한 번 나고 흡음재에 먹혔다. 이 방에서는 누구에게 한 말인지 아무도 모른다. 말한 사람도.
아침 여덟 시에 강목훈이 3번 방 문을 열었다.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 밤새 뭔가를 기다린 사람의 얼굴이었다.
“폐기 기록이 없던데요.”
“예.”
“어디 있습니까?”
“여기요.”
강목훈은 예비 배양기를 봤다. 314번이 뛰고 있었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리안 쪽으로 몸을 돌렸다.
“왜요?”
리안은 그 질문에 대답할 문장을 밤새 열 개쯤 만들어 두었다. 논리적인 것, 규정에 맞는 것, 소장이 받아들일 만한 것. 하나도 쓰지 않았다.
“폐기할 심장에 비행기 표가 끊겨 있어서요.”
강목훈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지는 데 이 초쯤 걸렸다.
“그 탭은 기술자 권한으로 안 열립니다.”
“열렸습니다.”
“서 기술자.”
“소장님, 저는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모르는 걸 폐기하면 앞으로도 계속 모릅니다. 그리고 모르는 게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로 가면, 저는 모르는 걸 만든 사람이 됩니다. 칠 년 동안요.”
순환 펌프가 돌았다. 314번이 뛰었다. 강목훈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리고 문 쪽으로 갔다. 문 앞에서 멈췄다.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출하는 사월 이십구일입니다. 이식 기한은 삼십일 오후 두 시 십일 분이고요. 그 사이에 서 기술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문이 닫혔다.
주간 담당 편도하가 커피 두 잔을 들고 3번 방 앞을 지나가다 멈췄다. 유리창 너머로 예비 배양기와 리안과, 방금 나간 소장의 뒷모습을 번갈아 봤다. 그 사람은 형용사가 많은 사람이라 말이 막히면 표정이 먼저 움직였다. 놀랍고 난처하고 조금 겁먹은 표정이 차례로 지나갔다. 그러고는 커피 한 잔을 문 옆 선반에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자기 방으로 갔다. 무균실에 음식은 못 들어간다. 그 사람도 그걸 알았다. 그래서 문 밖에 두고 갔다.
리안은 흉터 위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 밑에서 이십삼 년 된 남의 박동이 뛰었다. 유리 너머에서 여섯 주 된 심장이 뛰었다. 두 박자는 맞지 않았다. 314번은 분당 육십오, 그녀는 분당 팔십구. 소장 앞에서 올라간 숫자였다.
모니터에 남은 시간이 떠 있었다. 이식 기한까지 칠 일 여섯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