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49자)

무중력 국밥

고철 구축함 함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 문가온

「사하르」의 함장실은 함교 바로 뒤에 있었다. 벽에 걸린 것은 별 지도도 훈장도 아니었고, 작은 사진 한 장뿐이었다. 서른 해 전의 「한라」 승조원들이 식당 솥을 가운데 두고 찍은 사진이었다. 앞줄 가운데에 머리에 붕대를 감은 함장이 앉아 있었고, 그 오른쪽 뒤에 젊은 자르가 서 있었다. 맨 끝에는 앞치마를 두른 기관실 신참이 솥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자르는 그 사진 앞에서 통신 기록 하나를 다시 틀었다. 연방 암호도 셀 연합 암호도 아닌, 두 사람만 아는 주파수로 들어온 짧은 음성이었다. 목소리는 낮고 반듯했다. 제3관문, 열이틀째 열여덟 시. 그 시각에 「백두」가 거기 있겠다는 말이었다.

자르는 기록을 끄고 함교로 나갔다.

“카심에게 신호를 보내라. 그 함장을 만나 보고 싶다.”

*

「한라」 의무실의 맨 구석 침상에서 이름표 없는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다온이 침상 앞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고, 구민혁이 팔짱을 끼고 문간을 막았다. 의무관 정아린은 남자의 머리 붕대를 갈다가 가위를 손에 쥔 채 물러섰다.

“셀 연합 정찰 장교 카심입니다. 군화를 보셨으니 숨길 까닭이 없지요.”

카심은 서른쯤 되어 보였고, 연방 말을 억양 하나 없이 했다. 그는 「설악」이 베가에서 빠져나올 때 포로로 잡혀 있었는데, 「설악」 함수가 맞아 감방 문이 뒤틀렸고 그 틈에 죽은 연방 병사의 군복을 입었다고 했다. 군화만은 발에 맞는 것이 없었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우리 쪽 사람 하나가 죽었어요. 그 군복 임자가요.”

“제가 죽인 건 아닙니다. 「사하르」의 포탄이었지요.”

“그쪽 함장님 포탄이었죠.”

카심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셔츠 깃 안쪽에서 손톱만 한 송신기를 꺼내 침상 위에 올려놓았다. 불빛이 하나 깜빡이고 있었다.

“함장님께서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관문 앞에, 「지리」에서요.”

“「지리」가 어디 있는데요?”

카심이 의무실 벽의 화면을 턱으로 가리켰다. 윤소이가 막 띄운 장거리 탐지 화면에서, 제4관문 고리 바깥쪽으로 배 한 척이 천천히 돌고 있었다. 엔진 불빛이 없었다.

*

「지리」는 엔진이 죽은 호위함이었다. 승조원 일흔하나가 살아 있었는데, 공기 정화기 하나만 남아 있어서 함교와 식당에 모두 모여 숨을 아끼고 있었다. 다온은 그 배를 끌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첫눈에 셌다. 「한라」의 견인줄은 「설악」을 끄는 「금강」을 돕느라 이미 나가 있었다.

“사람만 옮겨요. 배는 두고요.”

일흔하나가 「한라」로 넘어왔다. 앞쪽 절반은 「설악」 부상자로 가득 차 있었다. 남은 자리는 노란 선 너머, 쓰레기를 다 버리고 텅 빈 화물칸뿐이었다. 「지리」 승조원들은 반쪽 중력도 없는 화물칸 그물에 몸을 묶고 둥둥 떠서 밤을 맞았다.

그날 저녁, 마봉수는 솥을 노란 선 너머로 가져갔다.

“밥은 앉아서 먹어야 하오. 뜬 채로라도.”

국밥이었다. 소뼈 대신 통조림 고기를 넣어 오래 끓였고, 파를 송송 썰어 띄웠다. 봉수는 솥뚜껑을 반만 열고 국자로 그릇에 퍼 담았는데, 그릇에 담긴 국물이 그대로 동그란 공이 되어 그릇 위로 둥실 떠올랐다. 밥알은 국물 공 안에서 천천히 돌았다. 「지리」의 젊은 하사 하나가 그것을 보고 입을 벌린 채 굳었다.

“이걸 어떻게 먹어요?”

“입으로.”

봉수가 대답했다. 하사는 떠 있는 국밥 공에 입을 갖다 댔다. 국물이 그의 얼굴을 감싸며 코까지 덮었고, 그는 허우적대다가 기침과 함께 밥알을 사방으로 뿜었다. 밥알 수십 개가 화물칸 안을 별처럼 떠다녔다. 그것을 잡으려고 「지리」 승조원 다섯이 한꺼번에 그물을 놓았다가 서로 머리를 부딪쳤다.

피재우가 화분을 끌어안고 숟가락을 휘두르며 밥알을 쫓았다.

“한 알도 버리면 안 돼요! 정비장님이 한 알당 설거지 한 번이래요!”

“그런 말 안 했다.”

“지금 하셨잖아요!”

봉수는 대답 대신 빨대를 한 다발 꺼냈다. 국밥 공마다 빨대를 하나씩 꽂아 주자 「지리」 승조원들이 그물에 매달린 채 빨대로 국밥을 빨아 먹기 시작했다. 파 조각이 빨대 끝에 걸릴 때마다 누군가 낮게 욕을 했고, 그 욕에 다른 누군가가 웃었다. 그날 화물칸에서 밥알을 다 잡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마지막 한 알은 「지리」 함장의 눈썹에 붙어 있었다.

*

「지리」의 함교는 어둡고 추웠다. 비상등 두 개가 바닥을 붉게 비추었고,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하얗게 떠올랐다. 승조원들이 빠져나간 뒤라 남은 것은 의자 위에 놓인 담요들과 반쯤 마시다 만 커피 잔들이었다. 잔 속의 커피는 얼어 있었다.

다온은 우주복 헬멧을 벗어 팔에 끼었다. 함교 안 공기는 얼음장 같았고 쇠 냄새가 났다. 구민혁이 해치 옆에 섰다. 카심은 손을 앞으로 묶인 채 그 옆에 서 있었다.

반대편 해치가 열리고 자르가 들어왔다. 혼자였다. 그도 헬멧을 벗었다. 화면으로 볼 때보다 더 말랐고, 귀밑머리가 하얗게 셌다. 그는 함교를 한 바퀴 둘러보더니 얼어붙은 커피 잔 하나를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연방 배는 어디나 커피를 반쯤 남기고 떠나는군요.”

“급할 때는 다 그래요.”

“앉으시지요.”

두 사람은 「지리」 함장석과 부함장석에 마주 앉았다. 자르가 함장석을 다온에게 권했고, 다온은 부함장석에 앉았다. 자르가 그것을 보고 아주 조금 웃었다.

“제 사람을 돌려주십시오. 그 대신 「지리」 승조원 일흔하나가 「한라」에 타고 제3관문으로 가는 길을 막지 않겠습니다.”

“그건 원래 막으시면 안 되는 거예요. 부상자와 비무장 승조원이잖아요.”

“전쟁에서 원래라는 말은 비쌉니다. 함장님은 군수 장교셨으니 아시겠지요.”

“그럼 하나 더 얹어 주세요.”

자르의 눈썹이 올라갔다.

“무엇을요?”

“「백두」를 왜 쫓으세요? 사령관 하나 잡아서 이길 전쟁은 아니잖아요.”

자르는 대답하지 않고 장갑을 벗었다. 손등에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었다. 그는 그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다온을 보았다.

“함장님. 제가 질문을 하나 드리지요. 열이틀째 열여덟 시에 「백두」가 제3관문에 있을 겁니다. 함장님은 그 시각을 아십니까?”

다온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그녀는 그 시각을 몰랐다. 사령부는 「한라」에 함대 집결 시각을 아직 알려 주지 않았다. 윤소이가 아무리 귀를 대도 들리지 않던 시각이었다.

“모르시는군요.”

자르가 조용히 말했다.

“저는 압니다. 함장님 사령관님은 함장님께 그 시각을 알려 주지 않았는데, 저는 압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함장님은 저보다 잘 셈하실 겁니다.”

“누가 알려 줬어요?”

“그건 오늘 거래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자르가 일어섰다. 장갑을 다시 끼고 헬멧을 들었다. 해치 쪽으로 걸어가다가 그는 카심 앞에서 멈췄다. 구민혁이 다온을 보았다. 다온은 잠깐 망설였다. 카심을 붙잡아 두면 「백두」의 시각을 누가 흘리는지 캐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러면 「지리」의 일흔하나는 제3관문까지 가는 내내 자르의 포 앞에 놓이게 되었다.

“풀어 주세요.”

구민혁이 숨을 코로 내쉬고 카심의 손목 끈을 풀었다. 카심은 손목을 문지르며 다온에게 고개를 숙였다. 연방식 경례도 셀 연합식 경례도 아닌, 그냥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인사였다.

“국밥 냄새가 의무실까지 났습니다. 못 먹어서 아쉽군요.”

자르가 해치 앞에서 돌아보았다.

“솥 앞에 앞치마를 두르고 서 있는 사람, 아직 그 배에 있습니까?”

“있어요.”

“안부 전해 주십시오. 그 사람은 제가 연방을 떠나던 날 기관실 문을 잠그고 저를 안 내보내려 했습니다. 제가 문을 부수고 나왔지요.”

해치가 닫혔다. 「지리」의 함교에 다온과 구민혁만 남았다. 얼어붙은 커피 잔들이 비상등 아래에서 붉게 반짝였다. 구민혁이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숨을 코로 내쉬지 않고 입을 열었다.

“함장님. 사령부가 우리한테 시각을 안 준 건 깜빡해서가 아닙니다.”

“알아요.”

“그럼 우리는 누구 시각에 맞춰 갑니까?”

다온은 헬멧을 썼다. 헬멧 안에서 자기 숨소리가 크게 울렸다.

*

「한라」로 돌아온 다온은 함교로 올라가기 전에 노란 선 너머로 갔다. 봉수는 화물칸 한쪽 구석에서 빈 솥을 그물에 묶어 놓고 젖은 행주로 안쪽을 닦고 있었다. 물이 없는 데서 솥을 닦는 법은 행주를 짜지 않는 것이었다. 행주에서 배어 나온 물방울이 솥 바닥의 찌그러진 자리에 모였다가 그가 손목을 돌릴 때마다 작은 구슬이 되어 떠올랐다.

“자르가 안부 전해 달래요. 연방 떠나던 날 정비장님이 기관실 문을 잠갔다고요. 자기가 그 문을 부수고 나왔대요.”

봉수의 손이 멈췄다. 그는 솥 안을 들여다본 채로 한참 있었다. 떠오른 물구슬 하나가 그의 콧등에 닿아 터졌다.

“문은 내가 잠갔고, 부순 건 저 사람이오. 경첩이 두 개 다 나갔지.”

그는 턱으로 기관실 쪽을 가리켰다. 다온이 들어설 때마다 보던 문이었다. 문짝은 옛것인데 경첩 두 개만 반짝이는 새것이었다. 그녀는 그 경첩이 문짝보다 서른 해 젊다는 것을 처음 알아보았다.

“왜 안 바꾸셨어요? 문짝째로요.”

“문짝이 멀쩡한데 왜 바꾸오. 망가진 데만 갈면 되지.”

봉수는 다시 솥을 닦기 시작했다. 다온은 더 묻지 않고 손잡이를 잡아 앞쪽으로 몸을 끌었다. 등 뒤에서 행주가 쇠를 문지르는 소리가 일정하게 이어졌다.

*

함교 입구에서 윤소이가 그녀를 붙잡았다.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함장님, 들어오셨어요? 저 하나 했어요. 혼나도 할 말 없는 거요.”

“뭔데요?”

“사령부 통신망에 예전에 내 둔 뒷문이요, 아직 안 닫혀 있었거든요. 콩자반 바꿀 때 쓰던 거요. 거기로 들어가서 함대 집결 명령서를 열어 봤어요. 제3관문, 열이틀째 열여덟 시. 「백두」요.”

“수신처는요?”

“그게 이상해요. 명령서는 열한 척한테 갔어요. 「한라」는 수신처에 없어요.”

윤소이는 숨을 고르고 화면을 하나 더 띄웠다.

“그리고 이거요. 사령부에서 방금 「한라」로 새 명령이 왔어요. 아직 안 열었어요. 열면 사령부가 우리가 읽은 걸 알아요.”

화면에 봉인된 명령 하나가 떠 있었다. 발신자는 제7함대 사령관 하범준. 제목 칸에는 두 단어만 적혀 있었다. 민간 수송선.

노란 선 너머 화물칸에서는 아직 「지리」 승조원들이 그물에 매달려 잠들어 있었다. 누군가 놓친 밥알 하나가 환풍구 바람을 타고 함교 쪽으로 천천히 떠 오다가, 노란 선을 넘는 순간 바닥에 툭 떨어졌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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