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56자)

소각장의 재

수색 군견 셰퍼드 철모 · 강여울

사단 군견 분소의 견사는 길었다⁠. 칸이 스무 개 넘게 한 줄로 이어졌고⁠, 칸마다 다른 개가 살았다⁠. 철모가 운반 상자에서 내리자 스무 개의 코가 한꺼번에 철망에 붙었다⁠. 셰퍼드⁠, 말리노이즈⁠, 래브라도⁠, 이름 모를 누런 잡종⁠. 냄새가 너무 많아서 철모는 처음으로 코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겁먹은 개의 오줌⁠, 늙은 개의 잇몸⁠, 상처를 핥아 덧난 살⁠, 소독약⁠. 철책 견사에는 개가 둘이었다⁠. 여기는 무리가 통째로 철망 안에 갇혀 있었다⁠.

철모는 배정받은 칸에 들어가 꼬리를 등보다 높이 들었다⁠. 새 무리에 들어온 개는 먼저 제 높이를 알린다⁠. 맞은편 칸의 늙은 셰퍼드가 고개를 들었다⁠. 주둥이가 하얗게 센 수컷이었다⁠. 늙은 셰퍼드는 꼬리를 들지 않았다⁠. 철모를 한 번 보고⁠, 하품을 하고⁠, 도로 엎드렸다⁠. 꼬리를 들 필요도 없는 개였다⁠. 견사 전체가 늙은 셰퍼드의 하품 하나로 조용해졌다⁠. 철모는 꼬리를 슬그머니 내렸다⁠.

점심 밥때가 되자 분소의 중사가 밥그릇을 돌렸다⁠. 철모의 칸과 옆 칸 사이 철망 아래에 주먹만 한 틈이 있었다⁠. 옆 칸의 래브라도는 이 틈을 알고 있었다⁠. 철모가 밥그릇에 코를 박는 순간 누런 앞발이 틈으로 쑥 들어와 밥그릇을 끌어갔다⁠. 철모가 고개를 들었을 때 밥그릇은 이미 옆 칸에 있었고⁠, 래브라도는 꼬리를 흔들며 철모의 밥을 먹고 있었다⁠.

철모는 낮은 소리를 끌었다⁠. 물러서라⁠. 래브라도는 물러서지 않았다⁠. 먹으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래브라도는 개의 말을 아는 개가 아니라 밥을 아는 개였다⁠.

“⁠야⁠, 뚱땡이⁠. 또냐⁠.⁠”

중사가 철망을 두드렸다⁠. 래브라도는 빈 밥그릇을 틈으로 도로 밀어 넣었다⁠. 중사가 운전병에게서 받은 비닐봉지를 들고 왔다⁠. 취사병의 삼겹살이었다⁠. 중사는 봉지를 철모 칸 앞 선반에 올려놓고 서류를 가지러 사무실로 들어갔다⁠. 철모가 선반을 올려다보는 사이⁠, 래브라도가 뒷발로 일어서서 철망 위로 앞발을 걸쳤다⁠. 선반이 흔들렸다⁠. 봉지가 떨어졌다⁠. 래브라도 칸 앞으로⁠.

중사가 돌아왔을 때 봉지는 비어 있었고 래브라도는 입가를 핥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고기 냄새가 왜 나⁠.⁠”

철모는 귀를 눕혔다⁠. 철책 막사에서 우두머리와 취사병 바로 밑에 있던 개가 이 견사에서는 래브라도보다 아래였다⁠. 철모는 처음으로 맨 끝에 서 보았다⁠. 맨 끝에서는 모든 개의 엉덩이가 보였다⁠.

중사가 서류를 넘기며 혼잣말을 했다⁠.

“⁠도태 심의는 안 올라왔네⁠. 중대장이 사진을 보냈다고⁠. 반납이다⁠. 다음 주 훈련소⁠.⁠”

*

오후 한 시⁠, 분소 앞에 승용차 한 대가 멈췄다⁠. 내린 사람에게서 녹차 냄새가 났다⁠. 손에는 핸드크림 냄새가 없었다⁠. 외투 자락에서는 늙은 개의 냄새가 났다⁠. 셰퍼드였다⁠. 이빨이 많이 빠지고 다리를 저는⁠, 아주 늙은 셰퍼드⁠. 철모는 철망에 코를 붙였다⁠. 낯선 사람이 늙은 개 한 마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사단 감찰관입니다⁠. 철모라는 군견 보러 왔습니다⁠.⁠”

중사가 허리를 폈다⁠. 허리 펴는 소리가 났다⁠. 감찰관은 허리를 펴지 않았다⁠. 중사가 허리를 펴는 것을 보고도 걸음이 빨라지지 않았다⁠. 철모는 이 걸음을 처음 보았다⁠. 우두머리의 걸음과 비슷했는데⁠, 성진의 걸음과는 달랐다⁠. 성진은 무리 안에서 걸었다⁠. 감찰관은 무리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

감찰관은 철모의 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손을 바로 내밀지 않았다⁠. 주먹을 쥐어 철망 아래쪽에 대고 기다렸다⁠. 개 앞에서 손을 아는 사람이 하는 몸짓이었다⁠. 철모는 주먹을 맡았다⁠. 녹차⁠, 종이⁠, 늙은 셰퍼드의 침⁠. 그리고 외투 주머니에서 말린 닭가슴살 냄새⁠. 철모의 엉덩이가 저절로 내려앉았다⁠. 등을 펴고 코끝을 주머니에 겨누고 한 번 짖었다⁠.

감찰관이 웃었다⁠. 소리 없이⁠, 눈가로만⁠.

“⁠우리 집 늙은이 간식인데⁠.⁠”

감찰관은 주머니에서 닭가슴살 한 조각을 꺼내 철망 사이로 넣었다⁠. 철모는 받았다⁠. 옆 칸 래브라도가 철망에 얼굴을 짓눌렀다⁠. 감찰관은 래브라도에게는 주지 않았다⁠.

“⁠핸들러 병장이 오늘 아침에 감찰실로 왔습니다⁠. 전역 이틀 남았다고 하더군요⁠. 이걸 들고 왔어요⁠.⁠”

감찰관이 외투 안주머니에서 투명한 비닐봉지를 꺼냈다⁠. 봉지 안에 끝이 뭉개진 납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철모의 코가 봉지를 향해 들렸다⁠. 비닐 너머로도 끝 초소 모래주머니의 냄새가 났다⁠.

“⁠탄두 하나로는 안 됩니다⁠. 몇 해 묵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현장을 봐야 하고⁠, 현장을 아는 코가 필요합니다⁠.⁠”

“⁠반납 대기견입니다⁠, 감찰관님⁠.⁠”

“⁠압니다⁠. 제가 데려가고⁠, 제가 데려옵니다⁠.⁠”

중사가 칸 문을 열었다⁠. 철모가 걸어 나오자 맞은편 칸의 늙은 셰퍼드가 일어났다⁠. 반나절 동안 하품만 하던 개였다⁠. 늙은 셰퍼드는 철망에 코를 내밀었다⁠. 철모는 다가가 코를 맞댔다⁠. 하얗게 센 주둥이에서 오래된 화약 냄새가 났다⁠. 몇 해를 묵어 털 속까지 밴 냄새였다⁠. 늙은 셰퍼드는 콧김을 짧게 끊었다⁠. 가 보라는 뜻이었다⁠. 래브라도는 빈 밥그릇을 핥고 있었다⁠.

*

끝 초소 앞에 다섯이 모였다⁠. 감찰관⁠, 성진⁠, 병장⁠, 행정보급관⁠, 그리고 철모⁠. 비탈 아래 연병장 가장자리에 병사들이 몰려나와 위를 올려다보았다⁠. 병장은 철모의 줄을 쥐고 있었다⁠. 하루 만에 다시 쥔 줄이었다⁠. 병장의 손바닥이 줄을 너무 세게 쥐어 땀이 배었다⁠.

감찰관이 회색 판 앞에 섰다⁠.

“⁠언제 부었습니까⁠?⁠”

“⁠어제 아침입니다⁠. 계단 보수입니다⁠. 얼음 때문에 사람이 다쳤으니까요⁠.⁠”

“⁠사고 엿새 뒤에요⁠.⁠”

“⁠네⁠.⁠”

“⁠탄두는 초소 뒷벽 모래주머니에서 나왔습니다⁠. 병장 말로는 철모가 찾았다고요⁠.⁠”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는 낮고 고르게 이어졌다⁠.

“⁠감찰관님⁠. 이 초소는 열한 해 됐습니다⁠. 해마다 봄가을로 근처에서 사격 훈련을 합니다⁠. 모래주머니를 갈라 보면 묵은 탄두가 몇 개씩 나옵니다⁠. 저 자루 하나만 갈라도 더 나올 겁니다⁠.⁠”

감찰관은 성진을 보았다⁠. 성진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철모는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맡았다⁠. 성진의 말에서는 땀이 나지 않았다⁠. 성진은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모래주머니 속에는 정말로 묵은 탄두가 있을 것이었다⁠. 성진이 덮는 법은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을 고르는 것이었다⁠.

감찰관이 회색 판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손가락으로 굳은 발자국을 짚었다⁠.

“⁠이건 누구 발입니까⁠?⁠”

“⁠철모입니다⁠.⁠”

병장이 대답했다⁠. 감찰관은 발자국을 한참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찍을 때 중대장님이 계셨습니까⁠?⁠”

“⁠제가 두라고 했습니다⁠.⁠”

성진이 대답했다⁠. 감찰관의 눈이 성진에게서 한 박자 오래 머물렀다⁠.

“⁠깨 봐야겠군요⁠.⁠”

“⁠깨십시오⁠.⁠”

성진은 막지 않았다⁠. 행정보급관이 성진을 돌아보았다⁠. 행정보급관의 목덜미에서 믹스커피와 귤의 땀이 솟았다⁠.

철모는 회색 판에 관심이 없었다⁠. 시멘트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철모의 코는 처음부터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람이 비탈 아래에서 올라올 때마다 젖은 재 냄새가 섞여 왔다⁠. 재 냄새 속에서 털실 같은 것이 타다 만 냄새⁠, 그리고 화약⁠. 의무실에서 돌아오던 날 맡았던 냄새였다⁠. 엿새가 지나는 동안 냄새는 옅어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철모는 줄을 끌었다⁠. 비탈 아래로⁠. 병장이 끌려 내려갔다⁠.

“⁠철모⁠, 어디 가⁠. 철모⁠!⁠”

“⁠놔두세요⁠. 따라갑시다⁠.⁠”

감찰관이 먼저 일어섰다⁠.

*

소각장은 연병장 끝⁠, 막사 뒤 담장 아래에 있었다⁠. 녹슨 드럼통 둘이 나란히 서 있었고⁠, 드럼통 사이 바닥에 긁어낸 재가 무릎 높이로 쌓여 있었다⁠. 눈이 재 위에 얇게 덮였다가 녹았다가 다시 얼어 있었다⁠. 철모는 재 더미 앞에서 숨을 짧게 끊어 들이마셨다⁠. 종이⁠, 비닐⁠, 잔반 봉지⁠, 행정보급관이 버린 믹스커피 막대 수백 개⁠. 쓰레기 밑⁠, 바닥 가까운 데서 한 줄기가 올라왔다⁠. 피와 화약과 털실⁠.

철모는 팠다⁠. 재는 흙보다 가벼웠다⁠. 앞발이 내리꽂힐 때마다 회색 가루가 연기처럼 날렸다⁠. 병장이 재채기를 했고 행정보급관이 소매로 코를 막았다⁠. 연병장 가장자리의 병사들이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감찰관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성진은 드럼통 옆에 서서 은단을 씹지 않았다⁠.

발톱 끝에 천이 닿았다⁠. 철모는 주둥이를 재에 박고 앞니로 물어 당겼다⁠. 재가 쏟아지며 검게 그을린 천 조각 하나가 딸려 나왔다⁠. 손바닥 두 개만 한 방한복 바지 조각이었다⁠. 가장자리가 타서 오그라들었고⁠, 가운데에 손톱만 한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구멍 둘레가 동그랗게 그을려 있었다⁠. 천에 스민 피가 재 속에서 검게 말라 있었다⁠.

철모는 천 조각을 감찰관 앞에 내려놓지 않았다⁠. 병장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다시 재로 돌아갔다⁠. 한 줄기가 더 있었다⁠. 이번에는 피가 아니었다⁠. 향수였다⁠. 반쯤 탄 털장갑 한 짝이 재 밑에서 나왔다⁠. 엄지 부분이 녹아 붙었고⁠, 손바닥 쪽 털실에 화약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향수와 화약과 엿새째 빠지지 않는 쇠 냄새⁠.

철모는 장갑 앞에 앉았다⁠. 등을 펴고 귀를 세우고⁠, 한 번 짖었다⁠.

감찰관이 장갑을 집지 않고 손수건으로 감쌌다⁠. 병장의 손에서 천 조각을 받아 하늘에 비춰 보았다⁠. 동그란 구멍으로 겨울 햇빛이 들어왔다⁠.

“⁠쇠말뚝에 긁힌 구멍은 이렇게 동그랗지 않죠⁠.⁠”

성진이 대답했다⁠.

“⁠의무병이 가위로 잘라 낸 옷입니다⁠. 피범벅이라 제가 태웠습니다⁠.⁠”

“⁠왜 중대장님이 직접 태웠습니까⁠? 이런 건 의무실에서 버리는 거라고 들었는데요⁠.⁠”

성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철모는 성진의 목덜미를 맡았다⁠. 땀이 솟지 않았다⁠. 대신 손바닥에서 다른 냄새가 났다⁠. 끝 초소에서⁠, 이를 드러낸 밤에 맡았던 냄새⁠. 겁이었다⁠. 오늘은 무엇이 겁나는지 철모는 알 수 없었다⁠. 감찰관이 아니었다⁠. 감찰관 앞에서 성진의 몸은 굳지 않았다⁠. 성진은 재 더미 앞에 앉은 철모를 보고 있었다⁠.

“⁠장갑은 누구 겁니까⁠?⁠”

“⁠모릅니다⁠.⁠”

“⁠개는 아는 것 같은데요⁠.⁠”

감찰관은 손수건에 싼 장갑을 외투 안주머니에 넣었다⁠. 탄두 봉지 옆이었다⁠.

“⁠상병을 부르겠습니다⁠. 중대장님도요⁠. 군단 감찰부에도 오늘 보고 올라갑니다⁠. 대대장님께는 제가 연락드립니다⁠.⁠”

행정보급관이 들고 있던 종이컵을 떨어뜨렸다⁠. 이번에는 커피가 들어 있지 않았다⁠.

*

막사 정문에서 엔진 소리가 올라왔다⁠. 지프 소리와 달랐다⁠. 낮고 매끄러웠다⁠. 위병소 병사가 소리치는 소리가 담장을 넘어왔다⁠. 연병장 가장자리의 병사들이 한꺼번에 허리를 폈다⁠. 허리 펴는 소리가 백 개쯤 겹쳐서 났다⁠. 철모가 들어 본 가장 큰 허리 펴는 소리였다⁠.

바람이 정문에서 소각장으로 불어왔다⁠. 가죽 시트⁠, 차 히터⁠, 그리고 호두과자⁠. 갓 구운 팥과 호두의 냄새가 겨울바람을 뚫고 왔다⁠. 철모의 엉덩이가 재 위에 털썩 내려앉으려다 멈췄다⁠. 호두과자 밑에 다른 냄새가 깔려 있었다⁠. 목소리만 있고 냄새가 없던 것⁠. 새벽 두 시 수화기 너머의 늙고 낮은 목소리가 오늘은 냄새를 달고 왔다⁠.

“⁠사단장님 차량⁠, 위병소 통과했습니다⁠!⁠”

성진이 베레모를 고쳐 썼다⁠. 허리를 폈다⁠. 감찰관은 허리를 펴지 않았다⁠. 병장이 철모의 줄을 짧게 감아쥐었다⁠. 철모는 재 묻은 앞발로 일어서서⁠, 우두머리 위의 우두머리가 오는 방향으로 귀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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