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78자)

모래주머니

수색 군견 셰퍼드 철모 · 강여울

새벽 한 시⁠, 견사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털모자 냄새였다⁠. 병장은 손전등을 켜지 않았다⁠. 철모는 짚 위에서 고개를 들고 꼬리로 바닥을 두 번 쳤다⁠. 병장이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철모는 이 몸짓을 모른다⁠. 병장의 숨이 얕고 빠르다는 것은 알았다⁠.

병장은 쇠사슬을 견사 기둥에서 풀었다⁠. 쇠고리가 기둥에 닿지 않게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다⁠. 하네스 고리에서 쇠사슬을 빼고⁠, 대신 순찰 줄을 걸었다⁠. 묶어 두라는 대대장의 명령이 쇠사슬과 함께 짚 위에 내려졌다⁠.

옆 칸에서 말리노이즈가 일어났다⁠. 귀를 세우고 꼬리를 높이 들었다⁠. 병장이 주머니에서 건빵 봉지를 꺼냈다⁠. 비닐 소리가 어둠 속에서 크게 울렸다⁠. 철모의 귀가 저절로 돌아갔다⁠. 병장은 건빵 두 알을 말리노이즈의 철망 밑으로 밀어 넣었다⁠.

“⁠조용히 해⁠. 응⁠? 너 이거 먹고 조용히 해⁠.⁠”

말리노이즈는 건빵 두 알을 먹었다⁠. 꼭꼭 씹었다⁠. 다 삼킬 때까지 병장은 기다렸다⁠. 말리노이즈는 철망에 코를 대고 병장의 주머니를 한 번 더 맡았다⁠. 병장이 한 알을 더 넣었다⁠. 말리노이즈는 세 번째 알까지 먹고 짚 위에 엎드렸다⁠.

병장과 철모는 견사를 빠져나와 덤불 사이로 비탈을 올랐다⁠. 반쯤 올랐을 때⁠, 아래 견사에서 말리노이즈가 짖기 시작했다⁠. 길게⁠, 높게⁠, 막사 지붕이 울리도록⁠. 병장이 비탈에서 돌아보았다⁠.

“⁠야⁠. 세 알 먹었잖아⁠.⁠”

말리노이즈는 세 알을 먹었고⁠, 세 알만큼 짖었다⁠. 개의 계산은 사람의 계산과 달랐다⁠. 철모는 말리노이즈를 탓하지 않았다⁠. 무리에서 누가 나가면 남은 개는 짖는다⁠. 건빵을 먹었어도 짖는다⁠.

“⁠빨리 가자⁠.⁠”

*

끝 초소의 마당은 회색 판이 되어 있었다⁠. 달빛 아래에서 시멘트는 언 물처럼 빛났다⁠. 철모는 판 가장자리에 코를 대었다⁠. 구운 돌가루 냄새 말고는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판 귀퉁이에 낮에 찍은 제 발자국이 굳어 있었다⁠. 철모는 제 발자국을 맡았다⁠. 시멘트 속에서도 제 발바닥 냄새가 아주 조금 남아 있었다⁠.

“⁠여기는 이제 끝이야⁠. 다른 데 찾자⁠. 철모⁠, 찾아⁠.⁠”

찾아는 안다⁠. 철모는 판을 떠나 초소 안으로 들어갔다⁠. 모래주머니 벽이 사방을 둘렀다⁠. 언 마대 자루마다 몇 해 묵은 흙먼지와 병사들의 손때가 배어 있었다⁠. 철모는 벽을 따라 코를 옮겼다⁠. 자루 하나⁠, 자루 둘⁠. 컵라면 국물이 튄 자루⁠, 누군가 몰래 담배를 비벼 끈 자루⁠. 초소 뒷벽⁠, 바닥에서 두 번째 줄의 자루에서 코가 멈췄다⁠.

화약이었다⁠. 아주 옅었다⁠. 마대 천에 손톱만 한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고⁠, 구멍 가장자리가 그을려 있었다⁠. 철모는 구멍 앞에 앉았다⁠. 등을 펴고 귀를 세우고 한 번 짖었다⁠.

병장이 손전등을 켜고 구멍을 비췄다⁠.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뚫고 나갔구나⁠. 일병 다리 스치고⁠.⁠”

병장은 허리춤에서 접이칼을 꺼내 마대 천을 구멍에서부터 갈랐다⁠. 언 모래가 덩어리째 쏟아졌다⁠. 병장은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모래를 헤집었다⁠. 철모는 병장의 팔꿈치 옆에 코를 박았다⁠. 화약 냄새가 모래 속에서 진해졌다⁠. 병장의 손가락이 무언가를 집어 올렸다⁠. 끝이 뭉개진 납 덩어리였다⁠. 엄지손톱보다 작았다⁠. 손전등 불빛 아래에서 납은 검게 빛났다⁠.

“⁠찾았다⁠. 철모⁠. 찾았어⁠.⁠”

병장은 매듭 수건을 꺼내 철모 앞에 흔들었다⁠. 철모는 물고 당겼다⁠. 병장도 당겼다⁠. 이번에는 병장이 지는 척을 하지 않았다⁠. 두 손으로 버텨 철모를 한참 끌고 다녔다⁠. 철모는 꼬리를 흔들며 끌려다녔다⁠.

손전등 불빛이 비탈 아래에서 올라왔다⁠. 은단 냄새가 바람을 거슬러 올라왔다⁠.

*

성진은 숨이 차 있었다⁠. 비탈을 뛰어 올라온 숨이었다⁠. 검은 베레모가 비뚤어져 있었다⁠. 손전등 불빛이 갈라진 마대와 쏟아진 모래와 병장의 손을 차례로 지나갔다⁠.

“⁠견사 개가 짖어서 내려가 봤다⁠. 쇠사슬이 짚 위에 있더라⁠.⁠”

병장은 매듭 수건을 놓고 일어섰다⁠. 납 덩어리를 쥔 주먹을 등 뒤로 감추지 않았다⁠. 앞으로 내밀지도 않았다⁠. 옆구리에 붙이고 섰다⁠.

“⁠군견병⁠. 그거 내놔⁠.⁠”

“⁠이번에는 못 드립니다⁠.⁠”

“⁠내놔⁠.⁠”

“⁠중대장님 말씀 다 맞습니다⁠. 백십이 명⁠, 맞습니다⁠. 일병 치료비⁠, 맞습니다⁠. 어머님도 아직 정하지 못하셨고요⁠. 근데 중대장님⁠.⁠”

병장의 목소리가 갈라졌다가 다시 붙었다⁠.

“⁠철모가 모레 죽습니다⁠. 거짓말을 안 해서 죽습니다⁠. 상병은 제 손을 그었는데 철모가 죽습니다⁠.⁠”

“⁠분소장한테 사진 보냈다⁠. 도태는 안 된다⁠. 반납으로 끝난다⁠.⁠”

“⁠반납되면 일곱 살 개는 다시 안 나온다고 하셨잖습니까⁠. 중대장님이요⁠. 철모 앞에서⁠.⁠”

성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철책 너머 저쪽 초소에 불이 하나 켜졌다⁠. 성진이 한 걸음 다가섰다⁠. 은단 냄새가 진해졌다⁠. 성진의 손이 병장의 주먹을 향해 뻗어 왔다⁠.

철모가 몸을 일으켰다⁠.

병장과 성진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성진의 군화 앞에서 멈췄다⁠. 머리를 낮추고⁠, 귀를 앞으로 세우고⁠, 입술을 말아 올렸다⁠. 이가 드러났다⁠. 목 깊은 데서 끄는 소리가 아니라 이 사이로 새는 소리가 났다⁠. 다섯 해 동안 무리의 우두머리에게 한 번도 내지 않은 소리였다⁠.

성진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철모는 우두머리의 손을 맡았다⁠. 은단⁠, 손전등 쇠⁠, 사물함 모서리의 마른 피⁠. 주머니에서 놋쇠⁠. 그리고 손바닥에서 겁이 났다⁠. 끝 초소에서 처음 맡았던 우두머리의 겁이었다⁠. 이번에는 무엇이 겁나는지 철모는 알았다⁠. 무리의 개가 저를 향해 이를 보이는 것이었다⁠.

성진은 손을 거두지 않았고⁠, 더 뻗지도 않았다⁠. 손을 공중에 둔 채로 철모를 내려다보았다⁠. 철모는 이를 거두지 않았다⁠. 바람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한 번 지나갔다⁠. 모래 덩어리가 마대에서 하나 더 굴러떨어졌다⁠.

“⁠…그래⁠.⁠”

성진이 손을 내렸다⁠. 천천히⁠, 철모의 눈높이 밑으로⁠.

“⁠너는 네 우두머리를 골랐구나⁠.⁠”

성진은 병장을 보았다⁠. 목소리가 다시 낮고 고르게 돌아왔다⁠.

“⁠철모는 아침 차 탄다⁠. 모레가 아니라 내일 아침이다⁠. 견사에서 개를 무단으로 빼낸 거⁠, 징계 올린다⁠. 전역 날짜는 내가 손 안 댄다⁠. 그건 약속한다⁠.⁠”

“⁠그거는요⁠.⁠”

병장이 주먹을 조금 들었다⁠.

“⁠네 거다⁠. 네가 찾은 거 아니고 철모가 찾은 거니까⁠, 철모 거다⁠.⁠”

성진은 돌아서서 비탈을 내려갔다⁠. 손전등 불빛이 흔들리며 멀어졌다⁠. 철모는 이를 거두었다⁠. 다리가 떨렸다⁠. 이를 보인 개는 무리에 남지 못한다⁠. 철모의 몸이 먼저 알았다⁠. 병장이 무릎을 꿇고 철모의 목을 끌어안았다⁠. 병장의 가슴에서 심장이 철모의 심장보다 빨리 뛰었다⁠.

*

견사로 돌아왔을 때 말리노이즈는 아직 짖고 있었다⁠. 견사 앞에 동기가 서 있었다⁠. 내복 위에 야전 상의만 걸치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박하사탕 냄새가 입김과 함께 났다⁠.

“⁠너 미쳤냐⁠. 대대장님이 묶으라고 한 개를⁠.⁠”

병장은 대답하지 않고 철모를 칸에 넣었다⁠. 쇠사슬을 다시 하네스 고리에 걸었다⁠. 이번에는 손이 미끄러지지 않았다⁠. 말리노이즈가 철망에 몸을 던지며 짖었다⁠. 동기가 주머니에서 박하사탕을 꺼내 말리노이즈의 철망 밑으로 굴려 넣었다⁠.

“⁠야⁠, 이거 먹고 조용히 해⁠.⁠”

말리노이즈는 박하사탕을 한 번 핥았다⁠. 코를 찡그리고 앞발로 사탕을 철망 밖으로 쳐냈다⁠. 사탕은 동기의 슬리퍼 앞까지 굴러왔다⁠. 동기는 사탕을 내려다보았다⁠.

“⁠개한테도 무시당하네⁠.⁠”

병장이 처음으로 웃었다⁠. 웃음은 짧았다⁠. 동기가 병장 옆에 쪼그려 앉았다⁠.

“⁠뭐 찾았지⁠. 손 봐⁠.⁠”

병장이 주먹을 폈다⁠. 납 덩어리가 손바닥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동기는 오래 보았다⁠. 안경알에 입김이 서렸다가 지워졌다⁠.

“⁠그거 나 줘⁠. 내가 철책 너머로 던져 줄게⁠. 비무장지대 안에 떨어지면 아무도 못 찾아⁠. 그럼 너 전역하고⁠, 애들 휴가 가고⁠, 다 끝나⁠.⁠”

“⁠철모는⁠.⁠”

“⁠철모는 반납이지⁠. 그건 어차피 정해졌잖아⁠.⁠”

병장은 주먹을 다시 쥐었다⁠.

“⁠철모가 찾은 거다⁠. 철모 거야⁠.⁠”

동기는 한참 병장을 보다가 일어났다⁠. 슬리퍼가 언 땅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문턱에서 동기가 돌아보았다⁠.

“⁠애들한테는 내가 말할게⁠. 너 건드리지 말라고⁠. 그건 해 줄게⁠.⁠”

문이 닫혔다⁠. 말리노이즈가 짖기를 멈추었다⁠. 철모는 쇠사슬을 끌고 철망 앞으로 가서 말리노이즈와 코를 맞댔다⁠. 말리노이즈의 코끝에서 박하 냄새가 아주 조금 났다⁠. 한 번 핥아 본 냄새였다⁠. 말리노이즈는 콧김을 짧게 끊었다⁠. 다시는 핥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병장은 날이 밝을 때까지 견사 바닥에 앉아 있었다⁠. 납 덩어리는 병장의 전투복 가슴 주머니에 들어갔다⁠. 주머니 단추를 두 번 확인했다⁠. 철모는 병장의 무릎에 턱을 얹고 가슴 주머니를 올려다보았다⁠. 우두머리의 주머니에는 놋쇠가 있었고⁠, 병장의 주머니에는 납이 있었다⁠. 철모가 판 것들은 전부 사람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

아침 일곱 시⁠, 사단 군견 분소의 트럭이 막사 앞으로 올라왔다⁠. 짐칸에 철제 운반 상자가 실려 있었다⁠. 상자 안에서 다른 개 여럿의 냄새가 났다⁠. 겁먹은 개⁠, 늙은 개⁠, 상자 안에서 오줌을 참지 못한 개⁠.

연병장에 병사들이 나와 있었다⁠. 아침 점호가 끝난 참이었다⁠. 동기는 맨 뒤에 섰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취사병은 앞치마 차림으로 달려 나와 비닐봉지 하나를 운전병에게 내밀었다⁠.

“⁠삼겹살 남은 거예요⁠. 가는 길에 주세요⁠. 식으면 데우지 말고 그냥요⁠.⁠”

운전병은 봉지를 받아 들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 있었다⁠.

행정보급관이 운반 상자 문을 열었다⁠. 철모를 보지 않으려고 상자 문고리만 보았다⁠. 주머니에서 귤 냄새가 났다⁠. 철모는 상자 앞에서 버텼다⁠. 네 다리를 땅에 박았다⁠. 병장이 다가와 쪼그려 앉았다⁠. 털모자를 눌러쓴 병장의 눈이 붉었다⁠.

“⁠들어가⁠. 철모⁠. 들어가⁠.⁠”

철모는 들어가지 않았다⁠. 병장이 매듭 수건을 상자 안 깊숙이 던졌다⁠. 철모의 몸이 먼저 따라 들어갔다⁠. 수건을 물고 돌아섰을 때 상자 문이 닫혔다⁠. 철망 문 너머로 병장의 얼굴이 보였다⁠.

병장은 손을 철망 사이로 넣지 않았다⁠. 대신 털모자를 벗어 철망에 대고 눌렀다⁠. 털실 사이로 병장의 머리 냄새가 들어왔다⁠. 건빵⁠, 개털⁠, 구두약⁠, 그리고 떠나기 전의 새 로션⁠. 핸들러 넷이 다 이 냄새를 남기고 떠났다⁠. 이번에는 철모가 먼저 떠났다⁠.

중대장실 창가에 성진이 서 있었다⁠. 유리창 너머라 냄새는 오지 않았다⁠. 검은 베레모의 그림자만 창틀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트럭 엔진이 켜졌다⁠. 짐칸이 흔들렸다⁠. 병장이 트럭에서 한 걸음 물러나 휴대전화를 꺼냈다⁠. 생활관 밖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면 안 되는 시간이었다⁠. 병장은 연병장 한가운데에서⁠, 백 명이 넘는 병사들 앞에서⁠, 중대장실 창문 아래에서 번호를 눌렀다⁠. 철모는 상자 철망에 귀를 붙였다⁠. 엔진 소리 사이로 병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처음 듣는 높이였다⁠.

“⁠사단 감찰실입니까⁠? 철책 경계 중대 군견병입니다⁠. 신고할 게 있습니다⁠. 증거도 있습니다⁠.⁠”

트럭이 비탈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철모는 상자 안에서 몸을 돌려 막사를 보았다⁠. 견사 지붕⁠, 연병장⁠, 철책⁠, 그리고 끝 초소의 회색 판⁠. 회색 판 귀퉁이의 발자국은 너무 작아 보이지 않았다⁠. 아래 견사에서 말리노이즈가 짖었다⁠. 건빵을 먹지 않고도 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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