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25자)

미끼 셋

고철 구축함 함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 문가온

명령은 길지 않았다. 다온이 봉인을 풀자 함교 화면에 다섯 줄이 떴고, 윤소이는 습관처럼 그것을 소리 내어 읽다가 셋째 줄에서 목소리를 낮췄다.

호위함 「덕유」가 아라 식민지 피난민을 태운 민간 수송선 셋을 이끌고 제4관문에 닿는다. 「한라」는 수송선 셋을 제4관문의 동쪽 항로로 먼저 보내 자르 함대의 눈을 끈다. 그사이 「금강」 「설악」 「덕유」는 「한라」와 함께 제3관문으로 도약한다. 수송선의 도약 일정은 따로 정하지 않는다. 이 명령은 「한라」 함장만 읽는다.

함교에 있던 넷 중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동쪽 항로는 관문이 없는 길이었다. 거기로 보낸 배는 도약을 못 하고 엔진만으로 달려야 했다. 자르의 함대가 쫓아가면 닿는 데 반나절이면 됐다.

“수송선 도약 일정을 안 정한다는 건요.”

탁소희가 조종간을 놓고 말했다.

“안 돌아온다는 거네요.”

다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명령서 맨 아래에 붙은 숫자를 보고 있었다. 수송선 셋에 탄 사람, 이천백십사. 화면 한쪽에서 「한라」의 수신 기록이 깜빡였다. 봉인을 푼 순간 사령부 쪽에 읽음 표시가 넘어갔다.

*

「덕유」와 수송선 셋은 한 시간 뒤 관문을 넘어왔다. 「덕유」는 「설악」과 같은 급의 호위함이었는데, 한쪽 포탑이 날아가 함체가 기우뚱했다. 그 뒤를 따라 나온 수송선들은 군함과 생김새가 달랐다. 둥근 배 세 척이 줄줄이 붙어 나왔고, 옆구리에는 「아라 1호」 「아라 2호」 「아라 3호」라고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아라 3호」의 옆구리에는 누가 손으로 그린 노란 해바라기도 하나 있었다.

포술 좌석에서 구민혁이 「덕유」를 오래 보았다. 다온이 그쪽을 돌아보자 그는 화면에서 눈을 떼고 숨을 코로 내쉬었다. 그날 그는 다른 날보다 그 소리를 자주 냈다.

“「아라 3호」에 갈게요. 셔틀 준비해 주세요.”

“함장님이 직접요?”

“미끼로 쓰라는 배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봐야죠.”

*

「아라 3호」의 화물칸 문이 열리자 소리가 먼저 덮쳐 왔다. 사람의 말소리, 우는 소리, 냄비 부딪는 소리, 그리고 염소 우는 소리였다. 수송선 안은 원래 광석을 싣는 화물칸이었는데, 그 바닥에 담요와 이불이 빈틈없이 깔려 있었다. 칠백 명이 그 위에 앉거나 누워 있었고, 사이사이 짐 보따리와 냄비와 물통이 쌓여 있었다. 공기는 덥고 눅눅했다. 땀 냄새와 끓인 보리 냄새와 염소 냄새가 한데 엉겨 있었다.

선장은 예순 넘은 여자였다. 박순임이라고 이름을 대고, 다온의 손을 잡아 세게 흔들었다. 손바닥이 사포처럼 거칠었다.

“군함이 데리러 온다더니 이 배요? 우리 배보다 늙었구먼.”

“쉰두 살이에요.”

“우리 배는 마흔아홉이오. 내가 언니네.”

다온이 웃으려는데 무언가가 그녀의 정강이를 들이받았다. 내려다보니 흰 염소 한 마리가 그녀의 바지 자락을 씹고 있었다. 박순임이 염소 목덜미를 붙잡아 끌어냈다.

“꽃분이요. 아라에서 데려온 염소가 서른 마리인데, 얘가 제일 사람을 좋아해.”

“사람 바지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그게 그거요.”

다온은 화물칸 안을 걸었다. 담요 사이로 겨우 발 디딜 데가 있었다. 아이를 안은 남자, 휠체어에 묶인 노인, 우주복 대신 비옷을 껴입은 여자들. 아라는 셀 연합과 연방 사이에 낀 작은 농업 식민지였다. 베가에서 싸움이 터지자 아라의 행정관이 연방으로 피난을 신청했고, 제7함대가 후퇴하는 길에 수송선 셋을 붙여 데려오기로 했다. 그 약속을 한 사람이 하범준이었다.

박순임이 다온 뒤를 따라오며 물었다.

“우리 언제 도약하오? 「덕유」 함장님은 「한라」가 정해 줄 거라던데.”

다온은 화물칸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바로 발밑에서 사내아이 하나가 냄비 뚜껑을 북처럼 두드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 아이가 무엇을 두드리는지 보다가 박순임을 돌아보았다.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박순임의 눈이 다온의 얼굴을 한 바퀴 훑었다. 오래 배를 몬 사람의 눈이었다.

“함장님, 거짓말을 처음 해 보시는구먼.”

“처음은 아니에요.”

“그럼 오랜만이구먼.”

*

돌아오는 셔틀은 탁소희가 몰았다. 셔틀 조종석은 둘이 앉으면 무릎이 계기판에 닿을 만큼 좁았고, 환기구에서 「아라 3호」의 염소 냄새가 아직 빠지지 않고 흘러나왔다. 탁소희는 한 손으로 조종간을 잡고 다른 손으로 코를 막았다.

“함장님 옷에서 염소 냄새 나요.”

“소희 씨 옷에서도 나요.”

“저는 원래 이런 냄새 나요. 경주 끝나면 다들 이랬어요.”

셔틀 창밖으로 「한라」와 수송선 셋이 한 줄로 보였다. 둥근 수송선들은 「한라」보다 컸는데, 관문 불빛이 「한라」 쪽에서 비쳐서 수송선들 위로 「한라」의 그림자가 길게 걸쳐져 있었다. 탁소희가 그것을 턱으로 가리켰다.

“경주할 때 큰 차 바로 뒤에 붙으면 바람을 안 맞아요. 앞에서 보면 차가 하나밖에 안 보이고요. 뒤차는 마지막 바퀴까지 숨어 있다가 튀어나와요. 저 그걸로 두 번 우승했어요.”

“세 번째는요?”

“앞차가 갑자기 서서 그 차 엉덩이에 박았죠. 그래서 빚이 생겼고, 그래서 군대 왔어요.”

다온은 창밖의 그림자를 오래 보았다. 「한라」의 그림자는 수송선 하나를 반쯤 덮고 있었다. 탁소희가 곁눈으로 그녀를 보다가 셔틀을 「한라」의 격납고 쪽으로 틀었다.

“함장님, 지금 셈하시는 얼굴이에요.”

“무슨 얼굴인데요?”

“저게 전투 식량 몇 상자 값인지 세는 얼굴이요.”

*

「한라」 함교로 돌아오자 꽃분이도 같이 와 있었다. 셔틀 화물칸에 숨어 탄 모양이었다. 염소는 노란 선 앞까지 걸어가더니 한 발을 선 너머로 내밀었고, 그대로 둥실 떠올라 네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울었다. 피재우가 달려가 염소를 끌어안았다. 둘은 함께 천천히 천장 쪽으로 떠올랐다.

“함장님! 얘 이름이 뭐예요?”

“꽃분이요. 「아라 3호」 거예요. 돌려줘야 해요.”

“오늘만 재우면 안 돼요? 화분이랑 친구 하게요.”

“염소는 화분을 먹어요.”

피재우가 공중에서 염소를 화분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떼어 놓으려고 버둥거렸다. 그 모습에 함교의 넷이 동시에 웃었다. 그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윤소이의 화면에 사령부 통신 신호가 떴다.

*

하범준은 「백두」의 사령관실에 앉아 있었다. 화면 너머로 보이는 사령관실은 넓고 조용했다. 벽에 걸린 그림 한 점과 정돈된 책상, 찻잔 하나. 「한라」의 함교와는 공기부터 달라 보였다.

“명령을 읽었군.”

“네. 따를 수 없습니다.”

하범준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서두르지 않았다.

“이유는?”

“민간인 이천백십사 명입니다. 비무장이고, 연방이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그 약속은 사령관님이 하셨고요.”

“그래. 내가 했지. 그래서 내가 바꾼다.”

하범준은 찻잔을 내려놓고 화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한 소령. 자네는 셈을 잘하지 않나. 함대 열하나에 승조원이 삼천이야. 수송선 셋에 이천. 자르는 지금 제4관문 근처 어딘가에 숨어서 우리를 물 때를 고르고 있어. 수송선이 동쪽으로 가면 자르는 그쪽을 먼저 문다. 셀 연합은 피난민을 잡으면 협상 거리로 쓰니까 죽이지는 않을 거야. 그 반나절이면 함대가 제3관문에 모인다. 삼천이 이천보다 크지 않나?”

“사령관님. 그 셈에 「한라」는 들어 있습니까?”

“무슨 소리지?”

“제3관문 집결 명령서요. 열이틀째 열여덟 시. 수신처 열한 척에 「한라」는 없었습니다.”

하범준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는 다온의 뒤쪽, 통신 좌석에 앉은 윤소이를 보았다. 윤소이는 고개를 숙이고 화면만 보았다.

“자네 통신장이 또 남의 식당에 들어갔군.”

“식당 메뉴판보다는 덜 맛있는 걸 봤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그 시각을 자르 함장도 압니다. 저한테 직접 말했어요.”

사령관실이 조용해졌다. 하범준은 오래 다온을 보았다. 그러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상 모서리를 한 번 쳤다.

“적의 말을 믿는 건가?”

“적이 맞힌 시각을 믿습니다.”

“그 시각은 함대 안에서 새어 나간 거다. 나도 안다. 그래서 더 서둘러야 하고, 그래서 미끼가 필요하다.”

다온은 손바닥으로 팔걸이를 짚었다. 손바닥이 차가웠다.

“그러면 열린 채널로 명령해 주십시오. 제7함대 전체가 듣는 채널로요. 수송선 셋을 미끼로 쓰라고, 사령관님 목소리로요. 그러면 따르겠습니다.”

하범준이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 계산이 틀린 부하를 보고 짓는 웃음이었다.

“자네가 원하는 건 명령이 아니라 증인이군.”

“둘 다요.”

“열린 채널은 안 된다. 그 채널은 자르도 듣는다. 지금 따르게. 이건 마지막 명령이야.”

“거부하겠습니다.”

하범준은 다시 찻잔을 들었다. 차는 식은 모양이었다. 그는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찡그렸다가 잔을 내려놓았다.

“그럼 셈을 하나 더 해 주지. 「한라」 승조원 마흔이 왜 그 배에 있는지 알지? 다 내가 보냈어. 징계자는 퇴역할 때 연금 심사를 다시 받는다. 그 심사에 서명하는 사람이 나다. 명령을 거부한 배의 승조원은 심사에서 떨어진다. 자네 정비장, 서른한 해 일한 사람이지? 그 사람이 받을 돈이 얼마인지 자네가 계산해 봐.”

통신이 끊기기 직전, 다온은 윤소이의 손이 통신 좌석 한쪽의 단추 위에 얹혀 있는 것을 보았다. 「한라」 전체 방송 단추였다. 불이 켜져 있었다.

*

방송은 노란 선 너머까지 닿았다. 식당에서, 침실에서, 탄약고에서, 기관실에서, 「한라」 승조원 마흔이 사령관의 마지막 말을 들었다. 화물칸 그물에 매달려 있던 「지리」 승조원 일흔하나도 들었다. 「설악」 부상자 쉰셋도 들었다.

윤소이가 단추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빨갰다.

“제가 켰어요. 함장님 혼자 들으시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다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함교 문 쪽을 보았다. 문간에 봉수가 서 있었다. 언제 올라왔는지 몰랐다. 앞치마에 기름이 묻어 있었고, 손에는 렌치가 들려 있었다. 그는 다온을 보지 않고 포술 좌석의 구민혁을 보았다.

구민혁은 일어서 있었다. 숨을 코로 내쉬지도 않았다. 그는 화면 속 「덕유」의 기울어진 선체를 한 번 보고, 다온을 보았다.

“함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창밖에서 「아라 3호」 옆구리의 노란 해바라기가 관문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 배 안에서 냄비 뚜껑을 두드리던 아이는 아마 아직도 두드리고 있었을 것이다.

6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미끼 셋 · 고철 구축함 함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