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9,861자)
늙는다는 것은 잃기만 하는 일인가?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59년 7월 1일, 일흔한 살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이사를 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마인강을 따라 늘어선 거리 쇠네 아우스지히트, 우리말로 ‘아름다운 전망’이라는 거리의 17번지에서 그는 열여섯 해를 살았다. 새로 들어간 집은 바로 옆 16번지였다.[주 37-01] 열여섯 해 만의 이사가 담장 하나를 넘는 일이었다.
그의 하루는 오래전부터 좁은 둘레 안에서 돌았다. 그는 점심을 밖에서 달마다 값을 치르고 먹었고, 오후에는 마인강 가를 빠르게 걸었다. 새집은 앞의 집보다 훨씬 넓고 보기 좋았다고 그는 뒤에 편지에 적었다.[주 37-02] 방은 넓어졌지만 그가 하루에 오가는 길은 그대로였다. 젊은 날 그는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마차를 타고 다녔다. 이제 그의 세계는 강가의 산책길 하나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집만큼이었다.
그해 10월, 젊은 조각가 엘리자베트 나이가 베를린에서 찾아왔다. 그의 흉상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새집의 따로 떨어진 방 하나에서 날마다 일했고, 그 일이 거의 네 주 동안 이어졌다. 점심은 같은 건물 위층의 식당에서 날라다 먹었고, 오후에 그가 산책에서 돌아오면 그의 방에 와서 커피를 마셨다. 몇 번은 그의 산책길에 따라나서서 마인강 가를 함께 걸었다. 그는 편지에 그녀가 스물네 살이고 아주 예쁘고 말로 다 못 할 만큼 사랑스럽다고 썼다.[주 37-02]
*
흉상을 만드는 일은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나이는 점토를 붙였다가 떼어 내기를 거듭하며, 일흔한 살 노인의 얼굴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 낼지 골랐다. 그녀는 눈가와 입가에 깊게 팬 주름을 손끝으로 따라 그렸다. 눈썹 사이의 골은 젖은 점토 위에서 몇 번이나 다시 파였다.
어느 오후, 그는 점토 앞에 앉은 채 물었다.
“무엇을 만들고 계십니까? 내 얼굴입니까, 아니면 내 얼굴에서 빠져나간 것의 자리입니까?”
나이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 얼굴이지요. 저는 지금 이 얼굴에 없는 것을 만들 수가 없어요. 있는 것만 만들어요. 이 주름은 스무 살 얼굴에는 없었던 거예요. 시간이 덜어 간 게 아니라 시간이 새긴 거예요.”
“새겼다고 하시는군요. 나는 깎였다고 말하겠소. 점토는 붙일 수 있지만 사람은 붙일 수가 없소. 나는 날마다 조금씩 줄어드는 쪽에 있소.”
“그럼 저는 무엇을 만들고 있는 거죠? 줄어든 사람을요?”
“줄어든 사람이 아니오. 줄어들고 남은 사람이오. 그 둘은 다르오.”
나이는 그제야 손을 내렸다. 그녀의 손톱 밑에는 회색 점토가 끼어 있었다.
“저는 내일 하노버에 가서 왕의 대리석 흉상을 만들어요. 그다음에는 베를린이고요. 저한테는 갈 곳이 아직 많아요. 그런데 선생님 얼굴을 보면 갈 곳이 많은 얼굴보다 이쪽이 더 볼 게 많아요.”
“볼 게 많은 것과 살 게 많은 것은 다르오. 당신은 앞을 보고 나는 뒤를 보오. 당신 앞에는 긴 길이 있고 내 뒤에도 긴 길이 있소. 그런데 내가 뒤를 돌아보면 그 길이 이상하게 짧아 보이오.”
두 사람의 말은 둘 다 맞았다. 조각가에게 얼굴은 지금 거기 있는 것이었다. 주름은 지워진 것이 아니라 생긴 것이었고, 일흔한 해가 아니면 그 얼굴은 나올 수 없었다. 노인에게 얼굴은 무엇이 빠져나간 자리였다. 힘과 빠르기와 앞날이 빠져나갔고, 빠져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았다. 같은 점토를 보면서 한 사람은 더해진 것을 보았고 한 사람은 덜어진 것을 보았다.
*
그 뒤의 일은 그가 편지에 적었다. 흉상은 두 주 동안 사람들 앞에 놓였고, 본 사람마다 아주 닮았다고 했으며, 솜씨도 매우 좋았다. 흉상은 베를린으로 보내서 본을 떠 여러 개를 만들어 팔기로 했다. 나이는 성탄절에는 베를린에 있겠다고 했고, 그 전에 하노버에서 왕의 대리석 흉상을 만들기로 되어 있었다. 그녀는 흉상을 뒤따라 보내게 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 뒤로 그녀한테서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주 37-02]
그 편지는 1860년 3월 1일, 뮌헨의 젊은 법관 아담 폰 도스에게 쓴 것이었다. 같은 편지에서 그는 잠을 못 잔다는 도스에게 날마다 두 시간씩 혼자 빠르게 걸으라고 권했다. 목욕 요법보다 그편이 낫고 돈도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붙였다.
“산책이 없었다면 나는 일흔두 살에 이렇게 온전히 건강하고 기운찰 수 없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주 37-03]
일흔두 살의 그는 자기가 아직 기운차다고 썼다. 그러면서도 떠난 젊은 조각가의 소식을 느낌표를 붙여 기다렸다. 몸은 버티고 있었고, 마음은 아직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
늙는다는 것은 잃기만 하는 일인가? 늙는다는 것은 잃는 일이지만, 잃기만 하는 일은 아니다. 잃는 것과 얻는 것이 같은 자리에서 함께 일어난다.
그는 이 물음을 여덟 해 전에 이미 길게 따져 두었다. 1851년, 예순세 살에 펴낸 『소품과 부록』의 첫째 권에는 「인생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이 실려 있다. 아포리즘은 생각을 짧은 글 토막으로 적는 형식을 말한다. 그는 그 원고를 여섯 장으로 나누었고, 마지막 여섯째 장이 「인생의 여러 시기의 차이에 관하여」다. 그는 거기서 먼저 하나를 못 박는다. 사람은 평생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을 가진다. 젊은이와 노인이 다른 것은 단 두 가지다. 젊을 때는 앞에 긴 미래가 보이고, 늙어서는 뒤에 긴 과거가 보인다. 그리고 성격은 바뀌지 않지만 기질은 나이에 따라 몇 가지 알려진 변화를 겪고, 그 때문에 지금이라는 순간에 매번 다른 빛깔이 입혀진다.[주 37-04]
그러니 늙음이 앗아 가는 것은 ‘지금’ 자체가 아니다. 지금은 일흔 살에게도 스무 살에게만큼 온전히 주어진다. 바뀌는 것은 지금을 바라보는 방향과 지금을 물들이는 빛깔이다.
그 빛깔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그는 이렇게 정리한다. 인생의 앞 절반을 지배하는 것은 채워지지 않는 행복에 대한 그리움이고, 뒤 절반을 지배하는 것은 불행에 대한 걱정이다. 뒤 절반에 이르면 사람은 행복은 헛것이고 고통은 진짜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다. 그래서 적어도 생각이 깊은 사람은 즐거움보다 아프지 않은 상태를 더 찾는다. 그리고 그는 자기 이야기를 한다.
“젊은 시절에는 누가 내 집 문의 초인종을 누르면 나는 기뻤다. 드디어 그것이 오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자 같은 소리에 내가 느끼는 것은 오히려 두려움에 가까워졌다. ‘이제 그것이 오는구나.’”[주 37-05]
같은 초인종, 같은 소리다. 젊을 때 문 밖에는 아직 오지 않은 행복이 서 있었고, 늙어서는 아직 오지 않은 불행이 서 있었다. 초인종 소리는 바뀌지 않았다. 문을 여는 사람이 무엇을 기대하느냐가 바뀌었다.
이 변화를 그는 손실로만 적지 않는다. 젊은이는 세상 어딘가에 굉장한 행복과 즐거움이 있는데 거기 닿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믿는다. 노인은 거기서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노인은 그 일로 마음을 졸이지 않고, 견딜 만한 지금을 누리며, 사소한 것에서도 기쁨을 얻는다.[주 37-05] 그는 인생의 뒤 절반을 음악 한 악절의 뒤 절반에 빗댄다. 앞 절반보다 애써 치고 오르는 힘은 덜하지만 가라앉아 쉬는 맛은 더하다.
그는 여기에 그림 하나를 덧붙인다.
“인생은 수놓은 천에 빗댈 수 있다. 누구나 생애의 앞 절반에는 그 천의 겉면을 보고, 뒤 절반에는 뒷면을 보게 된다. 뒷면은 겉면만큼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실이 어떻게 서로 이어져 있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주 37-06]
천의 겉면에는 꽃과 새가 있다. 뒷면에는 매듭과 엉킨 실과 한 땀에서 다음 땀으로 건너간 자국이 있다. 젊은이는 무늬를 보고, 노인은 그 무늬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본다. 같은 장의 뒤쪽에서 그는 이것을 더 풀어 말한다. 서른다섯 살쯤 넘으면 정신의 힘은 아주 천천히 줄어든다. 그러나 경험과 배움은 그때 비로소 넉넉해진다. 사물을 여러 쪽에서 볼 시간이 있었고, 하나를 다른 하나와 맞대어 그 사이를 잇는 고리를 찾아냈기 때문에, 사람은 그제야 사물을 서로 이어진 채로 이해한다. 젊어서 안다고 믿은 것을 늙어서는 정말로 안다.[주 37-07]
점토 앞에서 나이가 말한 것이 이것이었다. 주름은 덜어진 자리가 아니라 새겨진 자리였다. 일흔한 해가 없었다면 그 얼굴도, 그 얼굴 뒤에서 실의 연결을 읽는 눈도 없었다.
*
그러나 그는 같은 장에서 잃는 쪽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사람의 생명력을 재산에 빗댄다. 서른여섯 살까지 사람은 이자로 사는 사람과 같다. 오늘 쓴 만큼이 내일이면 다시 채워진다. 그 뒤로는 원금을 헐어 쓰기 시작한 사람과 같다. 처음에는 거의 티가 나지 않고, 쓴 것의 대부분이 저절로 메워진다. 그러나 모자라는 몫은 조금씩 커지고, 커지는 속도마저 날마다 빨라진다. 오늘은 어제보다 가난하고, 멈출 희망은 없다. 떨어지는 물체처럼 줄어드는 일은 점점 빨라져서 끝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주 37-08]
이 대목에는 위로가 없다. 생명력은 붙일 수 없는 점토다. 그가 나이에게 “사람은 붙일 수가 없소”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이 계산에서 나왔다. 원금은 이자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또 하나를 적어 둔다. 늙음이 견딜 만한 시기가 되려면 조건이 있다. 늙어서 가난한 것은 큰 불행이다. 가난이 없고 건강이 남아 있을 때에만 늙음은 아주 견딜 만한 한 시기가 된다.[주 37-09] 그는 아버지가 남긴 재산으로 평생 돈을 벌지 않고 살았고, 일흔두 살에 스스로 온전히 건강하다고 썼다. 그가 말하는 평온한 늙음은 두 가지 운을 함께 가진 사람의 늙음이었다. 가난한 노인, 병든 노인에게 그 평온을 그대로 약속할 수는 없었다. 그 자신도 그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자기 논증을 스스로 뒤집어 본다. 늙으면 정념이 잦아들고, 정념이 잦아들면 마음이 조용해진다. 그는 옛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국가』 첫머리에서 늙음을 다행이라 한 것을 끌어온다. 늙음은 쉼 없이 사람을 들쑤시던 성욕에서 마침내 놓여나는 때다. 노인은 오래 차고 있던 족쇄를 벗고 이제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의 명랑함을 가진다. 그런데 바로 다음 문장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욕이 꺼진 뒤에는 삶의 진짜 알맹이는 다 먹혀 버리고 껍데기만 남는다. 그것은 사람들이 시작한 희극을, 나중에는 그들의 옷을 입은 자동 인형들이 끝까지 공연하는 것과 같다.”[주 37-10]
족쇄를 벗은 자유인가,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인가? 그는 둘 가운데 하나를 고르지 않았다. “어떻든 간에”라고 쓰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덜 매달리게 된 것이 자유인지, 매달릴 힘이 없어진 것인지를 그는 끝까지 갈라 주지 않았다.
*
일흔한 살의 그에게 이 물음은 더 이상 책 속의 물음이 아니었다. 그는 덜 매달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믿었다. 행복이 문 밖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세상의 영광이 금칠한 빈 호두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젊은 조각가와 마인강 가를 걸으며 기뻐했고, 그녀가 떠난 뒤 소식이 없다고 편지에 느낌표를 찍었다. 매달리지 않는 사람의 문장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문장이 그의 철학을 거짓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그는 그리움이 줄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대로 적었다.
젊음이 지나가면 내 삶의 중요한 부분도 끝나는가? 무엇인가는 확실히 끝난다. 원금은 줄고, 하루는 빨라지고, 문 밖에서 기다리던 굉장한 행복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 끝남을 애도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거짓이다. 그러나 끝나는 것이 그 사람 전부는 아니다. 겉면의 무늬가 바래는 동안 뒷면의 실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그해 겨울 그는 흉상이 어디에 있는지, 자기 얼굴이 어디서 몇 개로 떠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평소처럼 오후마다 마인강 가를 빠르게 걸었다. 길은 몇 해째 같았다. 같은 길에서 그가 보는 것은 해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후주
[주 37-01] 1859년 7월 1일 쇠네 아우스지히트 17번지에서 바로 옆 16번지로 옮긴 것, 17번지에서 열여섯 해를 산 것은 사실이다.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schopenhauer.de/zeittafel) 1843·1859년 항목(Am 1. Juli Umzug in das Nachbarhaus Schöne Aussicht Nr. 16). 점심을 밖에서 달마다 값을 치르고 먹은 것은 1852년 유언장에 적힌 「한 달 치 점심 식탁 정기 요금」(ein Monat Mittagstisch-Abonnement)에 근거했다. 셰만 편 『쇼펜하우어 서한집』 인쇄 550쪽, PDF 618쪽, 스캔 대조.
[주 37-02] 쇼펜하우어가 아담 폰 도스에게 보낸 1860년 3월 1일 편지. 루트비히 셰만 편, 『쇼펜하우어 서한집』(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893), 인쇄 325~326쪽, 스캔 PDF 385~386쪽. 스캔으로 원문을 대조했다. 나이가 10월에 베를린에서 와서 거의 네 주 동안 새집(viel größeren u. schöneren Logi's)의 따로 떨어진 방에서 일하고, 위층 식당에서 점심을 날라다 먹고, 오후에 커피를 마시러 오고, 마인강 산책길에 몇 번 동행한 것, 흉상이 두 주 동안 전시되어 아주 닮았다는 평을 받은 것, 베를린으로 보내 본을 떠 팔기로 한 것, 하노버의 왕 흉상, 그 뒤 소식이 없다는 것은 모두 이 편지의 내용이며 취지를 옮겼다. 「스물네 살이고 아주 예쁘고 말로 다 못 할 만큼 사랑스럽다」(Sie ist 24 J. alt, sehr hübsch u. unbeschreiblich liebenswürdig)와 「그 뒤로 그녀한테서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seitd[em] habe nichts von ihr gehört!)는 한국어 의역이다. 편지에는 이어 「우리는 놀랍도록 잘 맞았다」(Wir harmonirten wundervoll)는 문장이 있다. 「스물네 살」은 쇼펜하우어가 적은 나이이며, 나이의 실제 출생 연도와 맞는지는 확보한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다(재확인). 편지는 그녀를 「원수의 조카손녀」(Großnichte des Marschalls)라고 부르는데, 어느 원수인지 편지에 없어 본문에서는 뺐다. 흉상 작업 중의 대화와 대사는 소설의 창작이며, 쇼펜하우어의 대사는 『아포리즘』 제6장의 관점에, 나이의 대사는 조각가라는 그녀의 자리와 편지에 적힌 다음 일정(하노버 왕의 흉상, 베를린)에 근거했다.
[주 37-03] 같은 편지, 인쇄 326쪽, PDF 386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Ohne meine promenaden wäre ich nicht mit 72 Jahren so vollkommen gesund u. rüstig, wie ich bin u. wie ich verbleibe. 한국어 의역. 날마다 두 시간 혼자 빠르게 걸으라는 권고(gehn Sie täglich 2 Stunden allein u. rasch spazieren)와 목욕 요법보다 낫고 돈이 들지 않는다는 말은 같은 쪽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도스가 뮌헨의 법원 배석판사였다는 것은 같은 서한집의 수신인 표기(Gerichts-Assessor, Adam v. Doss, München)에 따랐다.
[주 37-04] 쇼펜하우어, 『소품과 부록』 제1권 「인생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 제6장 「인생의 여러 시기의 차이에 관하여」(Vom Unterschiede der Lebensalter) 첫머리, Unser ganzes Leben hindurch haben wir immer nur die Gegenwart inne 로 시작하는 문단. 1913년 에른스트 올레판 전자 전사,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취지를 옮긴 것이다. 『소품과 부록』은 1851년에 나왔다.
[주 37-05] 같은 장 Ist sonach der Charakter der ersten Lebenshälfte unbefriedigte Sehnsucht nach Glück 로 시작하는 문단.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초인종 대목(Wenn, in meinen Jünglingsjahren, es an meiner Tür schellte, wurde ich vergnügt, denn ich dachte, nun käme es. Aber in spätern Jahren hatte meine Empfindung, bei demselben Anlaß, viel mehr etwas dem Schrecken Verwandtes: ich dachte: »da kommt's.«)은 한국어 의역이다. 앞뒤의 행복·불행 구분, 음악 악절의 비유, 견딜 만한 지금과 사소한 기쁨은 같은 문단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37-06] 같은 장 Man kann ferner, in der bis hieher betrachteten Hinsicht, das Leben mit einem gestickten Stoffe vergleichen 로 시작하는 문단 전체.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한국어 의역.
[주 37-07] 같은 장 Die größte Energie und höchste Spannung der Geisteskräfte findet, ohne Zweifel, in der Jugend statt 로 시작하는 문단.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취지를 옮긴 것이다(Was man in der Jugend zu wissen glaubte, das weiß man im Alter wirklich).
[주 37-08] 같은 장 Hinsichtlich der Lebenskraft sind wir, bis zum 36sten Jahre 로 시작하는 문단.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취지를 옮긴 것이다(jedes Heute ist ärmer als das Gestern, ohne Hoffnung auf Stillstand).
[주 37-09] 같은 장 Gewöhnlich meint man, das Los der Alten sei Krankheit und Langeweile 로 시작하는 문단.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Armut im Alter ist ein großes Unglück. Ist diese gebannt und die Gesundheit geblieben; so kann das Alter ein sehr erträglicher Teil des Lebens sein 의 취지를 옮겼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돈을 벌지 않고 산 것은 [주 1-11]의 두 연표.
[주 37-10] 같은 장 Man pflegt die Jugend die glücklichste Zeit des Lebens zu nennen 으로 시작하는 문단.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플라톤과 족쇄 대목은 취지를 옮긴 것이고, 인용한 두 문장(Andrerseits jedoch ließe sich sagen, daß nach erloschenem Geschlechtstrieb der eigentliche Kern des Lebens verzehrt und nur noch die Schale desselben vorhanden sei, ja, daß es einer Komödie gliche, die von Menschen angefangen, nachher von Automaten, in deren Kleidern, zu Ende gespielt werde.)은 한국어 의역이다. 「어떻든 간에」는 다음 문단 첫머리 Wie dem auch sei 의 의역이다. 「금칠한 빈 호두」는 같은 장 뒤쪽 daß alle Nüsse hohl sind, wie sehr sie auch vergoldet sein mögen 에서 왔다.
사료에 근거한 것은 1859년 7월 1일의 이사, 1859년 10월 엘리자베트 나이의 흉상 작업과 그 경과, 산책 동행, 흉상의 전시와 베를린행, 그 뒤 소식이 없었다는 것, 1860년 3월 1일 도스에게 쓴 편지의 산책과 건강 이야기다. 흉상 작업 중의 대화, 손톱 밑의 점토는 소설의 창작이다. 1851년의 『아포리즘』 제6장은 일흔한 살의 쇼펜하우어가 여덟 해 전에 쓴 글로 비춘 것이며, 그 장의 문장을 그가 흉상 앞에서 떠올렸다는 기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