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95자)

어머니의 장갑

수색 군견 셰퍼드 철모 · 강여울

복도 계단을 올라온 냄새는 뜨거웠다⁠. 다리미에서 뿜어 나오는 김⁠, 표백제⁠, 빨래를 쌓아 두는 창고의 눅눅한 천⁠. 하루 종일 남의 옷을 빠는 사람의 손 냄새였다⁠. 빨래 냄새 위에 귤 껍질이 얹혀 있었다⁠. 철모는 중대장실 문턱에 앉아 귀를 세웠다⁠. 계단 위로 회색 털장갑 낀 손이 먼저 나타났다⁠. 손에 귤 상자가 들려 있었다⁠.

일병의 어머니는 작았다⁠. 어깨까지 오는 귤 상자를 혼자 들고 와서⁠, 문턱에 내려놓고 나서야 숨을 몰아쉬었다⁠. 목발을 짚고 일어선 아들을 보자 숨이 멈췄다⁠. 어머니는 아들의 허벅지를 보지 않으려고 아들의 얼굴만 보았다⁠. 얼굴을 다 보고 나서야 붕대를 보았다⁠.

“⁠다리⁠.⁠”

“⁠괜찮아⁠, 엄마⁠. 걸어⁠. 봐⁠, 걸어⁠.⁠”

일병이 목발을 짚고 두 걸음을 걸었다⁠. 어머니는 털장갑 낀 손으로 아들의 뺨을 한 번 쓸었다⁠. 장갑 끝에서 털실 보푸라기가 일어났다⁠. 손으로 뜬 장갑이었다⁠. 털실에 밴 손 냄새가 아들의 뺨에 묻었다⁠.

성진이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중대장 탁성진입니다⁠. 먼 길 오셨습니다⁠.⁠”

“⁠귤이에요⁠. 애들 나눠 주세요⁠. 제가 다니는 공장 사장님이 제주 사람이라⁠.⁠”

어머니는 상자를 열어 귤 하나를 꺼내 껍질을 깠다⁠. 손이 빨랐다⁠. 깐 귤 한 조각을 문턱의 철모에게 내밀었다⁠.

“⁠너도 먹을래⁠?⁠”

철모는 코를 내밀었다⁠. 귤 껍질에서 뿜어 나온 기름이 콧속을 쏘았다⁠. 재채기가 한 번⁠, 두 번⁠, 세 번 터졌다⁠. 철모는 뒷걸음질로 책상 밑까지 물러나 앞발로 코를 비볐다⁠. 문간에 서 있던 행정보급관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아이고⁠, 이 개가 못 이기는 게 있네⁠. 화약도 찾고 커피도 찾는 놈이⁠.⁠”

“⁠우리 애도 귤 싫어해요⁠. 어릴 때부터요⁠. 신 거 먹으면 얼굴이 이렇게 돼서⁠.⁠”

어머니가 얼굴을 찡그려 보였다⁠. 일병이 엄마⁠, 하고 작게 말렸다⁠. 행정보급관은 귤 두 개를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철모는 책상 밑에서 재채기를 한 번 더 했다⁠. 막사 서열 맨 끝이 귤 두 개만큼 올라갔다⁠.

*

어머니는 차를 마시지 않았다⁠. 의자에도 앉지 않았다⁠.

“⁠초소 보여 주세요⁠. 애가 넘어진 데요⁠.⁠”

“⁠눈이 많이 쌓였습니다⁠. 올라가는 길이 미끄럽습니다⁠.⁠”

“⁠미끄러운 데서 넘어졌다면서요⁠. 미끄러운 데를 봐야죠⁠.⁠”

성진은 잠깐 어머니를 보았다가 야전 상의를 입었다⁠. 왼쪽 주머니에서 은단 통과 놋쇠가 부딪쳤다⁠. 일병은 목발로 비탈을 오를 수 없어 중대장실에 남았다⁠. 어머니가 문을 나서기 전에 아들을 돌아보았다⁠. 일병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복도로 나서자 병장이 계단참에 서 있었다⁠. 행정보급관이 귤 상자를 생활관으로 나르라고 부른 참이었다⁠. 털모자를 벗어 손에 쥐고 있었다⁠. 병장의 눈이 어머니에게 갔다가 성진에게 갔다가 철모에게 왔다⁠. 철모는 꼬리를 흔들며 병장의 무릎에 코를 박았다⁠. 하루 이십 분 말고 병장을 맡는 것은 처음이었다⁠.

“⁠중대장님⁠, 제가 같이 올라가겠습니다⁠. 길이 미끄럽습니다⁠.⁠”

“⁠너는 귤 날라⁠.⁠”

“⁠철모 줄은 제가 잡겠습니다⁠.⁠”

“⁠귤 날라⁠.⁠”

병장은 털모자를 다시 썼다⁠. 귤 상자를 들어 올리자 상자 밑바닥에서 귤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귤은 계단을 세 칸 굴러 내려가 취사병의 발 앞에서 멈췄다⁠. 취사병이 귤을 주워 들고 상자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거 몇 개예요⁠? 백십이 명이면 한 사람에 두 개는 돌아가겠는데⁠. 병장님⁠, 하나 떨어졌으니까 병장님 몫에서 빼요⁠.⁠”

병장은 대답하지 않고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발소리가 계단참에서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철모⁠. 가자⁠.⁠”

성진이 철모의 하네스에 줄을 걸었다⁠. 철모는 따라나섰다⁠. 우두머리가 낯선 사람을 덮인 자리로 데려가면서 찾는 개를 함께 데려가는 까닭을 철모는 몰랐다⁠. 모르는 채로 줄 끝을 따라 걸었다⁠.

비탈은 해가 진 뒤라 더 미끄러웠다⁠. 성진은 어머니의 팔꿈치를 받쳐 올랐다⁠. 어머니는 받치는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철책 너머에서 저쪽 확성기가 노래 같은 것을 틀었다가 바람에 끊겼다⁠.

“⁠저게 북한이에요⁠?⁠”

“⁠네⁠. 저쪽 초소입니다⁠. 밤이면 불이 켜집니다⁠.⁠”

“⁠우리 애가 저거 보고 서 있었구나⁠. 밤새⁠.⁠”

“⁠두 시간씩 교대합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더라고요⁠. 국회 앞에서 군대에서 애 잃은 엄마들이 피켓 들고 서 있는 거⁠. 저는 그거 보면 채널을 돌렸어요⁠. 우리 애는 아니니까⁠. 돌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성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숨이 하얗게 길어졌다⁠. 철모는 두 사람의 발소리 사이를 걸었다⁠. 성진의 군화는 언 눈을 밟을 때마다 같은 소리를 냈다⁠. 어머니의 운동화는 소리를 낼 때마다 조금씩 미끄러졌다⁠.

*

끝 초소 앞에 닿자 성진이 손전등을 켜서 계단을 비췄다⁠.

“⁠여기 세 번째 단입니다⁠. 얼음이 끼어서 발을 헛디뎠고⁠, 아래 말뚝에 긁혔습니다⁠.⁠”

어머니는 계단 앞에 쪼그려 앉았다⁠. 털장갑 낀 손으로 세 번째 단의 얼음을 쓸었다⁠. 얼음은 맑았다⁠. 어머니는 아래 말뚝을 보았다⁠. 말뚝에는 녹이 슬어 있었고⁠, 녹 위에 눈이 얹혀 있었다⁠.

“⁠피가 없네요⁠.⁠”

“⁠치웠습니다⁠.⁠”

“⁠말뚝도요⁠?⁠”

성진이 대답을 고르는 사이 철모의 줄이 팽팽해졌다⁠. 철모는 계단을 지나쳤다⁠. 병장이 뜨거운 물을 붓고 철모가 파냈던 자리였다⁠. 이튿날 성진이 다시 흙을 채우고 눈을 덮었다⁠. 덮을 때마다 흙이 새것으로 바뀌었고⁠, 바뀔 때마다 밑에서 올라오는 냄새는 그대로였다⁠. 피와 화약⁠, 그리고 이제는 뜨거운 물이 식으며 남긴 김의 냄새⁠.

철모는 덮인 자리 앞에 앉았다⁠. 등을 펴고 귀를 세우고 코끝을 흙에 겨누고⁠, 한 번 짖었다⁠. 산이 소리를 받아 한 번 돌려보냈다⁠.

“⁠안 돼⁠” 소리는 오지 않았다⁠. 성진은 줄을 당기지 않았다⁠.

“⁠개가 왜 저기 앉아요⁠?⁠”

“⁠찾았다는 표시입니다⁠. 수색견은 찾은 자리 앞에 앉습니다⁠.⁠”

“⁠뭘 찾았는데요⁠?⁠”

성진은 손전등을 내렸다⁠. 불빛이 군화 앞 눈 위에 둥글게 고였다⁠.

“⁠어머님⁠.⁠”

“⁠우리 애가 전화했어요⁠. 다치기 두 주 전에요⁠.⁠”

어머니가 일어섰다⁠. 털장갑 낀 두 손을 배 앞에 모았다⁠.

“⁠밤에 공중전화로요⁠. 휴대전화는 생활관에서만 쓴다고⁠, 공중전화로⁠. 상병 하나가 자꾸 총을 겨눈다고⁠. 장난이라고 겨눈대요⁠. 초소에서 둘만 있을 때⁠. 엄마 무서워⁠, 그러더라고요⁠. 스물한 살 먹은 애가⁠.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중대장님한테 말씀드려⁠. 중대장님은 너희 지켜 주시는 분이야⁠.⁠”

철모는 어머니의 목소리 높이를 들었다⁠.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조금씩 낮아졌다⁠. 낮아질수록 사람들은 아픈 것을 말한다⁠.

“⁠다음 날 또 전화했어요⁠. 중대장님한테 말씀드렸대요⁠. 중대장님이 보름만 참으라고 하셨대요⁠. 그 상병 다음 달에 다른 데로 간다고⁠. 그래서 참았대요⁠. 참다가⁠, 맞았어요⁠.⁠”

어머니는 성진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우리 애는 계단에서 넘어진 애가 아니죠⁠?⁠”

바람이 멎었다⁠. 철모는 성진의 목덜미를 맡았다⁠. 땀이 솟지 않았다⁠. 거짓말을 준비하는 사람은 땀이 먼저 난다⁠. 성진에게서는 아무것도 나지 않았다⁠. 철모가 처음 맡는 냄새였다⁠. 다 내려놓은 사람의 냄새였다⁠.

“⁠네⁠.⁠”

어머니의 모은 손이 떨렸다⁠.

*

성진은 계단 맨 위 단에 앉았다⁠. 앉으니 어머니보다 낮아졌다⁠. 우두머리가 무리의 누구보다 낮게 앉는 것을 철모는 처음 보았다⁠.

“⁠제가 소대장일 때입니다⁠. 다른 부대였습니다⁠. 소대원 하나가 선임한테 맞아서 어깨를 못 쓰게 됐습니다⁠. 저는 그대로 다 올렸습니다⁠. 가해자가 있는 사고라 수사로 넘어갔고⁠, 수사가 두 해 걸렸습니다⁠. 판정은 수사가 끝나고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움직이지 않았다⁠.

“⁠두 해 동안 그 소대원 어머님이 달마다 위병소 앞에 오셨습니다⁠.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요⁠. 아드님 병원비 대느라 사시던 집을 파셨습니다⁠. 판정 나온 날 저한테 목도리를 하나 떠 주셨습니다⁠. 고맙다고⁠. 두 해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해야 할 사람은 저였는데⁠.⁠”

성진은 손전등을 손바닥 위에서 한 번 돌렸다⁠.

“⁠그 목도리⁠, 사고 난 밤에 아드님 허벅지에 감아서 내려보냈습니다⁠.⁠”

철모는 사물함 문틈의 털실 냄새를 떠올렸다⁠. 이 막사 누구에게서도 맡아 본 적이 없는 사람⁠. 털실의 주인은 이 산에 한 번도 오지 않았는데⁠, 오늘 밤 처음으로 냄새보다 먼저 이름 없는 목소리가 되어 여기 와 있었다⁠.

“⁠그래서 덮었어요⁠?⁠”

“⁠네⁠. 이번에는 다리부터 붙이고 싶었습니다⁠. 아드님 치료비는 이달부터 나갑니다⁠. 상병은 다시 총을 못 잡는 데로 갑니다⁠. 중대 애들 백십이 명은 봄에 집에 갑니다⁠. 수사로 가면 다 멈춥니다⁠. 아드님 판정도 일 년 뒤입니다⁠.⁠”

“⁠그리고 중대장님이 보름만 참으라고 한 거는요⁠. 그것도 덮이고요⁠.⁠”

성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으로 대답했다⁠. 어머니의 숨이 하얗게 끊겼다가 이어졌다⁠.

어머니는 성진을 내려다보았다⁠. 한참 만에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가 더 낮았다⁠.

“⁠치료비요⁠. 안 나오면 어떻게 돼요⁠?⁠”

“⁠아드님 병원비는 일단 댁에서 내시고⁠, 판정이 나면 돌려받습니다⁠. 일 년쯤입니다⁠.⁠”

“⁠애 아빠가 겨울에는 일이 없어요⁠. 현장이 다 서요⁠. 저 혼자 버는 걸로는 한 달도 못 내요⁠.⁠”

“⁠압니다⁠.⁠”

“⁠아시니까 덮으셨다고요⁠.⁠”

“⁠네⁠.⁠”

어머니의 입술이 하얗게 다물렸다⁠. 철모는 두 사람의 숨이 같은 높이에서 엇갈리는 것을 들었다⁠. 한 사람은 내려놓은 숨이었고⁠, 한 사람은 무언가를 막 집어 든 숨이었다⁠.

“⁠우리 애한테 평생 계단에서 넘어진 애로 살라고요⁠? 치료비 나오면 됐다고요⁠?⁠”

“⁠어머님이 정하십시오⁠. 저는 그 말씀 드리려고 올라왔습니다⁠.⁠”

철모는 성진의 주머니를 보았다⁠. 우두머리는 덮은 자리 앞에 앉은 개를 끌어내지 않았고⁠, 묻은 자리를 낯선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주머니 속의 놋쇠는 꺼내지 않았다⁠. 열어 주는 손과 닫아 두는 손이 한 사람에게 같이 붙어 있었다⁠.

*

어머니는 철모 앞으로 걸어왔다⁠. 철모는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털장갑을 벗었다⁠. 오른손부터⁠, 다음은 왼손⁠. 벗은 장갑을 겹쳐 철모의 앞발 옆 눈 위에 내려놓았다⁠. 장갑 속에 남은 온기가 눈을 조금 녹였다⁠.

맨손이 드러났다⁠. 손가락 마디마다 갈라져 있었고⁠, 손톱 밑이 표백제에 하얗게 바래 있었다⁠. 철모는 갈라진 손을 맡았다⁠. 하루 종일 뜨거운 물에 담갔다 꺼낸 손이었다⁠. 지금은 영하 20도 공기 속에서 빠르게 식어 갔다⁠.

어머니는 무릎을 꿇었다⁠. 덮인 자리의 눈을 손바닥으로 쓸어냈다⁠. 새 흙이 나왔다⁠. 손가락을 세워 흙에 박았다⁠. 손톱이 언 흙에 긁히는 소리가 났다⁠. 성진이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다⁠. 막지 않았다⁠.

철모는 어머니 곁에 앞발을 내렸다⁠. 어머니가 파는 자리 옆을 같이 팠다⁠. 개의 앞발이 사람 손보다 빨랐다⁠. 한 뼘⁠, 다시 한 뼘⁠. 병장의 뜨거운 물이 닿았던 자리라 흙이 아직 덜 얼어 있었다⁠. 손가락 끝에 차갑고 끈적한 것이 묻어 나왔다⁠.

어머니가 손을 들어 손전등 불빛에 비쳤다⁠. 언 흙이 분홍빛으로 얼룩져 있었다⁠. 아들의 피가 흙과 함께 얼어 있었다⁠.

어머니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분홍빛 흙을 쥔 맨손을 가슴 앞으로 가져갔다⁠. 쥔 손 위로 숨이 하얗게 떨어졌다⁠. 철모는 어머니의 무릎에 몸을 붙이고 앉았다⁠. 짖지 않았다⁠. 찾은 것은 이미 사람 손에 쥐여 있었다⁠.

성진은 계단 맨 위 단에 앉은 채로 손전등을 끄지 않았다⁠. 불빛은 어머니의 손 위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눈 위에 겹쳐 놓인 털장갑 한 켤레가 천천히 식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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