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59자)

우두머리 위의 우두머리

수색 군견 셰퍼드 철모 · 강여울

사단장은 중대장실로 바로 올라가지 않았다⁠. 연병장 가운데에서 차를 내려 걸었다⁠. 병사 백여 명이 연병장 가장자리에 줄지어 허리를 펴고 있었다⁠. 사단장은 줄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소각장에서 올라오는 병장과 철모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철모의 앞발과 주둥이에 재가 묻어 있었다⁠. 검은 안장 무늬 등털에도 회색 가루가 앉았다⁠. 병장이 허리를 펴며 철모의 줄을 짧게 쥐었다⁠. 사단장은 철모를 내려다보았다⁠. 철모는 사단장을 올려다보았다⁠. 새벽 두 시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이 얼굴에서 나왔다⁠. 냄새는 생각보다 늙었다⁠. 손등의 살이 얇았고⁠, 얇은 살 밑에서 오래 쓴 약 냄새가 났다⁠.

“⁠이 개가 그 개인가⁠.⁠”

대대장이 뒤에서 빠르게 말했다⁠.

“⁠사단장님⁠, 이 개가 상병을 문 개입니다⁠. 도태 심의를⁠…⁠.⁠”

“⁠물었나⁠?⁠”

사단장이 병장에게 물었다⁠. 대대장에게 묻지 않았다⁠.

“⁠안 물었습니다⁠. 중대장님이 사진 보내셨습니다⁠.⁠”

사단장은 쪼그려 앉았다⁠. 무릎에서 소리가 났다⁠. 사단장은 주먹을 쥐어 철모의 코 아래에 댔다⁠. 감찰관이 분소에서 한 것과 같은 몸짓이었다⁠. 철모는 주먹을 맡았다⁠. 약⁠, 가죽⁠, 오래된 담배⁠,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맡은 개의 냄새⁠. 이 손도 언젠가 개를 쓰다듬은 손이었다⁠.

“⁠소위 때 철책에 있었다⁠. 그때 우리 소대에도 셰퍼드가 있었지⁠. 내 말은 안 듣고 취사병 말만 들었어⁠.⁠”

병장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사단장은 일어나 무릎을 털었다⁠.

“⁠올라가지⁠.⁠”

*

중대장실 의자에 사단장이 앉았다⁠. 성진의 의자였다⁠. 의자가 낮은 소리로 삐걱였다⁠. 사단장에게서는 가죽 시트와 차 히터와 오래된 담배 냄새가 났다⁠. 담배를 끊은 지 오래된 사람의 손톱에서 나는⁠, 거의 지워진 냄새였다⁠. 성진은 책상 앞에 섰고⁠, 감찰관은 창가에 섰다⁠. 대대장은 문 옆에 섰다⁠. 대대장의 반짝이는 구두가 오늘은 바닥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단장의 뒤에 부관이 서 있었다⁠. 부관은 하얀 종이 상자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호두과자였다⁠. 상자 틈에서 팥과 호두와 버터 냄새가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철모는 병장 옆에 엎드려 있다가⁠, 엎드린 채로 조금씩 몸을 밀어 부관의 군화 앞으로 옮겨 갔다⁠. 다 옮겨 간 다음 일어나 앉았다⁠. 등을 펴고 귀를 세우고 코끝을 상자에 겨누었다⁠.

방 안의 누구도 숨을 쉬지 않았다⁠. 철모는 한 번 짖었다⁠.

사단장이 고개를 돌렸다⁠. 부관의 손에 들린 상자와⁠, 상자 앞에 앉은 개를 차례로 보았다⁠.

“⁠찾았다는 건가⁠?⁠”

병장이 대답했다⁠.

“⁠네⁠, 사단장님⁠. 찾으면 그 앞에 앉습니다⁠.⁠”

“⁠호두과자를 찾았군⁠.⁠”

사단장이 웃었다⁠. 짧게⁠, 목에서⁠. 방 안의 어깨가 조금씩 내려왔다⁠. 사단장은 상자를 열어 호두과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가 부관을 보았다⁠.

“⁠개가 호두 먹으면 안 되지⁠?⁠”

“⁠안 됩니다⁠, 사단장님⁠. 반죽만 떼어 주셔도⁠…⁠.⁠”

“⁠그럼 됐다⁠.⁠”

사단장은 호두과자를 제 입에 넣었다⁠. 철모는 앉은 채로 기다렸다⁠. 수건도 반죽도 오지 않았다⁠. 철모는 다시 엎드렸다⁠. 사단장이 호두과자를 다 씹고 나서 감찰관을 보았다⁠. 웃음은 얼굴에서 다 내려가 있었다⁠.

*

“⁠감찰관⁠. 자네는 내 참모야⁠.⁠”

“⁠네⁠, 사단장님⁠. 사단장님 참모이고⁠, 보고는 군단 감찰부로도 올라갑니다⁠. 오늘 오후에 올렸습니다⁠.⁠”

사단장의 손이 책상 위에서 한 번 멈췄다⁠. 대대장의 목덜미에서 땀이 솟았다⁠. 사단장의 목덜미에서는 솟지 않았다⁠.

“⁠그래⁠. 그럼 이렇게 하지⁠. 상병이 근무 중에 총을 잘못 다뤄 오발을 냈다⁠. 일병이 다쳤다⁠. 그건 그대로 올려⁠. 내 조카라고 빼 달라는 말 안 한다⁠. 내 누이가 울어도 안 한다⁠.⁠”

사단장은 성진을 보았다⁠.

“⁠중대장은 사고 수습을 서툴게 한 거다⁠. 병사 다쳐서 놀란 지휘관이 피를 덮고 옷을 태웠다⁠. 경고로 끝낼 일이야⁠. 이 사단에 만 명이 있어⁠. 중대장 하나 날리면 이 철책 중대 백십이 명이 석 달을 묶이고⁠, 사단 전체가 군단 앞에서 고개를 못 든다⁠.⁠”

“⁠사단장님⁠.⁠”

감찰관이 창가에서 한 걸음 나왔다⁠.

“⁠일병 어머님이 오늘 아침 감찰실에 전화하셨습니다⁠. 아드님이 계단에서 넘어지지 않았다고 직접 진술서를 내시겠답니다⁠. 아드님이 사고 두 주 전에 중대장님께 상병의 총구 장난을 알렸고⁠, 보름만 참으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까지요⁠.⁠”

방 안이 다시 굳었다⁠. 철모는 성진의 목덜미를 맡았다⁠. 아무것도 솟지 않았다⁠. 어머니 앞에서 다 내려놓았던 사람의 냄새가 그대로였다⁠.

“⁠서툰 수습이 아닙니다⁠. 알고도 두었고⁠, 일이 난 뒤에 덮었습니다⁠. 끝까지 내려가겠습니다⁠.⁠”

“⁠끝까지 내려가면 저 일병 판정이 일 년 늦어진다⁠. 그건 아나⁠?⁠”

“⁠압니다⁠.⁠”

“⁠아는데 하겠다고⁠.⁠”

“⁠어머님이 그걸 아시고 전화하셨습니다⁠.⁠”

사단장은 감찰관을 오래 보았다⁠. 감찰관은 허리를 펴지 않았고⁠, 굽히지도 않았다⁠. 철모는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맡았다⁠. 사단장의 숨에서는 화가 났고⁠, 화 밑에서 피곤이 났다⁠. 감찰관의 숨에서는 녹차와 늙은 개가 났다⁠. 어느 숨에서도 거짓말은 나지 않았다⁠. 두 사람 다 제 말을 믿고 있었다⁠. 철모는 성진과 병장의 사이에서 이 냄새를 맡은 적이 있었다⁠. 옳은 말끼리 부딪칠 때의 냄새였다⁠.

“⁠상병 불러⁠.⁠”

*

상병은 혼자 들어오지 못했다⁠. 행정보급관이 팔을 잡고 데려왔다⁠. 향수 냄새가 오늘은 거의 나지 않았다⁠. 사흘째 씻지 않은 사람의 냄새와 쇠 냄새만 났다⁠. 상병은 문턱에서 사단장을 보았다⁠. 경례하려던 손이 이마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가슴께에서 떨렸다⁠.

“⁠삼촌⁠.⁠”

“⁠여기서는 사단장이다⁠.⁠”

상병의 손이 내려갔다⁠.

감찰관이 외투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에 싼 것을 꺼내 바닥에 펼쳤다⁠. 반쯤 탄 털장갑 한 짝이었다⁠. 감찰관이 행정보급관에게 말했다⁠.

“⁠사고 난 밤에 끝 초소 가까이 있던 병사들⁠, 다섯만 불러 주세요⁠. 상병 포함해서⁠.⁠”

행정보급관이 나갔다가 넷을 데리고 왔다⁠. 동기⁠, 취사병⁠, 옆 초소에 섰던 병사 둘⁠. 다섯이 벽을 등지고 한 줄로 섰다⁠. 상병은 줄 가운데였다⁠. 취사병은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앞치마를 쥐고 있었다⁠.

“⁠병장⁠. 시켜 보세요⁠.⁠”

병장은 줄을 쥔 채 한 박자 서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줄을 놓고 떠날 사람이었다⁠. 줄 맨 끝에서 동기가 병장을 보았다⁠. 박하사탕을 깨무는 소리가 났다⁠. 동기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병장의 손바닥에서 땀이 조금 마르는 냄새가 났다⁠.

병장이 철모를 장갑 앞으로 데려갔다⁠. 철모는 장갑을 맡았다⁠. 향수⁠, 화약⁠, 털실⁠, 녹은 엄지⁠. 병장이 쪼그려 앉아 철모의 귀에 대고 말했다⁠.

“⁠철모⁠. 찾아⁠.⁠”

찾아는 안다⁠. 철모는 줄 맨 끝부터 걸었다⁠. 동기⁠. 박하사탕과 담배⁠. 옆 초소 병사⁠. 핫팩과 졸음⁠. 상병⁠. 철모의 걸음이 멈췄다⁠. 철모는 상병의 앞을 지나쳤다⁠. 끝까지 다 맡는 것이 일이었다⁠. 다음 병사⁠, 취사병⁠. 콩나물국과 행주⁠, 그리고 앞치마 주머니의 누룽지⁠. 철모의 엉덩이가 내려앉으려 했다⁠. 철모는 버텼다⁠. 누룽지는 찾는 것이 아니었다⁠. 철모가 지나가자 취사병이 그제야 숨을 내쉬며 앞치마 주머니를 두 손으로 덮었다⁠. 철모는 돌아서서 상병 앞으로 갔다⁠.

상병 앞에 앉았다⁠. 등을 펴고 귀를 세우고⁠, 코끝을 상병의 오른손에 겨누고 한 번 짖었다⁠.

상병의 무릎이 꺾였다⁠.

“⁠장난이었습니다⁠.⁠”

상병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사단장을 보지 않고 철모를 보았다⁠.

“⁠장난이었는데⁠, 처음 아니었습니다⁠. 걔가 무서워하는 게 재밌어서 몇 번 했습니다⁠. 그날 밤은 손가락이 미끄러져서⁠…⁠. 장갑은 제가 태웠습니다⁠. 중대장님이 옷 태우실 때 같이 넣었습니다⁠.⁠”

상병이 고개를 들어 사단장을 보았다⁠. 얼굴이 젖어 있었다⁠.

“⁠삼촌⁠. 저 그냥 말할래요⁠. 개도 아는데⁠.⁠”

사단장이 눈을 감았다⁠. 오래 감고 있었다⁠. 사단장의 손이 책상 위의 호두과자 상자 모서리를 쥐었다가 놓았다⁠. 눈을 떴을 때 사단장은 상병을 보지 않고 성진을 보았다⁠.

사단장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사단장은 화면을 보고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높고 젖은 목소리였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철모는 이 높이를 안다⁠. 끝 초소 계단에서 어머니가 아들 이야기를 할 때⁠, 한 마디마다 낮아지던 목소리의 반대였다⁠. 이 목소리는 한 마디마다 높아졌다⁠.

“⁠누나⁠. 나중에⁠.⁠”

사단장은 전화를 끊었다⁠. 끊은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엎어 놓았다⁠. 손이 휴대전화 위에서 오래 떨어지지 않았다⁠.

행정보급관이 문 옆에서 한 걸음 나왔다⁠. 계급장 아래로 귤과 믹스커피의 땀 냄새가 솟았다⁠.

“⁠사단장님⁠. 끝 초소 시멘트⁠, 제가 부었습니다⁠.⁠”

방 안의 고개가 돌아갔다⁠. 행정보급관은 성진을 보지 않고 사단장만 보았다⁠.

“⁠중대장님이 부으라고 하셨고⁠, 저는 부으면 못 돌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부었습니다⁠. 그것도 진술서에 넣어 주십시오⁠, 감찰관님⁠.⁠”

감찰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진은 행정보급관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행정보급관은 끝까지 성진을 보지 않았다⁠. 철모는 막사 서열 맨 끝의 사람이 무리 한가운데로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냄새는 그대로였는데 자리가 바뀌었다⁠.

*

“⁠탁 대위⁠.⁠”

“⁠네⁠, 사단장님⁠.⁠”

“⁠자네가 수습한 거⁠, 그 밤 그 자리에서 놀라서 한 일이지⁠?⁠”

사단장의 목소리는 낮았다⁠. 성진의 목소리처럼 낮았다⁠. 길을 하나 열어 주는 목소리였다⁠. 철모는 이 목소리를 안다⁠. 끝 초소에서 성진이 일병에게 넌 미끄러졌다고 말할 때의 목소리였다⁠. 우두머리가 무리의 하나를 살리려고 덮개를 내밀 때의 목소리⁠.

성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해가 철책 위에 걸쳐 있었다⁠. 저쪽 초소에 첫 불이 켜졌다⁠.

병장이 철모의 줄을 쥔 채 성진을 보았다⁠. 하루 남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성진이 병장을 보았다⁠. 한 박자였다⁠.

“⁠군견병⁠. 징계는 안 올렸다⁠.⁠”

“⁠…압니다⁠.⁠”

감찰관이 바닥의 장갑을 다시 손수건에 싸서 몸을 일으켰다⁠. 안주머니에 넣으며 다른 주머니를 두드렸다⁠. 비닐봉지 속 탄두가 작게 소리를 냈다⁠.

“⁠사단장님⁠. 진술은 됐습니다⁠. 탄두도 있고⁠, 장갑도 있고⁠, 방한복도 있습니다⁠. 하나가 없습니다⁠.⁠”

“⁠뭐가⁠?⁠”

“⁠탄피입니다⁠. 탄피가 있어야 상병 총에서 나간 건지 맞춥니다⁠. 탄두만으로는 어느 총인지 끝까지 못 갑니다⁠. 끝 초소 흙은 시멘트 밑에 있고요⁠.⁠”

감찰관이 성진을 보았다⁠.

“⁠중대장님⁠. 탄피⁠, 어디 있습니까⁠?⁠”

성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야전 상의 왼쪽 주머니가 성진의 옆구리에서 가만히 늘어져 있었다⁠. 방 안의 누구도 왼쪽 주머니를 보지 않았다⁠. 보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철모는 병장의 줄 끝에서 일어났다⁠. 병장의 손이 줄을 놓았다⁠. 철모는 사단장의 의자 앞을 지나고⁠, 감찰관의 군화 앞을 지나서⁠, 우두머리의 군화 앞으로 갔다⁠. 열흘 전 밤 손전등 불빛 너머에서 저를 오래 내려다보던 사람⁠. 건빵을 내밀던 사람⁠. 모래주머니 앞에서 손을 거두던 사람⁠.

철모는 성진의 왼쪽 주머니 앞에 앉았다⁠. 등을 펴고⁠, 귀를 세우고⁠, 코끝을 주머니에 겨누었다⁠. 은단 통과 손전등 건전지 사이⁠, 열흘 동안 한 번도 꺼내지 않은 놋쇠 한 알⁠.

철모는 한 번 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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