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517자)

책상 밑

수색 군견 셰퍼드 철모 · 강여울

중대장실의 아침은 경례로 시작했다⁠. 문이 열리면 찬 바람과 함께 사람이 하나씩 들어왔고⁠, 들어온 사람은 문턱에서 오른손을 이마로 올렸다⁠. 손이 이마에 닿는 순간 몸 전체가 굳었다⁠. 철모는 책상 밑에서 이 몸짓을 읽었다⁠. 개의 무리에서 아랫개가 윗개 앞에 서면 귀를 납작하게 눕힌다⁠. 사람은 귀를 눕히지 못하니 손으로 귀 근처를 덮는다⁠. 경례는 귀를 눕히는 인사였다⁠.

첫날 철모는 인사를 받기만 했다⁠. 이튿날 아침에는 답을 해 보았다⁠. 소대장 하나가 문턱에서 경례를 하자 철모가 책상 밑에서 걸어 나와 앉아서 오른쪽 앞발을 들었다⁠. 훈련소에서 배운 손 주기였다⁠. 소대장은 경례한 손을 내리지도 못하고 철모의 앞발을 내려다보았다⁠.

“⁠중대장님⁠, 이거 받아 줘야 됩니까⁠?⁠”

“⁠받아 줘⁠. 안 받으면 계속 들고 있다⁠.⁠”

소대장이 쪼그려 앉아 철모의 앞발을 잡고 흔들었다⁠. 점심 전까지만 다섯 명이 철모와 악수를 했다⁠. 행정보급관은 하지 않았다⁠. 행정보급관은 경례를 마치자마자 철모와 가장 먼 벽에 등을 붙였다⁠. 상의 주머니에서 믹스커피 막대 냄새가 났다⁠. 철모는 행정보급관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등을 펴고 코끝을 주머니에 겨누고 한 번 짖었다⁠.

“⁠중대장님⁠! 이 개가 또⁠!⁠”

“⁠찾았다는 거다⁠. 꺼내⁠.⁠”

“⁠이건 제 커피입니다⁠.⁠”

“⁠개한테는 화약이랑 같은 거다⁠. 꺼내서 보여 줘야 끝난다⁠.⁠”

행정보급관이 커피 막대 세 개를 꺼내 손바닥에 펼쳤다⁠. 철모는 냄새를 한 번 맡고 꼬리를 흔들며 책상 밑으로 돌아갔다⁠. 행정보급관은 커피를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혼잣말을 했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욕을 다 했다⁠. 성진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았지만 베레모 아래 귀 끝이 조금 붉었다⁠.

점심 무렵 상병이 들어왔다⁠. 경례를 하다가 책상 밑의 철모와 눈이 마주쳤다⁠. 손이 이마에서 미끄러졌다⁠. 향수 냄새가 방 안에 확 퍼졌다⁠. 철모는 앞발을 들지 않았다⁠.

“⁠전출은 다음 달 이 일이다⁠. 행정반 일이다⁠. 총은 안 잡는다⁠.⁠”

“⁠사단 행정반입니까⁠?⁠”

“⁠군단이다⁠. 너희 삼촌 밑으로는 안 보낸다⁠.⁠”

상병의 웃음이 얼굴에서 반쯤 내려갔다⁠. 상병은 철모를 한 번 더 보고 뒷걸음질로 나갔다⁠. 문이 닫힌 뒤에도 향수는 오래 남았다⁠. 철모는 재채기를 두 번 했다⁠.

*

중대장실에서 보낸 두 번째 밤⁠, 대대장이 찾아왔다⁠. 지프 엔진 소리보다 구두 소리가 먼저 복도를 울렸다⁠. 대대장의 구두는 군화가 아니었다⁠. 밑창이 얇고 반짝였고⁠, 눈 위를 걷지 않은 냄새가 났다⁠. 성진이 일어나 허리를 폈다⁠. 철모도 책상 밑에서 나왔다⁠. 대대장이 손을 뻗어 철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에서는 여전히 밥 냄새가 나지 않았다⁠. 철모는 꼬리를 반만 흔들었다⁠.

“⁠이 개는 왜 여기 있나⁠.⁠”

“⁠제가 데리고 있습니다⁠.⁠”

“⁠군견은 견사에 둬야지⁠. 사단 군견 분소에서 알면 시끄러워⁠.⁠”

“⁠사흘만 두겠습니다⁠.⁠”

대대장은 철모에게서 손을 떼고 의자에 앉지 않았다⁠. 서서 말했다⁠.

“⁠사단장님이 상병 전출지를 사단 본부로 하자신다⁠. 행정병으로⁠.⁠”

“⁠군단으로 올렸습니다⁠.⁠”

“⁠다시 올려⁠.⁠”

“⁠안 됩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철모는 성진의 목덜미를 맡았다⁠. 땀이 나지 않았다⁠. 대대장의 목덜미에서 땀이 났다⁠.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막힐 때 나는 땀이었다⁠.

“⁠탁 대위⁠. 지금 누구 덕에 이 일이 조용한지 알고 하는 말인가⁠.⁠”

“⁠압니다⁠. 그래서 사단 본부는 안 됩니다⁠. 상병이 사단장님 밑에 들어가면 일병 동기들이 다 압니다⁠. 그럼 조용히 안 끝납니다⁠.⁠”

대대장이 한참 성진을 보았다⁠. 성진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대대장은 구두 끝으로 바닥을 두 번 두드리고 돌아섰다⁠.

“⁠군단으로 하지⁠. 대신 말 새는 데 없게 해⁠. 저 개까지⁠.⁠”

문이 닫혔다⁠. 반짝이는 구두 소리가 복도 끝까지 갔다가 사라졌다⁠. 성진은 의자에 앉아 오래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고 있었다⁠. 손을 내리자 은단 냄새가 났다⁠. 성진은 은단 통을 꺼내 세 알을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철모는 은단 통이 나온 주머니를 보았다⁠. 놋쇠는 아직 왼쪽 주머니 안에 있었다⁠.

*

하루에 한 번⁠, 성진은 병장을 불러 철모를 연병장에 데리고 나가게 했다⁠. 이십 분이었다⁠. 성진은 중대장실 창가에 서서 내려다보았다⁠. 철모는 병장의 털모자 냄새를 맡자마자 줄이 팽팽해지도록 달렸다⁠. 병장은 쪼그려 앉아 철모의 목덜미를 두 손으로 비볐다⁠.

“⁠밥은 잘 먹냐⁠. 중대장님이 건빵 주냐⁠? 몇 알 주냐⁠?⁠”

건빵이라는 소리에 엉덩이가 저절로 내려앉았다⁠. 병장이 웃었다⁠. 사흘 만의 웃음이었고⁠, 웃음 끝이 금방 젖었다⁠.

연병장 끝에서 다른 병장 하나가 걸어왔다⁠. 병장과 같은 날 들어와 같은 날 나가는 동기라고 했다⁠. 안경을 썼고⁠, 안경알에 입김이 서렸다가 지워졌다⁠. 동기의 손에서는 담배와 박하사탕이 났다⁠. 담배를 감추려고 먹는 사탕이었다⁠.

“⁠너 요즘 왜 그래⁠. 애들이 다 수군거려⁠.⁠”

“⁠뭘⁠.⁠”

“⁠삼 초소 애들이 탕 소리 들었대⁠. 너는 맨 먼저 올라갔고⁠. 너 뭐 봤지⁠?⁠”

병장은 대답하지 않고 철모의 줄을 감았다⁠. 동기가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 아흐레 뒤에 나가⁠. 너 입 열면 조사 받느라 전역 밀린다⁠. 애들 휴가 다 묶이면 애들이 너를 가만둘 것 같아⁠? 일병도 괜찮다며⁠. 다리도 붙는다며⁠. 그럼 된 거잖아⁠.⁠”

“⁠된 거냐⁠.⁠”

“⁠된 거야⁠. 우리는 집에 가면 끝이야⁠. 여기서 뭘 봤든⁠.⁠”

병장이 고개를 들었다⁠. 동기의 안경알에 다시 입김이 서렸다⁠. 철모는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맡았다⁠. 동기의 목덜미에서는 땀이 나지 않았다⁠. 동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병장의 손바닥만 젖어 갔다⁠.

“⁠이십 분 지났다⁠.⁠”

창가에서 성진이 말했다⁠. 유리창 너머로 들린 목소리는 작았는데⁠, 연병장의 두 병장 허리가 동시에 펴졌다⁠.

*

오후 두 시⁠, 일병이 돌아왔다⁠. 의무병 하나가 일병을 부축했고⁠, 일병은 목발을 짚었다⁠. 오른쪽 허벅지에 붕대가 두껍게 감겨 있었다⁠. 일병이 문턱에서 경례를 하려다 목발이 흔들렸다⁠. 성진이 일어나 일병의 팔꿈치를 받쳤다⁠.

“⁠경례 안 해도 된다⁠. 앉아⁠.⁠”

철모는 책상 밑에서 걸어 나왔다⁠. 일병의 냄새가 방을 채웠다⁠. 소독약과 요오드와 병원 침대 시트⁠, 시트 밑에 피⁠. 끝 초소의 흙 밑에 덮인 피와 같은 피였다⁠. 철모는 일병의 무릎에 턱을 얹었다⁠. 일병이 놀라 몸을 굳혔다가⁠, 천천히 철모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너 그날 밤에 있던 애지⁠.⁠”

성진이 일병 맞은편에 앉았다⁠.

“⁠다리는⁠.⁠”

“⁠괜찮습니다⁠. 걸을 수 있습니다⁠.⁠”

“⁠세 시에 대대 조사관이 온다⁠. 너 혼자 들어간다⁠. 나는 밖에 있는다⁠. 알지⁠?⁠”

“⁠…네⁠.⁠”

“⁠계단 세 번째 단⁠. 얼음⁠. 철조망 말뚝⁠. 상병이 부축했다⁠.⁠”

“⁠…네⁠.⁠”

일병의 손이 철모의 귀 뒤에서 멈췄다⁠. 철모는 귀를 세웠다⁠. 일병의 숨이 길어졌다가 끊겼다⁠.

“⁠중대장님⁠. 상병님 전출 가면 끝입니까⁠?⁠”

“⁠끝이다⁠.⁠”

“⁠그날 전에도⁠, 상병님이 저한테 총구를⁠…⁠.⁠”

“⁠그 얘기는 조사관 앞에서 안 한다⁠.⁠”

성진의 목소리는 더 낮아졌다⁠. 일병의 손이 철모의 털을 움켜쥐었다⁠. 아프지는 않았다⁠. 매달리는 손이었다⁠.

“⁠보상⁠, 진짜 다음 주에 나옵니까⁠? 아버지가 요즘 현장에 못 나가셔서요⁠.⁠”

“⁠판정 서류는 내가 대대에 직접 들고 간다⁠. 사단 보훈 담당한테도 전화해 놨다⁠.⁠”

일병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보고 일병은 받지 않았다⁠. 진동이 철모의 턱 밑에서 오래 떨리다 멈췄다⁠.

“⁠어머니냐⁠.⁠”

“⁠네⁠. 다치고 나서 하루에 열 번씩 하세요⁠.⁠”

“⁠받아 드려라⁠. 조사 끝나고⁠.⁠”

“⁠…네⁠.⁠”

*

조사관은 세 시에 왔다⁠. 성진은 조사관에게 자리를 내주고 문밖으로 나갔다⁠. 나가면서 철모를 부르지 않았다⁠. 철모는 책상 밑에 남았다⁠. 조사관은 책상 밑의 개를 보고 잠깐 멈칫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볼펜 잉크 냄새가 의자에 앉았다⁠.

“⁠편하게 말해요⁠. 그날 밤 어떻게 된 겁니까⁠?⁠”

“⁠순찰 돌다가 계단에서 미끄러졌습니다⁠. 세 번째 단이었습니다⁠. 얼음이 있었습니다⁠.⁠”

일병의 목덜미에서 땀이 솟았다⁠. 철모는 이 땀을 안다⁠. 비탈 끝에서 병장에게서도 맡았고⁠, 연병장에서 동기에게서는 맡지 못한 땀이다⁠.

“⁠말뚝에 긁혔고요⁠.⁠”

“⁠네⁠.⁠”

“⁠그날 밤 총소리 같은 거 들었어요⁠?⁠”

“⁠못 들었습니다⁠.⁠”

철모는 책상 밑에서 걸어 나왔다⁠. 일병 앞에 가서 앉았다⁠. 등을 펴고 귀를 세우고⁠, 코끝을 일병의 가슴에 겨누고 한 번 짖었다⁠. 일병의 숨이 멈췄다⁠. 조사관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이 개는 왜 이럽니까⁠?⁠”

일병은 철모를 내려다보았다⁠. 입술이 두 번 움직였다가 닫혔다⁠. 한참 만에 말이 나왔다⁠.

“⁠…저를 좋아해서요⁠.⁠”

조사관은 개와 병사를 번갈아 보았다⁠. 볼펜을 다시 들었다⁠. 철모는 앉은 채로 기다렸다⁠. 수건은 오지 않았다⁠. 일병이 손을 뻗어 철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쓰다듬는 손이 젖어 있었다⁠. 철모는 엎드려 일병의 목발 끝에 턱을 얹었다⁠.

조사관이 서류를 덮고 일어서자 의무병이 들어와 일병을 부축했다⁠. 일병은 목발을 짚고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보았다⁠. 철모는 일병의 목발이 남긴 자국을 따라 문턱까지 걸어갔다⁠. 일병이 허리를 굽혀 철모의 귀 사이에 이마를 댔다⁠. 병원 비누 냄새와 눈물 냄새가 함께 내려왔다⁠.

“⁠미안⁠.⁠”

철모는 미안이라는 소리를 모른다⁠. 사람들이 이 소리를 낼 때 목소리가 가장 낮아진다는 것만 알았다⁠. 일병은 이마를 떼고 복도로 나갔다⁠. 목발 소리가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철모는 문턱에 앉아 귀를 세우고 있었다⁠.

조사관이 내려간 뒤 성진이 들어왔다⁠. 책상 위 전화가 울렸고⁠, 성진은 수화기를 들며 허리를 폈다⁠. 수화기에서 대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철모는 이 목소리를 안다⁠. 밥 냄새가 안 나는 손의 목소리였다⁠.

“⁠네⁠, 대대장님⁠. …네⁠. 단순 낙상으로 올라간다고 들었습니다⁠. …사단장님께서요⁠? …네⁠. 깔끔하게 끝내겠습니다⁠.⁠”

성진이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다시 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위병소였다⁠. 위병소 병사의 목소리가 수화기 밖으로 새어 나올 만큼 컸다⁠.

“⁠중대장님⁠, 일병 어머님이 오셨습니다⁠. 귤 한 상자 들고 오셨는데요⁠, 아들 다친 초소를 꼭 봐야겠다고 안 가십니다⁠. 안 보여 주면 여기서 주무시겠답니다⁠.⁠”

성진은 수화기를 든 채 창밖을 보았다⁠. 철책 위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일병은 목발을 짚고 일어서려다 다시 앉았다⁠. 철모는 일병의 목발과 성진의 군화 사이에 엎드려 귀를 세웠다⁠. 성진이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모셔 와라⁠. 내가 같이 올라간다⁠.⁠”

“⁠중대장님⁠.⁠”

목발을 쥔 일병의 손등이 하얘졌다⁠.

“⁠어머니한테는 계단이라고 했습니다⁠. 전화로요⁠.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그럼 계단을 보여 드리면 된다⁠.⁠”

“⁠어머니는 제 목소리만 들어도 아십니다⁠. 제가 거짓말하면⁠.⁠”

성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일병의 손등에서 나는 땀 냄새가 방 안의 은단 냄새를 조금씩 밀어냈다⁠. 철모는 두 사람 사이에 엎드린 채 코를 문 쪽으로 돌렸다⁠. 복도 끝 계단 아래에서 낯선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귤 껍질⁠, 그리고 다리미에서 뿜어 나오는 뜨거운 김 같은 냄새였다⁠.

성진은 의자 등받이의 야전 상의를 집어 입었다⁠. 왼쪽 주머니에서 은단 통과 놋쇠가 부딪쳐 작게 울렸다⁠. 성진이 문을 열며 철모를 내려다보았다⁠.

“⁠철모⁠. 가자⁠.⁠”

가자는 안다⁠. 철모는 몸을 일으켰다⁠. 일으키면서⁠, 우두머리가 왜 저를 데리고 끝 초소에 가려는지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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