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094자)

기관부 반파

고철 구축함 함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 문가온

「사하르」의 함교에서 자르는 「지리」에서 떼어 온 송신기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다. 수송선 「아라 2호」의 신호를 흉내 내던 상자였다. 용접 자국이 거칠었고, 한쪽 모서리에 누가 매직으로 작게 써 놓은 글씨가 있었다. 미안.

그는 상자를 부함장에게 건넸다.

“반나절이다. 반나절을 빈 배 하나에 썼어.”

“함장님, 화가 나셨습니까?”

“아니. 즐거워. 서른 해 만에 그 배한테 졌으니까.”

자르는 관문 쪽 화면을 보았다. 연방 호위함 두 척이 제3관문을 향해 마지막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치악」과 「내장」이었다. 그 두 척이 넘어가면 제3관문 앞의 연방 함대가 모두 모인다. 모인 함대가 집으로 넘어가기 전에 그는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전 함대, 「치악」을 따라 넘는다. 그 고철 배는 맨 뒤에 있을 거다. 이번에는 정중하게 굴 필요 없다.”

*

「치악」이 고리를 빠져나왔다. 함수가 반쯤 녹아 있었다. 그 뒤로 「내장」이 나오려는 순간 고리 안이 크게 일렁였다. 검은 배들이 「내장」의 함미에 바짝 붙어 한꺼번에 넘어오고 있었다.

윤소이가 식별 신호를 읽어 내려갔다. 목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내장」 뒤에 하나, 둘, 넷, 여섯. 「사하르」. 아홉 척이에요, 함장님. 아홉 척!”

“「내장」 빠져나올 때까지 몇 분이요?”

“고리 안에 「내장」 함미가 아직 걸려 있어요. 이 분이요.”

“이 분이면 돼요. 소희 씨, 고리 정면으로 붙여 주세요. 「금강」은 왼쪽에 서 달라고 하고요.”

탁소희가 이를 악물고 조종간을 밀었다. 「한라」가 관문 고리 바로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고리에서 넘어오는 배들이 가장 먼저 「한라」를 보게 되는 자리였다. 「금강」이 그 왼쪽에 거대한 몸을 세웠다. 오택균이 통신을 열지도 않고 포탑 열둘을 한꺼번에 돌렸다.

“포술장님, 「내장」 뒤에 붙은 첫 배요. 센서 기둥부터요.”

“알고 있습니다.”

구민혁이 쏘았다. 고리 안에서 막 머리를 내밀던 검은 호위함의 센서 기둥이 꺾여 나갔다. 눈을 잃은 배는 고리 안에서 방향을 못 잡고 비틀거렸고, 뒤따르던 배가 그 배의 함미를 들이받았다. 고리 안쪽에서 소리 없는 불빛이 두 번 번졌다. 「내장」은 그 틈에 고리를 빠져나와 「치악」 곁으로 달려갔다.

“「내장」 빠졌어요!”

“전 함대 도약 충전 언제 시작해요?”

“「백두」가 신호 줘야 해요. 아직이요.”

*

「사하르」가 고리를 빠져나왔다. 그 배는 「한라」의 세 배쯤 되었고, 검은 선체에 하얀 고리 문양이 크게 그려져 있었다. 머리를 내밀자마자 함수의 주포가 「한라」를 향해 돌았다. 그와 동시에 「한라」의 화면 가득 자르가 나타났다.

“한 함장님. 「지리」는 잘 받았습니다. 송신기에 미안하다고 써 놓으셨더군요.”

“제가 쓴 거 아니에요. 피재우 일병이 썼어요.”

“그 일병에게 전해 주십시오. 사과는 받았다고.”

자르의 얼굴에는 아까의 정중한 웃음이 없었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대신 오래 미뤄 둔 일을 끝내러 온 사람처럼 피곤해 보였다.

“비켜 주십시오. 제가 원하는 건 「한라」가 아닙니다.”

“「백두」요?”

“함장님. 하 사령관이 정말로 집에 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이 팔걸이를 쥐었다. 화면 한쪽에서 「백두」의 불빛이 함대 한가운데에 조용히 떠 있었다. 도약 신호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건 사령관님이 정할 일이에요. 제가 정할 건 이 고리 앞이고요. 여기는 제가 막아요.”

“그럼 막아 보십시오.”

화면이 꺼지는 것과 「사하르」의 주포가 불을 뿜는 것이 같은 순간이었다.

*

첫 포탄은 「금강」이 받았다. 오택균이 「한라」 앞으로 순양함의 옆구리를 밀어 넣었다. 「금강」의 측면 장갑이 우그러지며 하얀 불꽃이 쏟아졌고, 「금강」의 포탑 열둘이 그 불꽃 사이로 일제히 응사했다. 「사하르」 앞쪽의 검은 호위함 하나가 산산조각이 났다.

“「금강」 측면 장갑 관통, 화재 발생! 그래도 쏘고 있어요!”

“오 대령님 콧수염 괜찮으시려나.”

탁소희가 중얼거리며 「한라」를 「금강」의 그늘에서 반쯤 빼냈다. 구민혁이 다시 쏘았다. 「사하르」의 포탑 하나가 날아갔다. 「사하르」가 몸을 비틀며 「한라」 쪽으로 주포를 다시 맞췄다.

둘째 포탄은 「한라」가 받았다.

배 뒤쪽 절반에서 무언가가 터졌다. 소리는 선체를 타고 왔다. 둔하고 무거운 소리가 바닥에서 올라와 이를 울렸다. 함교 조명이 한 번 꺼졌다가 비상등으로 바뀌었다. 다온의 몸이 의자에서 튀어 올랐다가 안전띠에 걸려 돌아왔다. 반쪽 중력이 흔들렸다. 앞쪽 코일 하나 남은 것이 힘겹게 버티는 소리가 바닥 밑에서 들려왔다.

“기관실! 기관실 응답해요!”

스피커에서 잡음만 났다. 그러다 봉수의 목소리가 찢어지듯 들어왔다.

“기관부 반이 날아갔소! 왼쪽 엔진 죽었고, 오른쪽만 살았어. 불이 났소, 화물칸 쪽으로 번져!”

“정비장님 다치셨어요?”

“팔 하나 데었소. 엔진은 안 데었으니 괜찮아!”

화물칸에는 「지리」 승조원 일흔하나가 아직 그물에 매달려 있었다. 다온이 감시 화면을 돌렸다. 기관실과 화물칸 사이 복도에 연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무중력 속의 불은 위아래가 없이 동그랗게 부풀며 퍼졌다. 그 사이로 누군가 손잡이를 잡고 몸을 끌며 기관실 쪽으로 가고 있었다. 피재우였다.

“재우 씨, 돌아와요!”

피재우는 통신기를 귀에 꽂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숨차게 들어왔다.

“기관실하고 화물칸 사이 격벽이요. 자동이 죽었어요. 수동으로 닫아야 해요. 정비장님은 팔 다치셨고, 제가 제일 가까워요.”

“격벽 손잡이는 기관실 쪽에 있어요. 닫으면 재우 씨가 그쪽에 남아요.”

“알아요. 정비장님이 저번에 가르쳐 주셨어요. 함장 가둘 때 쓰는 문이라고요.”

화면 속에서 피재우가 격벽 앞에 닿았다. 그는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몸을 벽에 버티었다. 무중력에서는 힘을 줄 데가 없었다. 그는 발을 격벽 틀에 걸고 몸을 활처럼 휘었다. 연기가 그의 등 뒤로 몰려왔다.

“함장님, 화분이요. 식당 창가에 두고 왔어요. 물 한 방울씩이요. 반만 줘도 돼요.”

격벽이 닫혔다. 화물칸 쪽 감시 화면에서 연기가 끊겼다. 「지리」 승조원들이 그물에 매달린 채 닫힌 격벽을 보았다. 기관실 쪽 화면은 하얀 연기만 가득했다.

다온은 화면을 보았다. 팔걸이를 쥔 손가락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함교의 누구도 하지 않았다. 구민혁이 다음 포탄을 장전하는 소리만 났다.

그 소리가 중간에 끊겼다. 포탑 스피커에서 구민혁이 처음으로 욕을 했다.

“장전기 죽었습니다. 탄약고에서 올라오는 승강기가 전기를 못 받습니다. 포탑에 남은 건 네 발입니다.”

다온은 감시 화면을 탄약고로 돌렸다. 탄약고는 앞쪽 절반의 맨 아래, 식당 바로 밑에 있었다. 포탄은 거기 그대로 쌓여 있었다. 포탑까지 사다리로 세 층이었다. 반쪽 중력에서 포탄 하나는 어른 하나가 겨우 안아 드는 무게였다.

그녀는 그 거리를 셌다. 탄약고에서 식당, 식당에서 함교 복도, 복도에서 포탑 사다리. 사람이 한 걸음씩 서면 서른 명이면 닿았다. 그녀의 셈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보급창에서 상자를 옮길 사람이 모자라던 날, 그녀는 줄을 세웠다.

“「지리」 함장님, 들리세요?”

화물칸 스피커에서 「지리」 함장의 목소리가 즉시 돌아왔다.

“듣고 있습니다.”

“승조원 서른 명만 빌려주세요. 노란 선 앞으로 와서 탄약고부터 포탑까지 한 줄로 서 주세요. 포탄을 손에서 손으로 넘기는 거예요.”

“사람 사슬이요?”

“네. 승강기가 죽었으니 사람이 승강기를 해요.”

「지리」 승조원들이 그물을 풀었다. 그들은 노란 선을 넘어 앞쪽 절반으로 들어오자마자 무릎을 너무 세게 펴서 천장에 머리를 박았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들은 머리를 박은 채로 손잡이를 잡고 자리를 찾아 섰다. 식당 바닥에 누워 있던 「설악」 부상자 중에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이 그 줄 사이사이로 끼어들었다. 탄약고 문이 열렸다.

첫 포탄이 손에서 손으로 넘어갔다. 반쪽 중력이라 포탄은 들어 올리면 조금 떴고, 다음 사람이 그것을 받아 안았다. 넘길 때마다 누군가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지리」 함장이 맨 위 사다리 끝에서 포탑 해치로 포탄을 밀어 넣었다.

“포탄 받았습니다.”

구민혁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리고 그는 쏘았다.

*

“「백두」에서 신호요! 전 함대 도약 충전 시작!”

윤소이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고리 테두리의 경고등이 차례로 켜졌다. 이십 분. 배들이 고리 앞에 줄을 섰다. 맨 앞에 「치악」과 「내장」, 그 뒤로 「덕유」와 「오대」, 「속리」 「가야」 「월출」, 「설악」을 끄는 「금강」, 수송선 셋. 그리고 맨 뒤에 「백두」와 「한라」.

“「백두」가 왜 맨 뒤예요?”

탁소희가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기함은 원래 줄 한가운데에 서야 했다.

기관실에서 봉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숨이 거칠었다. 기관실 반대편 문으로 정아린이 들어가 그를 꺼낸 모양이었다. 의무관의 목소리가 뒤에서 섞여 들려왔다.

“가만 계세요! 화상 젤 바르는 중이에요. 마지막 세 통 중에 하나예요. 침대 밑에 숨겨 놓은 거요!”

“그런 걸 숨겼어?”

“함장님도 아세요!”

봉수가 짧게 웃었다. 웃음이 기침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그가 물었다.

“재우는?”

다온은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 봉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알았소.”

그 한마디 뒤로 스피커가 한동안 조용했다. 그리고 봉수가 다시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단단했다.

“오른쪽 엔진은 살아 있소. 충전은 할 수 있어. 이십 분 버티면 넘어가.”

*

「사하르」가 다시 주포를 돌렸다. 이번에는 「한라」가 아니었다. 주포는 「한라」를 지나쳐, 줄 맨 뒤에 선 「백두」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멈췄다. 쏘지 않았다.

다온은 그것을 보았다. 자르의 주포가 「백두」 앞에서 멈추는 것을. 그 짧은 정적 동안 「백두」의 포탑들도 「사하르」를 향해 돌지 않았다.

윤소이가 수신기를 누른 채 얼어붙었다.

“함장님. 「백두」가 열린 채널 아닌 주파수로 통신 중이에요. 이경수 소령님이 말한 그거요. 암호가 우리 것이 아니에요.”

“어디하고요?”

윤소이가 화면을 돌렸다. 수신처의 위치가 붉은 점으로 떠올랐다. 「사하르」였다.

도약 충전 십구 분 전이었다. 화물칸 쪽 감시 화면에서 「지리」 승조원 하나가 닫힌 격벽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식당 창가의 화분에서 잎 두 장이 반쪽 중력에 흔들렸다.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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