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95자)
철망 밑
수색 군견 셰퍼드 철모 · 강여울
아침 밥은 취사병이 가져왔다. 취사병의 앞치마에서는 새벽 네 시부터 끓인 콩나물국과 기름 먹은 행주 냄새가 났다. 막사 서열 두 번째 자리의 냄새였다. 철모는 꼬리를 흔들며 철망 앞에 붙었다가 멈췄다. 짚 위에 있어야 할 건빵이 없었다.
옆 칸의 말리노이즈가 앞발을 모으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코끝에 건빵 부스러기가 묻어 있었다.
“뭐야, 철모 건빵을 안 먹었다고? 병장님, 얘 어디 아파요?”
“안 아파.”
“철모가 건빵을 안 먹으면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건데.”
병장은 대답하지 않고 밥그릇을 받아 철모 앞에 놓았다. 병장의 눈 밑에서 잠 못 잔 사람의 기름 냄새가 났다. 취사병은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엄지로 밀었다.
“어젯밤 일병 계단에서 굴렀다면서요. 근데 이상하지 않아요? 삼 초소 애들이 탕 소리 들었다던데. 중대장님은 지뢰라고 하시고.”
“지뢰겠지.”
“뉴스 보세요. 국방부 장관이 총기 사고 숨기면 지휘관까지 다 날린대요. 무관용이래. 저 같으면 무서워서라도 숨기겠다.”
취사병이 웃었다. 병장은 웃지 않았다. 철모는 밥을 반만 먹고 고개를 들었다. 말리노이즈가 남은 밥을 보며 침을 삼키는 소리가 철망 너머에서 들렸다.
*
열 시가 되자 막사 앞으로 지프 한 대가 올라왔다. 엔진이 식는 냄새에 낯선 사람 냄새가 섞여 있었다. 대대에서 온 조사관이라고 했다. 행정보급관이 달려 나가며 복도에서 소리쳤다.
“군견병! 중대장님이 말리노이즈 데리고 끝 초소로 오래!”
병장이 견사로 들어와 말리노이즈의 줄을 쥐었다. 말리노이즈는 꼬리를 하늘 높이 세우고 철모의 철망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순찰은 서열이 높은 개가 나간다. 말리노이즈는 오늘 처음으로 위가 되었고, 꼬리 끝까지 그렇게 알렸다.
병장은 견사 문을 닫기 전에 철모를 돌아보았다.
“미안하다. 시키는 대로 하는 거야.”
문이 닫혔다. 지프 소리가 비탈 위로 올라가고, 끝 초소 방향에서 사람 넷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끊겨 내려왔다. 철모는 철망을 따라 견사 바깥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마당 바닥은 흙이었고 겨울 내내 돌처럼 얼어 있었다. 한 귀퉁이만 달랐다. 말리노이즈가 날마다 오줌을 누는 귀퉁이였다. 서리가 덜 앉았고, 앞발로 긁자 흙이 부슬부슬 일어났다.
철모는 팠다. 앞발 둘을 번갈아 내리꽂고, 파낸 흙은 뒷다리 사이로 차 냈다. 손이 하는 일이 개에게는 앞발이 하는 일이다. 발톱 하나가 언 돌에 걸려 젖혀졌고 피가 한 방울 배었다. 철모는 멈추지 않았다. 철망 밑에 머리 하나가 들어갈 틈이 생기자 어깨를 비틀어 밀어 넣었다. 등털이 철망 끝에 긁혀 뽑혔다. 뒷다리가 빠져나오는 순간 몸이 가벼워졌다.
견사 모퉁이를 돌자 행정보급관이 종이컵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믹스커피 냄새가 먼저 왔다. 철모가 옆을 스쳐 지나가자 행정보급관은 “어어” 하며 뒷걸음질 쳤고, 뒷걸음질 친 발이 철모가 판 구덩이에 빠졌다. 종이컵이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았다. 커피는 전부 행정보급관의 바지에 쏟아졌다.
“이, 이 개새끼가! 거기 안 서!”
철모는 서지 않았다. 막사 서열 맨 끝의 명령이었다.
*
끝 초소 앞 계단에서 조사관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조사관에게서는 차 히터에 오래 쬔 외투와 볼펜 잉크 냄새가 났다. 성진은 조사관 곁에 서서 계단의 얼음을 손전등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 세 번째 단이 제일 미끄럽습니다. 일병이 이 단에서 발을 헛디뎠고, 아래 철조망 말뚝에 허벅지가 긁혔습니다.”
“어젯밤 순찰견이 저 개입니까?”
조사관이 볼펜으로 말리노이즈를 가리켰다. 말리노이즈는 병장 옆에 앉아 꼬리를 세우고 있었다.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군견병하고 같이 제일 먼저 올라왔습니다.”
병장의 목덜미에서 찬 땀이 솟았다. 철모는 비탈 끝에서 이 땀 냄새를 맡았다. 다섯 해 동안 수많은 사람을 찾으며 배운 냄새였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서도 나고, 거짓말 옆에 서 있는 사람에게서도 나는 냄새였다.
철모는 계단 앞을 지나쳤다. 조사관의 무릎 옆을 지나고 성진의 군화 앞을 지나서, 어젯밤 군화가 세 번 밟은 자리로 곧장 갔다. 눈이 얇게 덮여 있었다. 눈 밑에서 새 흙과 피와 화약이 한데 엉겨 올라왔다. 철모는 앞발을 내리꽂았다.
“뭐야, 저 개는?”
“다른 군견입니다. 철모. 견사에 있어야 할 놈인데.”
“왜 저기를 팝니까?”
성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철모는 발톱이 젖혀진 앞발로 계속 팠다. 눈이 흩어지고 새 흙이 드러났다. 언 땅 위에 덮은 흙이라 손바닥 한 뼘은 쉽게 파였다. 한 뼘 아래부터는 다시 돌처럼 얼어 있었다. 발톱이 언 흙에 미끄러지며 긁히는 소리가 났다.
“군견병. 철모 잡아.”
병장이 다가와 하네스 손잡이를 쥐었다. 병장의 손이 떨렸다. 조사관이 일어나 파인 자리 앞에 쪼그려 앉아 흙을 손끝으로 집어 비벼 보았다.
“흙이 새것이네요.”
“어젯밤 덮었습니다.”
조사관이 고개를 들었다. 성진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낮고 고르게 이어졌다.
“일병을 들것에 올리기 전에 여기 눕혀 놓고 지혈했습니다. 피가 꽤 흘렀습니다. 아침에 교대 들어오는 애들이 그거 보면서 경계 서는 거, 보기 안 좋아서 제가 덮었습니다.”
“계단에서 미끄러졌는데 피는 여기 있고요.”
“계단에서 끌어올려 여기 눕혔으니까요.”
조사관은 흙을 털고 초소 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모래주머니 벽, 언 바닥, 기대 놓은 야전삽.
“옆 초소 애들 둘이 총소리를 들었다고 하던데요.”
“지뢰 소리입니다. 비무장지대 안에서 멧돼지가 밟았습니다. 저쪽 초소에도 불이 켜졌습니다. 관측 기록에 남아 있을 겁니다.”
“군단에서도 지뢰 터진 자리를 확인하겠답니다. 대대장님은 낙상으로 정리하자고 하시고요.”
“정리해 주십시오. 일병 치료비부터 나가야 합니다.”
조사관은 한참 성진을 보았다. 성진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철모는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맡았다. 조사관의 숨에서는 의심이 났고, 성진의 숨에서는 아무것도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나지 않는 숨은 다섯 해 동안 처음 맡아 보았다. 사람은 거짓말을 할 때 땀을 흘린다. 성진은 땀을 흘리지 않았다. 성진은 제 말을 믿고 있었다.
*
조사관의 지프가 내려가자 성진이 병장 앞으로 왔다. 철모는 병장의 다리 뒤에 엎드려 있었다.
“철망 밑을 팠다고?”
“행정보급관님이 빠지셨습니다.”
“다친 데는.”
“바지만 젖으셨습니다.”
성진의 입꼬리가 조금 움직였다가 돌아왔다. 성진은 쪼그려 앉아 철모의 젖혀진 발톱을 손으로 들어 보았다. 손에서 오늘은 은단과 손전등 쇠 냄새만 났다. 어젯밤의 흙은 비누에 씻겨 나갔다.
“한 번만 더 끝 초소에 올라오면 반납이다. 훈련소로 돌아간 일곱 살 개는 다시 안 나온다. 너도 알지.”
“압니다.”
“그럼 됐다.”
성진은 일어나서 비탈을 내려갔다. 말리노이즈가 꼬리를 내리고 철모 곁으로 와서 코를 맞댔다. 철망이 없는 데서 코를 맞대는 것은 처음이었다. 말리노이즈의 코끝은 차가웠고 아직 건빵 냄새가 났다.
*
오후에 병장은 철모를 트럭 짐칸에 태우고 대대 의무실로 내려갔다. 젖혀진 발톱 때문이었다. 의무실 문을 열자 소독약과 요오드와 끓인 보리차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냄새들 밑바닥에 어젯밤의 피가 있었다. 일병의 피였다. 철모의 코가 바닥을 따라 진료대 아래까지 갔다가 구석의 철제 쓰레기통 앞에서 멈췄다.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데도 피 냄새가 통 안쪽 벽에 배어 있었다.
의무병이 철모의 앞발을 붙잡고 요오드를 발랐다. 철모는 이를 꽉 물고 참았다. 참은 대가로 병장이 건빵 한 알을 내밀었다. 철모는 받았다. 병장의 손에서는 피도 화약도 나지 않았다.
“너 이거 먹으면 나랑 화해한 거다.”
철모는 두 번 씹고 삼켰다.
“일병은 국군병원 갔지?”
병장이 묻자 의무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에 바로 후송했어요. 다리는 괜찮대요. 근데 이상한 게, 중대장님이 일병 방한복을 직접 챙겨 가셨어요. 피범벅이라 태운다고. 원래 그런 건 저희가 버리거든요.”
병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의무병이 붕대를 감으며 덧붙였다.
“아침에 사단장님이 대대장님한테 직접 전화하셨대요. 일병 괜찮냐고. 사단장님이 병사 한 명한테 전화하는 거 저 처음 봐요.”
붕대가 다 감기자 철모는 쓰레기통으로 다시 코를 돌렸다. 병장이 줄을 짧게 감아쥐었다. 병장의 손바닥이 차가워졌다. 중대로 돌아와 짐칸에서 내렸을 때 병장은 연병장 끝 소각장 굴뚝을 오래 쳐다보았다.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지 않았다. 연기는 나지 않았는데, 바람이 소각장 위로 불어올 때마다 젖은 재 냄새 속에서 무언가 털실 같은 것이 타다 만 냄새가 섞여 왔다.
*
밤에 견사 문이 조용히 열렸다. 향수 냄새가 문틈으로 먼저 들어왔다. 상병이었다. 오른손에 소시지 두 개를 들고 있었다. 매점에서 파는 비닐 껍질 소시지였다. 상병은 철모의 철망 앞에 쪼그려 앉아 소시지 껍질을 이로 뜯었다.
“먹어. 응? 먹어.”
철모는 먹지 않았다. 철모는 상병의 몸을 읽었다. 무릎이 철모보다 낮았고, 소시지를 쥔 손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왔다. 개의 무리에서 아래에서 올라오는 먹이는 서열이 낮은 개가 높은 개에게 바치는 먹이다. 상병은 철모 밑으로 들어오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상병의 손바닥에서는 비누 냄새가 났고, 비누 밑에서 어젯밤의 화약이 아직 빠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너 뭐 봤어? 아무것도 못 봤지? 너 개잖아. 개가 뭘 알아.”
상병이 주머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향수였다.
“개 코는 이거 뿌리면 망가진다던데.”
상병이 병을 철망 사이로 넣고 짚 위에 두 번 눌렀다. 꽃을 백 송이쯤 끓여 졸인 것 같은 냄새가 견사를 덮쳤다. 철모는 재채기를 했다. 한 번, 두 번, 다섯 번. 옆 칸의 말리노이즈도 재채기를 시작했다. 개 두 마리가 번갈아 재채기를 하는 사이로 견사 문이 다시 열렸다.
“너 여기서 뭐 해.”
병장이었다. 상병이 벌떡 일어나 소시지를 등 뒤로 감췄다.
“병장님. 그냥, 철모 간식 좀….”
“향수는 간식이야?”
병장이 상병의 멱살을 쥐었다. 상병은 놀라지 않았다. 웃었다. 비굴한 웃음이었고, 웃음 밑에서 겁이 쇠 냄새로 났다.
“병장님 아흐레 남으셨죠. 조용히 나가세요. 저희 삼촌이 전화 한 통 하면 전역 날짜도 바뀐다던데요.”
“너 어젯밤에 쐈지.”
“전 일병 부축했습니다. 중대장님이 그렇게 보고하셨습니다.”
“네가 쐈잖아.”
“치시면 폭행입니다, 병장님.”
병장의 주먹이 상병의 멱살을 쥔 채 오래 떨렸다. 철모는 재채기를 멈추고 낮은 소리를 끌었다. 물러서라. 상병은 개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소리가 나는 방향은 알아들었다. 병장이 손을 놓자 상병은 소시지를 짚 위에 떨어뜨리고 나갔다.
병장은 한참 견사 바닥에 앉아 있었다. 물에 적신 수건으로 철모의 코를 닦았다. 다 닦고 나서 수건을 비틀어 매듭을 지었다. 찾으면 받는 수건이었다. 철모의 귀가 쫑긋 올라갔다.
“아직 아니야.”
병장이 매듭 수건을 철모의 앞발 사이에 놓고, 하네스 버클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버클이 작게 딸깍거렸다.
“철모. 내일 밤에 같이 가 보자. 야간 훈련이다.”
말리노이즈가 짚 위에 떨어진 소시지를 바라보았다. 철모는 소시지를 앞발로 밀어 철망 밑으로 넘겨주었다. 오늘은 짚 한 줌의 빚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