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10,373자)

머리는 그만하라는데 마음은 원한다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13년 봄, 베를린 대학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스물다섯 살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전쟁에 밀려 도시를 떠났다. 나폴레옹의 군대와 프로이센·러시아 연합군이 작센 땅 뤼첸에서 맞붙은 싸움은 어느 쪽의 승리라고 하기 어렵게 끝났고, 베를린에서 조용히 학위를 받을 길은 막혔다. 열이틀 동안 이어진 피난길에서 그는 싸움판 한가운데로 들어가기도 했다. 프랑스 군대가 다가오자 어느 작은 도시의 시장이 그를 붙잡아 통역을 시켰고, 어려서 익힌 프랑스어가 그를 살렸다.[주 8-01]

남들이 모두 총을 들던 그 여름, 그는 루돌슈타트의 여관 「기사관」에 틀어박혀 박사 논문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를 썼고, 그해 10월 예나 대학은 보내온 논문만 보고 그에게 학위를 주었다. 겨울은 어머니가 사는 바이마르에서 보냈다.[주 8-02]

*

그는 자기가 갈 길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괴팅겐에서 공부하던 시절 그는 한 편지에 이렇게 썼다.

“철학은 알프스의 높은 길과 같다. 그리로 가는 길은 돌과 가시덤불 사이로 난 가파른 오솔길 하나뿐이다. 높이 오를수록 길은 더 외롭고 더 황량해진다. 그 길을 가는 사람은 겁을 몰라야 하고, 모든 것을 뒤에 두고 떠나야 하며, 끝내는 눈 속에 제 손으로 길을 내야 한다. 그는 자주 벼랑 끝에 서서 저 아래 푸른 골짜기를 내려다본다. 어지럼증이 그를 그리로 사납게 끌어내린다. 그래도 그는 버텨야 한다.”[주 8-03]

바이마르는 그 푸른 골짜기였다. 어머니 요한나의 집에는 저녁마다 손님이 모였고, 그 자리에서 그는 시인 괴테를 만났고, 인도의 옛 사상을 처음 알려 준 학자 프리드리히 마이어를 만났다. 스페인 극작가 칼데론의 비극 『굳센 왕자』를 본 날 그는 너무 흔들려서 어머니 집의 익숙한 모임을 버려두고 혼자 있을 곳을 찾아 나가야 했다. 그의 전기를 처음 쓴 빌헬름 폰 그비너는 바이마르가 그를 여러모로 일깨웠지만 그만큼 흩어 놓았고, 저도 모르게 제 길에서 벗어나게 했다고 적는다.[주 8-04]

괴테 말고 그가 사람으로서 끌린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다. 바이마르 극장의 배우 야게만이었다. 바이마르의 군주 카를 아우구스트가 아끼는 여인으로 이름난 사람이었고, 요한나의 모임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손님이었다.[주 8-05]

*

어느 저녁 손님들이 돌아간 뒤였다. 아르투어는 어머니에게 털어놓았다.

“저 여자라면, 길가에서 돌을 깨고 있는 모습으로 만난다 해도 데려가 아내로 삼겠습니다.”[주 8-05]

요한나는 아들을 보았다. 그녀는 아들이 함부르크의 상회를 떠나 학문의 길로 들어서도록 거든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길가에서 돌을 깨고 있지 않다. 공작님이 아끼는 사람이야. 너도 알잖니?”

“압니다.”

“알면 그만두면 되지. 너는 늘 철학은 혼자 오르는 높은 길이라고 하지 않았니? 이 집 응접실에 앉아서 남의 사람을 바라보는 게 그 길이냐?”

“어머니 말씀이 다 맞습니다. 머리로는 저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만두라고요.”

“그럼 됐다.”

“안 됐습니다. 머리가 그만두라고 말하는 동안에도 저는 그 사람이 들어오는 문 쪽을 보고 있습니다. 아는 것과 그만두는 것이 같은 일이라면, 세상에 괴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요한나는 대답하지 않고 등잔 심지를 낮추었다. 어머니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아들은 스물다섯 살이었고 이제 막 박사가 되었으며, 그가 원하는 여인은 그가 다가갈 수 없는 자리에 있었다. 그 끌림을 따라가면 얻을 것은 없고 잃을 것은 그가 스스로 정한 길이었다. 아들의 말도 틀린 데가 없었다. 그는 어머니가 하는 말을 이미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모자란 것은 아는 것이 아니었다.

그 뒤 그가 야게만에게 다가갔다는 기록은 없다. 그는 1814년 5월 바이마르를 떠나 드레스덴으로 갔다. 어머니와의 사이가 끝내 갈라진 것이 그 길을 재촉했다.[주 8-06]

드레스덴에서도 같은 일은 되풀이되었다. 그비너는 그가 그곳에서 숨어 살지 않았고, 제 몫을 요구하는 젊음을 큰 목적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세상 사람답게 누렸다고 적는다. 친구이자 소설가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슐체가 그를 한 연애 사건에서 빼내 준 일도 있었다. 그비너에 따르면 그를 쉽게 불붙게 만드는 사람은 늘 비슷했다. 날씬하고 머리칼이 검은 여인들이 그에게 위험했다.[주 8-07] 머리는 그만하라고 말했고, 몸은 같은 문 쪽으로 돌아섰다.

*

해로운 줄 알면서 왜 같은 욕망을 반복하는가? 머리의 결심은 원하는 일 그 자체가 아니어서 되풀이를 막지 못한다. 드레스덴의 네 해 동안 그가 쓴 책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그 까닭을 따진다. 1818년 말에 나온 이 책은 번호를 매긴 짧은 절들로 이어지는데, 그 18번째 절에서 그는 몸에서 출발한다.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바깥에서 본다. 돌도, 나무도, 남의 팔이 움직이는 것도 눈에 비친 모습이고, 그 모습들은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따른다. 자기 몸도 그렇게 볼 수 있다. 거울에 비친 팔은 다른 물체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자기 몸에 대해서만은 사람이 또 하나를 안다. 그는 이렇게 쓴다.

“알고 있는 나에게 이 몸은 전혀 다른 두 길로 주어진다. 한 번은 눈과 머리가 붙잡는 모습으로, 여러 물체 가운데 하나로서 그 물체들의 법칙을 그대로 따르는 것으로 주어진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전혀 다른 길로, 누구나 곧바로 아는 것, 곧 ‘의지’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으로 주어진다. 그가 참으로 무엇을 원하면, 그 원함은 곧바로, 어김없이 몸의 움직임이기도 하다.”[주 8-08]

그는 여기서 원하는 일과 몸의 움직임을 원인과 결과로 묶지 않는다. 먼저 원하고 그다음에 팔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같은 하나가 안에서는 원함으로 느껴지고 바깥에서는 움직임으로 보일 뿐이다. 그는 사람이 자기 행동을 풀 수수께끼의 답이 ‘의지’라는 한 낱말이라고 쓴다. 그 낱말 하나가 사람에게 자기 행동과 움직임의 속을 열어 보여 준다.[주 8-08]

루돌슈타트의 논문에서 그는 몸을 ‘직접적 객관’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바깥 세상을 알게 되는 출발점이 되는 대상이라는 뜻이었다. 드레스덴에서 그는 같은 몸을 ‘의지의 객관성’이라고 고쳐 부른다. 몸은 눈에 보이게 된 의지다.[주 8-09] 루돌슈타트에서 바이마르로, 바이마르에서 드레스덴으로 오는 동안 그가 바꾼 것은 몸을 보는 자리였다. 바깥에서 보던 몸을 안에서 보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보면 결심이 무엇인지가 달라진다. 그는 이어서 쓴다.

“앞날을 두고 내리는 의지의 결심은 언젠가 무엇을 원하게 될지를 이성이 따져 본 것일 뿐, 참된 의지의 행위가 아니다. 결심은 실행되고 나서야 비로소 도장이 찍힌다. 그때까지 결심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계획으로, 이성 안에서 개념으로만 있다. 원하는 것과 하는 것이 서로 다른 것은 생각 속에서뿐이다. 실제로는 둘이 하나다.”[주 8-09]

이 논증을 하나씩 풀면 이렇다. 먼저 전제가 있다. 참된 원함은 곧바로 몸의 움직임이다. 다음으로 이유가 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결심은 아직 몸이 움직이지 않은 것, 곧 머릿속에서 앞날을 그려 본 것이다. 그러므로 결론이 나온다. 결심은 원함이 아니다. 결심은 원함에 관해 머리가 내놓은 보고서다. 그 보고서가 아무리 분명해도, 원함은 그 보고서를 거치지 않고 몸으로 곧장 나간다.

그렇다면 같은 욕망이 왜 되풀이되는지도 풀린다. 결심은 머릿속의 계획이어서, 결심을 아무리 여러 번 고쳐 세워도 늘어나는 것은 계획뿐이고 원하는 쪽은 그대로 남는다. 어제의 결심이 오늘 무너진 것은 어제의 결심이 약해서가 아니다. 결심은 처음부터 원함이 있는 자리에 닿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같은 장면이 다시 오면 같은 원함이 같은 움직임으로 나온다.

그는 한 걸음 더 간다. 몸에 닿는 것은 곧바로 의지에 닿는다. 의지를 거스르면 그것은 아픔이 되고, 의지에 맞으면 그것은 편안함과 쾌락이 된다. 아픔과 쾌락은 머리가 떠올리는 그림이 아니다. 몸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 의지가 곧바로 겪는 일이다.[주 8-09] 그래서 쾌락의 기억은 생각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생각이 아니라 의지가 겪은 일이었다.

이렇게 보면 바이마르의 응접실에서 일어난 일이 설명된다. 요한나의 말은 머리의 말이었고, 아르투어의 머리도 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그 말은 아직 ‘언젠가 원하지 않게 되리라’는 계획이었고, 문 쪽으로 돌아서는 눈길은 지금 이 순간의 원함이었다. 계획은 원함을 이기지 못했다. 계획과 원함은 같은 무대에 서 있지 않았다. 되풀이되는 욕망을 의지력이 모자란 탓으로 돌리는 사람은 결심을 원함과 같은 것으로 여긴다. 그는 그 둘이 처음부터 다른 자리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에게 되풀이는 수치스러운 실패이기 전에 사람의 구조다.

스물여섯 해 뒤인 1844년, 쉰여섯 살의 그는 주저의 둘째 권을 내놓으며 그 생각을 더 밀고 나간다. 그 권의 19번째 장에서 그는 의지가 주인이고 지성은 하인이라고 말한다. 둘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그림으로 그는 앞을 못 보는 힘센 사람이 앞을 보는 다리 저는 사람을 어깨에 메고 가는 모습을 든다.[주 8-10] 길을 보는 것은 머리지만, 걷는 것은 의지다.

*

그러나 그 그림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머리는 할 일이 없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같은 19번째 장에서 그는 사람이 머리로 따진 앎을 따라 스스로를 다스리는 경우도 적는다. 어떤 생각이 마음을 흔들 때, 그 생각이 쓸데없이 괴로운 감정만 불러오리라는 것을 아는 이성이 그 생각을 물리치도록 결정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된다’고 부른다. 다만 그때도 결정하는 것은 의지라고 그는 덧붙인다.[주 8-10] 머리는 원함을 없애지 못한다. 머리는 원함 앞에 다른 그림을 내밀 수 있을 뿐이고, 그 그림이 원함을 다른 쪽으로 돌릴 때에만 결심은 몸이 된다.

그리고 더 큰 물음이 남는다. 18번째 절에서 그는 자기 몸 하나에서 출발했다. 내 몸이 안에서 의지로 느껴진다는 것까지는 누구나 자기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바로 다음 절부터, 돌이 떨어지는 것도 식물이 자라는 것도 그 안에서 보면 의지일 것이라고 나아간다. 내 몸에서 확인한 것을 세상 전체의 본질로 넓히는 그 걸음은 경험이 아니라 미루어 짐작한 것이다. 그는 그것을 알고 다음 절에서 따로 이유를 대지만, 그 이유는 18번째 절의 경험만큼 단단하지 않다.[주 8-11] 아르투어가 문 쪽으로 돌아선 일은 그의 경험이었다. 그것이 세상의 본질이라는 것은 그의 철학이었다.

그 자신의 삶에도 모순이 하나 있다. 괴팅겐의 편지에서 그는 철학자가 벼랑 끝에서 어지럼증을 버텨야 한다고 썼다. 버티라는 말은 결심의 말이다. 몇 해 뒤 그는 결심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쓴다. 그가 바이마르를 떠난 것은 결심이 원함을 이겨서였을까, 아니면 어머니와의 다툼이 그를 밀어내서였을까? 자료는 둘 다 말한다. 그가 끝내 그 길을 간 것은 사실이다. 그 길을 가게 한 것이 머리였는지, 머리가 내민 다른 그림을 더 크게 원한 의지였는지는 그의 철학으로도 가려지지 않는다.

1814년 봄, 드레스덴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그는 아직 그 책을 쓰지 않았다. 그가 아는 것은 하나였다. 그만두라고 말하는 머리와 그쪽을 바라보는 눈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었다. 그 둘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 그인가? 그는 남은 네 해를 그 물음에 쓰기로 했다.

후주

[주 8-01] 뤼첸 싸움의 결과가 분명하지 않아 베를린에서 조용히 학위를 받을 수 없게 되자 작센으로 물러났다는 것, 드레스덴까지 열이틀 동안 피난길에서 싸움판에 들어갔고 프랑스 군대가 다가오자 어느 작은 도시의 시장이 그를 통역으로 썼으며 그의 프랑스어가 그를 무사히 지나가게 했다는 것은 빌헬름 폰 그비너, 『가까이에서 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aus persönlichem Umgange dargestellt), 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862, 33쪽의 서술이다(archive.org arthurschopenha00gwingoog).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11~1813년 항목도 전쟁의 혼란이 그를 베를린에서 몰아냈다고 적는다. 싸움의 양편과 장소에 대한 풀이는 서술자의 말이다.

[주 8-02] 루돌슈타트 골짜기에서 그해 여름 『네 겹의 뿌리』를 썼고 여관 「기사관」(Gasthaus zum Ritter)에 묵었다는 것은 그비너 같은 책 33~34쪽. 그비너는 학위를 「10월 초」에 「없는 채로」(in absentia) 받았다고 적고,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는 예나 대학 박사 학위를 1813년 10월 18일로 적는다. 날짜가 엇갈려 본문에는 10월만 썼다. 그해 겨울을 바이마르에서 보낸 것은 그비너 34쪽. 「남들이 모두 총을 들던」은 그비너의 「시대는 그에게 주어진 것과 다른 재능을 요구했다」(da die Zeit andere Gaben forderte als ihm verliehen waren)를 풀어 쓴 것이다.

[주 8-03] 괴팅겐에서 보낸 편지, 그비너 같은 책 45~46쪽에서 재인용. 스캔(archive.org PDF 66쪽)으로 대조했다. 한국어 의역. 원문은 Die Philosophie ist eine Alpenstrasse, zu der nur ein steiler Pfad über Steine und Dornen führt. Immer einsamer, immer öder wird er, je höher man kommt, und wer ihn geht, darf kein Grausen kennen, sondern muss alles hinter sich lassen und sich zuletzt den Weg im Schnee selbst bahnen. Oft steht er plötzlich am Abhang und sieht unten das grüne Thal: dahin zieht ihn der Schwindel gewaltsam hinab; aber er muss sich halten. 편지의 받는 사람과 날짜는 그비너가 밝히지 않았다(재확인).

[주 8-04] 괴테, 프리드리히 마이어가 인도 고대로 이끈 일, 칼데론의 『굳센 왕자』 공연 뒤 어머니의 모임을 떠나 혼자 있을 곳을 찾은 일, 바이마르가 그를 흩어 놓고 길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판단(so sehr zerstreute es ihn auch und lenkte ihn unwillkürlich von seinem Wege ab)은 그비너 같은 책 44~45쪽. 판단은 그비너의 것이며 취지를 옮겼다.

[주 8-05] 그비너 같은 책 44~45쪽. 스캔(PDF 65쪽)으로 대조했다. 괴테 말고 사람으로서 끌린 것은 야게만 한 사람뿐이었다는 것, 그녀가 카를 아우구스트가 아끼는 여인(der gefeierte Liebling Karl August's)이었고 어머니의 모임에 빠질 수 없는 손님이었다는 것, 그가 어머니에게 털어놓은 말은 그비너의 전언이다. 그 말의 한국어 의역 원문은 Dieses Weib … würde ich heimführen und wenn ich sie Steine klopfend an der Landstrasse fände. 「바이마르의 군주」라는 풀이는 서술자의 말이다. 그 말을 한 날짜와 장소는 자료에 없어 1813~1814년 겨울 손님이 돌아간 저녁에 두었다. 그 뒤 요한나와 아들이 주고받은 대사는 모두 소설의 창작이다. 요한나가 실제로 어떻게 답했는지는 기록에 없다. 그녀가 1807년 아들이 상회를 떠나 학업으로 옮기도록 거든 것은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07~1809년 항목.

[주 8-06] 1814년 5월 어머니와 갈라선 뒤 드레스덴으로 옮긴 것은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14~1818년 항목,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연표 1814년 항목(Trennung von der Mutter und Übersiedlung nach Dresden). 그비너 같은 책 46쪽은 바이마르가 그를 흩어 놓았기 때문에(daher) 1814년 봄 드레스덴으로 물러났다고 적는다. 그가 야게만에게 다가갔다는 기록은 확보한 자료와 위 자료에 없다. 어머니와 갈라선 경위는 다른 화에서 다룬다.

[주 8-07] 그비너 같은 책 47~49쪽. 세상 사람답게 젊음을 누렸다는 것(seine ihr Recht fordernde Jugend, so weit es der höhere Zweck … zuliess, als Mann von Welt zu geniessen),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슐체(필명 프리드리히 라운)가 그를 「한 연애 사건」(einer galanten Affaire)에서 빼내 주었다는 것은 그비너의 전언이며 취지를 옮겼다. 연애 사건의 상대와 내용은 자료에 없다. 「날씬하고 머리칼이 검은 여인들」(nur die schlanken Brünetten)은 같은 책 45쪽.

[주 8-08]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 둘째 책(Zweites Buch) §18. 1891년 브로크하우스판(프라우엔슈테트 편), 인쇄 119쪽, PDF 163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인용은 Dem Subjekt des Erkennens … ist dieser Leib auf zwei ganz verschiedene Weisen gegeben … Jeder wahre Akt seines Willens ist sofort und unausbleiblich auch eine Bewegung seines Leibes 의 한국어 의역이다. 원함과 움직임이 원인과 결과가 아니라 하나라는 대목(Der Willensakt und die Aktion des Leibes sind nicht zwei objektiv erkannte verschiedene Zustände …)과 「수수께끼의 답이 되는 말은 의지」(das Wort des Räthsels … und dieses Wort heißt Wille)는 같은 쪽을 스캔으로 대조했고 취지를 옮겼다.

[주 8-09] 같은 절, 인쇄 120쪽, PDF 164쪽. 「직접적 객관」을 「의지의 객관성」으로 고쳐 부른다는 대목(den Leib, welchen ich … in der Abhandlung über den Satz vom Grunde … das unmittelbare Objekt hieß, hier … die Objektität des Willens nennen)과 결심 대목은 스캔으로 대조했다. 결심 대목의 원문은 Willensbeschlüsse, die sich auf die Zukunft beziehen, sind bloße Ueberlegungen der Vernunft, über das, was man dereinst wollen wird, nicht eigentliche Willensakte: nur die Ausführung stempelt den Entschluß, der bis dahin immer nur noch veränderlicher Vorsatz ist und nur in der Vernunft, in abstracto existirt. In der Reflexion allein ist Wollen und Thun verschieden: in der Wirklichkeit sind sie Eins. 한국어 의역. 아픔과 쾌락이 표상이 아니라 의지의 직접적 변용이라는 대목(Schmerz … Wollust …)은 같은 쪽 아랫부분을 OCR로 읽고 취지를 옮겼다. 스캔 대조는 하지 않았다(재확인). 루돌슈타트 논문의 「직접적 객관」에 대한 풀이(바깥 세상을 알게 되는 출발점)는 서술자의 말이다.

[주 8-10]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권(1844) 제19장 「자기의식에서 의지가 앞선다는 것에 관하여」. 앞 못 보는 힘센 사람과 앞을 보는 다리 저는 사람의 비유, 이성이 스스로를 다스리게 결정하는 경우와 「자기 자신의 주인」이라는 말은 홀데인·켐프의 영역본 제2권(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0097번)으로 위치와 뜻을 확인하고 취지를 옮긴 것이다. 독일어 스캔에서 해당 쪽을 찾지 못해 원문 대조를 하지 못했다(재확인). 직접 인용하지 않았다.

[주 8-11] §18이 자기 몸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주 8-08]·[주 8-09]의 쪽. 다른 물체에도 같은 것을 미루어 넓히는 논증은 바로 다음 §19에 있다. §19 본문은 인용하지 않았다.

사료에 근거한 것은 1813년 베를린을 떠난 피난과 통역, 루돌슈타트의 여관과 논문, 예나의 학위, 바이마르의 겨울과 그곳 사람들, 칼데론 공연 뒤의 일, 야게만에 대해 어머니에게 털어놓은 말, 1814년 5월 드레스덴으로 옮긴 일, 드레스덴의 생활과 슐체가 도운 연애 사건이다. 생애 세부는 대부분 그비너의 전기(1862)에 기대며, 그비너는 쇼펜하우어를 가까이서 안 사람이지만 그 서술은 증언이자 해석이다. 손님이 돌아간 저녁의 장면, 요한나와 아르투어의 대사, 등잔 심지, 드레스덴으로 가는 마차 안은 소설의 창작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8년 말 출간, 표제 연도 1819)와 제2권(1844)은 1813~1814년의 아르투어가 이미 품은 생각이 아니라 뒷날의 저작으로 비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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