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11,936자)

원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60년 2월 말, 프랑크푸르트 쇠네 아우스지히트 16번지의 서재에 뮌헨에서 편지 한 통이 왔다. 보낸 사람은 젊은 법관 아담 폰 도스였고, 편지는 2월 19일에 쓴 것이었다. 사흘 뒤인 2월 22일은 쇼펜하우어의 일흔두 번째 생일이었다.[주 39-01]

새집의 서재는 홀처럼 넓어서 그는 거기에 장서를 모두 세워 둘 수 있었다. 방 모퉁이의 대리석 받침 위에는 금박을 입힌 진짜 불상이 하나 앉아 있었고, 글 쓰는 책상에는 칸트의 흉상이 놓여 있었다.[주 39-02] 불상은 그가 오래 공경해 온 가르침을 가리켰다. 원하는 마음을 끊어서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가르침이었다. 그 가르침을 서양 말로 가장 길게 풀어 쓴 책의 저자가 그 방의 주인이었다.

도스의 편지는 길었다. 그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셋째 판이 나와 기쁘다고 적었고, 영국의 박물학자 다윈이 낸 새 책 이야기를 전했고, 그동안 읽은 책들을 하나하나 보고했다. 그 가운데 한 권이 있었다. 프랑스 작가 세낭쿠르가 1804년에 낸 소설 『오베르만』이었다. 주인공 오베르만이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루어진 책인데, 도스는 거기서 스승의 철학을 떠올렸다.

*

도스는 오베르만을 이렇게 그렸다.

“오베르만은 아무것도 원할 수 없게 되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바깥 세계의 사물이 모두 알맹이 없는 것으로 보이고, 그 가운데 어느 것도 그를 움직이는 까닭이 되지 못합니다. 그는 살아 보지도 못한 채 세상에 대해 죽어 버렸습니다. 만일 그가 무엇인가를 이루고 이겨 냈더라면, 그는 석가모니 붓다의 유럽 사도라고 불릴 만했을 것입니다.”[주 39-03]

그리고 그는 프랑스 작가 조르주 상드가 그 책에 붙인 서문의 한 줄을 옮겼다. 오베르만은 성자가 되기에 아주 조금 힘이 모자랐던 철학자라는 말이었다.[주 39-03]

도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요즘 비평가들은 불교의 고요함과 선생님의 가르침을 두고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해로운 교리라고 깎아내린다고 그는 썼다. 그리고 그 비평가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고 했다.

“참된 고요함은, 거짓 섞이지 않은 그리스도교에서 그렇듯,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그것은 자기와 남을 위해 가장 힘들고 가장 사심 없이 일한 끝에 마땅히 받는 삯이고, 어둠의 힘과 싸워서 세상을 이겨 낸 열매입니다!”[주 39-04]

바로 앞에서 그는 그 일이 무엇인지도 적었다. 인류의 가장 밑바닥에 버려진 사람들을 피하지 말고 오히려 찾아가야 하며, 자기 안과 남의 안에 있는 짐승 같은 것을 길들이는 데 쉬지 않고 힘써야 한다고 했다.[주 39-04]

도스의 편지는 스승을 변호하는 편지였다. 그런데 그 변호 안에는 날이 서 있었다. 원하는 마음이 줄어든 사람은 둘로 갈렸다. 오베르만처럼 원할 힘이 빠져서 아무것도 원하지 못하게 된 사람이 있었고, 싸움 끝에 원하지 않게 된 사람이 있었다. 앞의 사람은 살아 보지도 못하고 죽었고, 뒤의 사람은 성자가 되었다. 둘을 가르는 것은 일이었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자기와 남을 길들이는 일이었다.

일흔두 살의 쇼펜하우어는 마흔 해 가까이 혼자 살았다. 그는 밑바닥의 사람들을 찾아가지 않았고, 남을 길들이는 일에 나서지도 않았다. 그는 서재에서 원하지 않음에 관한 책을 썼다. 도스의 잣대를 그대로 대면, 그 서재의 주인은 어느 쪽에 서는가?

도스의 말은 옳았다. 고요함이 그냥 힘이 빠진 상태라면 그것은 덕이 아니라 병이고, 그런 고요함을 가르치는 철학은 비평가들의 비난을 받아도 쌌다. 쇼펜하우어의 철학도 옳은 데가 있었다. 그는 원하지 않음이 일해서 버는 삯이라고 쓴 적이 없었다. 그것은 사람이 마음먹고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앎이 바뀔 때 저절로 오는 것이라고 썼다. 두 사람의 말은 같은 곳을 가리키면서 서로 다른 길을 말하고 있었다.

*

3월 1일, 그는 답장을 썼다. 생일을 거듭 챙겨 준 것에 고마워했고, 도스가 보내 준 뮌헨 신문 한 장에 고마워했다. 그 신문은 베를린의 다른 지인이 1월에 이미 보내 주었다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그런 것이 눈에 띄면 앞으로도 번거롭게 생각하지 말고 띠 봉투에 넣어 곧장 보내 주십시오. 나에 대해 인쇄되는 것의 절반도 나는 보지 못하니까요.”[주 39-05]

그는 셋째 판을 한 부 보내 주고 싶었지만 받은 여덟 부를 모두 나눠 주고 없다고 했다. 도스가 권한 이탈리아 시인 레오파르디의 편지들은 구해 볼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프랑스 학자 르낭의 글은 이미 읽었다고 했고, 다윈의 책은 신문에 실린 긴 발췌로 읽었는데 자기 이론과 닮은 데가 전혀 없는 납작한 경험론일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썼다.

“내 명성의 징후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습니다.”[주 39-05]

그 뒤로는 이상한 편지와 찾아오는 사람들 이야기, 자기를 두고 신문에 실린 글 두 편 이야기가 이어졌다. 오베르만에 대해서는 한 줄도 없었다. 서한집에 실린 답장에는 고요함이 결과냐 출발점이냐 하는 도스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 없다.[주 39-05]

*

원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원하는 것을 줄이는 법은 배울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원하지 않음’은 배워서 손에 넣는 기술이 아니다.

먼저 갈라야 할 것이 셋 있다. 첫째는 원하는 것을 얻어서 잠시 원하지 않게 되는 일이다. 배부른 사람이 더 먹고 싶지 않은 것과 같고, 그 고요는 다음 배고픔이 올 때까지만 간다. 둘째는 원하는 것을 일부러 줄이며 사는 생활의 기술이다. 그는 「인생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에서 그런 기술을 길게 적었다. 너무 많이 바라지 말고, 가진 것으로 견디고, 고통을 덜 겪는 쪽을 고르라는 조언들이다. 오늘 사람들이 ‘덜 원하며 살기’라고 부르는 것은 대개 이 둘째 것에 가깝다. 셋째가 그의 주저가 끝에서 말하는 ‘삶에의 의지의 부정’이다. 이것을 둘째 것과 같은 것으로 읽으면 그의 결론을 잘못 읽는 것이 된다. 생활의 기술은 의지가 덜 다치게 의지를 다루는 법이고, 의지의 부정은 의지 자체가 돌아서는 일이다.

1844년, 쉰여섯 살에 펴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권의 마흔여덟 번째 장 「삶에의 의지의 부정에 관한 가르침에 대하여」에서 그는 이 셋째 것을 세 낱말로 나누어 보인다.

“고요주의, 곧 모든 원함을 내려놓는 일, 고행, 곧 자기 의지를 일부러 죽여 가는 일, 그리고 신비주의, 곧 자기 본질이 모든 사물의 본질, 세계의 알맹이와 하나라는 것을 아는 일. 이 셋은 아주 가깝게 이어져 있어서, 그 가운데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기 뜻과 달리 차츰 다른 둘도 받아들이게 된다.”[주 39-06]

도스가 말한 ‘고요함’은 이 첫째 낱말이었다. 그런데 그는 고요함을 따로 떼어 놓지 않는다. 모든 원함을 내려놓는 일은 고행과 함께 가고, 고행은 자기와 모든 것이 하나라는 앎과 함께 간다. 원하지 않음이 그 앎에서 나오지 않고 그냥 지쳐서 생긴 것이라면, 그것은 그가 말하는 원하지 않음이 아니다.

그 차이를 그는 이미 1818년, 서른 살에 낸 제1권의 끝 무렵에서 보여 주었다. 제1권은 네 권의 책으로 나뉘고, 그 넷째 책 안에 의지의 부정을 다루는 예순여덟째 절이 있다. 거기서 그는 프랑스의 신비가 기용 부인이 자서전 끝 무렵에 자주 했다는 말을 옮긴다.

“내게는 모든 것이 아무래도 좋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원할 수 없다. 내가 여기 있는지 없는지도 자주 모르겠다.”[주 39-07]

“아무것도 원할 수 없다”는 말은 도스가 오베르만의 병을 두고 쓴 말과 거의 같다. 같은 말이 한 사람에게서는 병이었고 다른 사람에게서는 성자의 평화였다. 그는 그 둘을 가르는 것이 앎이라고 본다. 자기 일과 남의 일을 가르는 칸막이가 무너져서 세상의 고통 전체가 자기 고통으로 보일 때, 그 앎이 의지를 가라앉히는 힘이 되고, 그때 원함은 억눌리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잦아든다. 오베르만에게는 그 앎이 없었다. 그는 세상의 사물이 알맹이 없다는 것만 알았고, 그 대신 무엇이 보이는지는 몰랐다.

그러니 원하는 것이 줄어들면 삶도 빈약해지는가? 그럴 수 있다. 원할 힘이 빠져서 줄어든 것이라면 삶은 빈약해진다. 오베르만이 그랬다. 그러나 남의 고통이 내 고통처럼 보여서 줄어든 것이라면, 줄어든 자리에는 빈자리 대신 다른 것이 들어선다. 그는 그것을 가장 깊은 평화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는 그 평화를 한 번 얻으면 끝나는 것으로 쓰지 않는다. 같은 절에서 그는 의지의 부정이 한 번 일어났다고 해서 다시는 흔들리지 않는 재산처럼 기대어 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몸이 살아 있는 동안 의지는 언제든 다시 타오르려 하고, 그래서 그 부정은 끊임없는 싸움으로 날마다 새로 얻어 내야 한다.[주 39-08] 이 점에서 그는 도스와 가깝다. 싸움 없이 오는 고요는 없다. 다만 도스에게 싸움은 고요를 버는 일이었고, 그에게 싸움은 이미 온 고요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 고요는 어디서 오는가? 그는 길을 둘로 본다. 하나는 앞에서 말한 앎의 길이다. 남의 고통을 꿰뚫어 보는 앎만으로 그 자리에 이르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다른 하나는 운명이 지우는 고통의 길이다. 그는 이 길을 옛 그리스 사람들의 말을 빌려 ‘두 번째 항해’라고 부른다. 바람이 없을 때 노를 저어서라도 가는 뱃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길로만 거기에 닿는데, 그것도 남의 고통을 알아서가 아니라 자기 몸으로 겪은 고통 때문에, 흔히 죽음이 가까워서야 닿는다고 그는 쓴다.[주 39-08] 그러니 원하지 않음은 교실에서 배우는 기술처럼 오지 않는다. 오는 것은 대개 겪음을 통해서다.

그 싸움에서 끝까지 남는 것이 무엇인지도 그는 적어 두었다. 성자들은 얻은 구원을 잃을까 두려워 아무 죄 없는 즐거움에도 양심을 졸이고, 또 이것에도 그런다.

“자기의 허영이 조금이라도 꿈틀대는 것에도. 허영은 여기서도 가장 늦게 죽는다. 사람의 모든 성향 가운데 허영이 가장 없애기 어렵고, 가장 부지런하고, 가장 어리석다.”[주 39-09]

*

서른 살에 그 문장을 쓴 사람이 일흔두 살에 자기 이름이 실린 신문을 빠짐없이 보내 달라고 썼다. 허영은 가장 늦게 죽는다는 그의 말은 그 자신에게서 가장 정확하게 맞았다.

그것으로 그의 철학이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그는 자기가 성자라고 쓴 적이 없었다. 제2권의 같은 장에서 그는 신비가와 철학자를 이렇게 가른다.

“신비가는 안에서 시작하고 철학자는 밖에서 시작한다. 신비가는 자기 안의 긍정적이고 개인적인 체험에서 출발하는데, 거기서 그는 자기가 영원하고 하나뿐인 존재임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체험에서 남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말을 믿고 받아들여야 하는 주장뿐이다. 그래서 그는 남을 설득하지 못한다. 철학자는 반대로 모두에게 공통된 것에서, 누구 앞에나 놓인 객관적인 현상에서,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의식의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그는 설득할 수 있다.”[주 39-10]

철학자는 성자의 평화를 밖에서 그린다. 그 그림이 맞는지는 따져 볼 수 있지만, 그림을 그린 사람이 그 평화 안에 산다는 보증은 없다. 그는 그 간격을 자기 체계 안에 처음부터 적어 두었다. 원하지 않음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 사람이 원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도스는 편지에서 다른 한 가지도 적었다. 앞으로 자기 직업의 의무가 늘어나 스승의 책을 다시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까 걱정이라는 말이었다.[주 39-01] 쇼펜하우어는 답장에서 젊은 법관이 자리를 높여 가는 것을 반겼다. 브라보, 앞으로 나아가라고 썼다. 원하지 않음의 철학자가 원하는 일에 힘쓰는 젊은이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는 그 박수가 자기 철학과 맞는지 따지지 않았다.

답장을 봉한 뒤 그는 평소처럼 마인강 가로 걸으러 나갔을 것이다. 모퉁이의 불상은 금박을 두른 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방에서 원하지 않음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과, 원하지 않음에 가장 가까운 것은 서로 다른 둘이었다.

후주

[주 39-01] 아담 폰 도스가 쇼펜하우어에게 보낸 1860년 2월 19일 편지. 루트비히 셰만 편, 『쇼펜하우어 서한집』(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893), 318~324쪽. 날짜(19. Februar 1860)는 OCR로 읽었다(재확인). 셋째 판에 대한 기쁨, 직업의 의무가 늘어 다시 읽을 시간이 줄 것이라는 걱정(da sich die Obliegenheiten meines praktischen Berufes in Bälde eher vermehren als vermindern werden)은 인쇄 319쪽, PDF 379쪽을 스캔으로 대조했고 취지를 옮긴 것이다. 다윈의 책 소식은 같은 편지 321~322쪽(OCR). 쇼펜하우어의 생일은 2월 22일이다. 편지가 「2월 말」에 닿았다는 것은 날짜에서 짐작한 것이다.

[주 39-02] 빌헬름 폰 그비너, 『가까이에서 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922, 193쪽(인터넷 아카이브 전사본 archive.org/details/arthurschopenhau00gwin). 죽기 한 해 전에 옮긴 16번지의 서재가 홀처럼 커서 장서를 모두 세울 수 있었다는 것, 방 모퉁이 대리석 받침 위의 금박 입힌 진짜 불상과 책상 위의 칸트 흉상(Auf einem Marmorkonsol in der Ecke dieses Zimmers … stand eine vergoldete echte Buddhastatuette; auf seinem Schreibpulte die Büste Kants)은 그비너의 증언이다.

[주 39-03] 같은 도스 편지, 인쇄 323쪽, PDF 383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Obermann leidet an dem psychischen Siechthum des Nichtwollenkönnens. Nichts wird für ihn zum Motiv unter den als wesenlos erkannten Dingen der Außenwelt. Er ist der Welt abgestorben, ohne gelebt zu haben. Hätte er gewirkt und überwunden, so könnte er ein würdiger europäischer Apostel des Buddha Çâkjamuni genannt werden. 한국어 의역. 조르주 상드의 말(„C'est un philosophe à qui la force a manqué de peu pour devenir un saint.“)은 같은 쪽에서 도스가 옮긴 것이며 취지를 옮겼다. 『오베르만』이 1804년에 나왔다는 것은 같은 쪽 도스의 말(Das in seiner Art einzige Buch erschien im Jahre 1804), 1844년판에 상드의 서문이 붙었다는 것은 322쪽의 서지(OCR)에 따랐다. 편지로 이루어진 소설이라는 풀이는 같은 쪽 「오베르만의 편지들」(Die Briefe Obermann's)에 근거한 서술자의 말이다.

[주 39-04] 같은 도스 편지, 인쇄 324쪽, PDF 384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인용은 … daß dieser Quietismus, d. h. der ächte, wie im unverfälschten Christenthum, nicht Princip, sondern Resultat, d. h. der nach mühevollster, uneigennützigster Arbeit an sich und Andren wohlverdiente Lohn, die Frucht der im Kampfe mit den Mächten der Finsterniß vollzogenen Weltüberwindung ist! 의 한국어 의역. 비평가들 대목(die Oberflächlichkeit und Effronterie der heutigen Kritiker … den Quietismus des Buddhismus und Ihrer Lehre, als eine grundverderbliche, die Völker entnervende Doctrin)과 밑바닥 사람들을 찾아가 자기와 남 안의 짐승 같은 것을 길들인다는 대목(Auswurf der Menschheit nicht aus dem Wege gehen, vielmehr ihn aufsuchen, an der Bezähmung des Bestialischen in sich und Andern unablässig arbeiten)은 같은 쪽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도스의 편지는 쇼펜하우어에게 직접 맞선 것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을 변호하는 글이며, 그 잣대를 쇼펜하우어 자신에게 대 보는 것은 서술자의 몫이다.

[주 39-05] 쇼펜하우어가 도스에게 보낸 1860년 3월 1일 답장. 같은 서한집 인쇄 324~326쪽. 「나에 대해 인쇄되는 것의 절반도 보지 못한다」 대목(Doch werden Sie mich stets verbinden, wenn Sie was Ihnen der Art vorkommt, mir ohne Weiteres unter Kreuzkouvert schicken wollen. Ich kriege ja nicht die Hälfte zu sehn von dem was über mich gedruckt wird.)은 인쇄 324쪽, PDF 384쪽, 「명성의 징후」(Die Symptome meiner Celebrität mehren sich auffallend.)는 인쇄 325쪽, PDF 385쪽. 모두 스캔으로 대조했고 한국어 의역이다. 뮌헨 신문(Münchener Abendzeitung)을 베를린의 린트너가 1월에 먼저 보냈다는 것, 셋째 판 여덟 부, 레오파르디·르낭·다윈 대목, 이상한 편지와 방문, 두 신문 기사는 같은 324~325쪽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서한집에 실린 답장에 오베르만과 고요함에 관한 대답이 없다는 것은 이 판본을 읽은 결과이며, 셰만판이 편지를 일부 줄였을 가능성은 남는다(재확인).

[주 39-06]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권 제4편 제48장 「삶에의 의지의 부정에 관한 가르침에 대하여」(Zur Lehre von der Verneinung des Willens zum Leben). 1891년 브로크하우스판, 인쇄 704쪽, PDF 714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Quietismus, d. i. Aufgeben alles Wollens, Askesis, d. i. absichtliche Ertödtung des Eigenwillens, und Mysticismus, d. i. Bewußtseyn der Identität seines eigenen Wesens mit dem aller Dinge, oder dem Kern der Welt, stehen in genauester Verbindung; so daß wer sich zu einem derselben bekennt allmälig auch zur Annahme der andern, selbst gegen seinen Vorsatz, geleitet wird. 한국어 의역. Quietismus는 「고요주의」로 옮겼고, 도스 편지의 같은 낱말은 본문에서 「고요함」으로 옮겼다. 「인생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의 생활 기술 정리는 서술자의 요약이다.

[주 39-07]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 제4권 §68. 1891년판, 인쇄 462쪽, PDF 506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Mir ist Alles gleichgültig: ich kann Nichts mehr wollen: ich weiß oft nicht, ob ich da bin oder nicht.“ 한국어 의역. 쇼펜하우어가 기용 부인의 말로 옮긴 것이다. 앎이 의지를 가라앉히는 힘(Quietiv)이 된다는 설명은 같은 절의 취지를 서술자가 풀어 쓴 것이다.

[주 39-08] 같은 절, 인쇄 462~463쪽, PDF 506~507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Indessen dürfen wir doch nicht meynen, daß, nachdem durch die zum Quietiv gewordene Erkenntniß, die Verneinung des Willens zum Leben einmal eingetreten ist, sie nun nicht mehr wanke, und man auf ihr rasten könne, wie auf einem erworbenen Eigenthum. Vielmehr muß sie durch steten Kampf immer aufs Neue errungen werden. 와 그 이유(Denn da der Leib der Wille selbst ist … von Neuem mit seiner ganzen Gluth zu entbrennen)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가장 깊은 평화」는 463쪽의 den tiefsten Frieden giebt 에서 왔다. 두 번째 길(ein zweiter Weg (δεύτερος πλοῦς) um zu jener Verneinung zu gelangen … daß es das selbst empfundene, nicht das bloß erkannte Leiden ist)은 463쪽(PDF 507쪽)을 스캔으로 대조했고 취지를 옮긴 것이다. 「바람이 없을 때 노를 저어 가는 뱃길」은 그리스 속담의 뜻을 서술자가 풀어 쓴 것이다. 이어지는 464쪽의 「흔히 죽음이 가까워서야」(영문 대조본 often only at the approach of death)는 스캔 대조하지 않았다(재확인).

[주 39-09] 같은 절, 인쇄 463쪽, PDF 507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 ihre Gewissensskrupel bei jedem unschuldigen Genuß, oder bei jeder kleinen Regung ihrer Eitelkeit, welche auch hier am letzten stirbt, sie, von allen Neigungen des Menschen die unzerstörbarste, thätigste und thörichteste. 한국어 의역.

[주 39-10]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권 제48장, 인쇄 702쪽, PDF 712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Der Mystiker steht zum Philosophen dadurch im Gegensatz, daß er von Innen anhebt, dieser aber von Außen. Der Mystiker nämlich geht aus von seiner innern, positiven, individuellen Erfahrung, in welcher er sich findet als das ewige, alleinige Wesen u. s. f. Aber mittheilbar ist hievon nichts, als eben Behauptungen, die man auf sein Wort zu glauben hat: folglich kann er nicht überzeugen. Der Philosoph hingegen geht aus von dem Allen Gemeinsamen, von der objektiven, Allen vorliegenden Erscheinung, und von den Thatsachen des Selbstbewußtseyns, wie sie sich in Jedem vorfinden. … deswegen kann er überzeugen. 한국어 의역(중간의 방법에 관한 문장은 줄였다). 「브라보, 앞으로 나아가라」는 3월 1일 답장 326쪽(Sie avanciren, bravo! vorwärts!)의 의역으로 스캔 대조했다.

사료에 근거한 것은 1860년 2월 19일 도스의 편지(셋째 판, 다윈, 오베르만, 상드의 말, 고요함은 결과라는 변호, 직업 의무의 걱정)와 3월 1일 쇼펜하우어의 답장(신문을 보내 달라는 부탁, 셋째 판 여덟 부, 레오파르디·르낭·다윈, 명성의 징후, 도스의 승진을 반김), 그비너가 전하는 16번지 서재와 불상이다. 답장을 봉하고 산책을 나갔다는 것, 그 방에서 불상을 바라보는 서술은 소설의 연결이며, 산책은 그의 습관에서 짐작한 것이다. 1818년 제1권과 1844년 제2권은 일흔두 살의 그가 젊은 날과 중년에 쓴 글로 비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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