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263자)
노란 선 너머
고철 구축함 함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 문가온
「한라」의 기관실은 배 맨 뒤, 노란 선에서 마흔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다. 마봉수는 도약 충전이 시작되자 손잡이를 잡고 몸을 띄운 채 중력 발생기 옆에 붙어 있었다. 쉰두 해 묵은 발생기는 드럼통 세 개를 이어 붙인 모양이었고, 충전음이 높아질 때마다 이음새에서 쇳가루 같은 먼지가 조금씩 날렸다.
“참아라, 참아.”
봉수는 발생기 옆구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그가 이 배에 탄 서른한 해 동안 발생기가 제대로 돈 해는 열 해가 안 됐다. 앞쪽 코일 두 개가 살아 있어서 배 앞 절반은 사람이 걸어 다니고, 뒤쪽 코일 두 개는 십오 년 전에 타 버려서 뒤 절반은 떠다녔다. 부품을 청구할 때마다 사령부는 퇴역할 배라며 돌려보냈다.
함교에서 탁소희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내려왔다.
“도약 십 초 전. 다들 뭐라도 잡으세요. 저는 조종간 잡을게요.”
봉수는 발생기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았다. 귀가 먹먹해졌고, 입안의 쇠 맛이 짙어졌다. 그다음 순간 배 전체가 한 번 접혔다가 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눈알 뒤쪽이 앞으로 쏠렸다가 제자리로 돌아왔고, 발생기 안에서 무언가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
식당에서 저녁 둘째 순번을 먹던 스무 명은 도약이 끝나는 순간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천장으로 떨어졌다.
앞쪽 코일 하나가 도약 충격에 극을 뒤집었다. 식당과 침실이 있는 구역에서 중력이 거꾸로 걸렸고, 사람과 의자와 숟가락이 한꺼번에 천장으로 쏟아졌다. 구민혁은 국그릇을 손에 든 채 등으로 천장 배관에 떨어졌는데, 그릇을 놓치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국을 제 얼굴에 다 뒤집어썼다. 천장에 붙은 채로 그는 숨을 코로 내쉬었다.
“무 들어간 국은 코로 먹는 게 아닙니다.”
“상사님, 그거 아무도 안 물어봤어요.”
옆에서 막내 피재우 일병이 천장 조명 틀을 붙잡고 매달려 있었다. 스물두 살이었고, 소래 기지 검문소로 고양이를 몰래 들여왔다가 이 배로 왔다. 그의 품에는 화물칸에서 앞쪽으로 옮겨 놓은 화분이 안겨 있었다. 마른 흙이 천장 쪽으로 쏟아지려 해서 그는 손바닥으로 화분 입구를 막고 있었다.
“얘 흙 다 쏟아지면 죽어요. 누가 좀 내려 주세요. 아니, 올려 주세요. 아무튼 땅으로요.”
함교 쪽은 코일이 뒤집히지 않았다. 다온은 함장석에 앉은 채 식당 감시 화면을 보았다. 거꾸로 선 사람 스무 명이 천장에서 서로의 다리를 잡고 있었고, 그 사이로 두부 조각들이 천천히 바닥 쪽으로, 그러니까 그들 기준으로는 하늘 쪽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윤소이가 화면을 고개째 기울여 보며 읽었다.
“식당 중력, 지구랑 똑같은 1G인데 거꾸로요. 침실 구역은 거꾸로 0.8G. 의무실은 정상이요. 의무실만 운이 좋네요.”
“솥은요?”
다온이 물었다. 함교의 세 사람이 동시에 그녀를 돌아보았다.
“함장님, 사람보다 솥을 먼저 물으시면 어떡해요.”
“사람은 화면에 다 보여요. 솥이 안 보여서요.”
솥은 조리대 고리에 걸려 있다가 고리째 천장에 붙어 있었다. 안에 남은 국물이 동그랗게 뭉쳐 솥 바닥의 찌그러진 자리를 맴돌았다.
*
제3관문은 도약을 마친 「한라」의 정면에 있었다. 이번 고리는 소래의 것보다 컸고, 테두리에 붙은 경고등 절반이 꺼져 있었다. 아직 아군 함선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윤소이가 장거리 수신기를 돌리다가 손을 멈췄다.
“제4관문 쪽에서 구조 신호요. 「소백」이에요. 제7함대 호위함. 기관 손상, 승조원 백열. 관문을 넘어오는 중이래요.”
“얼마나 걸려요?”
“지금 출력이면 「한라」가 관문 앞까지 가는 데 사십 분이요. 「소백」은 이십오 분 뒤에 넘어오고요.”
다온은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두드렸다. 「소백」이 관문을 넘어오면 바로 뒤를 쫓아온 적이 같이 넘어올 수 있었다. 관문 앞에 「한라」가 먼저 가 있어야 했다. 십오 분이 모자랐다.
“기관실, 출력 올려 주세요. 백이십으로요.”
스피커가 잠깐 조용하다가 봉수의 목소리가 났다.
“못 하오.”
“정비장님.”
“이 엔진에 백 퍼센트는 마흔 해 전 얘기요. 지금은 팔십이 백이야.”
다온은 함장석에서 일어났다. 탁소희가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함교 문을 나서고 있었다.
*
노란 선을 넘자 몸이 떴다. 다온은 벽의 손잡이를 하나씩 잡아당기며 기관실로 나아갔다. 화물칸 그물에 묶인 고장 난 의자와 다 쓴 필터들이 도약 충격에 흔들려 서로 부딪히며 둔한 소리를 냈다. 뒤쪽 절반은 난방이 약해 공기가 차가웠고, 숨을 쉴 때마다 코끝이 따끔했다.
기관실 문은 잠겨 있었다. 창 너머로 봉수가 발생기 옆에 떠 있는 게 보였다. 다온은 문 옆 통화기 단추를 눌렀다.
“문 열어 주세요.”
“함장 둘을 가둔 문이오. 밖에 서 있는 함장은 처음이네.”
“지금 열면 안에 갇힌 함장은 없는 거잖아요. 기록 깨끗하게 지켜 드릴게요.”
창 너머의 봉수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얘야, 아니, 함장님. 저 엔진 백이십 돌리면 냉각관이 터지오. 터지면 이 배는 관문 앞에 서지도 못하고 여기서 떠다니는 깡통이 돼. 「소백」 하나 건지려다 「한라」를 버리겠다는 거요?”
“「소백」에 백열 명이 타 있어요.”
“여기엔 마흔하나가 타 있소. 함장님까지.”
“그래서 숫자로 하자는 거예요?”
다온은 그렇게 말해 놓고 입을 다물었다. 숫자로 하자고 한 건 자기 쪽이었다. 함교에서도 백열과 마흔하나를 먼저 머릿속에 나란히 놓았다.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장갑 안이 축축해졌다.
“정비장님. 백이십 말고, 냉각관이 안 터지는 데까지는 얼마예요?”
“백십. 그것도 이십 분이 끝이오.”
“이십 분이면 돼요. 대신 뭘 내놔야 해요?”
봉수가 창 너머에서 그녀를 한참 보았다. 그러고는 발생기를 가리켰다.
“전기가 모자라. 출력을 올리려면 어디서 빼 와야 하오. 앞쪽 코일 두 개 중에 하나를 끄면 백십이 나와. 그럼 앞쪽 중력도 반이 되지. 천장에 붙은 애들은 내려오겠지만, 이 배에 1G로 걷는 데는 이제 한 군데도 없어.”
“다시 켤 수 있어요?”
“부품이 오면.”
부품은 석 달 내내 안 온 물건이었다. 다온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앞쪽 절반이 반쪽 중력이 되면 포탄을 옮기는 시간이 늘어나고, 의무실에서 피가 고이지 않고 떠다니고, 국이 그릇에 반만 붙어 있게 된다. 그녀는 그것들을 하나씩 셌다. 셈이 끝나도 「소백」의 백열 명은 그대로 거기 있었다.
“끄세요.”
문이 열렸다. 봉수는 문을 연 손으로 발생기 옆의 차단 손잡이를 내렸다. 발생기 안에서 길게 늘어지는 신음 같은 소리가 났고, 다온의 발밑에서 배가 한 번 몸을 떨었다.
“함장님, 하나만 물읍시다.”
봉수가 차단 손잡이를 잡은 채 말했다.
“아까 늦게 도착했다는 거. 어디에 늦었소?”
다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엔진 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봉수도 더 묻지 않았다.
*
식당의 스무 명은 천장에서 내려왔다. 중력이 거꾸로 걸렸던 코일이 꺼지자 몸이 둥실 떴다가 남은 코일 하나가 당기는 쪽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바닥에 내려앉았다. 반쪽 중력이었다. 구민혁이 얼굴의 국물을 닦으며 일어서다가 무릎을 너무 세게 펴는 바람에 다시 천장 근처까지 솟았다.
“상사님, 살살요. 이제 우리 다 반 사람이에요.”
피재우가 화분을 안고 바닥에 앉아 깔깔거렸다. 쏟아진 흙을 손으로 그러모아 다시 화분에 담았는데, 흙이 반쯤 떠서 손가락 사이로 자꾸 빠져나갔다. 잎 두 장은 무사했다. 그는 물병을 꺼내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물방울이 흙에 바로 스미지 않고 동그랗게 흙 위에 앉아 흔들렸다.
“먹어, 먹어. 반만 먹어도 돼.”
*
「한라」는 백십으로 달렸다. 선체가 낮게 울었고, 함교 바닥의 떨림이 고르지 않아 탁소희가 몇 번이나 조종간을 고쳐 잡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이 영감님, 달리니까 소리가 좋네요. 비 오는 날 고속도로 타는 화물차 같아요.”
“그게 좋은 소리예요?”
“제가 처음 몬 차가 그거였어요.”
다온은 함교로 돌아와 앉았다. 몸이 가벼워서 의자에 붙어 있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안전띠를 맸다. 윤소이가 수신기 하나를 귀에서 빼고 의자째 몸을 돌렸다.
“함장님, 하나 여쭤봐도 돼요? 진짜 전투 해 보셨어요?”
“모의 전투는 서른 번 했어요.”
“이긴 건요?”
“보급 쪽으로 보면 다 이겼어요. 제가 맡은 쪽은 포탄이 떨어진 적이 없거든요.”
“전투 쪽으로 보면요?”
다온은 대답 대신 화면을 가리켰다. 윤소이가 입을 다물고 몸을 앞으로 돌렸고, 조종간을 잡은 탁소희의 어깨가 웃음을 참느라 들썩였다. 구민혁만 숨을 코로 길게 내쉬었는데, 그 소리가 함교에서 제일 어른스러웠다.
화면의 시각이 줄어들었다. 관문까지 사십 분이던 것이 삼십 분, 이십오 분, 이십 분. 기관실에서 봉수가 냉각관 온도를 일 분마다 불러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짧아졌다.
“85도.”
“90도.”
“93도. 함장님, 여기서 더는 안 되오.”
“삼 분만요.”
“이 분.”
이 분 뒤 봉수가 엔진을 내렸고, 「한라」는 제3관문을 정면으로 보는 자리에 멈췄다. 관문 고리 안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누가 넘어오고 있었다.
윤소이가 수신기를 누르며 숨을 들이쉬었다.
“「소백」이요. 넘어와요.”
고리 한가운데서 호위함 한 척이 빠져나왔다. 「한라」보다 두 배 큰 배였는데, 함미 쪽이 통째로 불타고 있었다. 우주에서 불은 오래 타지 못하는데, 「소백」의 불은 선체 안의 공기를 먹으며 찢어진 틈마다 하얗게 뿜어져 나왔다. 배가 기우뚱 돌며 관문 앞을 벗어나려 했다.
“「소백」 불러요.”
“응답 없어요. 함교가 꺼진 것 같아요.”
그때 관문 고리가 다시 일렁였다. 이번에는 한 곳이 아니었다. 고리 안쪽 세 군데에서 동시에 빛이 휘었다. 탁소희가 조종간을 놓지 않은 채 낮게 욕을 했다.
“함장님. 하나, 둘, 셋. 「소백」 뒤에 셋이 붙어 왔어요.”
빠져나온 배들은 검었다. 연방의 배처럼 회색 판을 덧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빛을 먹게 칠해져 있었고, 함수에는 셀 연합의 하얀 고리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세 척이 「소백」을 가운데 두고 부채꼴로 벌어졌다. 그 뒤로 고리가 한 번 더 일렁였고, 앞의 셋보다 큰 배가 천천히 머리를 내밀었다.
윤소이가 그 배의 식별 신호를 읽었다.
“「사하르」요.”
다온의 귀가 아직 먹먹했다. 도약 때문인지 아까 기관실의 냉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포탄 현황판을 보았다. 정수의 사십 퍼센트. 저 네 척을 상대하려면 그 세 배가 필요했다. 그녀는 현황판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려 화물칸 감시 화면을 보았다. 그물에 묶인 쉰두 해 치 쓰레기가, 반쪽 중력도 닿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떠 있었다.
“포술장님.”
“예.”
“화물칸 외부 해치, 열 수 있죠?”
구민혁이 숨을 코로 내쉬었다. 이번에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