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92자)
건빵
수색 군견 셰퍼드 철모 · 강여울
성진은 오래 철모를 내려다보았다. 철모는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등을 편 채, 귀를 세운 채, 코끝을 왼쪽 주머니에 겨눈 채. 수색견은 찾은 것을 사람이 꺼낼 때까지 앉아 있는다. 다섯 해 동안 철모는 화약 앞에서, 사람 냄새 앞에서, 커피 막대와 누룽지 앞에서 그렇게 앉아 있었다. 우두머리 앞에서 앉은 것은 처음이었다.
창밖에서 저쪽 초소의 불빛이 하나 더 켜졌다. 사단장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뜨고 있었다. 대대장의 반짝이는 구두가 바닥에서 조금 미끄러졌다.
성진이 베레모를 벗었다.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왼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먼저 나온 것은 은단 통이었다. 성진은 은단 통을 책상 위에 놓았다. 철모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음은 손전등 건전지 두 개였다. 성진은 건전지를 은단 통 옆에 놓았다. 철모는 움직이지 않았다. 성진의 손이 주머니 안에서 한 번 멈췄다. 손이 다시 나왔을 때, 손가락 끝에 놋쇠 한 알이 쥐여 있었다.
성진은 탄피를 감찰관 앞 책상 모서리에 내려놓았다. 놋쇠가 책상에 닿는 소리가 작게 났다. 열흘 동안 주머니 안에서 은단 통과 부딪치던 소리와 같은 소리였다. 이번에는 한 번만 났다.
철모는 일어섰다. 성진의 주머니에서는 이제 화약 냄새가 나지 않았다. 천에 밴 냄새가 아주 조금 남았을 뿐, 놋쇠는 주머니를 떠났다. 수건은 오지 않았다. 철모는 수건을 기다리지 않았다.
“제가 덮었습니다.”
성진은 감찰관을 보고 말했다. 목소리는 낮고 고르게 이어졌다.
“흙도, 옷도, 시멘트도 제가 덮었습니다. 사고 두 주 전에 일병이 중대장실에 와서 상병의 총구 장난을 말했습니다. 제가 보름만 참으라고 했습니다. 상병이 전출 가면 끝날 줄 알았습니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이 난 밤에 제가 상병에게 아무것도 안 쐈다고 했고, 일병에게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하라고 했습니다. 군견병에게서 탄피를 받아 열흘 동안 들고 있었습니다.”
감찰관이 수첩에 적지 않았다. 듣기만 했다.
“하나만 청하겠습니다.”
“말씀하세요.”
“일병 공상 판정은 수사와 따로 올려 주십시오. 아버지가 겨울에 일이 없습니다.”
“올리겠습니다. 빨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압니다.”
감찰관은 손수건을 꺼내 탄피를 감쌌다. 탄두 봉지와 장갑 옆, 외투 안주머니로 들어갔다. 감찰관의 외투가 무거워졌다. 늙은 개의 냄새 위로 화약 냄새가 얹혔다.
사단장이 몸을 일으켰다. 의자가 다시 낮게 삐걱였다.
“탁 대위.”
“네, 사단장님.”
“자네가 지키려던 백십이 명, 석 달 묶인다.”
“제가 애들한테 말하겠습니다. 제 입으로.”
사단장은 성진을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감찰관에게 몸을 돌렸다.
“감찰관. 그대로 올려.”
사단장은 호두과자 상자를 부관에게서 받아 책상 위 은단 통 옆에 내려놓았다. 상자를 열지 않았다. 문을 나서면서 철모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 무릎을 굽히지는 않았다. 반짝이는 구두가 뒤를 따라 나갔다.
*
이튿날 아침 점호는 연병장에서 했다. 백십이 명이 넉 줄로 섰다. 철모는 병장 옆, 대열 맨 끝에 앉았다. 성진이 단상에 올라갔다. 종이를 들고 있지 않았다. 베레모를 쓰고 있었는데, 어제와 달리 계급장 위 중대장 표지가 떼어져 있었다.
“끝 초소 일은 총기 사고다. 낙상이 아니다. 내가 덮었다. 오늘부터 석 달 동안 우리 중대 휴가는 묶인다. 내 탓이다.”
대열은 조용했다. 철모는 백십이 명의 숨을 들었다. 누구의 숨도 빨라지지 않았다. 다 알고 있던 숨이었다. 대열 가운데에서 병사 하나가 손을 들었다. 할머니 칠순이라던 병사였다.
“중대장님. 저희 할머니 칠순은 석 달 뒤로 미루시라고 하겠습니다. 할머니가 오래 사실 겁니다.”
웃음이 대열을 한 번 훑고 지나갔다. 성진은 웃지 않았다. 베레모 챙을 한 번 눌렀다. 단상에서 내려와 대열 앞을 지나가다가 일병의 동기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허리를 굽혔다. 우두머리가 무리 앞에서 허리를 굽히는 소리가 났다. 허리를 펴는 소리와 반대인 소리였다.
대열 끝에서 동기가 병장의 어깨를 주먹으로 한 번 쳤다. 아프지 않게, 소리만 나게. 박하사탕 냄새가 났다. 담배 냄새는 나지 않았다. 동기는 앞만 보고 서 있었다.
“너 때문에 우리 석 달 묶였다.”
“알아.”
“전역하고 술 한번 사. 석 달 뒤에.”
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철모는 두 병장의 다리 사이에서 꼬리를 한 번 흔들었다. 두 사람의 손바닥이 같은 온도였다.
위병소 앞에 군사경찰 차가 멈췄다. 상병이 행정보급관과 함께 걸어 나왔다. 수갑은 없었다. 향수 냄새도 없었다. 상병은 차에 오르기 전에 대열 끝의 철모를 보았다. 철모는 꼬리를 들지도 내리지도 않았다. 상병이 차 문을 닫았다. 차가 비탈을 내려갔다.
*
아홉 시, 위병소 앞에 병장이 섰다. 전투복 가슴에 전역 표지를 달았고, 털모자를 눌러썼다. 손등에서 새 로션 냄새가 진했다. 병장 옆에 키가 작은 일병 하나가 서 있었다. 새 핸들러였다. 개털 냄새가 하나도 안 나는 손이었다. 철모의 줄은 아직 병장의 손에 있었다.
어제 저녁 감찰관이 분소에 전화를 걸었다. 현장 증거를 찾은 군견이니 원대로 돌려보낸다고 했다. 반납은 취소되었다. 철모는 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운반 상자에 다시 들어가지 않았고, 아침에 말리노이즈의 옆 칸에서 일어났다.
병장이 새 핸들러에게 줄을 건넸다. 손과 손 사이에서 줄이 한 번 팽팽해졌다가 느슨해졌다.
“건빵은 하루 세 알. 네 알 주면 살쪄서 철조망 밑을 못 기어. 귤 주지 마. 재채기한다. 보급관님 커피 앞에 앉으면 그냥 꺼내 보여 줘. 보여 줘야 끝나.”
“네, 병장님.”
“이제 병장 아니야.”
병장은 하네스 등에 끼워 둔 매듭 수건을 빼서 새 핸들러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러고는 쪼그려 앉아 철모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철모의 검은 주둥이가 병장의 손바닥에 묻혔다. 건빵, 개털, 구두약, 새 로션. 다섯 해 동안 넷을 이렇게 보냈다. 넷 다 손바닥 냄새를 남기고 갔다. 철모는 병장의 손바닥을 핥았다. 짰다.
“잘했어. 철모. 잘했어.”
좋아도 아니고 찾아도 아니었다. 철모가 모르는 소리였다. 병장은 일어서서 위병소 차단기를 지나 비탈길을 내려갔다.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철모는 앉아서 새 로션 냄새가 바람에 옅어지는 것을 맡았다. 냄새가 다 사라질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새 핸들러는 줄을 당기지 않았다. 처음부터 잘 아는 손이었다.
*
점심이 지나 견사 문 앞에 목발 소리가 났다. 다리미 김과 표백제, 귤 껍질. 철모는 짚에서 일어나 철망 앞으로 갔다. 일병이 목발을 짚고 서 있었고, 어머니가 아들의 팔꿈치를 받치고 있었다. 일병은 국군병원으로 돌아가기 전에 짐을 챙기러 왔다고 했다. 행정보급관이 두 사람을 견사까지 데려다주고 문밖에서 기다렸다.
어머니는 손가방에서 귤을 하나 꺼냈다. 철모는 한 걸음 물러섰다. 어머니가 웃었다.
“알아. 안 줘. 냄새만 맡아.”
어머니는 귤을 까지 않고 철망 앞 선반에 올려놓았다. 껍질 안에 갇힌 냄새가 조금씩 새어 나왔다. 철모는 참았다. 재채기가 코끝까지 왔다가 돌아갔다. 옆 칸에서 말리노이즈가 대신 재채기를 했다. 일병이 목발에 기댄 채 웃음을 터뜨렸다. 다치고 나서 처음 소리 내어 웃는 웃음이었다.
“엄마, 쟤가 대신 했어.”
“둘이 사이좋네.”
일병은 철망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철모의 코끝을 만졌다.
“판정 일 년 뒤래. 엄마가 공장 사장님한테 가불 받았어. 아빠는 봄 되면 현장 나간대.”
철모는 판정이라는 소리를 몰랐다. 일병의 손가락이 떨리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다. 계단 이야기를 하던 날에는 손가락 끝이 떨렸다.
어머니가 손가방에서 털장갑 한 켤레를 꺼냈다. 끝 초소 눈 위에 두고 내려온 장갑이었다. 행정보급관이 이튿날 올라가 주워 다 두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한 짝을 제 손에 끼고, 남은 한 짝을 철망 사이로 밀어 넣어 짚 위에 놓았다.
“추우니까. 깔고 자.”
철모는 장갑을 맡았다. 털실, 다리미 김, 갈라진 손가락, 그리고 아주 조금 남은 분홍빛 흙. 철모는 장갑을 앞발 사이로 끌어다 턱을 얹었다. 말리노이즈가 철망 너머에서 장갑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끌어가지 않았다.
*
오후에 성진이 견사에 왔다. 한 손에 더플백을 들었다. 내일 새 중대장이 온다고 했다. 성진은 사단으로 올라가 감찰 조사를 받는다고 했다. 말리노이즈가 짚 위에서 벌떡 일어나 꼬리를 낮췄다. 철모는 일어나지 않았다.
성진은 더플백을 견사 바닥에 내려놓고 철모의 철망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야전 상의 오른쪽 주머니에서 봉지를 꺼냈다. 비닐이 구겨지는 소리, 안에서 마른 것들이 서로 부딪쳐 구르는 소리. 철모의 귀가 저절로 돌아갔다. 열흘 동안 수없이 돌아간 귀였다.
성진이 건빵 한 알을 철망 사이로 내밀었다.
철모는 손가락 끝을 맡았다. 건빵이 있었고, 건빵 밑에 은단이 있었다. 은단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피도, 화약도, 흙도, 사물함 모서리의 마른 피도. 우두머리의 손은 처음 철모에게 건빵을 내밀던 다섯 해 전 봄의 손처럼 단순했다.
철모는 건빵을 받았다. 두 번 씹고 삼켰다.
성진의 입에서 숨이 길게 새어 나왔다. 성진은 건빵 한 알을 더 꺼내 말리노이즈의 철망 밑으로 넣었다. 말리노이즈는 받자마자 삼켰다. 성진은 봉지를 접어 견사 기둥 위 선반에 올려놓았다. 새 핸들러가 손이 닿는 높이였다.
“잘 찾았다.”
성진은 더플백을 들고 일어섰다. 견사 문을 나서면서 베레모를 고쳐 썼다. 비탈을 내려가는 군화 소리는 열흘 전과 같은 소리였다. 같은 소리인데, 아무도 허리를 펴지 않았다.
*
해가 지자 새 핸들러가 하네스를 채웠다. 버클이 딸깍 물렸다. 하네스를 차면 일하는 시간이다. 새 핸들러의 손은 서툴러서 가슴 끈을 한 번 꼬아 채웠다. 철모는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철모. 가자.”
가자는 안다. 순찰로는 언 흙과 녹슨 철조망과 마른 억새 냄새로 이어졌다. 철책 너머에서 저쪽 초소의 생나무 연기가 넘어왔다. 초소마다 컵라면과 핫팩과 껌 냄새가 고여 있었다. 끝 초소에 다시 병사 둘이 서 있었다. 경계가 돌아와 있었다.
끝 초소 앞마당의 회색 판은 깨져 있었다. 감찰관이 사람을 불러 시멘트를 들어내고 밑의 흙을 떠 갔다. 덮인 자리는 열려 있었다. 손바닥 두 개만 한 구덩이였다. 눈이 구덩이 안으로 내리고 있었다. 깨진 시멘트 조각 하나가 구덩이 가장자리에 엎어져 있었고, 조각 귀퉁이에 개 발자국 하나가 찍혀 있었다.
철모는 구덩이 앞에 멈춰 코를 낮췄다. 언 흙과 눈의 냄새가 올라왔다. 피도 화약도 어머니의 표백제도, 감찰관이 떠 간 흙과 함께 비탈을 내려가고 없었다. 흙은 흙 냄새만 냈다.
철모는 앉지 않았다. 찾을 것이 없는 자리 앞에서는 앉지 않는다. 새 핸들러가 줄을 쥔 채 기다렸다. 철모는 코를 들고, 눈이 쌓이는 열린 흙을 한 번 더 맡고, 철책을 따라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줄이 팽팽해졌다. 새 핸들러가 끌려오며 웃었다. 끝 초소의 불빛이 등 뒤에서 작아졌고, 구덩이에는 눈이 소복이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