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85자)
그림자 뒤에 숨기
고철 구축함 함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 문가온
「한라」의 포탑은 함교 위, 선체 등에 혹처럼 붙어 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사람 하나가 겨우 앉을 좌석과 조준 화면이 있었고, 천장의 둥근 창으로 별이 보였다. 구민혁은 그 좌석 옆에 서서 다온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반쪽 중력이 여기까지는 약하게 닿아서, 그의 발뒤꿈치가 바닥에서 조금씩 떴다 가라앉았다.
“여기 와서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함교에선 못 하겠어서요.”
“듣고 있어요.”
“「덕유」에 제 딸이 탑니다. 구하은 하사, 스물넷. 포탑 하나 날아간 그쪽이요. 하은이는 그 포탑 담당이었습니다. 살았는지 어제서야 알았습니다.”
다온은 그가 지난 이틀 「덕유」를 오래 보던 얼굴을 떠올렸다. 숨을 코로 내쉬는 소리가 유난히 잦던 날들이었다.
“사령관님 명령대로 하면 수송선은 동쪽으로 가고 자르는 그쪽을 뭅니다. 그사이 「덕유」는 제3관문으로 넘어갑니다. 명령을 거부하면 자르는 군함 쪽을 뭅니다. 「덕유」는 포탑이 하나뿐이고 기울어져서 제일 먼저 맞습니다.”
“네.”
“그리고 연금이 날아갑니다. 저는 그 돈으로 고향 행성에 식당을 하나 열 생각이었습니다. 하은이가 주방을 맡고, 저는 계산대에 서고요. 십오 년 모았습니다.”
구민혁은 그 말을 하며 다온을 똑바로 보았다. 그의 눈에는 원망이 아니라 셈이 있었다. 다온은 그 셈을 알아보았다. 그녀가 기관실 문 앞에서 백열과 마흔하나를 나란히 놓던 셈이었다.
“상사님. 저는 수송선을 미끼로 안 보내요. 대신 미끼를 하나 따로 만들 거예요.”
“무엇으로요?”
“「지리」요. 버려진 배요. 수송선 셋의 식별 신호를 「지리」에 달아서 동쪽으로 밀어 보낼 거예요. 자르의 눈에는 수송선 셋이 동쪽으로 가는 걸로 보이게요.”
구민혁의 눈썹이 꿈틀했다.
“진짜 수송선은요?”
“「한라」 뒤에 숨겨요. 관문 불빛을 등지고 한 줄로 세우면 앞에서는 「한라」 하나만 보여요. 소희 씨가 경주에서 쓰던 거래요.”
“자르가 속지 않으면요?”
“그럼 군함이 다 같이 맞아요. 그래서 하나 약속할게요. 도약 순서에서 「덕유」를 맨 앞에 세울게요. 충전이 끝나는 순간 제일 먼저 넘어가요. 「한라」는 맨 뒤에 남고요.”
구민혁은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장 창 너머로 별이 천천히 흘렀다. 「한라」가 자세를 고치느라 조금씩 몸을 돌리고 있었다. 그가 손바닥으로 조준 화면의 먼지를 문질렀다. 화면 구석에 손때 묻은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사령관 얼굴 사진이었다. 표적에 붙였다가 징계받은 바로 그 사진이었는데, 이마 한가운데에 구멍이 나 있었다.
“이거 떼야겠습니다.”
“왜요?”
“오늘은 진짜를 쏴야 하니까요. 연습 표적 붙이고 쏘면 손이 헷갈립니다.”
그는 사진을 떼어 접어서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좌석에 앉아 안전띠를 맸다.
“연금은 날아가도 손은 남습니다. 식당은 손으로 하는 거니까요.”
*
「지리」를 미끼로 만드는 데 사십 분이 걸렸다. 윤소이가 수송선 셋의 식별 신호를 복사해 송신기 세 개에 넣었고, 우주복을 입은 승조원들이 그 송신기를 「지리」 선체에 용접했다. 「지리」의 엔진은 죽어 있었다. 탁소희가 「한라」로 「지리」의 함미를 들이받듯 밀어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주었고, 봉수는 그 순간에 맞춰 출력을 끝까지 올렸다가 내렸다.
“구십이오. 거기까지요.”
「한라」의 함수가 「지리」의 함미를 밀어냈다. 쇠와 쇠가 맞닿는 소리가 선체 전체로 울렸고, 「지리」는 조용히 동쪽 어둠으로 미끄러져 갔다. 「지리」 함장이 「한라」 식당 창 앞에 서서 제 배가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눈썹에 밥알이 붙어 있던 그 함장이었다. 그는 경례를 하다가 반쪽 중력에 팔꿈치가 너무 높이 올라가 이마를 쳤다.
“가라, 이놈아. 잘 속여라.”
*
수송선 셋을 「한라」 뒤에 세우는 일은 탁소희가 지휘했다. 그녀는 「아라 1호」 「아라 2호」 「아라 3호」의 선장들과 통신을 이어 놓고 운전 학원 강사처럼 소리를 질렀다.
“1호, 좌로 삼 미터! 아니요, 선장님 왼쪽 말고 제 왼쪽이요!”
“우주에 왼쪽이 어딨어!”
박순임이 「아라 3호」에서 받아쳤다.
“제가 왼쪽이라고 하면 왼쪽이에요! 2호, 너무 붙었어요. 1호 엉덩이 박아요. 박으면 저처럼 빚쟁이 돼요!”
수송선 셋이 「한라」 꽁무니에 한 줄로 붙었다. 관문 고리의 빛이 「한라」 앞쪽에서 비쳤고, 「한라」의 그림자가 수송선 셋 위로 길게 드리워졌다. 윤소이가 앞쪽 탐지 화면을 보며 말했다.
“앞에서 보면 「한라」 하나요. 조금 뚱뚱한 「한라」요.”
“뚱뚱한 건 우리 배가 늙어서 그렇다고 해 두죠.”
다온은 관문 앞으로 함선들을 불러 세웠다. 맨 앞에 「덕유」, 그 뒤에 「설악」을 끄는 「금강」, 맨 뒤에 「한라」와 그 그림자. 「금강」의 오택균은 순서를 듣자마자 통신을 열어 따졌다.
“순양함이 호위함 뒤에 서라고? 사령부 명령은 어떻게 할 건가?”
“사령부 명령은 수송선을 동쪽으로 보내라는 거였죠. 보냈어요. 대령님 화면에도 동쪽으로 가는 수송선 셋이 보이시잖아요.”
오택균이 화면을 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화면에도 「지리」에 달린 신호 셋이 수송선으로 떠 있었다.
“충전 들어갑니다. 이십 분 걸려요.”
*
십육 분이 남았을 때 동쪽 화면에서 검은 점들이 움직였다. 숨어 있던 셀 연합 함대가 「지리」의 신호를 향해 꼬리를 물었다. 윤소이가 그 점들을 셌다.
“여섯, 일곱, 여덟. 「사하르」도 있어요. 동쪽으로 가요!”
함교에서 누군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구민혁인지 탁소희인지 알 수 없었다.
십일 분이 남았을 때 관문 고리가 일렁였다. 도약 충전 중인 관문으로 누군가 반대편에서 넘어오고 있었다. 윤소이가 신호를 읽었다.
“「오대」요! 제7함대 호위함! 뒤에 둘 붙었어요. 셀 연합 호위함 둘이요!”
「오대」가 관문을 빠져나오자마자 함미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 뒤를 따라 나온 검은 호위함 둘이 「오대」를 향해 포를 돌렸다. 그 둘은 「사하르」의 본대와 따로 움직이던 배들이었다. 그들의 화면에는 관문 앞에 모인 연방 함선 넷이 그대로 보였다.
“포술장님.”
“예.”
“이번엔 쏘세요. 아끼지 말고요.”
구민혁이 포탑에서 대답 대신 첫 발을 쏘았다. 「한라」의 포가 쉰두 해 묵은 소리를 냈다. 낡은 포신이 반동을 받는 진동이 함교 바닥까지 내려왔다. 첫 발은 검은 호위함의 센서 기둥을 정확하게 꺾었다. 둘째 발은 그 배의 엔진 덮개를 찢었다. 셋째 발은 다른 한 척의 포탑을 날렸다.
“명중, 명중, 명중!”
윤소이가 의자에서 들썩였다. 포탑 스피커에서 구민혁의 목소리가 아주 담담하게 들려왔다.
“사진 떼니까 잘 맞습니다.”
검은 호위함 둘이 머리를 돌려 관문 고리로 도망쳤다. 「오대」가 비틀거리며 「한라」 옆으로 붙었다. 「오대」의 함장은 숨이 찼다.
“감사합니다. 저희, 줄 어디에 서면 됩니까?”
“「덕유」 바로 뒤에요. 다친 배가 앞에 서요.”
칠 분이 남았다. 데려온 함선, 여섯.
「아라 3호」에서 통신이 들어왔다. 박순임이었다. 그녀 뒤로 화물칸의 소란이 그대로 들려왔다. 아이 우는 소리, 냄비 뚜껑 소리, 그리고 그 사이를 뚫고 나오는 염소 서른 마리의 울음.
“함장님, 방금 쾅쾅 한 거 우리 쪽이오?”
“저희가 쏜 거예요. 다 끝났어요.”
“그럼 됐고. 우리 꽃분이 그쪽에 있소? 애들이 꽃분이 어디 갔냐고 난리요.”
다온이 함교 뒤쪽 감시 화면을 보았다. 노란 선 너머 화물칸에서, 꽃분이가 「지리」 승조원 하나의 바짓단을 물고 둥둥 떠 있었다. 바지 임자는 그물에 매달린 채 바지를 지키느라 필사적이었다.
“있어요. 잘 먹고 있어요. 남의 바지를요.”
박순임이 웃었다. 그러다 웃음을 거두고 화면을 똑바로 보았다.
“함장님. 아까 우리가 동쪽으로 갈 뻔했다는 말이 우리 배 통신병 귀에 들어왔소. 사실이오?”
다온은 잠깐 망설였다. 이번에는 길지 않았다.
“네. 갈 뻔했어요. 지금은 저희 뒤에 계시고요. 도약하면 같이 넘어가요.”
박순임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면 너머에서 그녀가 뒤를 돌아보고, 화물칸의 칠백 명을 한 번 둘러보는 것이 보였다.
“그럼 이번엔 거짓말이 아니구먼.”
“네. 이번엔요.”
“꽃분이는 거기 두시오. 그 배가 우리 배보다 더 오래 살 것 같으니까.”
*
오 분이 남았을 때 「금강」의 통신이 열렸다. 오택균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는 손에 든 판을 화면 앞으로 내밀었다.
“한 소령. 사령부에서 방금 명령이 왔다. 읽어 주지. 「한라」 함장 한다온 소령은 사령부의 정당한 명령을 거부했으므로 지금부터 지휘권을 잃는다. 「금강」 함장 오택균 대령이 이 집단의 지휘를 넘겨받는다. 「한라」는 「금강」의 지휘 아래 제3관문으로 도약한 뒤 한다온 소령을 구금한다.”
함교가 얼어붙었다. 탁소희의 손이 조종간 위에서 멈췄고, 윤소이는 수신기를 귀에서 뺐다. 포탑 스피커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대령님, 수송선 셋이 지금 「한라」 뒤에 있습니다. 「한라」가 줄에서 빠지면 그림자가 없어져요.”
“알고 있다.”
오택균은 판을 내려놓았다. 콧수염 끝이 조금 떨렸다.
“지휘권은 내가 받았다. 그리고 내가 내리는 첫 명령은 이거다. 도약 순서, 그대로 간다. 「한라」는 맨 뒤에 남아 수송선을 가린다. 구금은 제3관문에서 한다.”
다온은 그를 보았다. 오택균은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콩자반 통조림. 그 컨테이너가 내 것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우리 승조원들이 먹기 싫어서 거기 숨겨 둔 거였더군.”
“맛있게 터졌어요.”
“다음엔 내가 직접 터뜨리지.”
통신이 끊겼다. 이 분이 남았다. 고리 안쪽이 하얗게 달아오르며 공간이 안으로 휘었고, 다온의 고막이 안쪽으로 눌렸다. 그녀는 함장석 팔걸이를 쥐었다.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이 도약 하나만큼 남아 있었다.
“「덕유」 도약.”
윤소이가 그 말을 따라 읽었다. 「덕유」가 고리 속으로 사라졌다. 구민혁의 딸이 탄 배였다. 포탑 스피커에서 처음으로 숨을 코로 내쉬는 소리가 아주 길게 났다.
“「오대」, 「금강」, 「설악」 도약. 수송선 1호, 2호, 3호.”
마지막으로 「한라」가 고리 앞에 섰다. 동쪽 화면 끝에서 「사하르」가 「지리」에 닿았다. 「지리」의 송신기 셋이 한꺼번에 꺼졌다. 자르가 속았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이었다.
“「한라」, 도약.”
다온이 마지막으로 내린 명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