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548자)

놋쇠 한 알

수색 군견 셰퍼드 철모 · 강여울

철모가 처음 「⁠찾아⁠」를 배운 곳은 훈련소 뒤의 모래밭이었다⁠. 두 살 봄이었다⁠. 조교가 낡은 수건을 매듭지어 철모의 코앞에서 흔들고⁠, 모래밭 어딘가에 묻었다⁠. 철모는 모래 냄새 속에서 수건에 밴 조교의 손 냄새를 골라냈다⁠. 앞발로 파서 수건을 물고 나오면 조교가 반대쪽 끝을 잡고 힘껏 당겨 주었다⁠. 당기기 싸움에서 지는 척하는 것까지가 상이었다⁠. 철모의 몸은 모래밭에서 배웠다⁠. 묻힌 것은 꺼내라고 묻힌 것이다⁠. 꺼내면 누군가 기뻐한다⁠.

이후 다섯 해 동안 핸들러가 넷 바뀌었다⁠. 하나는 마늘을 좋아했고 하나는 밤마다 울었다⁠. 하나는 철모의 귀 뒤를 긁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의 병장은 넷 가운데 매듭을 가장 크게 지었다⁠. 넷 모두 열여덟 달이 지나면 새 로션 냄새를 풍기다 사라졌다⁠. 수건만 남았다⁠.

*

낮에 행정보급관이 견사 마당에 왔다⁠. 새로 받은 전투복 바지에서 아직 믹스커피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행정보급관은 철모가 판 구덩이에 돌을 한 양동이 쏟아붓고 발로 꾹꾹 밟았다⁠. 밟을 때마다 철모를 노려보았다⁠. 철모는 꼬리를 흔들었다⁠. 행정보급관이 발로 무언가를 덮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막사 서열 맨 끝이 오늘은 조금 올라갔다⁠. 성진과 같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웃냐⁠? 개가 웃어⁠?⁠”

철모는 웃은 적이 없다⁠. 혀가 나와 있었을 뿐이다⁠. 말리노이즈가 짧게 콧김을 뿜었다⁠. 철모가 듣기에는 웃음에 가까웠다⁠.

*

저녁 점호는 연병장에서 했다⁠. 성진이 철모를 데리고 나오라고 했다⁠. 낙상 사고 뒤라 안전 교육을 겸한다고 했다⁠. 병장이 철모의 줄을 쥐고 대열 맨 끝에 섰다⁠. 백십이 명이 넉 줄로 늘어서자 연병장에 사람 냄새가 한꺼번에 깔렸다⁠. 저녁에 먹은 제육볶음⁠, 발 냄새⁠, 핫팩⁠, 담배를 몰래 피운 손가락⁠. 그리고 세 번째 줄 가운데에서 향수 냄새가 났다⁠. 상병이었다⁠. 상병의 향수 밑에서 쇠 냄새가 나흘째 빠지지 않았다⁠.

성진이 단상에 올라 종이 한 장을 읽었다⁠.

“⁠국방부 지시다⁠. 동절기 안전사고 예방⁠. 계단⁠, 교통호⁠, 얼음⁠. 미끄러지면 다친다⁠. 다치면 너희 부모님이 운다⁠.⁠”

대열은 조용했다⁠. 조용한 대열 속에서 철모의 코가 첫째 줄 끝으로 돌아갔다⁠. 취사병의 전투복 왼쪽 주머니였다⁠. 고소하고 바삭한 냄새⁠, 솥 바닥에서 긁어낸 밥의 냄새⁠. 철모의 엉덩이가 연병장 흙에 털썩 내려앉았다⁠. 등을 펴고 귀를 세우고 코끝을 주머니에 겨누고⁠, 한 번 짖었다⁠.

백십이 명의 고개가 한꺼번에 돌아갔다⁠. 취사병의 얼굴이 하얘졌다⁠.

“⁠취사병⁠. 주머니⁠.⁠”

성진의 목소리는 낮았다⁠. 취사병이 주머니에서 비닐에 싼 누룽지 한 덩이를 꺼냈다⁠. 대열 어딘가에서 웃음이 새다가 꾹 눌렸다⁠. 성진은 한참 누룽지를 내려다보았다⁠.

“⁠…철모 줘라⁠.⁠”

취사병이 누룽지를 반으로 쪼개 철모 앞에 내밀었다⁠. 철모는 받았다⁠. 대열이 참지 못하고 터졌다⁠. 성진은 웃지 않았지만 단상 위에서 베레모 챙을 한 번 눌렀다⁠. 웃음이 가라앉자 성진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끝 초소는 당분간 비운다⁠. 경계는 옆 초소로 합친다⁠. 아무도 올라가지 마라⁠.⁠”

세 번째 줄 가운데의 향수 냄새가 조금 옅어졌다⁠. 숨을 내쉬는 사람의 냄새는 옅어진다⁠. 대열 끝에서 병장의 숨은 반대로 멈춰 있었다⁠.

*

밤 열한 시⁠, 병장이 견사에 들어와 하네스를 채웠다⁠. 털모자 밑에서 병장의 이마에 땀이 배어 있었다⁠. 영하 18도였다⁠. 땀이 날 날씨가 아니었다⁠.

“⁠야간 훈련이다⁠. 상황실에도 그렇게 말했어⁠.⁠”

병장의 등에 멘 작은 가방에서 보온병이 출렁거렸다⁠. 뜨거운 물 냄새가 났다⁠. 병장은 순찰로를 타지 않고 철책에서 조금 떨어진 덤불 사이로 비탈을 올랐다⁠. 철모의 줄을 평소보다 짧게 쥐었다⁠.

끝 초소는 비어 있었다⁠. 사고가 난 이튿날부터 성진은 끝 초소의 경계를 옆 초소로 합쳤다⁠. 사고 난 초소라 당분간 비운다고 했다⁠. 모래주머니 벽 안쪽이 캄캄했다⁠. 철모는 초소 앞에 닿자마자 코를 들었다⁠. 초소 안의 어둠에서 은단 냄새가 났다⁠. 아주 옅었다⁠. 철모는 귀를 초소 안으로 세우고 병장을 올려다보았다⁠.

“⁠왜⁠. 뭐 있어⁠?⁠”

병장은 손전등을 켜지 않았다⁠. 달빛만으로 덮인 자리를 찾아 무릎을 꿇었다⁠. 보온병 뚜껑을 열고 뜨거운 물을 흙 위에 천천히 부었다⁠. 김이 확 올랐다⁠. 언 흙이 물을 받으며 작게 터지는 소리를 냈다⁠. 피와 화약이 김을 타고 단번에 올라왔다⁠. 철모는 앞발로 땅을 쳤다⁠.

“⁠기다려⁠.⁠”

병장이 남은 물을 다 부었다⁠. 그러고는 철모의 하네스 등 손잡이를 놓았다⁠.

“⁠철모⁠. 찾아⁠.⁠”

찾아는 안다⁠. 몸이 먼저 안다⁠. 철모는 팠다⁠. 녹은 흙이 앞발 사이로 진흙이 되어 튀었다⁠. 한 뼘⁠, 다시 한 뼘⁠. 흙이 다시 얼기 시작한 자리에서 발톱 끝에 딱딱한 것이 닿았다⁠. 둥글고 작고⁠, 화약이 가장 진한 것⁠. 철모는 주둥이를 흙에 박고 앞니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놋쇠는 차가웠고 쓴맛이 났다⁠. 철모는 물고 나와 병장 앞에 앉았다⁠. 등을 펴고 귀를 세우고 한 번 짖었다⁠. 그리고 병장의 손바닥에 놋쇠를 내려놓았다⁠.

병장은 손바닥을 펴고 오래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마디만 한 탄피 한 알이었다⁠. 달빛이 놋쇠 입구에 고였다⁠. 병장은 손바닥을 코에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사람 코로도 맡을 수 있을 만큼 화약이 남아 있었다⁠. 병장의 숨이 한 번 멈췄다가 터졌다⁠.

“⁠씨⁠…⁠. 진짜네⁠.⁠”

병장은 가방에서 매듭 수건을 꺼내 철모 앞에 흔들었다⁠. 철모는 수건을 물고 당겼다⁠. 병장도 당겼다⁠. 병장은 당기면서 울고 있었다⁠. 당기는 힘이 자꾸 빠졌다⁠. 철모는 병장이 지는 척을 하는 줄 알고 더 세게 당겼다⁠.

“⁠잘했어⁠. 잘했어⁠, 철모⁠.⁠”

“⁠그래⁠. 잘했다⁠.⁠”

초소 안의 어둠이 말했다⁠.

*

성진은 모래주머니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손전등을 켜지 않았고⁠, 은단만 씹었다⁠. 철모는 수건을 놓고 낮게 엎드렸다⁠. 병장은 탄피를 쥔 주먹을 등 뒤로 감췄다⁠. 감춘다고 냄새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사흘째 여기 앉아 있었다⁠. 누가 올 줄 알았다⁠. 너일 줄은 몰랐다⁠.⁠”

검은 베레모가 달빛 밖으로 나왔다⁠. 성진은 일어나 병장 앞에 섰다⁠.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다⁠.

“⁠군견병⁠. 숫자 하나 말해 줄게⁠. 백십이⁠. 우리 중대 인원이다⁠. 총기 사고로 올라가면 백십이 명 휴가가 석 달 묶인다⁠. 소대장 셋하고 행정보급관하고 나⁠, 다섯이 징계 받는다⁠. 그건 괜찮아⁠. 나는 괜찮다⁠.⁠”

“⁠중대장님⁠.⁠”

“⁠끝까지 들어⁠. 일병 아버지가 건설 현장 일용직이다⁠. 겨울에는 일이 없다⁠. 수사로 넘어가면 공상 판정은 수사 끝나고 나온다⁠. 가해자가 있는 사고는 일 년 걸린다⁠. 그동안 치료비는 그 집이 낸다⁠. 계단에서 미끄러진 걸로 두면 다음 주에 판정 나오고 이번 달부터 다 나간다⁠. 나는 그 애 다리를 먼저 붙이고 싶다⁠.⁠”

“⁠상병은요⁠. 그냥 둡니까⁠?⁠”

“⁠다음 달 전출이다⁠. 다시는 총 안 잡는 자리로 보낸다⁠. 내가 그렇게 만든다⁠.⁠”

“⁠사단장 조카라서 그러시는 거 아닙니까⁠? 중대장님 올해 진급 심사⁠…⁠.⁠”

성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철모는 성진의 목덜미를 맡았다⁠. 아주 작은 땀이 솟았다가 바람에 식었다⁠. 거짓말의 땀이라기에는 너무 작았고⁠, 아무 냄새도 아니라기에는 분명히 있었다⁠.

“⁠진급은 이번에 안 돼도 된다⁠.⁠”

“⁠제가 신고하면요⁠.⁠”

“⁠신고해⁠. 네 권리다⁠. 너는 전역하고 집에 간다⁠. 일병은 일 년 동안 제 돈으로 다리를 고친다⁠. 중대원 백십이 명은 봄까지 집에 못 간다⁠. 상병은 사단장 조카라서 변호사가 붙는다⁠. 그리고 철모는 반납된다⁠. 사고 현장을 훼손한 군견이라고 누가 한 줄만 올려도 끝이다⁠.⁠”

병장의 주먹이 등 뒤에서 떨렸다⁠. 철모는 병장의 다리에 몸을 붙였다⁠. 병장의 다리도 떨렸다⁠.

“⁠지난봄에⁠.⁠”

병장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제 어머니 수술 날⁠. 밤 열 시에 전화 받고 우는데⁠, 중대장님이 중대장님 차로 터미널까지 태워 주셨습니다⁠. 휴가증은 다음 날 아침에 끊어 주셨고요⁠.⁠”

“⁠그 얘기 하려는 거 아니다⁠.⁠”

“⁠압니다⁠.⁠”

성진이 손을 내밀었다⁠. 장갑을 벗은 맨손이었다⁠.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와 성진의 손바닥 냄새를 철모에게 실어 왔다⁠. 은단⁠, 손전등 쇠⁠, 그리고 사흘 동안 어둠 속에서 쥐고 있었던 무엇⁠. 겁이었다⁠. 우두머리의 손바닥에서도 겁이 났다⁠. 철모는 처음 알았다⁠.

“⁠줘⁠.⁠”

병장은 오래 서 있었다⁠. 철책 너머 저쪽 초소에서 확성기 같은 것이 지직거리다가 꺼졌다⁠. 병장이 주먹을 앞으로 내밀어 폈다⁠. 탄피가 성진의 손바닥으로 굴러갔다⁠. 성진은 탄피를 야전 상의 왼쪽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안에서 은단 통과 놋쇠가 부딪쳐 작게 울렸다⁠.

철모는 소리가 난 자리를 보았다⁠. 덮인 흙은 열렸고⁠, 열린 것은 다시 우두머리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묻은 자리가 땅에서 옷으로 옮겨 갔을 뿐이었다⁠.

“⁠철모는 오늘부터 내 방에서 잔다⁠.⁠”

“⁠군견은 견사에서 재우게 돼 있습니다⁠.⁠”

“⁠규정은 내가 본다⁠. 너는 전역 준비해⁠.⁠”

성진이 철모의 줄을 받았다⁠. 병장의 손에서 줄이 빠져나가는 동안 철모는 병장을 올려다보았다⁠. 병장은 철모를 보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매듭 수건을 주워 털고⁠, 철모의 하네스 등에 끼워 주었다⁠.

“⁠잘 자라⁠.⁠”

*

중대장실은 좁았다⁠. 책상 하나⁠, 야전 침대 하나⁠, 철제 사물함 하나⁠. 냄새는 많았다⁠. 구두약⁠, 서류 종이⁠, 다 식은 커피⁠, 그리고 책상 맨 아래 서랍⁠. 철모는 들어서자마자 서랍 앞에 앉았다⁠. 등을 펴고 귀를 세우고 코끝을 서랍 손잡이에 겨눴다⁠. 찾았다는 표시였다⁠.

성진이 서랍을 내려다보았다⁠. 철모는 한 번 짖었다⁠.

“⁠…초코파이다⁠.⁠”

성진은 서랍을 열어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 남은 것이 셋이었다⁠.

“⁠이건 안 돼⁠. 개는 초콜릿 먹으면 죽어⁠.⁠”

안 돼는 안다⁠. 철모는 귀를 눕혔다⁠. 성진은 초코파이 상자를 사물함 위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야전 상의를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었다⁠. 왼쪽 주머니가 의자 위에서 철모의 코 높이에 늘어졌다⁠. 철모는 주머니를 보았다⁠. 성진은 철모가 무엇을 보는지 보았다⁠.

“⁠너는 네 일을 했다⁠. 나도 내 일을 한다⁠.⁠”

철제 사물함 문틈에서는 오래된 털실 냄새가 새어 나왔다⁠. 늙은 여자의 손이 오래 쥐고 뜬 털실이었다⁠. 끝 초소에서 성진이 일병의 허벅지에 감아 준 목도리와 같은 냄새였다⁠. 목도리는 일병과 함께 국군병원으로 내려갔고⁠, 사물함에는 털실 부스러기 냄새만 남아 있었다⁠. 철모는 사물함 문에 코를 대고 한참 숨을 끊어 맡았다⁠. 낯선 냄새였다⁠. 이 막사의 누구에게서도 맡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불이 꺼졌다⁠. 철모는 책상 밑에 엎드렸다⁠. 우두머리의 굴은 처음이었다⁠. 무리의 개들은 우두머리의 굴에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가면 서열이 바뀌거나 쫓겨난다⁠. 철모는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냥 들어왔다⁠.

새벽 두 시에 책상 위 전화가 울렸다⁠. 성진이 야전 침대에서 튕기듯 일어났다⁠. 내복 바람으로 수화기를 들고⁠, 수화기를 든 채 허리를 폈다⁠. 어둠 속에서도 허리 펴는 소리가 났다⁠. 철모는 책상 밑에서 귀를 세웠다⁠. 수화기 너머에서 늙고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말은 알아듣지 못했다⁠. 목소리가 무엇을 하는지는 알았다⁠. 성진의 허리를 펴게 하고 있었다⁠.

“⁠네⁠, 사단장님⁠. …네⁠. 낙상입니다⁠. …네⁠. 일병은 괜찮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성진은 수화기를 내려놓고도 한참 서 있었다⁠. 내복 바람으로⁠, 허리를 편 채로⁠. 철모는 책상 밑에서 우두머리를 올려다보았다⁠. 무리의 맨 위에는 성진이 있는 줄 알았다⁠. 성진 위에도 무엇이 있었다⁠. 목소리만 있고 냄새가 없는 무엇이었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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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읽기2026.10.31· 3화

    당기기 싸움에서 지는 척하는 것까지가 상이었다는 대목에서 울컥했어요.

    • 강여울작가2026.10.31

      철모가 배운 건 꺼내면 누군가 기뻐한다는 거였어요. 놋쇠 한 알을 꺼낸 밤에는 아무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놋쇠 한 알 · 수색 군견 셰퍼드 철모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