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883자)
덮인 자리
수색 군견 셰퍼드 철모 · 강여울
견사의 짚에서 남의 냄새가 났다. 저녁 밥때가 지나고 철모가 물그릇에 코를 박은 사이, 옆 칸의 말리노이즈가 철망 밑으로 앞발을 밀어 넣어 짚을 한 줌 끌어간 것이었다. 털이 짧은 말리노이즈는 겨울마다 추웠고, 추운 개는 염치가 없었다. 철모는 철망 앞으로 가서 꼬리를 등보다 높이 들었다. 짚도 서열도 이쪽이 위라는 말이었다. 말리노이즈는 꼬리를 똑같은 높이로 들어 받았다. 철모가 목 깊은 데서 낮은 소리를 끌었다. 물러서라. 말리노이즈는 콧김을 짧게 두 번 뿜고, 끌어간 짚 위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개끼리는 이렇게 말한다. 꼬리 높이로 줄을 세우고 귀와 콧김으로 뜻을 보탠다. 사람은 이 말을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한다.
사람의 줄은 냄새와 소리로 매겼다. 다섯 해 동안 맡아 정한 막사의 줄 맨 위에는 중대장이 있었다. 중대장이 복도를 지나가면 막사 안에서 허리 펴는 소리가 한꺼번에 났다. 전투복 천이 등에서 팽팽해지는 소리, 군홧발이 모이는 소리. 다음 자리는 취사병이었다. 사람들은 취사병의 계급이 낮다고들 했지만, 철모의 밥그릇을 채우는 손은 취사병의 손이었다. 지난가을 대대장이 와서 머리를 쓰다듬고 갔을 때 철모는 꼬리를 반만 흔들었다. 대대장의 손에서는 밥 냄새가 안 났다.
견사 문이 열리고 병장이 들어왔다. 병장의 냄새는 다섯 해 동안 바뀐 핸들러 넷 가운데 가장 단순했다. 건빵, 개털, 구두약. 지난주부터 하나가 늘었다. 손등에 바른 낯선 로션이었다. 철모는 이 냄새를 안다. 앞의 핸들러 셋도 떠나기 열흘쯤 전부터 손등에서 이 냄새를 풍겼다. 사람은 떠나기 전에 냄새부터 바꾼다.
“가자, 철모. 오늘도 끝까지 찍고 오자.”
가자는 안다. 철모가 짚을 털고 일어나자 병장이 백열등 밑에서 등을 한 번 쓸어내렸다. 검은 안장을 얹은 것 같은 등털 위로 손이 지나가자 황갈색 다리와 배에 붙은 짚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철모는 크게 곧추선 두 귀를 앞으로 모으고 검은 주둥이를 내밀었다. 털모자를 눌러쓴 병장이 국방색 하네스를 등에 얹고 가슴 밑으로 끈을 채웠다. 버클이 딸깍 물리자 철모의 갈색 눈이 문을 보았다. 하네스를 차면 일하는 시간이다. 병장은 오른쪽 주머니를 두드렸다. 비닐이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세상에 비닐 소리는 많다. 비옷, 라면 봉지, 행정보급관의 믹스커피. 건빵 봉지만은 다르다. 구겨지는 소리 안에서 마른 것들이 서로 부딪쳐 자잘하게 구른다. 철모는 다른 막사 지붕 밑에서 나는 소리도 가려냈다. 귀가 저절로 주머니를 향해 돌아갔다.
말리노이즈가 철망에 코를 대고 콧김을 짧게 끊었다. 네가 나가면 짚은 전부 내 것이라는 뜻이었다.
*
밤 열한 시의 철책은 쇠 냄새부터 났다. 녹슨 철조망이 영하 20도에 얼어 콧속을 긁었고, 쇠 밑으로 언 흙과 마른 억새가 깔려 있었다. 철모는 코를 땅에 낮추고 콧구멍 두 개를 따로 썼다. 왼쪽 콧구멍에 든 냄새와 오른쪽 콧구멍에 든 냄새가 조금씩 달랐고, 둘이 어긋나는 만큼이 길을 가리켰다. 멧돼지 한 마리가 어제 새벽 철책 밑을 따라 서쪽으로 갔다. 고라니는 오늘 저녁 순찰로를 건넜다.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올 때마다 한 겹이 더 왔다. 철책 너머 저쪽 초소에서 때는 생나무 연기와 묵은 콩기름, 사람 몇의 땀이었다.
“열흘이다, 철모.”
병장이 장갑 낀 손가락을 펴 보였다. 철모는 손가락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병장이 손가락을 펼 때마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걸음이 가벼워진다는 것만 알았다.
“열흘 밤만 더 돌면 나 집에 간다. 너 다음 형 오는 거 알지? 내가 다 말해 놨어. 건빵은 하루 세 알. 네 알 주면 살쪄서 철조망 밑을 못 기어.”
건빵이라는 소리에 철모의 엉덩이가 언 흙에 철썩 내려앉았다. 병장이 걸음을 멈추고 내려다보았다.
“아니, 지금 주는 게 아니라.”
철모는 귀를 세우고 꼬리로 흙을 쓸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건빵 얘기를 한 거지, 건빵을 준다는 게….”
꼬리가 더 빨라졌다. 병장이 하얀 입김을 길게 뿜고 주머니에서 봉지를 꺼냈다.
“너 이거 다음 형한테 하면 안 된다. 다음 형은 나처럼 무르지 않아.”
건빵은 차가웠고 고소했다. 철모는 한 알을 두 번 씹었다. 병장은 별사탕을 하나 꺼내 제 입에 넣었다. 철모는 별사탕을 먹어 본 적이 없다. 단 냄새가 났지만 병장은 별사탕만은 한 번도 나눠 주지 않았다.
초소마다 냄새가 고여 있었다. 경계를 서는 병사 둘의 컵라면 국물, 핫팩의 쇳가루, 졸음을 참느라 씹은 껌. 끝 초소까지 비탈이 남았을 때 철모의 코가 위로 들렸다. 끝 초소의 냄새가 평소와 달랐다. 향수였다. 이 막사에서 향수를 뿌리는 사람은 상병 하나뿐이었다. 사단장의 조카라고들 하는 상병이었다. 철모는 사단장이라는 소리를 모른다. 사단장 소리가 나면 사람들 목소리가 조금 작아진다는 것만 안다.
소리가 먼저 귀를 쳤다.
마른 나뭇가지를 무릎에 대고 꺾는 소리를 백 배로 키운 소리였다. 철모의 배가 땅에 붙었다. 사격장에서 수없이 들은 소리였다. 사격장에서는 이 소리가 줄지어 났고 앞에 표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한 번뿐이었다. 산이 소리를 받아 두 번 돌려보냈다. 철책 너머 저쪽 초소에 불이 하나 더 켜졌다.
“뭐야. 야, 뭐야, 지금.”
병장이 뛰었다. 철모는 줄보다 먼저 뛰었다. 비탈을 반쯤 올랐을 때 바람이 냄새를 실어 내렸다. 화약이었다. 화약 밑에 피가 있었다.
*
끝 초소는 모래주머니로 벽을 쌓은 작은 방이었다. 앞에서 교통호로 나무 계단이 내려갔고, 계단 위 언 흙바닥에 일병이 누워 있었다. 일병은 두 손으로 오른쪽 허벅지를 움켜쥐고 있었다. 방한 바지가 찢겼고, 찢긴 자리에서 김이 올랐다. 피는 언 땅 위에서도 한동안 따뜻했다. 따뜻한 피에서는 쇠를 핥은 맛 같은 냄새가 났다.
상병은 모래주머니 벽에 등을 붙이고 총을 쥐고 있었다. 이가 딱딱 부딪쳤다. 상병의 냄새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사제 향수, 컵라면, 그리고 방금 솟은 땀. 손바닥에서 동전을 오래 쥔 것 같은 쇠 냄새가 났다. 겁에 질린 사람의 손바닥 냄새였다.
“총 내려. 총 내리라고!”
상병이 총구를 땅에 떨어뜨리듯 내렸다. 철모는 상병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등을 펴고, 코끝을 상병의 손에 겨누고, 한 번 짖었다. 찾았다는 표시였다. 화약 냄새가 나는 사람 앞에서 앉으면 병장은 언제나 수건을 던져 주었다. 오늘은 아무도 수건을 던지지 않았다. 병장은 일병 곁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언덕 위에서 손전등 불빛이 흔들리며 내려왔다. 불빛보다 냄새가 먼저 닿았다. 은단, 구두약, 손전등 손잡이의 찬 쇠. 철모의 귀가 뒤로 눕고 꼬리가 낮아졌다. 무리의 우두머리였다.
“다들 움직이지 마.”
손전등 불빛 뒤로 검은 베레모가 보였다.
중대장 탁성진은 소리치지 않았다. 소리치지 않아도 초소 안의 허리가 다 펴졌다. 땅에 누운 일병까지 고개를 들려고 했다. 성진은 일병 곁에 쪼그려 앉아 손전등을 허벅지에 비추고, 제 목도리를 풀어 찢긴 자리에 감아 눌렀다.
“스쳤다. 뼈는 괜찮아. 숨 쉬어. 천천히.”
일병의 숨이 조금 느려졌다. 성진이 고개를 들어 병장을 보았다.
“군견병, 진입로 차단기까지 뛰어. 구급차는 거기까지밖에 못 올라와. 의무병이랑 들것 들고 올라와.”
“철모는….”
“두고 가. 개 끌고 저 비탈 못 뛴다.”
성진이 철모의 줄을 받아 초소 앞 나무 기둥에 감았다. 병장의 발소리가 비탈 아래로 멀어졌다. 발소리가 사라지자 바람 소리만 남았다.
*
성진은 먼저 상병의 손에서 총을 받아 모래주머니에 기대 놓았다. 상병이 무릎을 꿇었다.
“중대장님, 장난이었습니다. 진짜 장난이었는데, 갑자기…. 저희 삼촌한테는….”
“입 다물어.”
목소리가 낮을수록 무리는 더 조용해진다. 상병의 입이 닫혔다. 성진은 손전등을 바닥에 내려 비췄다. 일병이 누웠던 자리에 검은 얼룩이 넓게 번져 있었고, 얼룩 가장자리에 손가락 마디만 한 놋쇠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놋쇠는 아직 뜨거워서 닿은 자리의 언 흙을 녹이며 실 같은 김을 올렸다. 철모의 코가 놋쇠를 향해 들렸다. 화약이 가장 진한 자리였다.
성진은 초소 벽에 세워 둔 야전삽을 들었다. 눈을 치울 때 쓰는 삽이었다. 교통호 가장자리에 짚 거적을 덮어 둔 흙더미가 있었고, 거적 밑의 흙은 덜 얼어 있었다. 성진은 흙을 퍼서 얼룩 위에 던졌다. 한 삽, 두 삽. 놋쇠를 삽날로 밀어 얼룩 한가운데 흙 속에 묻고, 묻은 자리에 다시 흙을 덮었다. 그러고는 군화로 밟았다. 왼발, 오른발, 다시 왼발. 마지막으로 계단 옆에 쌓인 눈을 손으로 긁어 흩뿌렸다.
철모는 이 일을 안다. 개도 한다. 다 먹지 못한 뼈가 있으면 견사 뒤 흙에 묻고 코로 흙을 밀어 덮는다. 묻는 것은 아끼는 것이다. 나중에 배고플 때 꺼내 먹으려고 묻는다. 무리의 우두머리가 무리의 피와 뜨거운 놋쇠를 아껴 묻었다. 철모는 줄을 당겨 묻은 자리로 코를 밀었다. 얼마나 깊은지, 다른 짐승이 맡을 수 있는지 알아야 했다. 묻은 것은 지키는 것까지가 일이었다.
“안 돼.”
안 돼는 안다. 철모의 앞발이 공중에서 멈췄다. 성진이 다가와 하네스 등 손잡이를 쥐었다. 성진의 손에서 피와 화약과 방금 판 흙이 한꺼번에 났다. 우두머리의 눈은 손전등 불빛 너머에서 철모를 오래 보았다. 철모는 귀를 눕히고 엎드렸다. 엎드리면서도 코는 흙더미를 놓지 않았다.
성진이 상병에게 돌아섰다.
“잘 들어. 오늘 밤 너는 아무것도 안 쐈다.”
“네?”
“비무장지대 안에서 멧돼지가 지뢰를 밟았다. 소리는 그거다. 일병은 순찰 돌다 언 계단에서 미끄러져서 철조망 말뚝에 허벅지를 긁혔다. 너는 일병을 부축해서 올렸다. 다시 말해 봐.”
상병이 더듬더듬 따라 했다. 성진은 일병에게 가서 얼굴을 가까이 댔다.
“들었지. 넌 미끄러졌다. 그래야 네 치료비가 다음 주부터 나온다. 총기 사고로 올라가면 수사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안 나와. 일 년이 될 수도 있어. 요즘은 총 사고 하나에 중대 하나를 통째로 엎어. 너희 동기들 휴가도 다 묶여.”
일병은 입술을 깨물었다가 놓았다.
“…네.”
“사단장님께는 내가 보고한다.”
상병의 이가 다시 부딪치기 시작했다. 철책 너머 저쪽 초소의 불빛 두 개 가운데 하나가 꺼졌다.
*
들것이 올라왔다. 의무병 둘이 일병을 들것에 옮기는 동안 병장은 철모의 줄을 풀었다. 병장의 눈이 계단 옆을 지나갔다. 성진이 기대 놓은 야전삽 날에 젖은 흙이 붙어 있었다.
“중대장님.”
“말해.”
“아까 그거 총소리였습니다. 제가 들었습니다. 철모도 들었습니다.”
“지뢰다. 대대에도 그렇게 보고했다.”
병장은 모래주머니에 기댄 총을 보았다가 상병을 보았다. 상병은 들것 손잡이를 쥐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성진이 병장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은단 냄새가 진해졌다.
“군견병. 너 열흘 남았지?”
“…네.”
“개 데리고 내려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철모는 세 번 뒤를 돌아보았다. 세 번째 돌아보았을 때 병장이 줄을 짧게 감아쥐었다. 병장의 손바닥에서도 쇠 냄새가 났다.
새벽 한 시가 넘어 견사 문이 다시 열렸다. 성진이었다. 말리노이즈가 짚 위에서 벌떡 일어나 꼬리를 낮췄다. 성진은 철모의 철망 앞에 쪼그려 앉아 야전 상의 주머니에서 건빵 봉지를 꺼냈다. 비닐이 구겨지는 소리, 안에서 마른 것들이 구르는 소리. 철모의 귀가 저절로 돌아갔다. 성진이 건빵 한 알을 철망 사이로 내밀었다.
손가락 끝에 건빵이 있었고, 건빵 밑에 피와 화약과 흙이 있었다. 철모는 고개를 돌렸다. 다섯 해 만에 처음으로 건빵을 받지 않았다.
말리노이즈가 철망에 코를 붙이고 숨을 멈췄다. 성진은 한참 건빵을 내밀고 있다가 짚 위에 내려놓았다. 뒤에 서 있던 병장에게 말했다.
“내일부터 철모는 초소 순찰에서 뺀다. 말리노이즈로 돌려.”
“철모가 끝 초소를 제일 잘 압니다.”
“그러니까 뺀다.”
문이 닫혔다. 건빵 한 알이 짚 위에서 식어 갔다. 철모는 앞발에 턱을 얹고 코를 북쪽으로 두었다. 끝 초소의 흙 밑에서 놋쇠가 식는 냄새는 이 견사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철모는 날이 밝을 때까지 코를 돌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