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561자)

쓰레기도 보급품이다

고철 구축함 함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 문가온

멀리서 보면 제3관문 앞의 싸움은 불빛 다섯 개였다. 관문 고리의 희미한 테두리 안쪽에 하얗게 타는 점이 하나 있었고, 그 점을 부채꼴로 둘러싼 검은 점이 셋, 그 뒤로 조금 큰 검은 점이 하나 있었다. 거기서 한참 떨어진 곳에 회색과 녹두색이 섞인 점 하나가 떠 있었다. 아무도 그 점을 위협으로 보지 않았다.

「사하르」의 함교에서 자르는 그 회색 점을 화면 가운데로 끌어당겼다. 그는 예순을 바라보는 마른 남자였고, 셀 연합의 검은 제복을 목까지 단추를 채워 입고 있었다. 「한라」의 선체에 덧댄 판들이 화면에 하나씩 떠올랐다. 그는 그것들을 오래 보았다.

“통신을 여십시오. 함교 대 함교로.”

*

「한라」의 함교 화면에 자르의 얼굴이 떴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다온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연방 사관학교 강당에 걸려 있던 옛 교관들의 사진처럼, 군복을 입은 채로 오래 서 있는 데 익숙한 얼굴이었다.

“한다온 함장님. 아까 답례가 늦을 수 있다고 하셨지요. 기다리는 동안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하세요.”

“「소백」은 기관이 죽었습니다. 제 호위함 셋이 지금 그 배의 함교를 겨누고 있고요. 함장님이 엔진을 끄고 무장을 내리시면, 「소백」의 승조원은 모두 살려 드리겠습니다. 「한라」도 그대로 돌려보내 드리지요. 석 달 뒤 고철장에 갈 배를 제가 굳이 부술 까닭이 없습니다.”

다온은 함장석 팔걸이 아래로 손을 내려 구민혁에게 손가락 둘을 펴 보였다. 사전에 정해 둔 신호였다. 화물칸 해치를 연다. 구민혁이 숨을 코로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없이 함교를 나갔다.

“고철장이라니, 많이 아시네요.”

“연방 보급 일정은 의회에 다 올라가니까요. 함장님은 군수 장교셨다고 들었습니다. 함장 시험은 보셨습니까?”

“세 번 봤어요.”

“결과는요?”

“세 번 다 시험 날 보급선이 늦어서, 제가 그걸 몰고 나갔어요.”

자르가 처음으로 웃었다. 입꼬리만 조금 올라가는 웃음이었다.

“그렇다면 지금도 몰고 나가실 생각이군요.”

윤소이가 다온 옆에서 화면 한구석에 작은 글씨를 띄웠다. 화물칸 그물 해제, 해치 개방 준비 완료. 구민혁이 화물칸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다온은 그 글씨를 곁눈으로 읽었다. 기관실에서 봉수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스피커로 새어 나왔다.

“예비 냉각수 통 넷, 해치 앞에 묶었소. 이걸 버리면 엔진은 앞으로 구십 넘게는 못 돌아. 그래도 하오?”

다온은 자르를 똑바로 본 채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화면 너머의 자르에게는 대화에 맞장구를 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자르 함장님. 조건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소백」 승조원을 살려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몇 명이요?”

“다요.”

“지금 거기 아흔 명쯤 살아 있어요. 다친 사람도 있고요. 그 아흔 명은 어디로 보내 주실 건데요? 연방 쪽 관문으로요, 아니면 셀 연합 쪽 포로 수용소로요?”

자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다온이 무엇을 하는지 반쯤 알아챈 얼굴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반은 아직 몰랐다.

“함장님은 시간을 사시는군요.”

“군수 장교는 원래 시간을 사요. 제일 비싸게 사는 게 그거예요.”

다온이 팔걸이의 단추를 눌렀다.

“지금이요.”

*

「한라」의 배 아래쪽, 화물칸 외부 해치가 열렸다. 반세기 넘게 화물칸 그물에 묶여 있던 것들이 공기와 함께 우주로 쏟아져 나갔다. 고장 난 의자 열일곱 개, 다 쓴 공기 필터 이백 장, 찌그러진 금속 통, 누가 놓고 간 접이식 침대, 정비 기록을 새긴 낡은 판, 녹슨 사다리. 그것들은 해치를 빠져나가자마자 소리 없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관문 앞의 빈 공간으로 퍼져 나갔다.

그 뒤를 예비 냉각수 통 넷이 따라 나갔다. 구민혁이 해치 옆의 수동 밸브를 끝까지 돌리자 통에서 뿜어진 냉각수가 진공에 닿는 순간 끓어 오르다가 곧장 얼어붙었다. 하얀 얼음 안개가 쓰레기 사이를 메우며 크게 부풀었다. 안개 속의 얼음 알갱이 하나하나가 관문 고리의 빛을 받아 반짝였다.

윤소이가 화면을 읽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적 레이더 반사, 수천 개요! 저쪽 화면에서 우리 배가 지금 천 척쯤으로 보일걸요?”

“우리 쪽은요?”

“우리도 아무것도 안 보여요.”

탁소희가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화면은 하얀 잡음으로 덮였다. 그녀는 화면을 보지 않았다. 함교 앞 창으로, 얼음 안개 너머에서 희미하게 번져 오는 하얀 불빛을 보았다. 「소백」의 함미에서 타는 불이었다.

“저 불만 보고 갈게요. 다들 꽉 잡아요. 반쪽 중력이라 엉덩이 뜰 거예요.”

「한라」가 얼음 안개 속으로 머리를 박았다. 선체에 얼음 알갱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사방에서 들려왔고, 가끔 둔탁하게 큰 것이 부딪히는 소리가 섞였다. 접이식 침대였을지도 모르고 사다리였을지도 몰랐다. 함교 바닥이 기울 때마다 다온의 몸이 의자에서 반 뼘쯤 떴다가 안전띠에 걸려 돌아왔다.

“쏩니까?”

화물칸에서 함교로 돌아온 구민혁이 포술 좌석에 앉으며 물었다. 숨이 거칠었다.

“아직요. 포탄은 아껴요. 저쪽이 우리를 못 보는 동안엔 쏠수록 우리 위치만 알려 줘요.”

“그럼 저쪽은 뭘 쏩니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개 한쪽이 붉게 갈라졌다. 셀 연합 호위함 하나가 안개 속에 아무렇게나 포를 쏘았다. 포탄은 「한라」에서 한참 떨어진 곳의 접이식 침대를 정확하게 맞혔다. 침대가 산산조각 나며 불빛 속에 흩어졌다.

윤소이가 박수를 쳤다.

“침대 격침이요! 저쪽 포술장 오늘 저녁에 혼나겠네요.”

*

「소백」의 선체가 창 가득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함미의 불은 이미 선체 안쪽까지 먹어 들어가 있었다. 찢어진 틈으로 녹아내린 판이 혀처럼 늘어져 있었다. 탁소희가 「한라」를 「소백」의 함수 쪽으로 돌려 세우는 동안 다온은 통신 단추를 눌렀다.

“「소백」, 「소백」. 여기는 「한라」. 들리면 아무나 대답하세요.”

잡음 사이로 숨찬 목소리가 들어왔다.

“「소백」 부함장 이경수 소령입니다. 함장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기관 정지, 함미 화재. 살아 있는 사람 아흔둘.”

“견인줄 걸게요. 함수 견인 고리 살아 있어요?”

“살아 있습니다. 근데 「한라」가 우리를 끌 수 있습니까? 우리 배가 두 배는 무거운데요.”

“무게는 제가 셌어요. 끌 수 있어요. 빨리는 못 끌고요.”

구민혁이 포 대신 견인줄 발사기를 잡았다. 그의 손이 처음으로 떨리지 않았다. 사격 연습에서 표적의 한가운데를 맞히던 그 손으로, 그는 「소백」의 함수 견인 고리를 한 번에 맞혔다. 줄이 팽팽해지는 소리가 「한라」의 선체를 타고 함교까지 올라왔다. 쉰두 살 배가 두 배 무거운 배를 등에 업은 소리였다.

“기관실, 출력 구십.”

“구십. 그 이상은 없소. 냉각수 다 버렸잖소.”

봉수의 목소리는 무뚝뚝했지만 엔진은 그가 말한 구십을 한 치도 어기지 않고 정확하게 냈다. 「한라」가 「소백」을 끌고 얼음 안개 바깥쪽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

안개가 엷어지는 데 십이 분이 걸렸다. 얼음 알갱이들이 관문의 빛을 받아 하나둘 녹아 증발했고, 쓰레기들은 느린 속도로 사방으로 멀어졌다. 「사하르」와 호위함 셋의 화면에 다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한라」는 「소백」을 끌고 이미 그들의 사거리 바깥에 있었다.

자르가 다시 통신을 열었다.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그렇다고 화가 난 얼굴도 아니었다. 오래 미뤄 둔 편지를 받아 든 사람처럼, 조금 놀라고 조금 반가운 얼굴이었다.

“화물칸 해치를 여셨군요. 그 해치는 경첩이 왼쪽이 약해서 반만 열면 멈춥니다. 끝까지 열려면 누군가 손으로 밀어야 하지요.”

다온은 구민혁을 돌아보았다. 구민혁이 장갑 낀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 쪽 가죽이 쓸려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어떻게 아세요?”

“저는 서른 해 전에 그 배의 부함장이었습니다. 그 해치를 끝까지 밀어 연 사람도 저였고요.”

함교 안이 조용해졌다. 엔진 소리와 견인줄이 우는 소리만 남았다. 기관실 스피커가 짧게 지직거렸는데, 봉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당 솥은 아직 있습니까? 바닥이 찌그러진 무쇠 솥이요.”

“있어요.”

“그 솥에 맞은 사람이 제 함장이었습니다. 그분은 그 뒤로 감기도 안 걸리셨지요. 셀 연합이 생기던 해에 연방이 그분을 군사 재판에 세웠고, 감옥에서 폐렴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자르는 잠깐 말을 멈추고 화면 밖의 무언가를 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다온을 보았다.

“다음 관문에서 뵙겠습니다, 한 함장님. 그때는 버릴 쓰레기가 남아 있지 않으실 겁니다.”

통신이 끊기자 검은 배 넷이 머리를 돌렸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고 한 척씩 관문 고리 안으로 들어가 제4관문 쪽으로 사라졌다. 쫓아온 길을 도로 돌아가는 모양새였다. 탁소희가 조종간에서 손을 떼고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접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왜 돌아가요? 우리 지금 「소백」 끌고 있어서 느린데. 따라오면 그냥 잡히는데.”

“우리가 목적이 아니니까요.”

다온은 그렇게 말하고 고리 안의 일렁임이 가라앉는 것을 보았다. 자르가 원하는 것은 저 너머에 아직 남아 있었다.

*

「소백」의 아흔두 명은 「한라」의 앞쪽 절반으로 옮겨 왔다. 반쪽 중력에 처음 발을 디딘 그들은 하나같이 무릎을 너무 세게 폈고, 복도 천장에 머리를 박았다. 피재우가 화분을 옆구리에 낀 채 복도를 뛰어다니며 외쳤다.

“살살요! 살살 걸으세요! 여기는 다 반 사람이에요!”

식당에서 봉수는 아무 말 없이 솥에 쌀을 안쳤다. 「소백」 승조원 아흔둘에 「한라」 마흔하나, 백서른세 그릇이었다. 솥 하나로는 모자라 세 번을 끓여야 했다. 다온이 식당 문간에 서서 그걸 보다가 물었다.

“정비장님, 자르를 아셨죠?”

“솥에 맞은 함장이 내 첫 함장이었소. 그때 나는 기관실 신참이었고, 저 사람은 부함장이었지.”

봉수가 주걱으로 솥 바닥을 긁었다. 찌그러진 자리에서 쌀알이 한 번 걸렸다가 넘어갔다.

다온이 식당을 나서자 「소백」 부함장 이경수가 복도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마에 붕대를 감았고, 군복 소매 한쪽이 그을려 있었다. 그는 반쪽 중력에 익숙하지 않아 벽 손잡이를 꼭 쥐고 있었다.

“함장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베가에서 빠져나올 때 「백두」가 저희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저희가 맞고 불이 붙었을 때, 「백두」는 구조 신호를 받고도 먼저 도약했습니다.”

“사령관님 판단이었겠죠.”

“판단이라면 판단이지요. 그런데 「백두」는 도약하기 전에 열린 채널이 아닌 주파수로 어딘가와 짧게 통신을 했습니다. 저희 통신병이 잡았는데, 우리 쪽 암호가 아니었습니다.”

다온은 대답하지 않고 이경수의 그을린 소매를 보았다. 아직 탄내가 났다. 이경수는 경례를 하려다 손잡이를 놓치는 바람에 천장 쪽으로 반 뼘 떠올랐고, 다온이 그의 팔을 잡아 끌어내렸다.

다시 식당으로 고개를 들이밀자 봉수가 주걱을 든 채 물었다.

“군수 장교 함장님. 쓰레기는 다 버렸고, 냉각수도 다 버렸소. 다음 관문엔 뭘 들고 갈 거요?”

다온은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반쪽 중력에 머리를 박고 웃는 「소백」 승조원들, 숟가락이 모자라 젓가락 한 짝씩을 나눠 쥔 사람들, 그 사이를 화분을 들고 뛰어다니는 피재우. 그녀는 그들을 세다가 중간에 그만두었다.

“사람이요. 이제 사람이 아흔둘 늘었잖아요.”

화면 한구석에서 「소백」의 견인줄 장력이 깜빡였다. 데려온 함선, 하나. 남은 열한 척은 자르가 돌아간 그 고리 너머, 제4관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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