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042자)
열두 번째
고철 구축함 함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 문가온
도약 충전이 끝나기까지 십구 분이 남아 있었다. 제3관문 고리는 안쪽부터 천천히 하얗게 달아올랐고, 그 앞에 늘어선 배들의 선체마다 고리의 빛이 비스듬히 걸쳤다. 멀리서 보면 불빛 열네 개가 한 줄로 고리를 향해 서 있었다. 줄 맨 끝의 두 개만 서로 크기가 많이 달랐다. 하나는 크고 하얬고, 하나는 작고 세 가지 색이었다.
다온은 함장석에서 「백두」를 불렀다. 응답이 오기까지 사십 초가 걸렸다.
화면에 하범준이 떴다. 사령관실이 아니라 「백두」의 함교였다. 그의 등 뒤로 「백두」 장교들이 각자 자리에서 일어선 채 화면을 보고 있었다. 함교는 넓고 조용했고, 경보등 하나 돌지 않았다.
“한 소령. 충전 중이다. 짧게.”
“「사하르」하고 통신하고 계시죠. 지금도요.”
하범준의 뒤에 선 장교 몇이 서로를 보았다. 하범준은 돌아보지 않았다.
“통신장이 또 귀를 댔군.”
“이번엔 뒷문으로 안 들어갔어요. 그냥 들렸어요. 사령관님 주파수가 「한라」 바로 옆이라서요.”
“그렇다면 숨길 것 없지. 협상이다. 함대가 넘어가면 「백두」는 여기 남는다. 자르와 휴전 조건을 맞춘다.”
“그럼 왜 맨 뒤에 서셨어요? 협상은 함대 한가운데서도 할 수 있잖아요.”
하범준이 처음으로 대답을 늦췄다. 화면 너머 「백두」 함교에서 누군가 마른기침을 했다. 다온은 그 기침이 누구의 것인지 보지 못했다. 다만 하범준 뒤에 선 젊은 중위 하나가 자기 자리의 화면을 손으로 가리는 것을 보았다.
“한 소령. 자네 임무는 함대를 데려가는 거다. 열하나를 데려가. 「백두」는 내 일이야.”
“제가 받은 명령은 함대를 살려서 데려오라는 거였어요. 열둘이요. 「백두」도 함대예요.”
“그 명령을 내린 게 나다. 그러니 내가 고친다.”
십이 분이 남았다.
*
「치악」이 먼저 고리로 들어갔다. 함수가 녹은 배가 하얀 빛 속으로 머리부터 잠겼고, 꼬리까지 사라지는 데 사 초가 걸렸다. 그 뒤로 「내장」, 「덕유」가 이어졌다. 「덕유」가 고리에 잠기는 순간 포탑 스피커에서 구민혁이 숨을 코로 길게 내쉬었다. 그 숨이 끝나기 전에 「오대」가 따라 들어갔다.
「속리」 「가야」 「월출」은 「백두」 곁에서 떨어지는 것을 잠깐 머뭇거렸다. 「백두」의 신호가 세 배를 앞으로 밀었다. 세 배가 차례로 고리에 잠겼다.
「금강」이 「설악」을 끌고 고리 앞에 섰다. 측면 장갑이 우그러진 채로 아직 연기가 새고 있었다. 오택균이 통신을 열었다. 화면 속 그의 콧수염 한쪽이 그을려 있었다.
“한 소령. 「금강」은 넘어간다. 제2관문에서 기다리겠다.”
“대령님, 콧수염이요.”
“알고 있다. 집에 가서 다시 기를 거다. 자네도 집에 와서 그 녹두색 판을 다시 칠하게.”
「금강」과 「설악」이 고리에 잠겼다.
수송선 셋이 남았다. 「아라 1호」, 「아라 2호」, 그리고 옆구리에 해바라기를 그린 「아라 3호」. 박순임이 통신을 열었다. 그녀 뒤에서 아이들이 냄비 뚜껑을 일제히 두드리고 있었다.
“함장님, 꽃분이 잘 부탁하오.”
“제2관문에서 돌려드릴게요.”
“안 받소. 걔는 이제 군인이오. 사료값은 연방이 대시오.”
그 말과 함께 「아라 3호」가 고리 속으로 들어갔다. 해바라기가 마지막으로 빛을 받아 반짝이다 사라졌다.
윤소이가 화면을 보며 셌다. 그녀는 셀 때마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소백」, 「금강」, 「설악」, 「지리」, 「덕유」, 「오대」, 「속리」, 「가야」, 「월출」, 「치악」, 「내장」. 열하나요. 「지리」는 껍데기 두고 사람만 데려왔지만요.”
“그것도 세요.”
“세고 있어요. 처음부터 셌어요.”
사 분이 남았다. 고리 앞에는 「백두」와 「한라」만 남았다.
*
“한 소령. 넘어가게. 마지막 명령이다.”
“사령관님 먼저요.”
“자네는 맨 뒤를 맡았다. 맨 뒤가 먼저 가는 법은 없지. 그런데 지금은 내가 맨 뒤다.”
다온은 「백두」를 보았다. 「백두」의 포탑은 하나도 「사하르」를 향하지 않았다. 고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사하르」와 셀 연합 배 일곱 척이 서 있었는데, 그 배들의 포도 「백두」를 향하지 않았다. 두 함대가 서로를 겨누지 않은 채 마주 서 있는 모양을 그녀는 처음 보았다. 싸움터라기보다 누가 누구를 마중 나온 자리 같았다.
“사령관님. 제가 처음에 「한라」 받던 날 하신 말씀 기억하세요? 고철에 포탄은 아깝다고요.”
“기억한다.”
“그 고철이 지금 열하나를 데려왔어요. 사령관님도 데려갈 수 있어요. 오른쪽 엔진 하나면 견인줄 걸 힘은 있어요.”
하범준이 화면을 오래 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무언가가 내려앉았다. 지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다온은 알 수 없었다. 그는 반듯한 군복 깃을 손가락으로 한 번 매만졌다.
“한 소령. 자네는 셈을 잘하지. 그런데 이번 셈은 자네 것이 아니야.”
화면이 꺼졌다.
윤소이가 수신기를 누른 채 소리쳤다.
“「백두」 식별 신호 꺼졌어요! 함대 통신망에서 빠졌어요. 지금 「백두」는 우리 화면에서 그냥 큰 쇳덩어리예요!”
「백두」가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고리 쪽이 아니었다. 거대한 하얀 선체가 고리의 빛을 등지고 「사하르」를 향해 나아갔다. 「사하르」 곁의 검은 배들이 좌우로 벌어지며 길을 냈다. 「백두」가 그 사이로 들어갔다. 검은 배들이 다시 닫히며 「백두」를 둘러쌌다. 호위하는 모양이었다.
함교의 넷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탁소희의 손이 조종간 위에서 떨렸다. 구민혁은 포탑에서 조준 화면을 「사하르」에 맞춰 놓고 손가락을 방아쇠 옆에 둔 채 움직이지 않았다.
“쏩니까?”
“쏘면 「백두」 승조원도 맞아요.”
“예.”
그는 손가락을 거두었다.
*
「사하르」에서 열린 채널이 아닌, 「한라」 하나만 향한 통신이 들어왔다. 자르였다. 그의 등 뒤 창으로 「백두」의 하얀 선체가 가깝게 보였다.
“한 함장님. 오늘은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한라」를 쫓을 까닭이 이제 없습니다.”
“사령관님하고 무슨 약속을 하셨어요?”
“그것은 함장님 의회가 물을 겁니다. 곧.”
자르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아까보다 조금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솥 앞에 선 사람한테 전해 주십시오. 문은 이번에 제가 잠그지 않았다고요. 그리고 그 배를 고철장에 보내지 마십시오.”
“그건 의회가 정해요.”
“그럼 의회에 가서 싸우십시오. 함장님은 그쪽이 더 어울릴 겁니다.”
통신이 끊겼다. 일 분이 남았다.
기관실에서 봉수의 목소리가 났다. 오른팔에 붕대를 감았는지 말끝마다 숨이 걸렸다.
“함장님. 오른쪽 엔진 충전 끝났소. 넘어갈 수 있어.”
다온은 「백두」가 사라진 쪽을 보았다. 검은 배들 사이로 하얀 불빛 하나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오른쪽 엔진 하나로는 쫓아갈 수 없었다. 쫓아가면 「한라」에 탄 사람 전부가 그 검은 배들 사이로 같이 들어갔다. 그녀는 숫자를 세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숫자를 오래 보지 않았다.
“정비장님.”
“말하시오.”
“이번엔 제때 갈게요.”
스피커가 잠깐 조용했다.
“그러시오. 이번엔 늦지 마시오.”
“도약해요, 소희 씨.”
귀가 먹먹해졌다. 입안의 쇠 맛이 짙어졌다. 배 전체가 한 번 접혔다가 펴졌다.
*
소래 기지의 정비 도크에 「한라」가 묶인 것은 그날 밤이었다. 왼쪽 엔진은 통째로 녹아 있었고, 함미의 녹두색 판에는 구멍이 났고, 「한」 자의 긁힌 받침 위로 새 그을음이 덮였다. 도크 직원들이 배를 보러 나왔다가 아무도 먼저 말을 하지 못했다.
먼저 넘어간 함선 열하나는 도크 바깥 정박 고리에 줄지어 묶여 있었다. 「금강」의 포탑 열둘이 일제히 「한라」 쪽으로 돌아 있었는데, 오택균이 그렇게 시킨 모양이었다. 포를 거꾸로 든 경례였다.
기관실 격벽을 연 것은 봉수였다. 그는 붕대 감은 팔로 손잡이를 돌렸고, 아무도 대신 돌리게 하지 않았다. 피재우는 격벽 바로 안쪽에 있었다. 손잡이를 끝까지 잠근 자세 그대로, 두 손이 아직 손잡이에 걸려 있었다. 「지리」 승조원 일흔하나가 화물칸에서 줄을 지어 나와 그가 실려 나가는 복도 양쪽에 섰다. 그들은 노란 선 너머의 마지막 손잡이까지 한 사람씩 서서, 그가 지나갈 때 손을 들어 이마에 댔다. 기지가 돌며 걸어 준 무게 때문에 그 손은 반쪽 중력에서처럼 높이 튀어 오르지 않았다.
다온은 식당 창가에 갔다. 화분은 거기 있었다. 싸움 내내 흔들린 탓에 흙이 화분 가장자리 밖으로 조금 흘러 창틀에 묻어 있었고, 잎 두 장은 아직 붙어 있었다. 피재우가 손바닥으로 그러모아 다시 담던 흙이었다. 다온은 창틀의 흙을 손가락으로 쓸어 화분 안에 넣었다. 그러고는 물병을 기울여 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물방울은 흙 위에 동그랗게 앉아 잠깐 머물다가 천천히 스몄다. 그녀는 한 방울을 더 떨어뜨리려다 멈추었다. 반만 줘도 된다고 했다.
등 뒤에서 꽃분이가 그녀의 바지 자락을 씹었다. 봉수가 붕대 감은 팔로 솥을 조리대 고리에 다시 걸고 있었다. 찌그러진 자리 옆에 새 자국이 하나 더 생겨 있었다. 「사하르」의 포탄이 들어왔을 때 날아가 기관실 문짝에 부딪힌 자국이라고 했다.
“그 문짝은 이제 경첩도 문짝도 다 새로 해야겠소.”
“제가 구해 올게요. 보급창에 아는 사람이 있어요.”
“함장님이 그 아는 사람 아니오?”
그때 윤소이가 식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손에 판을 들고 있었고, 얼굴이 하얬다.
“함장님. 사령부 말고요. 의회요. 지구 연방 의회 국방위원회에서 직접 왔어요.”
다온이 판을 받았다. 맨 위에 발신자가 적혀 있었다. 연방 의회 국방위원 최경란. 그 아래 짧은 글이 있었다.
「한라」 함장 한다온 소령은 이레 안에 지구 연방 의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다. 묻는 것은 하나다. 제7함대 기함 「백두」는 왜 돌아오지 않았는가.
그 아래 한 줄이 더 있었다.
출석 전까지 「한라」의 고철 매각 절차를 멈춘다.
다온은 판을 내려놓았다. 식당 안에 승조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탁소희, 구민혁, 정아린, 그리고 「지리」에서 넘어온 몇 명이 아직 돌아가지 않고 식탁에 앉아 있었다. 봉수가 국자를 들고 솥 앞에 섰다. 솥 안에서 국이 끓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한라」는 수리를 받으려고 기지 안쪽의 회전 도크에 들어가 있었고, 기지가 도는 힘이 배 앞뒤에 고르게 무게를 걸어 주었다.
“밥부터 먹읍시다.”
봉수가 말했다.
“의회는 밥 먹고 가도 안 없어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