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585자)
고철에 포탄은 아깝다
고철 구축함 함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 문가온
서기 2391년 가을, 우리 은하의 나선 팔 가운데 하나인 오리온 팔 변경의 소래 기지에는 배가 한 척밖에 묶여 있지 않았다. 지구 연방 우주군은 변경까지 도약 관문 다섯 개를 한 줄로 깔아 두었는데, 관문은 공간을 접어 배가 빛보다 빠르게 건너뛸 수 있게 해 주는 거대한 고리였다. 사람들은 그 고리 다섯 개를 이은 길을 케레스 항로라고 불렀고, 소래는 둘째 고리 옆에 매달린 낡은 정비 기지였다.
연락선 창밖으로 다가오는 구축함을 보며 한다온 소령은 먼저 색을 셌다. 회색, 그보다 진한 회색, 그리고 누가 남은 페인트를 털어 바른 듯한 녹두색까지, 선체를 덧댄 판들이 저마다 다른 해에 붙어서 색이 셋이었다. 함수에는 흰 글씨로 「한라」라고 적혀 있었는데, 「한」 자의 받침이 운석에 긁혀 나가 멀리서는 「하라」로 읽혔다.
“저게 제 배예요?”
연락선 조종사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온의 얼굴을 보고는 웃음을 참느라 볼이 부풀었다.
“쉰두 살입니다. 소령님보다 스물두 살 많아요. 존댓말 쓰셔야 할걸요.”
“석 달 뒤면 고철장에 간다고 들었는데요.”
“그래서 아무도 안 고쳐요. 고칠 돈이면 새 배 문짝을 산다고.”
다온은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창을 두드리며 계산했다. 저만한 구축함의 선체판 한 장이면 보급창 기준으로 전투 식량 천이백 상자 값이었다. 덧댄 판이 눈에 보이는 것만 열넷이었다. 누군가 이 배에 식량 만육천 상자 값을 꾸역꾸역 붙여 넣은 셈이었고, 그 누군가는 이 배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
해치가 열리자 재생 공기가 먼저 얼굴에 닿았다. 쇠를 혀에 대 본 것 같은 맛이 났고, 그 밑에 기름 냄새와 마늘 볶는 냄새가 깔려 있었다. 해치 앞에는 앞치마를 두른 노인이 국자를 들고 서 있었다. 흰머리를 짧게 깎았고, 앞치마 주머니에는 렌치와 숟가락이 같이 꽂혀 있었다.
“얘야, 신발 털고 들어와라. 기지 바닥 먼지가 기관에 들어가면 내가 사흘을 닦아.”
다온이 신발을 털고 고개를 들자 노인의 눈이 그녀의 어깨에 붙은 소령 계급장에 가서 멎었다.
“아이고. 함장님이시구나. 얘야는 취소다.”
“괜찮습니다. 신발은 털었어요.”
“정비장 마봉수 원사요. 예순일곱. 이 배에 서른한 해 있었소.”
마봉수는 국자로 복도 안쪽을 가리키고 앞장섰다. 복도는 사람 둘이 어깨를 비켜야 지나갈 만큼 좁았고, 벽에 붙은 배관마다 손때가 검게 앉아 있었다. 배 한가운데쯤에서 봉수가 걸음을 멈췄다. 바닥에 노란 페인트로 굵은 선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여기서부터 뒤는 중력이 없소. 앞 반은 사람 사는 데고 뒤 반은 물건 사는 데요.”
다온은 손에 든 커피 잔을 내려다보았다가 한 발을 선 너머로 내밀었다. 발목부터 몸이 가벼워지더니 잔 속의 커피가 동그랗게 뭉쳐 잔 밖으로 떠올랐다. 그녀가 황급히 몸을 뒤로 빼자 커피 덩어리가 노란 선 위에서 툭 떨어져 봉수의 신발을 적셨다.
봉수가 혀를 찼다.
“신발은 내가 털 걸 그랬네.”
*
식당은 앞쪽 절반의 맨 앞, 함교 바로 아래에 있었다. 승조원 마흔이 한꺼번에 앉을 자리는 없어서 반씩 나눠 먹는다고 했다. 다온이 들어서자 스무 명이 숟가락을 든 채로 그녀를 보았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리대 위에는 무쇠 솥이 하나 걸려 있었다. 사람 몸통만 한 크기에, 바닥 한쪽이 주먹 하나 들어갈 만큼 찌그러져 있었다. 봉수가 그 찌그러진 자리를 행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서른 해 전 도약 사고 때 이게 날아가서 그때 함장 머리를 쳤소. 다들 죽은 줄 알았는데 일어나더니 그 뒤로 감기 한 번을 안 걸렸지. 그래서 이 배 사람들은 이 솥한테 절을 해.”
“진짜로요?”
“설에만.”
봉수가 국을 퍼서 다온 앞에 놓았다. 두부와 무를 넣은 맑은 국이었다. 그때 창가 쪽에 앉은 여자가 의자를 뒤로 젖히며 입을 열었다. 서른 중반쯤 되어 보였고, 비행복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이고 있었다.
“함장님, 이 배 법은 들으셨어요? 처음 밥 먹는 날엔 이름 말고 징계 사유로 인사해요. 사유가 시시하면 설거지고요.”
“들은 적 없는데요.”
“지금 들으셨잖아요. 제가 먼저 할게요. 항해장 탁소희 대위, 서른넷. 기함 「백두」 옆을 이 미터 간격으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함교 경보가 울려서 사령관님이 마시던 커피를 바지에 쏟으셨대요.”
“쏟으셨대요?”
“저는 못 봤죠. 벌써 지나가 버렸으니까.”
식탁 여기저기서 웃음이 샜다. 탁소희 옆에 앉은 덩치 큰 남자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목이 굵었고, 말하기 전에 꼭 한 번 코로 숨을 내쉬었다.
“포술장 구민혁 상사, 마흔하나. 사격 연습 표적에 사령관님 얼굴을 붙였습니다. 그날 명중률이 평소보다 삼십 퍼센트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맞은편의 젊은 여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머리를 하나로 묶었고, 귀에는 통신용 수신기가 두 개나 꽂혀 있었다.
“통신장 윤소이 중위, 스물여섯이요! 사령부 식당 메뉴판에 몰래 들어가서 일주일 동안 아침 점심 저녁을 전부 콩자반으로 바꿨습니다. 사령관님이 콩을 못 드세요.”
다온은 국을 한 숟갈 떠먹고 식탁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여기 사령관님 싫어하는 분들만 모였네요?”
봉수가 솥 앞에서 대답했다.
“싫어하는 게 아니라 들킨 거지. 나는 함장 둘을 기관실에 가뒀소. 하나는 엔진을 억지로 돌리려 해서, 하나는 내 솥을 버리라 해서.”
“어느 쪽이 더 오래 갇혔어요?”
“솥 쪽.”
스무 명의 눈이 다시 다온에게 모였다. 다온은 숟가락을 국그릇 가장자리에 걸쳐 놓았다.
“군수 장교 한다온 소령, 서른. 다섯 해 전에 보급창 연료선 한 척을 허가 없이 끌고 나갔어요.”
“에이, 그게 다예요?”
탁소희가 실망한 얼굴로 물었다. 다온은 잠깐 국그릇에 뜬 무 조각을 보았다.
“늦게 도착했어요.”
식탁이 조용해졌다. 무엇에 늦었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솥 앞에 선 봉수가 국자를 든 채 다온을 조금 오래 보았고, 그러고는 솥뚜껑을 덮었다. 쇠가 쇠에 닿는 소리가 식당 안에 낮게 울렸다.
“설거지는 면제요.”
*
두 시간 뒤, 윤소이가 함교에서 소리쳤다.
“사령부 긴급 통신이요! 제7함대 사령관님 직접이에요!”
함교는 식당보다도 좁았다. 낡은 의자 다섯 개가 반원으로 놓여 있었고, 앞쪽 화면은 한쪽 귀퉁이에 금이 가 있었다. 다온이 함장석에 앉자마자 화면에 쉰 중반의 남자가 떠올랐다. 군복 깃이 반듯했고, 등 뒤로 보이는 기함 「백두」의 함교에는 붉은 경고등이 돌고 있었다. 제7함대 사령관 하범준 중장이었다.
“한 소령. 짧게 하지. 제7함대가 베가 성계에서 셀 연합 함대에 밀렸다. 함선 열둘이 흩어져 케레스 항로를 거슬러 후퇴 중이야.”
셀 연합은 항로 너머의 변경 식민 행성 스무 남짓이 연방에서 떨어져 나와 세운 나라였다. 함교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보았다. 베가 성계는 다섯째 관문 너머에 있었다.
“「한라」는 제3관문으로 가서 맨 뒤에 남는다. 함대를 살려서 데려와. 이상이다.”
“잠깐만요, 사령관님.”
다온이 화면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손에는 아까 받은 보급 현황판이 들려 있었다.
“연료는 정량의 이 할, 포탄은 정수의 사십 퍼센트입니다. 중력 발생기는 배 절반에서만 돌고 교체 부품은 없습니다. 이 상태로 엄호는 못 합니다. 소래 기지 창고에 연료가 있습니다. 내주십시오.”
“그래서 자네를 보낸 거야. 없는 걸 있게 만드는 게 군수 장교 아닌가.”
“없는 걸 있게 만드는 건 사기꾼입니다. 군수 장교는 있는 걸 제때 갖다 놓는 사람이고요. 사령관님 창고에 있는 걸 주십시오.”
하범준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함교 뒤쪽에서 구민혁이 숨을 코로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고철에 포탄은 아깝다. 연료는 편도만 내주지. 돌아올 연료는 살린 배들한테 얻어.”
“배를 못 살리면요?”
“그럼 연료 걱정도 없겠지.”
화면이 꺼졌다. 금 간 귀퉁이에 다온의 얼굴이 비쳤다. 함교에 있던 넷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탁소희가 조종간에 손을 얹은 채 중얼거렸다.
“저 바지에 커피 한 번 더 쏟게 해 드려야 하는데.”
*
윤소이가 사령부에서 넘어온 적 함장의 신상을 읽었다. 셀 연합 함대 함장 자르, 기함 「사하르」. 베가에서 제7함대의 측면을 찢은 사람이었다. 얼굴 사진은 없었고, 나이는 예순 가까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자르라.”
함교 입구에 서 있던 봉수가 그 이름을 한 번 소리 내어 보고는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아는 사람이에요?”
“늙으면 아는 이름이 많아져.”
봉수는 그 말만 남기고 기관실로 내려갔다. 다온은 그가 노란 선을 넘어가며 손잡이를 잡는 소리를 들었다. 쇠 손잡이가 장갑 낀 손에 쓸리는 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졌다.
연료가 들어오는 데 사십 분이 걸렸다. 편도만큼이었다. 다온은 그 사이 배를 한 바퀴 돌았다. 앞쪽 절반의 침실과 의무실과 탄약고, 노란 선 너머의 화물칸과 기관실. 화물칸에는 쉰두 해 동안 아무도 내다 버리지 않은 것들이 그물에 묶여 떠 있었다. 고장 난 의자, 찌그러진 냉각수 통, 다 쓴 필터, 누가 놓고 간 화분까지. 그녀는 그것들을 하나씩 세다가 화분 앞에서 멈췄다. 흙이 말라 갈라져 있었는데, 그 틈으로 잎이 두 장 나 있었다.
“그건 버리지 마시오.”
기관실 문간에서 봉수가 말했다.
“안 버려요. 세는 거예요.”
“함장이 쓰레기를 세는 건 처음 보네.”
“쓰레기도 질량이 있어요. 질량이 있으면 쓸 데가 있고요.”
봉수가 대답 없이 문을 닫았다. 다온은 화물칸 그물을 한 번 더 당겨 보았다. 묶어 둔 줄이 팽팽하게 버텼다.
*
「한라」가 소래 기지에서 떨어져 나왔다. 정박 고리가 풀리는 소리가 선체를 타고 발바닥까지 울렸고, 엔진이 데워지면서 함교 바닥이 고르게 떨렸다. 탁소희가 조종간을 밀자 기지의 불빛이 창밖에서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앞쪽으로는 제2관문의 고리가 별빛을 휘게 하며 떠 있었다.
“도약 충전 시작합니다. 이십 분이요.”
그때 윤소이가 수신기를 한쪽 귀에서 빼며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하얬다.
“함장님. 열린 통신이요. 관문 중계망을 타고 들어와요. 연방 배라면 다 듣는 채널로요.”
“틀어요.”
함교 스피커에서 낮고 정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두르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고, 옛날 연방 사관학교 교관들이 쓰던 딱딱한 말투였다.
“연방 제7함대에 알립니다. 셀 연합 함대 「사하르」의 함장 자르입니다. 여러분은 잘 싸우셨고, 이제 집으로 가는 길이겠지요. 후위로 「한라」를 보낸다고 들었습니다. 쉰두 살 노인을 맨 뒤에 세우다니, 하 사령관님도 급하셨나 봅니다. 관문에서 먼저 인사드리겠습니다.”
통신이 끊겼다. 엔진 충전음만 함교 바닥 밑에서 웅웅거렸다.
구민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명령 떨어진 지 두 시간입니다.”
“두 시간 십이 분이요.”
윤소이가 화면의 시각을 보며 고쳤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두 시간 십이 분 만에, 함대에서 가장 하찮은 배가 맨 뒤에 남는다는 걸 적이 알고 있었다.
다온은 함장석 팔걸이의 통신 단추를 눌렀다. 손끝이 차가웠다.
“열린 채널로 보내요. 그대로.”
윤소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셀 연합 「사하르」에. 「한라」 함장 한다온입니다. 인사는 받겠습니다. 답례는 좀 늦을 수 있어요. 저희 배가 나이가 많아서요.”
단추에서 손을 떼자 함교 안에 웃음이 하나 터졌다가 금세 가라앉았다. 탁소희가 조종간을 꽉 쥐었다. 창밖의 관문 고리가 빛을 안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했고, 다온의 귀가 물속에 들어간 것처럼 먹먹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