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55자)

연료는 빌리는 겁니다

고철 구축함 함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 문가온

「소백」은 하루를 꼬박 고친 끝에 엔진 하나를 삼십 퍼센트로 살렸다. 마봉수와 「소백」의 기관병 넷이 노란 선 너머 기관실과 「소백」의 함미를 오가며 냉각관을 이어 붙였고, 그사이 「한라」 식당의 솥은 여섯 번 밥을 했다. 둘째 날 아침, 이경수 소령은 승조원 아흔둘을 데리고 「소백」으로 돌아가 제2관문 쪽 고리로 들어갔다. 떠나기 전 그는 다온에게 연료를 조금 나눠 주려 했지만 「소백」의 탱크에도 집까지 갈 몫밖에 없었다.

“받은 셈 치겠습니다, 함장님.”

“받은 셈은 연료 탱크에 안 들어가요.”

이경수가 웃다가 손잡이를 놓쳐 또 반 뼘 떠올랐다. 그는 공중에서 경례를 하고 「소백」으로 건너갔다.

「한라」의 연료 바늘은 붉은 칸 바로 위에 걸려 있었다. 제4관문으로 넘어가면 돌아올 연료가 없었다. 다온은 그 바늘을 보면서 하범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돌아올 연료는 살린 배들한테 얻어. 그녀는 바늘에서 눈을 떼고 탁소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

제4관문 앞은 고요했다. 너무 고요해서 윤소이가 수신기를 두 번이나 귀에서 빼서 흔들어 보았다. 관문 고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배 두 척이 떠 있었다. 하나는 「한라」의 세 배쯤 되는 순양함 「금강」이었고, 하나는 함수가 반쯤 찌그러진 호위함 「설악」이었다. 두 배 다 엔진을 끈 채 꼼짝하지 않았다.

“왜 안 움직여요?”

탁소희가 물었다. 윤소이가 근거리 탐지기를 켜자 화면에 작은 점들이 촘촘하게 떠올랐다. 두 배를 둘러싼 공간에 수백 개의 점이 박혀 있었다. 그물코처럼 일정한 간격이었다.

“기뢰요. 관문 출구를 빙 둘러서 깔아 놨어요. 우리 바로 앞에도요.”

“자르가 깔았네요. 다음 관문에서 뵙자더니 문 앞에 신발부터 벗어 놨어요.”

다온은 화면의 점 하나를 확대했다. 둥근 몸통에 짧은 가시가 여섯 개 달린 모양이었다. 그녀는 그 모양을 알았다. 보급창 창고에서 몇 해 동안 상자째 세던 물건이었다.

“연방 기뢰예요. 베가 기지 창고에 있던 거요. 질량이 가까이 오면 터져요. 배 한 척 무게면 백 미터 안에서요.”

“그걸 어떻게 아세요?”

“제가 세던 거니까요. 상자 하나에 여섯 개, 창고 한 칸에 이백사십 상자.”

구민혁이 숨을 코로 내쉬었다.

“우리가 판 걸 우리가 밟게 생겼습니다.”

*

「금강」의 함교가 먼저 통신을 열었다. 화면에 뜬 사람은 쉰 줄의 대령이었다. 콧수염을 정성껏 다듬었고, 군복 가슴에 훈장 띠가 세 줄이었다. 그는 다온의 계급장을 보더니 콧수염 끝을 한 번 쓸었다.

“「금강」 함장 오택균 대령이다. 「한라」라고? 사령부가 엄호를 보낸다더니 정말 그 배를 보냈군.”

“「한라」 함장 한다온 소령입니다. 데리러 왔습니다.”

“데리러 와? 자네가 우리를?”

오택균이 웃었다. 그 뒤로 「금강」 함교의 장교 몇이 따라 웃는 소리가 들렸다.

“좋아, 소령. 그렇다면 쓸모 있게 해 주지. 「한라」가 앞장서서 기뢰밭을 지나가. 터지는 길로 우리가 따라간다. 고철 배 한 척으로 순양함과 호위함을 건지는 거야. 자네 이력에 이보다 좋은 줄이 어디 있겠나.”

탁소희가 조종간에서 손을 떼고 몸을 돌렸다. 다온이 손바닥을 들어 그녀를 앉혔다.

“대령님, 그렇게 하면 「한라」는 첫 기뢰에서 끝납니다. 그다음 기뢰는 「금강」이 밟아요. 길이 안 열립니다.”

“그럼 무슨 수가 있나?”

“「금강」에 빈 화물 컨테이너가 있죠. 순양함은 연료 탱크 옆에 보급 컨테이너를 열두 개씩 달고 다녀요. 그걸 떼어서 견인줄로 「한라」 앞에 줄줄이 끌고 가겠습니다. 기뢰는 컨테이너 질량에 먼저 터져요. 컨테이너가 다 터지면 길이 나고요.”

오택균의 콧수염이 멈췄다. 그는 옆의 장교와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컨테이너는 주지. 다른 건?”

“연료요. 「한라」는 편도 연료로 왔습니다. 지금 탱크가 바닥이에요. 「금강」 탱크의 일 할만 주십시오. 집에 가서 갚겠습니다.”

“빌려 달라고? 고철 배가 순양함한테?”

“연료는 빌리는 겁니다, 대령님. 누구 배에 있든 연방 거예요. 제가 보급창에 있을 때 「금강」 연료도 제가 실어 드렸어요. 이 년 전 삼월에요. 그때 대령님은 탱크를 꽉 채워 달라고 세 번 전화하셨고요.”

오택균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뒤에서 장교 하나가 기침으로 웃음을 덮는 소리가 났다. 윤소이가 다온 옆에서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말했다. 세 번이요? 다온은 눈만 한 번 깜빡였다.

“좋아. 일 할. 대신 조건이 있다.”

“조건이 뭔데요?”

“「설악」에 부상자가 쉰이 넘는다. 「금강」 의무실은 베가에서 이미 바닥났고. 「한라」 의무실 약품의 절반을 「설악」으로 넘겨. 그리고 길을 여는 건 「한라」지만, 사령부 보고에는 「금강」의 지휘하에 기뢰밭을 돌파했다고 올린다.”

다온은 의무실 약품 현황을 떠올렸다. 원래도 정량의 반이었다. 그 반을 넘기면 남는 것은 사분의 일이었다. 앞으로 남은 관문은 아직 둘이었고, 그 사이 「한라」에서 누가 다칠지는 아무도 몰랐다.

“약품은 드리겠습니다. 보고는 마음대로 쓰세요. 대신 연료는 지금 주세요. 길을 다 쓴 다음이 아니라요.”

“왜 지금이지?”

“대령님이 기뢰밭을 빠져나간 뒤에 마음이 바뀌실 수도 있으니까요.”

오택균이 한참 다온을 노려보다가 통신을 끊었다. 십 분 뒤 「금강」에서 연료관이 뻗어 나와 「한라」의 주입구에 붙었다. 연료 냄새가 배관을 타고 함교까지 희미하게 올라왔다. 바늘이 붉은 칸을 벗어났다.

연료관이 떨어지기도 전에 의무관 정아린 중위가 함교로 올라왔다. 스물아홉이었고, 소래 기지 의무대에서 술에 취한 사령부 참모의 팔을 깁스로 묶어 놓고 퇴근했다가 이 배로 왔다. 그녀는 약품 상자 목록이 뜬 판을 다온의 무릎에 내려놓았다.

“진통제 서른 개 중에 열다섯, 지혈 붕대 마흔 중에 스물, 화상 젤은 여섯 통 중에 셋이요. 함장님, 이걸 연료랑 바꾸셨어요.”

“네.”

“다음 관문에서 누가 다치면 뭘로 막아요?”

“덜 다치게 해야죠.”

“그건 의무관 대답이 아니라 함장 대답이네요.”

정아린은 판을 도로 집어 들고 함교를 나갔다. 문간에서 한 번 돌아보더니, 이번에는 조금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화상 젤 셋은 제 침대 밑에 숨겨 놨어요. 그건 못 드려요.”

다온은 고개만 끄덕였다. 함교의 넷 중 누구도 그 말을 못 들은 척했다.

*

「금강」이 떼어 보낸 빈 컨테이너 열둘을 「한라」 앞에 줄줄이 매다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 구민혁과 승조원 여섯이 우주복을 입고 선체 밖으로 나갔다. 반쪽 중력도 없는 바깥에서 그들은 견인줄을 컨테이너 고리에 하나씩 걸었다. 헬멧 안 통신으로 투덜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게 포술장 일입니까? 이건 이삿짐센터 일입니다.”

“상사님, 이삿짐센터는 기뢰를 안 밟아요.”

“그래서 일당이 더 셉니다.”

피재우가 마지막 컨테이너에 줄을 걸고 돌아오다가 헬멧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함장님! 이 컨테이너 안에 뭐가 있어요! 비어 있다더니!”

“뭔데요?”

“콩자반이요! 통조림으로 한가득이요!”

함교의 윤소이가 의자에서 미끄러질 만큼 웃었다. 「금강」의 오택균은 그 통신을 듣지 못했다. 다온은 그 컨테이너를 줄 맨 앞에 세우라고 했다.

*

「한라」가 컨테이너 열둘을 앞세우고 기뢰밭으로 들어갔다. 탁소희가 엔진을 최저로 내리고 조종간을 엄지 두 개로만 밀었다. 컨테이너 줄이 「한라」 앞에서 기차처럼 길게 늘어졌다.

첫 기뢰가 맨 앞 컨테이너에서 터졌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화면이 하얗게 번쩍였고, 견인줄을 타고 충격이 「한라」의 함수로 전해졌다. 함교 바닥이 위로 한 번 튀었다. 반쪽 중력에 다들 의자에서 한 뼘씩 떴다가 내려앉았다.

“콩자반 전사.”

윤소이가 경례하듯 말했다. 아무도 웃을 겨를이 없었다. 둘째 기뢰, 셋째 기뢰가 잇달아 터졌다. 컨테이너가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한라」는 그만큼 앞으로 나아갔다. 다온은 화면에서 남은 컨테이너 수와 남은 기뢰 사이의 거리를 번갈아 셌다. 컨테이너 일곱, 출구까지 기뢰 서른. 기뢰는 촘촘했고 컨테이너는 모자랐다.

“함장님, 이대로면 출구 이백 미터 앞에서 컨테이너가 바닥나요.”

“알아요.”

다온은 「설악」을 불렀다. 함수가 찌그러진 그 배의 함장은 젊은 중령이었다. 얼굴 반쪽에 피가 말라 붙어 있었다.

“「설악」, 탈출정 몇 대 있어요?”

“넷입니다. 빈 거 둘.”

“빈 거 둘 띄워서 「한라」 견인줄 끝에 붙여 주세요. 탈출정도 질량이 있어요.”

“그럼 저희 탈출할 배가…”

“이 기뢰밭 빠져나가면 탈출할 일이 줄어요.”

빈 탈출정 둘이 줄 끝에 붙었다. 컨테이너가 다 터진 자리에서 탈출정이 기뢰 둘을 마저 터뜨렸다. 그 마지막 폭발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 하나가 「한라」 함미 쪽 선체판에 박혔다. 녹두색 판이었다. 판이 우그러지는 소리가 기관실까지 울렸고, 봉수가 스피커로 욕을 했다.

“녹두색 판은 내가 직접 바른 거요!”

“나중에 다시 칠해 드릴게요.”

“함장님 손으로 칠하시오.”

출구가 열렸다. 「금강」이 「설악」을 견인한 채 「한라」가 낸 길을 따라 기뢰밭을 빠져나왔다. 오택균은 빠져나오자마자 통신을 열어 짧게 말했다.

“사령부 보고는 내가 한다.”

“네, 대령님. 콩자반도 맛있게 드세요.”

오택균이 무슨 말이냐고 묻기 전에 다온이 통신을 끊었다.

*

「설악」의 부상자 쉰셋이 「한라」의 의무실과 침실로 옮겨 왔다. 의무실은 침상이 여덟뿐이라 나머지는 복도와 식당 바닥에 눕혔다. 반쪽 중력에서 피는 상처 밖으로 동그랗게 맺혔다가 천천히 흘렀다. 의무관 정아린 중위가 남은 약품을 침상마다 손으로 덜어 나누는 동안, 봉수는 솥에 죽을 끓였다. 쌀을 오래 퍼지게 끓인 죽에서 김이 반쪽 중력을 따라 느리게 올라갔다.

다온은 식당 바닥에 누운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군복이 찢어지고 그을린 사람들이었다. 이름표를 하나씩 보며 지나가다가 그녀는 맨 구석의 남자 앞에서 멈췄다. 군복은 「설악」의 것이었는데, 이름표가 없었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그의 발에 닿았다. 군화가 검었다. 연방 군화는 짙은 회색이고 끈 구멍이 여덟 개였다. 이 군화는 구멍이 여섯이었고, 발목 바깥쪽에 하얀 고리 문양이 아주 작게 찍혀 있었다.

다온은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았다. 보급창에서 연방 군화를 몇 년 동안 상자째 센 사람이 아니면 알아보지 못할 차이였다.

남자의 눈이 떠졌다. 그는 다온을 올려다보았고, 그녀가 자기 발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붕대 감은 머리를 조금 기울이며, 아주 정중하게 웃었다.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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