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501자)

물린 자국

수색 군견 셰퍼드 철모 · 강여울

시멘트는 냄새를 먹었다⁠. 포대를 뜯자 구운 돌가루와 석회 냄새가 한꺼번에 일어나 콧속을 말렸다⁠. 물을 붓고 삽으로 저으니 냄새는 더 무거워졌다⁠. 무거운 냄새는 다른 냄새를 깔고 앉는다⁠. 철모는 끝 초소 앞에서 코를 들었다가 내렸다가⁠, 결국 재채기를 했다⁠. 피도 화약도 어머니의 맨손이 남긴 표백제도⁠, 회색 반죽 밑으로 하나씩 가라앉았다⁠.

아침 일찍 행정보급관이 병사 둘을 데리고 시멘트 포대 넷을 지고 올라왔다⁠. 성진의 명령이었다⁠. 계단 보수⁠. 세 번째 단 얼음 때문에 사람이 다쳤으니 계단과 앞마당을 한꺼번에 덮는다고 했다⁠. 성진은 초소 벽에 기대 서서 은단을 씹었다⁠. 철모는 성진의 군화 옆에 엎드려 있었다⁠.

“⁠어머님은 아침 첫 버스로 가셨다⁠.⁠”

성진이 말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철모는 알 수 없었다⁠. 행정보급관이 삽을 멈췄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생각해 보신단다⁠.⁠”

행정보급관은 삽자루에 두 손을 얹고 덮인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어젯밤 어머니와 철모가 판 구덩이를 성진이 새벽에 다시 흙으로 채운 자리였다⁠. 행정보급관이 목소리를 낮췄다⁠. 낮춘 목소리는 병사 둘이 못 듣는 높이였고⁠, 철모가 듣는 높이였다⁠.

“⁠중대장님⁠. 이거 부으면 진짜 못 돌립니다⁠.⁠”

“⁠알아⁠.⁠”

“⁠어머님이 생각해 보신다면서요⁠. 생각 끝나고 부어도⁠…⁠.⁠”

“⁠부어⁠.⁠”

행정보급관은 한참 성진을 보다가 삽을 들었다⁠. 회색 반죽이 덮인 자리 위로 쏟아졌다⁠. 반죽은 흙을 덮고 흙 밑의 분홍빛을 덮고⁠, 계단 세 번째 단까지 흘러내렸다⁠. 행정보급관이 흙손으로 겉을 판판하게 문질렀다⁠. 문지를 때마다 숨을 길게 내쉬었다⁠. 철모는 행정보급관의 목덜미에서 처음으로 땀 냄새를 맡았다⁠. 믹스커피와 귤이 섞인 땀이었다⁠.

반죽이 판판해지자 철모가 일어났다⁠. 성진의 군화 옆을 떠나 회색 판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코를 낮췄다⁠.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다섯 해 동안 땅에 코를 대서 아무것도 맡지 못한 적이 없었다⁠. 철모는 오른쪽 앞발을 들어 회색 판 위에 올렸다⁠. 발바닥이 차갑고 질척한 것에 푹 빠졌다⁠.

“⁠야⁠, 야⁠, 야⁠!⁠”

행정보급관이 흙손을 휘둘렀다⁠. 철모는 발을 뺐다⁠. 회색 판 가장자리에 발가락 넷과 발바닥 하나가 또렷이 찍혀 있었다⁠. 병사 하나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보급관님⁠, 철모가 도장 찍었습니다⁠.⁠”

“⁠이 개새끼는 내 바지에 커피 붓고⁠, 내 커피 뒤지고⁠, 이제 내 시멘트에 도장을 찍어⁠?⁠”

행정보급관이 흙손을 들어 발자국을 지우려 했다⁠.

“⁠두어⁠.⁠”

성진이었다⁠. 행정보급관의 흙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그냥 두라고⁠. 개가 찍은 거다⁠.⁠”

행정보급관은 흙손을 내렸다⁠. 철모는 회색 발을 눈에 문질러 닦았다⁠. 성진은 발자국을 오래 내려다보았다⁠. 철책 너머 저쪽 확성기가 아침 방송을 시작했다가 바람에 실려 끊겼다⁠. 회색 판은 오후가 되기 전에 굳었다⁠. 굳은 판 가장자리에 개 발자국 하나가 남았다⁠.

*

오후에 성진은 대대에 불려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철모를 중대장실에 두었다⁠. 문이 닫히고 군화 소리가 계단을 내려갔다⁠. 철모는 책상 밑에 엎드려 의자 등받이를 올려다보았다⁠. 성진은 오늘 야전 상의를 입고 나갔다⁠. 의자는 비어 있었고⁠, 은단과 놋쇠 냄새도 같이 나갔다⁠.

십 분쯤 지나 문이 열렸다⁠. 향수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상병이었다⁠. 경례를 하지 않았다⁠. 방 안을 한 번 둘러보고⁠, 책상 밑의 철모와 눈이 마주쳤다⁠. 상병의 숨이 빨라졌다⁠. 겁이 쇠 냄새로 솟았다⁠. 엿새째 빠지지 않는 냄새였다⁠.

“⁠너 때문이야⁠.⁠”

상병이 책상 앞에 쪼그려 앉았다⁠.

“⁠너 때문에 그 아줌마가 올라갔잖아⁠. 너 때문에 중대장님이 시멘트 부었잖아⁠. 너 때문에 애들이 다 나만 봐⁠.⁠”

철모는 상병의 몸을 읽었다⁠. 무릎이 철모보다 높았다⁠. 손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개의 무리에서 위에서 내려오는 손은 누르려는 손이다⁠. 사흘 전에는 아래에서 먹이를 바치던 손이 오늘은 위에서 눌렀다⁠. 철모는 목 깊은 데서 낮은 소리를 끌었다⁠. 물러서라⁠.

상병이 일어나 책상 다리를 걷어찼다⁠. 책상 위 볼펜꽂이가 쓰러졌다⁠. 철모는 책상 밑에서 나오지 않았다⁠. 낮은 소리만 계속 끌었다⁠. 이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무리 안에서 이를 드러내는 것은 마지막 일이다⁠.

상병은 철제 사물함 앞으로 갔다⁠. 사물함 문 모서리는 페인트가 벗겨져 날이 서 있었다⁠. 상병은 오른손 손바닥을 모서리에 댔다⁠. 철모를 한 번 보았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모서리를 따라 힘껏 그었다⁠.

피 냄새가 확 퍼졌다⁠. 상병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들이쉰 숨을 전부 소리로 바꿨다⁠.

“⁠으아악⁠! 물었어⁠! 이 개가 물었어⁠!⁠”

복도에서 군화 소리가 쏟아졌다⁠. 맨 먼저 문을 연 사람은 행정보급관이었다⁠. 상병은 피가 흐르는 손바닥을 쥐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철모는 책상 밑에서 귀를 눕히고 있었다⁠. 상병의 피에서는 상병의 피 냄새만 났다⁠. 개의 침 냄새는 한 방울도 없었다⁠.

“⁠이 개가⁠, 이 개가 갑자기 달려들어서⁠…⁠.⁠”

행정보급관은 철모를 보았다가 상병의 손을 보았다⁠. 사물함 모서리를 보았다⁠. 모서리에 피가 묻어 있었다⁠. 행정보급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건을 가져와 상병의 손에 감았다⁠.

*

성진은 대대장과 함께 돌아왔다⁠. 반짝이는 구두 소리와 군화 소리가 나란히 계단을 올라왔다⁠. 대대장은 문턱에 서서 피 묻은 수건과 상병과 책상 밑의 개를 차례로 보았다⁠.

“⁠사람 문 군견이다⁠. 규정대로 간다⁠. 사단 군견 분소에 도태 심의 올려⁠.⁠”

철모는 도태라는 소리를 몰랐다⁠. 소리가 나는 순간 행정보급관의 숨이 멈췄고⁠, 성진의 손이 주먹으로 쥐어졌다⁠.

성진이 상병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손 펴 봐⁠.⁠”

상병은 펴지 않았다⁠. 성진이 상병의 손목을 잡고 수건을 풀었다⁠. 손바닥에 일자로 긴 상처가 하나 나 있었다⁠. 성진은 상처를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일어나 사물함 모서리에 손가락을 댔다⁠. 손가락에 마른 피가 묻어 나왔다⁠.

“⁠대대장님⁠. 이건 이빨 자국이 아닙니다⁠.⁠”

“⁠무슨 소리야⁠.⁠”

“⁠개가 물면 구멍이 납니다⁠. 위아래로 두 줄⁠. 이건 일자로 베였습니다⁠. 사물함 모서리입니다⁠. 피가 모서리에 묻어 있습니다⁠.⁠”

“⁠중대장님⁠, 개 편드시는 겁니까⁠? 제가 물렸다는데⁠.⁠”

상병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높아질수록 쇠 냄새가 진해졌다⁠.

“⁠사단장님께도 벌써 말씀드렸습니다⁠. 아까 전화로요⁠.⁠”

대대장의 목덜미에서 땀이 솟았다⁠. 이틀 전 밤과 같은 땀이었다⁠. 높은 사람이 더 높은 사람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땀이었다⁠.

“⁠탁 대위⁠. 자네가 이 개를 방에 끼고 있으니까 말이 나는 거야⁠. 일병 어머니가 올라가질 않나⁠, 시멘트를 붓질 않나⁠. 판단은 사단 군견 분소가 한다⁠. 모레 아침에 차 보낸다⁠. 그때까지 견사에 묶어⁠.⁠”

“⁠대대장님⁠.⁠”

“⁠묶어⁠. 명령이다⁠.⁠”

성진은 대대장을 보았다⁠. 대대장은 이번에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성진이 먼저 허리를 폈다⁠. 허리 펴는 소리가 났다⁠. 우두머리가 허리를 펴는 소리를 철모는 처음 들었다⁠. 무리의 맨 위가 맨 위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대대장은 상병을 데리고 나갔다⁠. 상병은 문턱에서 철모를 돌아보았다⁠. 웃지 않았다⁠. 웃지 않는 얼굴에서 처음으로 겁 말고 다른 냄새가 났다⁠. 부끄러움이었다⁠. 냄새는 금방 향수에 덮였다⁠.

성진은 사물함 모서리를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책상 서랍에서 테이프를 꺼내 모서리를 세 겹으로 감았다⁠.

“⁠군견병 불러⁠.⁠”

행정보급관이 나간 뒤 성진은 베레모를 벗어 책상 위에 놓았다⁠. 그러고는 바닥에 앉았다⁠. 책상 밑의 철모와 눈높이가 같아졌다⁠. 우두머리가 바닥에 앉는 것은 끝 초소 계단 이후 두 번째였다⁠.

“⁠분소장한테 내가 전화한다⁠. 이빨 자국 아닌 거⁠, 사진으로 보낸다⁠.⁠”

성진의 손이 철모의 하네스 등을 쓸었다⁠. 손바닥에서 은단 냄새와 사물함 모서리의 마른 피 냄새가 같이 났다⁠. 철모는 꼬리를 흔들지 않았다⁠. 피하지도 않았다⁠. 성진의 손바닥은 철모의 등 위에서 한참 멈춰 있다가 떨어졌다⁠.

“⁠네가 안 문 거 나는 안다⁠. 너도 내가 뭘 덮었는지 알고⁠.⁠”

*

견사의 짚에서 말리노이즈 냄새가 났다⁠. 엿새 동안 짚은 전부 말리노이즈의 것이 되어 있었다⁠. 병장이 철모를 철모의 칸에 넣고⁠, 하네스 고리에 짧은 쇠사슬을 걸었다⁠. 쇠사슬 끝을 견사 기둥에 감았다⁠. 손이 세 번 미끄러졌다⁠.

말리노이즈가 철망에 코를 붙였다⁠. 철모도 코를 붙였다⁠. 코끝과 코끝이 철망 구멍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닿았다⁠. 말리노이즈는 콧김을 짧게 끊고⁠, 끌어갔던 짚을 앞발로 철망 밑에 밀어 넣었다⁠. 한 줌이었다⁠. 철모는 짚을 받아 제 앞발 밑에 깔았다⁠. 말리노이즈의 꼬리가 철모의 꼬리보다 낮게 내려왔다⁠. 오늘은 서열을 다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밤 아홉 시가 지나 견사 문이 열렸다⁠. 사람 냄새가 여럿이었다⁠. 박하사탕⁠, 담배⁠, 핫팩⁠, 발 냄새⁠. 동기 병장이 맨 앞에 섰고⁠, 뒤에 병사 넷이 서 있었다⁠.

“⁠얘기 좀 하자⁠.⁠”

병장은 철모의 철망 앞에 앉은 채 고개만 돌렸다⁠.

“⁠여기서 해⁠.⁠”

“⁠일병 어머니 왔다 가신 거 다 알아⁠. 아줌마가 초소에서 흙 파셨다며⁠. 애들이 그러는데 이제 수사 들어간대⁠. 그럼 우리 휴가 다 묶여⁠. 석 달⁠.⁠”

뒤에 선 병사 하나가 말을 보탰다⁠.

“⁠병장님⁠, 저 다음 달에 첫 휴가입니다⁠. 여자 친구 생일입니다⁠.⁠”

“⁠저는 할머니 칠순입니다⁠.⁠”

동기가 손을 들어 둘을 막았다⁠.

“⁠철모 데려가는 거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해⁠. 개가 없으면 아무도 안 파⁠. 너는 모레 아침에 보내고⁠, 우리는 나흘 뒤에 나가고⁠. 다 끝나⁠.⁠”

병장은 철망 사이로 손을 넣어 철모의 귀 뒤를 긁었다⁠. 긁는 손가락이 느렸다⁠.

“⁠너희 철모가 도태가 뭔지 알아⁠?⁠”

“⁠…알아⁠.⁠”

“⁠안락사야⁠. 사람 문 개는 그렇게 해⁠. 상병이 제 손 그었는데⁠.⁠”

견사가 조용해졌다⁠. 병사 넷이 서로를 보았다⁠. 철모는 다섯 사람의 냄새를 하나씩 맡았다⁠. 동기에게서는 여전히 땀이 나지 않았다⁠. 동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동기의 손바닥이 처음으로 젖어 갔다⁠.

견사 문이 다시 열렸다⁠. 기름 냄새가 들어왔다⁠. 취사병이 쟁반을 들고 서 있었다⁠. 쟁반 위에서 삼겹살이 아직 지글거렸다⁠.

“⁠뭐예요⁠, 다들⁠. 회의해요⁠?⁠”

“⁠그게 뭐야⁠.⁠”

“⁠철모 마지막 식사요⁠. 아⁠, 마지막은 아니고⁠. 아무튼 잘 먹여서 보내야죠⁠. 개가 뭔 죄예요⁠.⁠”

취사병은 쟁반을 철망 앞에 내려놓았다⁠. 철모는 쇠사슬이 허락하는 데까지 몸을 내밀어 삼겹살 한 점을 물었다⁠. 기름이 혀에 퍼졌다⁠. 다섯 해 동안 먹어 본 것 가운데 가장 뜨겁고 짰다⁠. 말리노이즈가 옆 칸에서 철망에 얼굴을 짓눌렀다⁠. 취사병이 한 점을 집어 말리노이즈의 철망 밑으로 넣어 주었다⁠.

“⁠너도 먹어⁠. 너도 죄 없어⁠.⁠”

병사 넷 가운데 하나가 웃었다⁠.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동기가 먼저 돌아섰고⁠, 넷이 따라 나갔다⁠. 마지막으로 나가던 병사가 문턱에서 핫팩 하나를 꺼내 철모의 철망 앞에 놓고 갔다⁠. 할머니 칠순이라던 병사였다⁠.

병장은 혼자 남았다⁠. 털모자를 벗어 무릎에 놓고⁠, 철망에 이마를 댔다⁠. 철모는 쇠사슬을 끌고 다가가 철망 사이로 병장의 이마를 핥았다⁠. 짰다⁠. 삼겹살 기름과 다른 짠맛이었다⁠.

“⁠모레 아침이래⁠.⁠”

병장이 손가락을 폈다⁠. 하나⁠, 둘⁠, 셋⁠, 넷⁠.

“⁠나는 나흘 남았다⁠. 너는 이틀⁠.⁠”

철모는 손가락을 셀 줄 몰랐다⁠. 병장이 손가락을 펼 때마다 목소리가 낮아진다는 것만 알았다⁠. 열흘 전에는 손가락을 펼 때마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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