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10,118자)
같은 세계를 살면서 다른 세계를 본다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13년 11월, 스물다섯 살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바이마르의 어머니 집에 얇은 책 한 권을 들고 왔다. 그는 그해 봄 전쟁이 베를린에 다가오자 대학을 떠나, 바이마르에서 멀지 않은 작은 도시 루돌슈타트의 여관 방에 틀어박혀 여름 내내 박사 논문을 썼다. 무엇이든 그렇게 되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는 원리가 네 가지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따진 논문이었다. 10월 예나 대학이 그 논문으로 그에게 박사 학위를 주었다.[주 7-01] 책 이름은 『충족 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였다.
어머니는 책 이름을 보고 웃었다.
“네 겹의 뿌리라니, 약제사들이나 볼 책이로구나.”
“어머니 책은 헛간 구석에 한 권도 남지 않을 때가 올 겁니다. 그때도 이 책은 읽힐 겁니다.”
“네 책은 그때도 한 판이 고스란히 서점에 남아 있겠지.”[주 7-02]
같은 책이었다. 아들에게 그것은 앎이 무엇에 기대어 서는지를 처음으로 제 손으로 따진 결과였다. 어머니에게 그것은 이름부터 우스운 책이었다. 그 무렵 요한나는 이름이 알려진 작가가 되어 있었고, 그녀의 책은 잘 팔렸다. 그녀가 본 것도 틀리지 않았다. 아들의 첫 책은 대부분 팔리지 않고 폐지가 되었다.[주 7-02] 요한나에게 책은 읽히려고 쓰는 것이었다. 아무도 집어 들지 않는 책은 아무리 깊어도 아무에게 닿지 않는다. 아르투어에게 책은 옳으려고 쓰는 것이었다. 옳은 책은 언젠가 제 독자를 찾는다. 두 사람은 같은 책을 사이에 두고, 책이 무엇을 위해 있느냐를 두고 맞섰다.
같은 책을 다르게 본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어머니의 응접실에 드나들던 괴테였다.
*
괴테는 그 논문을 읽었다. 그는 편견 없이 스스로 생각하는 젊은이를 만났다는 데 놀라고 기뻐했다. 그 무렵 예순이 넘은 괴테는 사람을 잘 가까이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 일에서는 달랐다. 그는 평생을 들인 색채 연구를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데 서운해하고 있었고, 그 연구에 편견 없이 덤벼들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는 아르투어의 하숙으로 자기 광학 기구들을 보내 주었다. 아르투어는 계획보다 오래 바이마르에 머물며 괴테의 지도로 빛과 색을 공부했다.[주 7-03] 어머니 집에서 아가씨들이 연극을 올린 날 저녁, 괴테는 그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자기 집에 혼자 오라고 했다.[주 7-04]
괴테의 서재에는 프리즘과 유리판과 검게 칠한 판자들이 놓여 있었다. 창문의 덧문에 뚫은 작은 구멍으로 들어온 빛이 벽에 둥근 자리를 만들었다. 괴테는 프리즘을 그 빛 앞에 대고 벽에 번지는 색의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아르투어는 색을 보다가 다른 것을 말했다.
“선생님, 이 빛도 이 색도 제가 보는 동안에만 이렇게 있습니다. 모든 대상은 그것을 보는 주관이 있을 때에만 대상으로 있습니다.”
괴테는 프리즘을 내려놓고 그를 보았다. 크고 맑은 눈이었다.
“뭐라고? 빛이 자네가 보는 동안에만 있다고? 아닐세. 빛이 자네를 보지 않았더라면 자네가 여기 없었을 걸세.”[주 7-05]
“제가 아는 빛은 제가 보는 빛뿐입니다. 저를 떠난 빛이 어떤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습니다.”
“자네 눈이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나? 빛이 먼저 있었고, 눈은 그 빛을 받으려고 생겨났어. 자네의 보는 일은 세계의 한 조각일세. 세계가 자네의 보는 일의 한 조각이 아니라.”
괴테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대상이 그것을 떠올리는 주관이 있을 때에만 대상으로 있다는 생각을 도무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아르투어는 뒷날 그를 두고 그토록 철저한 실재론자였다고 말했다.[주 7-05] 괴테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사람의 눈도 몸도 자연 속에서 생겨났고, 누가 보기 전에도 해는 떠올랐다. 아르투어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누가 보기 전의 해를 말하는 순간 그 해는 이미 누군가의 생각 속에 있었고, 아무도 자기 눈을 빼놓고 해를 볼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같은 프리즘 앞에 서서 서로 다른 세계를 보고 있었다. 괴테에게는 눈이 세계 안에 있었고, 아르투어에게는 세계가 눈 앞에 있었다.
두 사람이 지키려던 것도 달랐다. 괴테에게 색채 연구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오래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보는 사람이 있어야 빛이 있다고 하면, 그가 공들여 관찰한 색은 관찰자의 사정이 되고 자연의 사실이 아니게 된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르투어에게 철학은 아무것도 미리 믿지 않고 가장 확실한 데서 출발하는 일이었다. 그가 의심할 수 없는 것은 해가 아니라 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철학은 증명되지 않은 믿음 위에 서게 된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 사람은 자연을 지키려 했고, 한 사람은 확실성을 지키려 했다.
*
그 겨울의 공부는 세 해 뒤 짧은 책이 되었다. 1816년 아르투어는 『시각과 색채에 관하여』를 냈다.[주 7-06] 그는 괴테가 물체에서 생기는 색을 바르게 설명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 설명이 빛과 색 전체를 다루는 이론이 될 수는 없다고 보았고, 색을 눈이 하는 일에서부터 설명해야 한다고 썼다.[주 7-03] 괴테는 그 책을 받고 한 친구에게 이렇게 적었다. 쇼펜하우어 박사는 뛰어난 머리다. 그가 바이마르에 머무는 동안 내 색채론을 붙들게 한 것은 나였다. 그런데 이 젊은이는 내 입장에서 출발해 내 적수가 되었다.[주 7-07]
어머니와는 더 짧게 끝났다. 1814년 5월, 함께 지내던 몇 달 동안 다툼이 거듭된 끝에 그는 바이마르를 떠나 드레스덴으로 갔다. 그 뒤로 어머니와 아들은 다시 만나지 않았다.[주 7-08]
*
사실은 같은데 왜 사람들의 해석은 이렇게 다른가? 사람은 누구도 세계를 바깥에서 보지 못하고, 언제나 자기가 보는 자리에서만 세계를 만난다. 그러나 그 자리가 생기는 조건은 모두에게 같다.
드레스덴에서 그는 네 해 동안 자기 책을 썼다. 1818년 서른 살에 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첫 절을 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이것은 살아 있고 인식하는 모든 존재에게 들어맞는 진리다. 다만 이것을 반성하여 추상적인 의식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이다. 사람이 정말 그렇게 하면 그에게 철학적 사려가 생긴다. 그때 그에게 분명하고 확실해진다. 그는 해를 아는 것도 땅을 아는 것도 아니다. 그가 아는 것은 언제나 해를 보는 눈 하나, 땅을 만지는 손 하나뿐이다. 그를 둘러싼 세계는 오직 표상으로서만, 곧 전적으로 다른 하나, 표상하는 자와의 관계 안에서만 거기 있고, 그 표상하는 자는 바로 그 자신이다.”[주 7-09]
‘표상’은 그가 쓰는 말로, 마음 앞에 세워져 나타나는 것을 가리킨다. 공상이나 착각이 아니다. 해는 실제로 하늘에 있다. 다만 그 해는 늘 누군가에게 나타난 해로만 있다. 그의 논증은 이렇게 나아간다. 먼저 그는 어떤 경험에도 앞서는 형식을 찾는다. 시간과 공간과 원인과 결과는 모든 경험이 따르는 형식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앞서는 형식이 있다. 무엇이 나타나려면 먼저 그것을 아는 쪽과 알려지는 쪽으로 나뉘어야 한다. 주관과 객관으로 갈라지는 이 형식은 시간과 공간과 인과보다 더 일반적이고, 그것들이 모두 이 형식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그는 결론짓는다. 인식에 대해 있는 모든 것, 이 세계 전체는 주관과 관계된 객관일 뿐이고, 이보다 확실하고 증명이 덜 필요한 진리는 없다.[주 7-10] 그는 이것을 경험을 모아 얻은 결론이 아니라 경험에 앞서 말할 수 있는 진리라고 부른다. 어떤 경험이든 먼저 누군가가 무엇을 겪는 꼴을 갖추어야 경험이 된다. 그러니 경험을 아무리 더 모아도 이 진리를 뒤집을 경험은 나오지 않는다.
이 논증은 사람마다 제 세계를 따로 지어낸다는 말이 아니다. 세계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면, 기분이 좋은 날 프리즘은 다른 색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표상은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알 때마다 이미 따르고 있는 틀이다. 주관과 객관으로 갈라지는 형식, 시간과 공간과 인과의 형식은 인식하는 모든 존재에게 같다. 그래서 같은 프리즘 앞에서 괴테와 아르투어는 같은 색의 가장자리를 보았고, 같은 책을 손에 든 어머니와 괴테는 같은 글자를 읽었다. 사실이 같아 보이는 것은 그 형식이 같아서다. 그런데 그 형식 때문에 누구도 자기 자리를 떠나 사물 그 자체와 자기 눈을 견주어 볼 수 없다. 누구의 해석이 맞는지 가려 줄 바깥의 심판석은 없다. 어머니는 아들의 책을 팔리는 책이라는 잣대로 보았고, 괴테는 자기 색채론의 편이 될 머리라는 잣대로 보았다. 같은 형식 안에서 무엇을 보려고 하느냐가 두 사람을 갈랐다. 해석이 갈리는 자리는 눈이 아니라 눈 뒤에서 무엇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를 그는 같은 책의 둘째 편에서 따로 묻는다.
*
그러나 그는 첫 절 끝에서 이 진리가 한쪽만 본 것이라고 스스로 밝힌다. 세계를 표상으로만 보는 것은 어떤 임의의 분리에서 생긴 것이고, 세계에는 다른 한쪽이 있다고 그는 쓴다.[주 7-10] 그 다른 한쪽을 그는 책의 둘째 편에서 의지라고 부른다. 세계가 표상일 뿐이라면 세계는 꿈과 구별되지 않고, 보는 사람 자신도 자기에게 하나의 표상일 뿐이다. 그는 그 빈자리를 그냥 두지 않았다. 다만 그 답은 표상의 문을 지나 다른 문으로 들어가야 얻을 수 있었다. 괴테의 반박도 거기서 다시 힘을 얻는다. 보는 눈이 세계의 조건이라면, 그 눈을 지닌 몸은 어디서 왔는가? 그 몸은 세계 안의 한 사물이 아닌가? 서재의 그 겨울밤, 괴테의 물음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더 가까운 모순이 있다. 모든 것은 그것을 보는 자리에 매여 있다고 쓴 사람이, 자기가 본 것만큼은 틀릴 수 없다고 믿었다. 그는 괴테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고, 어머니 앞에서는 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첫 절에서 경험에 앞서 확실하다고 한 것은 세계가 주관에 대한 객관이라는 형식 하나뿐이었다. 괴테의 색 설명이 어디까지 맞는지, 어머니가 아들의 책을 어떻게 보았는지는 그 형식이 보증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형식 안에서 내린 판단이었고, 판단은 그 사람이 무엇을 보려 하느냐에 따라 기울었다. 가장 확실한 진리를 손에 쥔 사람일수록 자기 판단까지 그만큼 확실하다고 믿기 쉽다. 세계가 나의 표상이라면, 내가 옳다는 나의 확신도 나의 표상이 아닌가?
1814년 5월 그는 어머니의 도시이자 괴테의 도시를 떠나 드레스덴으로 갔다. 이제 그는 누구의 눈도 빌리지 않고 자기 눈으로 세계를 보아야 했다. 그리고 그 눈 역시 한 자리에 매여 있다는 것을, 그는 네 해 뒤 자기 책 첫 쪽에 누구보다 먼저 적어 놓게 된다.
후주
[주 7-01] 1813년 봄 전쟁으로 베를린을 떠난 것, 루돌슈타트에서 박사 논문 『충족 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를 쓴 것, 1813년 10월 18일 예나 대학 박사 학위를 받고 다시 바이마르로 간 것은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11~1813년·1813~1814년 항목(Nach Empfang des Doktor-Diploms der Universität Jena (18. Oktober 1813) abermals nach Weimar)과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연표 1813년 항목. 여관(Gasthaus zum Ritter)에서 지낸 것은 빌헬름 폰 그비너, 『가까이에서 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922, 48쪽. 인터넷 아카이브 전사본(archive.org/details/arthurschopenhau00gwin). 논문의 내용을 「까닭이 있다는 원리의 네 모양」으로 푼 것은 서술자의 설명이다. 책을 들고 온 「11월」은 학위 수여 뒤라는 데서 소설이 정했다.
[주 7-02] 그비너 같은 책 50쪽. 어머니가 「약제사들이나 볼 것」이라고 놀리자 아들이 「네 책은 헛간에 한 권도 남지 않을 때에도 읽힐 것」이라고 받았고, 어머니가 「네 책은 그때도 한 판이 다 남아 있겠지」라고 되받았다는 것(Als er ihr „die vierfache Wurzel" überreichte, scherzte sie: das sei wohl etwas für Apotheker. „Man wird es noch lesen," entgegnete er, „wann von deinen Schriften kaum mehr ein Exemplar in einer Rumpelkammer stecken wird!" Sie gab ihm den Spott zurück: „Von den deinigen wird die ganze Auflage noch zu haben sein."), 그의 첫 책들이 대부분 폐지가 되고 요한나의 책은 잘 팔렸다는 것은 그비너의 서술이다. 세 대사는 그비너가 전한 말을 의역한 것이다. 그비너는 이 이야기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
[주 7-03] 그비너 같은 책 54~55쪽. 괴테가 논문을 읽고 편견 없는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 놀라고 기뻐했다는 것, 그 무렵 가장 닫혀 있던 시기였으나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서운해하던 『색채론』이 둘을 가깝게 했다는 것, 광학 기구를 집으로 보내 주었고 아르투어가 계획보다 오래 머물며 괴테의 지도로 광학을 공부했다는 것, 괴테가 물체의 색을 바르게 설명했지만 그 이론이 일반 광학 이론이 될 수는 없고 생리학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보았다는 것은 그비너의 서술이다.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13~1814년 항목도 이때 괴테와 더 자주 만났다고 적는다. 괴테가 예순이 넘었다는 것은 그비너가 아르투어를 괴테보다 「거의 마흔 살 아래」(den fast vierzig Jahre jüngern)라고 적은 데서 셈했다.
[주 7-04] 그비너 같은 책 55~56쪽. 어머니 집에서 젊은 아가씨들이 연극을 올린 저녁 괴테가 처음으로 호의를 보였고, 다음 날 저녁 혼자 오라고 초대했다는 것. 서재의 모습(프리즘, 덧문의 구멍, 벽의 빛)은 소설의 창작이다.
[주 7-05] 그비너 같은 책 55쪽이 율리우스 프라우엔슈테트의 『회상록』(Memorabilien) 222쪽에서 옮긴 쇼펜하우어 자신의 말. 원문은 „Dieser Goethe war so ganz Realist, dass es ihm durchaus nicht zu Sinn wollte, dass die Objekte als solche nur da seien, insofern sie von dem erkennenden Subjekt vorgestellt werden. Was, sagte er mir einst, mit seinen Jupiteraugen mich anblickend, das Licht sollte nur da sein, insofern Sie es sehen? nein, Sie wären nicht da, wenn das Licht Sie nicht sähe." 괴테의 첫 대사는 이 기록의 의역이다. 그 밖의 대사, 이 말이 나온 때와 곳을 서재의 그 겨울밤으로 정한 것은 소설의 창작이며, 아르투어의 대사는 그가 괴테에게 했다고 스스로 밝힌 주장에, 괴테의 둘째 대사는 기록된 그의 실재론적 반박에 근거했다. 「크고 맑은 눈」은 「유피테르의 눈」을 풀어 쓴 것이다. 인터넷 아카이브 전사본으로 읽었고 쪽 그림 대조는 하지 않았다(재확인).
[주 7-06] 『시각과 색채에 관하여』(Ueber das Sehn und die Farben, 1816)는 스탠퍼드 철학 백과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항목(On Vision and Colors (1816))과 생애 연표.
[주 7-07] 그비너 같은 책 56~57쪽에 실린 괴테의 말(Dr. Schopenhauer ist ein bedeutender Kopf, den ich selbst veranlasste, weil er eine Zeit lang sich in Weimar aufhielt, meine Farbenlehre zu ergreifen … Nun ist dieser junge Mann, von meinem Standpunkte ausgehend, mein Gegner geworden). 그비너는 이 말을 뒨처 편 『괴테와 국가 고문관 슐츠의 왕복 서한』(1853) 149쪽에서 가져왔다. 간접 인용으로 의역했다. 「한 친구」는 슐츠다.
[주 7-08]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14~1818년 항목(Zerwürfnis mit der Mutter. Im Mai 1814 geht Schopenhauer nach Dresden),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연표 1814년 항목, 그비너 같은 책 51쪽(dass die um ihre Gemütsruhe sehr besorgte Frau schon nach wenigen Monaten dem Zusammenleben für immer ein Ziel steckte … Gesehen haben sie einander, soviel mir bekannt ist, vom Mai 1814 bis zum Tod Johannas nicht wieder). 「다시 만나지 않았다」는 그비너가 「내가 아는 한」이라는 단서를 붙여 적은 것이다.
[주 7-09]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 제1편 §1. 1891년 브로크하우스판(프라우엔슈테트 편, 전집 제2권), 인쇄 3쪽, PDF 43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Die Welt ist meine Vorstellung:" — dies ist eine Wahrheit, welche in Beziehung auf jedes lebende und erkennende Wesen gilt; wiewohl der Mensch allein sie in das reflektirte abstrakte Bewußtseyn bringen kann: und thut er dies wirklich; so ist die philosophische Besonnenheit bei ihm eingetreten. Es wird ihm dann deutlich und gewiß, daß er keine Sonne kennt und keine Erde; sondern immer nur ein Auge, das eine Sonne sieht, eine Hand, die eine Erde fühlt; daß die Welt, welche ihn umgiebt, nur als Vorstellung da ist, d. h. durchweg nur in Beziehung auf ein Anderes, das Vorstellende, welches er selbst ist. 한국어 의역.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초판은 1818년 말에 나왔고 표제 연도는 1819년이다. 드레스덴에서 1814~1818년에 썼다는 것은 생애 연표(B1·B3).
[주 7-10] 같은 절, 인쇄 3쪽(PDF 43쪽) 아래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주관과 객관으로의 분열이 시간·공간·인과보다 더 일반적인 형식이며 모든 표상의 공통 형식이라는 대목(so ist dagegen das Zerfallen in Objekt und Subjekt die gemeinsame Form aller jener Klassen … Keine Wahrheit ist also gewisser, von allen andern unabhängiger und eines Beweises weniger bedürftig, als diese, daß Alles, was für die Erkenntniß da ist, also diese ganze Welt, …)은 전제·이유·결론으로 재서술한 것이다. 문장의 끝(nur Objekt in Beziehung auf das Subjekt …)은 인쇄 4쪽으로 OCR로 읽었다. 이 진리가 한쪽만 본 것이며 다른 한쪽이 있다는 대목(영문 대조본 one-sided, adopted in consequence of some arbitrary abstraction, 독일어 인쇄 4~5쪽 무렵)은 영문 대조본으로만 읽었고 스캔 대조는 하지 않았다(취지, 재확인).
사료에 근거한 것은 1813년 루돌슈타트에서 쓴 박사 논문과 예나 대학 학위, 어머니와 나눈 「약제사」 문답, 첫 책이 팔리지 않은 일, 괴테가 논문을 읽고 광학 기구를 보내 함께 색채를 연구한 일, 연극을 올린 저녁과 이튿날 초대, 「빛이 자네를 보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괴테의 말, 1816년의 색채 논문과 괴테의 평, 1814년 5월 드레스덴으로 떠나 어머니와 다시 만나지 않은 일이다. 괴테 서재의 모습과 대화의 나머지 대사, 그 말이 나온 때와 곳은 소설의 창작이다. 1818년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스물다섯 살 아르투어의 생각이 아니라 서른 살의 저작으로 비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