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11,193자)

언젠가 나는 없어진다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59년 2월 4일, 프랑크푸르트의 쇠네 아우스지히트 17번지에서 일흔 살의 쇼펜하우어는 일곱 해 전에 써 둔 유언장을 다시 펼쳤다. 보름여 뒤면 일흔한 살이 될 참이었다.

유언장은 1852년 6월 26일에 썼다. 그는 그것을 손수 써서, 공증인과 일부러 불러 모은 증인 일곱 사람 앞에서 이름을 적고 봉인했다.[주 38-01] 재산 대부분을 어디로 보낼지가 맨 앞에 있었고, 그다음에 단치히의 먼 친척 아이들, 집안일을 맡은 하녀, 책과 원고를 맡길 사람들에게 갈 몫이 하나하나 적혀 있었다.[주 38-01] 맨 끝에는 장례에 관한 대목이 있었다.

“점잖은 장례를 치르고, 튼튼한 참나무 관을 쓰고, 영원히 쓸 묘지를 산다. 길이 4~5피트의 대리석, 아니면 더 좋게는 화강암 묘석을 사서, 거기에 내 이름과 성만 새기고 그 밖에는 절대로 아무것도, 날짜도 연도도, 아무것도, 한 음절도 새기지 않는다.”[주 38-02]

이 일을 맡을 사람으로 그는 친구인 법률가 마르틴 엠덴 박사를 정해 두었다. 그 엠덴이 이제 죽고 없었다.[주 38-03]

*

일곱 해 전 유언장을 쓸 때 그는 자기가 먼저 죽고 엠덴이 그 뒤를 정리하리라고 여겼다. 순서가 뒤집혔다. 남의 뒤처리를 맡기로 한 사람이 먼저 떠났고, 떠난 사람의 이름은 유언장 안에서 이제 쓸모없는 글자가 되었다. 그는 새 종이에 보충서를 쓰기 시작했다. 엠덴 박사에게 남긴 것을 모두 없던 것으로 하고, 그 대신 법률가 빌헬름 그비너 박사를 유언 집행인으로 삼으며, 자기 서재의 책을 모두 그에게 남긴다고 적었다.[주 38-03]

젊은 날 그는 남의 죽음을 여러 번 보았다. 열일곱 살에 아버지를 잃었고, 그 뒤로 어머니가 가고, 여동생이 갔다. 그 죽음들은 언제나 그가 남는 쪽에 서 있는 죽음이었다. 엠덴의 죽음은 달랐다. 그 죽음은 그의 죽음을 처리하기로 되어 있던 사람의 죽음이었다. 남의 죽음이 그의 서류 안으로 들어와 그의 죽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두 해 전, 네덜란드의 한 독자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자기 집안이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뒤 이렇게 덧붙였다.

“나와 함께 이 집안의 줄기는 끊깁니다.”[주 38-04]

자식이 없었고, 독일에는 같은 성을 쓰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그는 알고 있었다. 묘석에 새길 성은 그가 마지막으로 쓰는 성이었다.

*

보충서의 내용을 두고 새 집행인 그비너와 나눈 이야기는 기록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비너가 맡게 된 일은 유언장에 그대로 적혀 있었고, 그 일들은 물음을 품고 있었다.

“영원히 쓸 묘지라고 쓰셨습니다.”

그비너는 유언장의 그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선생님 책에서는 한 사람이 한 사람으로 따로 있는 것이 애초에 잘못이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그 잘못을 묻을 땅은 영원히 사 두라고 하십니다.”

“땅은 산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오. 묘지 관리인이 오십 년 뒤에 내 뼈를 파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지, 내 뼈가 영원하리라고 믿어서가 아니오.”

“그러면 묘석은요? 이름만 새기고 날짜도 넣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뒤에 찾아오는 사람은 선생님이 언제 태어나서 언제 돌아가셨는지 알고 싶어 할 겁니다.”

“그 사람이 알고 싶은 것이 정말 날짜이겠소? 날짜는 사전에 다 있소. 날짜를 새기면 그 돌은 한 사람이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났는지를 알리는 돌이 되오. 나는 시작과 끝을 새기고 싶지 않소.”

“시작과 끝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선생님이 어떤 식으로든 남는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아니오. 그렇게 들으면 안 되오. 지금 당신 앞에서 말하고, 당신을 알아보고, 어제 일을 기억하는 이 사람은 남지 않소. 그 점을 나는 조금도 흐리게 쓰지 않았소.”

그비너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책을 오래 읽어 온 사람이었고,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는 믿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면 무엇이 남습니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이렇게 꼼꼼하게 적어 두실 까닭이 무엇입니까?”

“꼼꼼하게 적는 것은 남는 사람들을 위해서요. 나를 위해서가 아니오.”

“그럼 어디에 묻히고 싶으신지는요?”

“아무래도 상관없소. 사람들이 나를 찾아낼 것이오.”[주 38-05]

두 사람의 말은 둘 다 맞았다. 그비너가 짚은 모순은 진짜였다. 한 사람으로 따로 있는 것을 잘못이라 부른 사람이 그 한 사람의 무덤을 영원히 지키려 했다. 쇼펜하우어가 그은 선도 진짜였다. 그는 무엇인가 남는다고 말하면서도, 남는 그것이 지금 말하고 기억하는 ‘나’는 아니라고 끝까지 갈랐다.

보충서는 그날 날짜를 달고 효력을 얻었다. 한 해 반 뒤 그가 죽자 그비너는 유언장대로 일을 치렀다. 그비너가 뒤에 적은 바로는, 늘푸른 덩굴이 둘러싼 검은 화강암 묘석이 그의 무덤을 덮었고, 거기에는 이름 하나밖에 없었다.[주 38-05]

*

죽음을 생각하면 오늘의 삶은 무의미해지는가, 더 선명해지는가? 죽음을 생각해도 오늘의 삶은 무의미해지지 않는다. 무엇이 끝나고 무엇이 끝나지 않는지를 가르면, 끝나는 쪽이 무엇인지가 오히려 또렷해진다.

그는 이 물음을 열다섯 해 전에 이미 길게 따졌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1818년에 낸 제1권과, 1844년에 그 네 부분을 하나하나 보충하려고 덧붙인 제2권으로 되어 있다. 제2권은 쉰 개의 장으로 나뉘는데, 그 마흔한 번째 장이 「죽음, 그리고 우리 본질 자체가 죽음으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에 관하여」다. 그는 그 장에서 사람들이 죽음을 두고 두 극단 사이를 오간다고 본다. 죽으면 완전히 없어진다는 생각과, 가죽과 머리털까지 그대로 영원히 산다는 생각이다. 그는 둘 다 틀렸다고 말하고, 그 가운데 어디쯤을 찾는 대신 두 생각이 저절로 사라지는 더 높은 자리를 찾겠다고 한다.

그가 처음 가르는 것은 의식과 의식을 낳은 것이다. 그는 이렇게 쓴다.

“죽음과 함께 의식은 분명히 사라진다. 그러나 그 의식을 만들어 내고 붙들고 있던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삶은 꺼지지만, 그 삶 속에서 드러나던 삶의 근원은 함께 꺼지지 않는다.”[주 38-06]

그는 곧바로 선을 긋는다. 누구에게나 자기 안에 사라지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느낌이 있고,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이 늙어서도 생생한 것이 그 느낌을 거든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분명히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의식이 아니고, 의식을 떠받치는 몸도 아니다. 그것이 의식 안에 들어올 때 ‘의지’로 나타난다는 데까지만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의식 밖으로 나가 볼 수는 없으니, 그것이 그 자체로 무엇인지는 끝내 대답할 수 없는 물음으로 남는다.[주 38-06]

여기서 그는 사람들이 바라는 위로를 하나씩 거절한다. 첫째로, 죽음으로 없어지지 않는다고 증명되는 것은 이 개인이 아니다. 개인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두 사람의 성질을 지니고 있고, 그렇게 생겨난 것은 끝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개인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죽은 뒤에 지금의 삶을 기억할 수도 없다.[주 38-07]

둘째로, 그는 셈을 하나 내놓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나’를 의식 안에 둔다. 그래서 의식이 이어지지 않으면 자기가 가라앉는다고 느낀다. 그런데 의식이 죽은 뒤에도 끝없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먼저 이것을 따져야 한다. 그 사람의 의식은 태어날 때 시작되었고, 태어나기 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그 사람에게 자기 삶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나온 것이 된다. 죽은 뒤의 끝없는 시간을 얻으려면 태어나기 전의 끝없는 없음을 똑같이 치러야 한다. 셈은 맞아떨어지지만 그에게 남는 이익은 없다.[주 38-07]

그러면 무엇이 남는다는 말인가? 그는 모든 혼란이 ‘나’라는 낱말 하나에서 생긴다고 본다. 이 낱말을 어떻게 알아듣느냐에 따라 사람은 두 문장을 다 말할 수 있다. 하나는 “죽음은 나의 완전한 끝이다”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세계의 아주 작은 한 조각이듯, 지금의 이 나라는 모습도 내 참된 본질의 아주 작은 한 조각이다”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의 ‘나’를 똑바로 들여다보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눈의 맹점에 빗댄다. 시신경이 들어오는 망막의 그 한 점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눈은 모든 것을 보면서 자기 자신만은 보지 못한다. 사람의 앎은 바깥을 향하도록 생겨 먹었고, 그래서 누구나 자기를 바깥에서 보이는 이 한 개인으로만 안다.[주 38-07]

셋째로, 그는 그 의식이 다시 켜지기를 바랄 만한지 묻는다.

“한 사람의 의식이 죽음으로 한 번 끝났다면, 그것을 다시 불붙여 끝없이 이어 가게 하는 것이 바랄 만한 일이기나 할까? 그 의식에 담긴 것은 대부분, 아니 거의 언제나, 자잘하고 세속적이고 보잘것없는 생각과 끝없는 걱정이 흘러가는 물줄기일 뿐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그것들을 쉬게 하라! 옛사람들이 무덤 돌에 ‘영원한 평안에’, ‘좋은 안식에’라고 새긴 것은 옳은 감각이었다.”[주 38-08]

그는 한 걸음 더 나간다. 사람들이 개인의 의식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까닭은 흔히 저세상에서 상과 벌을 받으려는 데 있다. 그러나 그것은 덕과 이기심을 한데 묶으려는 바람이고, 덕과 이기심은 결코 서로 끌어안지 못한다. 반대로 원수를 살려 주는 마음,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목숨을 걸고 지키는 마음, 그런 사랑의 정신이 결코 사라져 없어질 수 없다는 믿음은 근거가 있다고 그는 쓴다.[주 38-08]

그러니 그가 말하는 ‘사라지지 않는 것’은 개인의 영생이 아니다. 그는 그비너 앞에서 말하고 어제를 기억하는 그 사람이 남는다고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남는 것은 이름이 붙지 않는 것이었다. 묘석에 날짜를 넣지 말라는 지시는 그 생각과 맞닿아 있었다. 날짜는 개인의 시작과 끝이었고, 그는 그 시작과 끝이 자기의 전부라고 새기고 싶지 않았다.

*

그러나 그는 자기 논증이 두려움을 없애 준다고 말하지 않았다. 같은 장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한 사람의 의식은 죽음을 넘어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죽음에 맞서 버티는 단 하나, 곧 의지는 죽음을 넘어 살아남는다. 여기서 모순 하나가 풀린다. 철학자들은 앎의 자리에서 언제나 그럴듯한 근거를 들어 죽음은 나쁜 것이 아니라고 증명해 왔다. 그런데도 죽음의 두려움은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 그 두려움은 앎에 뿌리를 두지 않고 오직 의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주 38-09]

논증은 앎에게 말을 건다. 두려움은 앎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정확한 논증도 두려움에 닿지 못한다. 그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자기 체계 안에 적어 넣었다. 죽음이 나쁜 것이 아님을 증명한 사람도 죽음 앞에서 떨 수 있다. 그 떨림은 증명이 틀렸다는 표시가 아니라, 증명이 닿지 않는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표시다.

일흔 살의 그도 그 떨림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는 영원히 쓸 묘지를 사 두었고, 튼튼한 참나무 관을 골랐고, 자기가 죽은 뒤 누가 무엇을 받을지 한 줄 한 줄 다시 적었다. 그것이 남는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는 그의 말은 맞았다. 그러나 남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그토록 꼼꼼히 하는 손에는 자기가 없어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그를 허무하게 만들지 않았다. 대신 그의 하루를 몇 가지 분명한 물음으로 좁혔다. 누가 끝까지 곁에 있었는가? 무엇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무엇을 새기지 않을 것인가? 언젠가 나는 없어진다. 그 문장은 그에게 절망의 문장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위로의 문장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날 그가 보충서의 마지막 줄 아래에 이름을 적을 때, 그 이름이 무엇을 가리키고 무엇을 가리키지 않는지를 알게 하는 문장이었다.

그는 보충서를 접어 유언장 곁에 두었다. 이름과 성 두 낱말을 새길 돌은 아직 어느 채석장의 바위 속에 있었다.

후주

[주 38-01] 유언장은 1852년 6월 26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그가 손수 쓰고 공증인과 증인 일곱 사람 앞에서 서명·봉인했다. 루트비히 셰만 편, 『쇼펜하우어 서한집』(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893), 547~552쪽에 실린 유언장 전문(Testamentum Doctoris philosophiae Arthurii Schopenhaueri cum Codicillo). 스캔 PDF 615~620쪽. 첫 쪽(인쇄 547쪽, PDF 615쪽)은 스캔으로 대조했다. 서명 날짜(So geschehen zu Frankfurt a/M. den 26. Juni 1852)와 공증인·증인 일곱의 서명은 인쇄 552쪽으로 OCR로 읽었다(재확인). 첫 쪽 머리의 「22/6 52」는 인지 날짜로 보인다.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52년 항목(Schopenhauer formuliert sein Testament)도 같다.

[주 38-02] 같은 유언장, 인쇄 550쪽, PDF 618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Ferner gehen von meinem Nachlaß ab die Kosten eines anständigen Begräbnißes, eines starken eichenhölzernen Sargs, auch einer Grabstätte auf ewige Zeit, welches Dr jur. Martin Emden zu kaufen beauftragt ist, und endlich eines von ihm zu kaufenden 4 bis 5 Fuß langen Grabsteins, aus Marmor, oder noch beßer aus Granit, auf welchem mein Vor- und Zuname stehen soll, aber schlechterdings nichts weiter, kein Datum noch Jahreszahl, gar nichts, keine Silbe. 한국어 의역.

[주 38-03] 같은 책 553~555쪽에 실린 1859년 2월 4일 자 보충서(Codicill). 인쇄 554쪽(PDF 622쪽)을 스캔으로 대조했다(Imgleichen annullire ich alle dem Dr juris Emden gemachte Legate; weil er gestorben ist. Statt seiner ernenne ich zu meinem). 이어지는 555쪽의 Executor testamenti den Dr jur: Wilhelm Robert Franz Gwinner … vermache demselben alle Bücher meiner Bibliothek, mit Ausnahme der wenigen, die ich dem Dr Frauenstädt vermacht habe 는 인쇄 555쪽, PDF 623쪽을 스캔으로 대조했다. 보충서 날짜(Frankfurt a/M, den 4. Februar 1859)도 같은 쪽에서 스캔으로 확인했고,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52년 항목(Nachtrag am 4. Februar 1859)과 같다. 그비너가 엠덴의 뒤를 이어 유언 집행인이 된 것은 같은 연표 1854년 항목(der nach dem Tod des Freundes Dr. Martin Emden an dessen Stelle auch sein Testamentsvollstrecker wird). 엠덴이 죽은 날짜는 자료에 없다. 보충서를 17번지에서 썼다는 것은 이사(1859년 7월 1일) 전이라 그렇게 두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38~1841년 항목(Tod der Mutter), 여동생의 죽음은 같은 연표 1849년 항목(Tod der Schwester, kurz nach dem letzten Wiedersehen).

[주 38-04] 쇼펜하우어가 하를럼의 반 에이던에게 보낸 1857년 3월 4일 편지. 셰만 편 『쇼펜하우어 서한집』 381~382쪽. 인쇄 382쪽, PDF 442쪽을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Mit mir stirbt der Stamm aus. 한국어 의역. 독일에 같은 성을 쓰는 사람이 없다는 것(In Deutschland lebt, meines Wissens, kein Einziger meines Namens)은 같은 편지 381쪽의 취지를 옮긴 것으로 OCR로 읽었다.

[주 38-05] 보충서를 두고 그비너와 나눈 대화는 소설의 창작이다. 그비너의 대사는 그가 집행인으로 맡은 일(유언장의 묘지·관·묘석 조항)과, 그가 1860년 9월 26일 장례에서 한 추도사의 관점(죽음 앞에서 「남을 수 있는 행복」과 「생명의 샘에 대한 갈증」을 말한 것)에 근거했다. 빌헬름 폰 그비너, 『가까이에서 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aus persönlichem Umgange dargestellt), 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922, 200~201쪽(인터넷 아카이브 전사본 archive.org/details/arthurschopenhau00gwin). 「아무래도 상관없소. 사람들이 나를 찾아낼 것이오.」는 같은 책 206쪽의 증언(als ich ihn fragte, wo er ruhen wolle, sagte er: „Es ist einerlei, sie werden mich finden.“)을 의역한 것이며, 그비너가 그 말을 언제 들었는지 책에 없어 이 장면에 두었다. 늘푸른 덩굴에 둘러싸인 검은 벨기에산 화강암 묘석과 이름만 새긴 비문도 같은 쪽 그비너의 증언(Ein von Immergrün umrankter flacher Grabstein von schwarzem belgischem Granit … nur: Arthur Schopenhauer)이다.

[주 38-06]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권 제4편 제41장. 1891년 브로크하우스판(프라우엔슈테트 편), 인쇄 568쪽, PDF 578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인용은 Mit dem Tode geht demnach zwar das Bewußtseyn verloren, nicht aber Das, was das Bewußtseyn hervorbrachte und erhielt: das Leben erlischt, nicht aber mit ihm das Princip des Lebens, welches in ihm sich manifestirte. 의 한국어 의역. 이어지는 Daher also sagt Jedem ein sicheres Gefühl … bleibt die Frage, was denn Jenes seyn möge, sofern es nicht ins Bewußtseyn fällt, d. h. was es schlechthin an sich selbst sei, unbeantwortbar. 는 같은 쪽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두 극단(absolute Vernichtung / mit Haut und Haar unsterblich)과 「더 높은 자리」는 같은 장 앞부분(영문 대조본 Vol. 3, 제41장 셋째 문단)의 취지로, 독일어 스캔 대조는 하지 않았다(재확인). 제1권 1818년(표제 1819), 제2권 1844년.

[주 38-07] 같은 장, 인쇄 561~562쪽, PDF 571~572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Hieraus aber folgt, daß was als durch den Tod unzerstörbar dargethan wird, nicht eigentlich das Individuum ist … 부터 Dann aber erkauft er die unendliche Zeit seines Daseyns nach dem Tode für eine eben so lange vor der Geburt: wobei die Rechnung, ohne Profit für ihn, aufgeht. 까지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나」라는 낱말의 두 뜻과 맹점의 비유(Eigentlich aber liegt im Worte Ich das größte Aequivokum … das Auge Alles sieht, nur sich selbst nicht.)는 인쇄 562쪽, PDF 572쪽을 스캔으로 대조했고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38-08] 같은 장, 인쇄 564쪽, PDF 574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인용은 Nachdem nun aber durch den Tod ein individuelles Bewußtseyn ein Mal geendigt hat; wäre es da auch nur wünschenswerth, daß es wieder angefacht würde, um ins Endlose fortzubestehen? Sein Inhalt ist, dem größten Theile nach, ja meistens durchweg, nichts als ein Strom kleiner, irdischer, armsäliger Gedanken und endloser Sorgen: laßt diese doch endlich beruhigt werden! — Mit richtigem Sinne setzten daher die Alten auf ihre Grabsteine: securitati perpetuae; — oder bonae quieti. 의 한국어 의역. 덕과 이기심, 사랑의 정신 대목(Wollte man aber gar hier … nimmermehr verfliegen und zu Nichts werden kann.)은 같은 쪽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38-09] 같은 장, 인쇄 571쪽, PDF 581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Wenngleich also nicht das individuelle Bewußtseyn den Tod überlebt; so überlebt ihn doch Das, was allein sich gegen ihn sträubt: der Wille. Hieraus erklärt sich auch der Widerspruch, daß die Philosophen, vom Standpunkt der Erkenntniß aus, allezeit mit treffenden Gründen bewiesen haben, der Tod sei kein Uebel; die Todesfurcht jedoch dem Allen unzugänglich bleibt: weil sie eben nicht in der Erkenntniß, sondern allein im Willen wurzelt. 한국어 의역.

사료에 근거한 것은 1852년 유언장의 작성과 내용(상속인, 장례, 묘지, 묘석 지시), 1859년 2월 4일 보충서(엠덴의 죽음, 그비너를 집행인으로, 서재의 책), 1857년 반 에이던에게 쓴 편지의 「나와 함께 줄기가 끊긴다」, 그비너가 전하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낼 것」과 묘석의 모습이다. 그비너와의 대화 장면과 대사, 유언장을 다시 펼치고 접는 동작, 채석장의 돌은 소설의 창작이다. 1844년의 제2권 제41장은 일흔 살의 쇼펜하우어가 열다섯 해 전에 쓴 글로 비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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