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12,045자)

늦게 시작하는 선택은 실패인가?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06년 12월, 바이마르의 요한나 쇼펜하우어 응접실에서 라틴어 이야기가 나왔다. 라틴어가 얼마나 필요한지, 그런데 요즘은 얼마나 배우지 않는지를 손님들이 말했다. 요한나는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은 어려서 라틴어를 배울 수 없었다고, 살아 있는 외국말은 쉽게 완벽하게 익혔는데 라틴어는 그러지 못했다고. 그 자리에 있던 괴테가 대답했다.

괴테는 놀랍지 않다고 했다. 라틴어는 엄청나게 어렵고,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으며, 어린 시절을 통째로 거기에 바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비유를 들었다. 금화 열 닢이 탁자 위에 있으면 쓸어 담기 쉽다. 그러나 그 금화가 오래된 우물 깊은 바닥에 있고 그 위에 돌과 흙과 덤불이 덮여 있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이는 그 속으로 애써 기어 들어갈 수 있지만 어른은 그만두어야 한다. 요한나가 아들이 아직 배우고 싶어 하지만 자기는 말릴 생각이라고 하자, 괴테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무언가는 남는다고, 아들이 하겠다면 아주 좋고 쓸모 있는 일이라고, 다만 완벽하게는 끝내 이르지 못할 거라고 했다.[주 5-01]

요한나는 그 말을 그대로 함부르크의 아들에게 적어 보냈다. 아르투어는 열여덟 살이었고, 아직 상회의 책상에 앉아 있었다.

*

석 달 뒤 1807년 3월에도 어머니의 생각은 그대로였다. 그녀는 바이마르에서 늦게 공부를 시작해 이름을 얻은 사람들을 보면 이런저런 궁리가 떠오른다고 썼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고생해서 스스로 쌓은 학교 지식을 들고 대학에 갔다. 우아하게 자란 너에게는 그것이 없다. 그러니 너는 이미 정한 길에 머무는 게 맞을 거라고 그녀는 썼다.[주 5-02]

3월 말 아들이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어머니의 답장으로 보아 그것은 진지하면서도 차분했고, 마음 깊은 데서 나와 마음에 닿는 편지였다. 어머니는 그 편지를 읽고 놀랐다. 아들이 엉뚱한 길에서 제 삶의 목적을 놓쳐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그녀를 흔들었다.[주 5-03] 그녀는 그 편지의 중요한 대목을 친구 페르노프에게 읽어 주었다. 페르노프는 로마에서 오래 그림을 공부하고 돌아와 바이마르 공작 대비의 사서로 일하는 미술 평론가였다. 그는 가난했고, 지금의 아르투어보다 네댓 살 많은 나이에야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었다. 그는 아르투어를 직접 알지 못해서 그의 천직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자기 생각을 글로 적어 주었다.[주 5-03]

4월 28일 요한나는 그 글을 넣어 긴 답장을 썼다.

“하루를 일부러 비워 두고 네 하소연과 바람에 하나하나 답하려 한다. 나도 오래 많이 생각했는데 반가운 결론은 얻지 못했다. 그건 아주 당연하다. 남의 처지에 서서 생각하기란 몹시 어렵다. 더구나 네 처지와 내 처지가 이렇게 다르고 우리 성격이 이렇게 다를 때는 더 그렇다. 너는 타고나기를 결단을 잘 못 하고, 나는 어쩌면 너무 빠르고 너무 쉽게 결단한다.”[주 5-04]

그리고 그녀는 셈을 해 보였다. 페르노프도 나처럼 늦지 않았다고 본다. 네가 정말로 학문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끌림과 끝까지 버틸 용기를 느낀다면, 너는 스물여섯 살쯤 너 자신과 학문을 위해 살게 될 것이다. 상업에 남으면 스물두 살에 예니슈 상회를 나와 다른 상회에서 몇 해를 더 보내야 하니, 제 상회를 차리는 때도 그쯤이다. 걸리는 시간은 대략 같다.[주 5-04] 그녀는 결정을 대신 내리지 않았다. 네 길은 네가 찾고 네가 골라야 하고, 그러면 나는 돕겠다고 썼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당부했다. 너를 속이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나는 네 곧은 성품을 안다. 그러나 눈물을 머금고 빈다, 너 자신을 속이지 말라.[주 5-05]

아르투어는 그 편지와 페르노프의 글을 읽고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아마도 평생 단 한 번, 망설이지 않고 결정했다.[주 5-06] 그는 상회를 떠났다.

*

1807년 6월 그는 고타의 김나지움에 들어갔다. 교장 되링이 따로 시간을 내어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쳤다. 되링은 이 늦깎이 학생이 무섭게 따라오는 것을 보고 학자로서 빛나는 앞날을 내다보았다. 같은 학교의 이름난 고전학자 야코프스는 그의 독일어 작문이 얼마나 원숙한지에 놀랐다.[주 5-07] 다섯 해 늦은 출발을 몇 달 만에 따라잡고 있었다.

그 몇 달이 그를 들뜨게 했다. 그는 이미 독일어 시간에는 맨 윗반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그와 별로 알지도 못하는 교사 슐츠가 그 맨 윗반을 깎아내리는 말을 했다. 새로 들어온 학생은 그 교사를 비웃는 글을 지었다. 사사로이 돌린 것이었는데 그 말이 슐츠의 귀에 들어갔다.[주 5-07]

되링이 그를 불렀다.

“자네는 몇 달 전까지 라틴어 문법책을 펴 본 적도 없었네. 그런데 이 학교 교사를 비웃었어.”

“그분이 저희 반을 먼저 깎아내렸습니다. 저는 틀린 말을 틀렸다고 했을 뿐입니다.”

“틀린 말이었을 수도 있지. 그러나 자네가 그걸 말할 자리는 아직 아니네. 나는 그 사람의 동료일세. 동료를 비웃는 학생을 내 방에 따로 앉혀 가르칠 수는 없어.”

“저는 늦게 왔습니다. 남들이 열 해에 할 것을 두 해에 해야 합니다. 그러니 무엇이 맞는지 따지는 데 시간을 아끼고 싶지 않습니다.”

“늦게 왔으니 더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나?”

되링은 따로 하던 수업을 그만두었다.[주 5-07] 되링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학교는 교사들이 서로를 지켜야 돌아가는 곳이었고, 몇 달 만에 앞서 나간 학생이 교사를 웃음거리로 만들면 그 학교는 그 학생을 지킬 수 없었다. 아르투어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늦게 시작한 사람에게는 남의 눈치를 보며 배울 시간이 없었고, 그는 옳지 않다고 본 것을 옳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고타에 반년밖에 머물지 않았다. 1807년 말 그는 바이마르로 옮겨 그리스 고전 학자 파소의 집에 살며 공부를 이어 갔다.[주 5-07]

그 뒤 두 해 동안 그는 하루하루 먹고살 빵을 벌어야 하는 사람처럼 공부했다. 낮 시간뿐 아니라 밤의 절반까지 읽고 외웠다.[주 5-08] 김나지움에서 몇 해에 걸쳐 배울 것을 두 해 만에 끝내고, 1809년 10월 9일 그는 괴팅겐 대학에 들어갔다.[주 5-09] 스물한 살이었다.

*

늦게 시작하는 선택은 실패인가? 늦게 시작하는 선택은 실패가 아니다. 실패는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끝내 모른 채 남의 자리에 머무는 것이다.

열한 해 뒤인 1818년, 서른 살의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펴냈다. 그 책은 네 편으로 되어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번호가 붙은 일흔한 개의 절로 나뉜다. 그 가운데 쉰다섯 번째 절에서 그는 사람의 성격을 셋으로 가른다. 하나는 경험 이전의 본래 성격, 하나는 그것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경험적 성격이다. 그리고 셋째로 ‘획득된 성격’을 든다. 획득된 성격은 사람이 살면서 세상을 겪어야 비로소 얻는 것으로, 누가 ‘성격이 있다’거나 ‘성격이 없다’고 할 때 가리키는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이렇게 쓴다.

“경험적 성격은 본래 성격이 드러난 것이어서 바뀌지 않고, 모든 자연 현상처럼 늘 한결같다. 그러니 사람도 늘 자기 자신과 같고 한결같이 나타날 것이며, 경험과 숙고로 따로 성격을 얻을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정은 다르다. 사람은 늘 같은 사람이지만 언제나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제대로 된 자기 인식을 어느 정도 얻기 전까지는 자기를 자주 잘못 안다.”[주 5-10]

그는 까닭을 이렇게 푼다.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원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눈앞에 본다. 그는 자기 안에서 온갖 일의 싹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싹들이 자기 안에서 얼마나 크고 작은지는 겪어 보기 전에는 모른다. 그래서 그는 남의 처지를 부러워하고, 자기에게 맞지 않는 일을 시도하고, 자기 성격을 거스르다가 결국 다시 그 성격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애써 얻은 것은 그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고, 그렇게 배운 것은 죽은 채로 남는다. 그가 드는 비유는 이렇다. 땅 위에서 우리가 가는 길은 늘 하나의 선이지 넓은 면이 아니다. 하나를 붙잡으려면 오른쪽과 왼쪽에 놓인 수많은 다른 것을 놓아야 한다. 장터의 아이처럼 눈에 띄는 것마다 움켜쥐는 사람은 선을 면으로 바꾸려 들다가 갈지자로 헤매고 아무 데도 이르지 못한다.[주 5-10] 그리고 그는 결론을 적는다.

“우리는 먼저 경험으로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한다. 그때까지는 그것을 모르고, 성격이 없으며, 바깥에서 오는 거친 충격에 밀려 자기 길로 되돌아가야 할 때가 많다. 그러나 마침내 그것을 배우고 나면, 세상이 성격이라고 부르는 것, 곧 획득된 성격을 얻는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자기 개성을 될 수 있는 대로 온전히 아는 일이다.”[주 5-11]

이 논증으로 1807년을 보면 다섯 해의 늦음이 다르게 보인다. 열네 살의 아르투어는 김나지움을 원했지만, 유럽 여행이 눈앞에 오자 그것도 원했다. 그는 선을 면으로 바꾸려 했고, 그 값으로 상회의 책상에 앉았다. 상회의 두 해 남짓은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무엇을 견딜 수 없는지를 몸으로 배운 시간이었다. 어머니의 셈이 보여 주었듯, 늦게 떠나도 걸리는 시간은 비슷했다. 다른 것은 그가 이제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는 점이었다. 획득된 성격은 그 앎이다. 그 앎은 겪어 본 뒤에만 오고, 겪는 데는 시간이 든다. 늦게 시작한 사람은 그 시간을 먼저 쓴 사람이다.

*

그렇다고 늦음에 값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괴테의 예언은 반만 맞았다. 그비너는 그가 뛰어난 스승들과 타고난 언어 재능으로 놓친 공부를 아주 짧은 시간에 메웠다고 적는다.[주 5-08] 늦음의 값은 라틴어가 아닌 다른 데서 왔다. 쉰다섯 번째 절에서도 그는 그 값을 숨기지 않는다. 자기 성격을 거스르며 억지로 얻은 것은 죽은 채로 남는다고 그는 썼다. 늦게 시작한 사람이 앞선 사람들을 따라잡으려 서두르면, 그는 자기 것이 아닌 것을 흉내 내게 된다. 그는 남의 성질과 버릇을 흉내 내는 것은 남의 옷을 입는 것보다 훨씬 부끄럽다고도 썼다.[주 5-12] 고타의 맨 윗반에 막 올라 교사를 비웃은 청년은, 늦은 출발을 따라잡았다는 들뜸에 자기보다 먼저 온 사람을 깔보았다. 그 값으로 그는 되링의 수업을 잃었다.

그리고 더 어려운 물음이 남는다. 어머니는 눈물을 머금고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했다. 지금 처지가 싫어서 생긴 짜증을 높은 학문에 대한 큰 끌림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당부였다.[주 5-05] 쇼펜하우어의 대답은 경험으로 배우라는 것이다. 그런데 경험은 고르기 전에는 오지 않는다. 고른 뒤에야 그 선택이 자기 성격에 맞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 늦게 시작하는 사람은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위안에 기댈 수 없다. 그가 가진 것은 이번에는 자기를 조금 더 안다는 믿음뿐이고, 그 믿음이 틀렸을 때의 책임도 그의 몫이다.

1807년 4월 함부르크에서 눈물을 쏟은 열아홉 살 청년은 그 책임을 졌다. 그가 고른 것이 맞았는지는 그 뒤로도 오래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자신도 몰랐다.

후주

[주 5-01] 루트비히 셰만 편, 『쇼펜하우어 서신집』(Schopenhauer-Briefe), 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893, 53쪽, 1806년 12월 19일 요한나의 편지. 스캔 PDF 105쪽을 그림으로 떠서 대조했다. 원문은 Göthe sagte, es wundere ihn nicht, es wäre ungeheuer schwer, da hülfe keine Methode, die ganze Kindheit müsse darauf zugebracht werden, denn wenn 10 Louisd'or auf einem Tische liegen, kann man sie leicht einstreichen, aber wenn sie tief in einem alten Brunnen liegen und Steine Schutt und Gebüsch obendrauf, dann ists ein ander Ding, ein Kind kriecht dann wohl mühsam hinein, aber ein Erwachsener muß es bleiben lassen. Ich sagte du hättest Lust es noch zu lernen, ich wolle dir aber abrathen, das sollte ich auch nicht thun, sagte er, es bliebe doch immer etwas hängen, und wenn du es noch thun wolltest, so wäre es sehr gut und nützlich, obgleich du es zur Vollkommenheit nicht bringen können wirst. 간접 인용으로 의역. 괴테의 말은 요한나가 전한 것이다.

[주 5-02] 같은 서신집 57~58쪽, 1807년 3월 10일 편지. 스캔 PDF 109~110쪽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wenn Fernow und St. Schütze mir erzählen, wie sehr spät sie zum Studieren gekommen sind … aber freylich, beyde brachten Schul- und mühsam selbst erworbene Kenntnisse auf die Akademie die dir bey der eleganten Erziehung die du erhieltst und in unsrer Lage erhalten mußtest, mangeln … also mußt du wohl in der Laufbahn bleiben zu der du dich einmal bestimmt hast. 간접 인용으로 의역.

[주 5-03] 같은 서신집 61~62쪽, 1807년 4월 28일 편지. 아들의 3월 말 편지가 진지하면서도 차분하고 마음 깊은 데서 나왔다는 것, 어머니가 놀라 아들이 길을 잘못 들어 삶의 목적을 놓칠까 걱정했다는 것(wäre es möglich daß du auf deinem zweigen Wege ganz deine Bestimmung verfehltest), 페르노프에게 대목을 읽어 주었고 페르노프가 가난했으며 네댓 살 더 많은 나이에 공부를 결심했다는 것, 직접 모르니 천직은 판단할 수 없다며 의견을 글로 적어 주었다는 것은 이 편지의 내용을 OCR로 읽은 것이다(스캔 대조는 62쪽 일부만, 재확인). 아들의 편지가 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셰만 서신집 서문(가족에게 보낸 편지는 사라졌다). 페르노프가 공작 대비의 사서였다는 것은 같은 서신집 1807년 2월 12일 편지(er ist ihr Bibliothekar, OCR), 로마에서 오래 지낸 것은 53쪽(스캔 대조).

[주 5-04] 같은 서신집 60쪽(스캔 PDF 112쪽)과 62쪽(스캔 PDF 114쪽)으로 대조했다. 첫 인용 원문은 Ich habe mir den heutigen Tag recht eigends aufgespart um recht umständlich dir auf deine Klagen und deine Wünsche zu antworten … ich habe lange und viel drüber gedacht, und doch habe ich kein erfreuliches Resultat herausbringen können, und das, lieber Arthur, ist wohl ganz natürlich, es ist so schwer, sich in eines anderen Lage zu denken, besonders in eine so ganz verschiedene Lage wie die deinige von der meinigen ist, bey so ganz verschiedenem Karakter. Du bist von Natur unentschlossen, ich vielleicht nur zu rasch, zu entschlossen. 한국어 의역. 셈은 Du siehst Fernow meynt wie ich, daß es nicht zu spät sey wenn du nur würklich den unwiederstehlichen Trieb zur Wissenschaft und den Muth zur Ausdauer fühlst, du würdest alsdann etwa im 26sten Jahr dir selbst und deiner Wissenschaft leben, bleibst du bey der Handlung so verläßt du Jenisch im 22sten Jahr … die Zeit siehst du ist also die nehmliche ungefähr와 du selbst aber mußt dir den Weg suchen und wählen, dann will ich rathen und helfen의 간접 인용·의역.

[주 5-05] 같은 편지, 서신집 65쪽, 스캔 PDF 117쪽으로 대조. 원문은 Ich sage dir nicht daß du mich nicht betrügen sollst, denn ich kenne dich und deine feste reine Rechtschaffenheit, aber mit Thränen im Auge beschwöre ich dich betrüge dich selbst nicht. 간접 인용으로 의역. 짜증과 학문의 끌림을 착각하지 말라는 당부는 같은 편지 63쪽 무렵 täusche dich ja nicht, damit du nicht Mißmuth und Unzufriedenheit mit deiner freylich nicht angenehmen Situation mit dem großen Triebe zum höhern Wissen … verwechselst를 OCR로 읽은 것이다(재확인).

[주 5-06] 빌헬름 폰 그비너, 『가까이에서 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922, 37쪽(Ein Strom von Tranen brach beim Lesen des ihm übersandten Briefes aus den Augen des Jünglings und — vielleicht das einzige Mal in seinem Leben — entschied er sich ohne Bedenken). 인터넷 아카이브 전사본(archive.org/details/arthurschopenhau00gwin). 의역.

[주 5-07] 그비너 같은 책 37~38쪽. 1807년 6월 고타 김나지움 교장 되링의 학생이 된 것은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07~1809년 항목. 되링의 개인 수업과 빛나는 앞날의 예언, 야코프스가 독일어 작문의 원숙함에 놀란 것, 맨 윗반(Selekta)을 깎아내린 교사 슐츠를 사사로이 비웃었다가 그 말이 전해진 것, 되링이 동료에 대한 배려로 개인 수업을 그만둔 것, 반년 만에 고타를 떠나 1807년 말 바이마르로 돌아온 것은 그비너의 서술이다. 비웃음이 「글」이었는지는 그비너가 밝히지 않아(dessen zu spotten) 소설이 정했다. 되링과의 대화와 대사는 소설의 창작이며, 되링의 대사는 동료에 대한 배려로 수업을 그만두었다는 기록에, 아르투어의 대사는 그가 맨 윗반을 깎아내린 말에 맞섰다는 기록에 근거했다. 파소의 집에 산 것은 [주 4-05].

[주 5-08] 그비너 같은 책 41쪽(gleich als ob er für sein tägliches Brot hätte arbeiten müssen, füllte er mit Studieren und Lernen nicht nur die Tagesstunden, sondern auch die halben Nächte aus). 의역. 뛰어난 스승들과 언어 재능으로 놓친 공부를 짧은 시간에 메웠다는 것도 같은 쪽(Der Unterricht ausgezeichneter Philologen und sein eigenes Sprachtalent hatten die versäumte gelehrte Vorbildung in der kürzesten Zeit ersetzt)의 의역이다.

[주 5-09]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07~1809년 항목(Nachdem er innerhalb von zwei Jahren das Gymnasialpensum bewältigt hat, bezieht er am 9. Oktober 1809 die Universität Göttingen).

[주 5-10]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 제4편 §55. 1891년 브로크하우스판(프라우엔슈테트 편), 인쇄 357쪽, PDF 401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인용 원문은 Zwar könnte man meynen, daß, da der empirische Charakter, als Erscheinung des intelligibeln, unveränderlich und, wie jede Naturerscheinung, in sich konsequent ist, auch der Mensch ebendeshalb immer sich selbst gleich und konsequent erscheinen müßte und daher nicht nöthig hätte, durch Erfahrung und Nachdenken, sich künstlich einen Charakter zu erwerben. Dem ist aber anders, und wiewohl man immer der Selbe ist, so versteht man jedoch sich selbst nicht jederzeit, sondern verkennt sich oft, bis man die eigentliche Selbstkenntniß in gewissem Grade erworben hat. 한국어 의역. 셋의 구분과 획득된 성격의 정의(den man erst im Leben, durch den Weltgebrauch, erhält …)는 같은 쪽의 취지. 싹·부러움·죽은 배움, 선과 면, 장터의 아이 대목은 357~358쪽(PDF 401~402쪽)의 취지를 옮긴 것으로, 358쪽 위쪽의 선과 면 비유는 OCR과 영문 대조본으로 읽었다(재확인).

[주 5-11] 같은 절, 인쇄 359쪽, PDF 403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Wir müssen erst aus Erfahrung lernen, was wir wollen und was wir können: bis dahin wissen wir es nicht, sind charakterlos und müssen oft durch harte Stöße von außen auf unsern eigenen Weg zurückgeworfen werden. — Haben wir es aber endlich gelernt, dann haben wir erlangt, was man in der Welt Charakter nennt, den erworbenen Charakter. Dieses ist demnach nichts Anderes, als möglichst vollkommene Kenntniß der eigenen Individualität. 한국어 의역.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초판은 1818년 말에 나왔고 표제 연도는 1819년이다.

[주 5-12] 같은 절 뒷부분. 남의 성질과 버릇을 흉내 내는 것이 남의 옷을 입는 것보다 부끄럽다는 대목(영문 대조본 The imitation of the qualities and idiosyncrasies of others is much more shameful than to dress in other people's clothes)은 독일어 스캔에서 찾아 대조하지 못해 취지로만 옮겼다(재확인, 인쇄 360~361쪽 무렵).

사료에 근거한 것은 1806년 12월 괴테가 라틴어에 대해 한 말(요한나의 전언), 1807년 3월과 4월 28일 요한나의 편지 내용과 페르노프의 의견, 아들이 눈물을 쏟고 망설임 없이 결정한 일, 1807년 6월 고타 김나지움과 되링·야코프스·슐츠를 둘러싼 일, 반년 만에 바이마르로 옮긴 일, 두 해의 공부와 1809년 10월 9일 괴팅겐 입학이다. 되링과의 대화와 대사는 소설의 창작이다. 1818년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열아홉 살 아르투어의 생각이 아니라 서른 살의 저작으로 비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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