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9,807자)
불행하지 않으려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53년 8월 15일, 프랑크푸르트의 쇼펜하우어는 뮌헨의 도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이렇게 맺었다.
“그리고 그대, 나의 오랜 사도여. 복음서를 쓰는 사람이 되기에 그대에게 모자란 것은 용기 하나뿐입니다. 세 해째인 약혼 기간을 행복하게 이어 가십시오. 그것은 그대에게 참된 행복입니다. 사람은 무엇이든 앞날의 전망 속에서 가장 잘 즐기니까요.”[주 35-01]
한 편지의 끝에 두 가지 말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하나는 쓰라고 떠미는 말이었다. 도스는 네 해 동안 그의 책을 누구보다 깊이 읽었지만, 그에 관한 글을 세상에 내놓은 적이 없었다. 쇼펜하우어는 제자에게 사도로 남지 말고 복음서를 쓰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 다른 하나는 미루는 것을 칭찬하는 말이었다. 도스는 세 해째 약혼한 채 혼인을 미루고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그것을 참된 행복이라고 불렀다. 무엇이든 손에 넣기 전, 바라보기만 할 때 가장 좋다는 까닭에서였다.
*
9월 2일, 도스가 답장을 보냈다. 편지의 대부분은 그 무렵 유럽을 휩쓴 탁자 돌리기 실험, 여러 사람이 탁자에 손을 얹고 기다리면 무거운 탁자가 저절로 움직인다는 현상을 직접 지켜본 기록이었다. 그리고 끝에서 도스는 용기가 모자란다는 말에 대답했다.
“저를 두고 복음서를 쓰기에 용기 하나만 모자란 오랜 사도라고 하셨지요. 너무 너그러운 말씀입니다. 문필의 일에서 귀담아들을 만한 말을 하고 세상 앞에 나서려는 사람에게 선생님이 얼마나 엄하고도 옳은 기준을 내미시는지 저는 잘 압니다. 저는 그 기준으로 제 힘을 재어 보고, 아직 한참 모자란다고 봅니다. 제 자리가 지식을 쌓고 글솜씨를 갈고닦을 여가를 더 준다면 비평 같은 것은 시도해 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남이 마련해 둔 것에 기대지 않고 온전히 제 힘으로 쓰는 글에는 늘 생산하는 힘이 모자랄 것입니다. 지금은 일의 성가신 잡무가 가장 좋은 시간을 조각내고, 선생님의 책 속으로 깊이 들어갈 시간은 해 질 녘의 짧은 틈뿐입니다. 그러니 저는 그날그날 쏟아지는 글에 저까지 하루살이 같은 글을 보태지 않겠다는 다짐을 지키겠습니다. 소박하고 성실한 애호가의 순진한 자리에서 걸어 나오지 않겠습니다.”[주 35-02]
도스는 유혹을 느낀 적이 없지 않다고 덧붙였다. 선생의 책이 얼마나 값진지 깊이 알아볼 때마다 그 소박한 자리를 떠나 무언가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 앎에 맞는 표현을 자기가 아직 찾지 못했다는 느낌이 그를 붙잡았다. 이따금 선생 앞에 자기가 혼자 해 온 공부를 내보이고 격려 한마디를 듣는 것으로 이미 보상은 충분하다고 그는 썼다.[주 35-02]
9월 11일, 쇼펜하우어가 다시 썼다. 그대의 편지는 아주 흥미롭고 배울 것이 많으며, 무엇보다 눈에 띄게 잘 쓴 글이다. 그 내용을 사적인 이야기만 빼고 어느 신문에 실으면 세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썼다.
“그대는 자기 자신을 너무 낮게 생각하는 드문 사람에 속합니다.”[주 35-03]
그는 베를린에 사는 오랜 지지자 프라우엔슈테트가 도스의 지난 편지를 읽고 군데군데 고전처럼 훌륭하다고 감탄했다는 말을 옮겨 적었다. 그리고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 두 줄을 라틴어로 붙였다. 그러니 용감하게 살라, 그리고 닥쳐오는 불운에 용감한 가슴을 내밀라.[주 35-03]
두 사람의 논리는 둘 다 옳았다. 도스의 물러섬은 겁이 아니라 정직이었다. 그는 스승의 기준을 알았고, 그 기준에 못 미치는 글을 내놓으면 그날그날 쏟아지는 하찮은 글에 또 하나를 보탤 뿐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 기준은 쇼펜하우어 자신이 책에서 줄곧 세운 것이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핑계가 아닌 사정이 있었다. 법원의 서류가 그의 하루를 조각냈고, 그는 그 일로 먹고살아야 했다. 쇼펜하우어의 떠밂도 옳았다. 도스의 편지는 실제로 잘 쓴 글이었고, 그가 본 실험의 기록은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것이었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면, 실패는 피하지만 그 기록도 함께 사라진다. 둘이 갈라선 자리는 실패할 위험과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 손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무거우냐였다.
*
그런데 도스가 지키겠다던 다짐은 쇼펜하우어의 책에 적힌 원칙과 거의 같았다.
두 해 전에 나온 「인생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은 서론과 여섯 개의 장으로 되어 있고, 다섯째 장은 번호를 붙인 짧은 준칙들을 모은 장이다. 그 첫째 준칙에서 그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지나가듯 한 말을 인생의 지혜 전체에서 가장 높은 규칙으로 세운다.
“분별 있는 사람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 없음을 좇는다.”[주 35-04]
그는 이 규칙을 이렇게 떠받친다. 즐거움과 행복은 본래 무언가가 없어진 상태이고, 고통만이 실제로 느껴진다. 몸이 다 성한데 작은 상처 하나가 아프면, 성한 몸 전체는 의식에 떠오르지 않고 주의는 줄곧 그 상처로 간다. 일이 모두 뜻대로 되는데 하나만 어긋나도, 그 하나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바라던 것이 채워지면 그것은 느껴지지 않고, 막히면 그것만 느껴진다. 그러니 삶의 결산을 할 때는 누린 기쁨이 아니라 피한 불행을 세어야 하고, 가장 행복한 몫을 받은 사람은 가장 큰 기쁨을 누린 사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지나친 고통 없이 삶을 지나간 사람이다.[주 35-04]
그는 이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도 그린다. 젊은이는 아무것도 따져 보지 않고 세상이 즐기라고 있는 곳이며, 그 안에 실제로 있는 행복을 놓치는 것은 솜씨가 모자란 사람뿐이라고 믿는다. 소설과 시가 그 믿음을 부추기고, 세상이 늘 꾸며 보이는 겉모습이 그 믿음을 굳힌다. 그때부터 그의 삶은 그런 행복을 쫓는 사냥이 되고, 그 사냥에 따르는 위험은 걸어도 좋은 판돈이 된다. 그러나 그 사냥감은 처음부터 없는 짐승이어서, 사냥은 대개 아주 실제적인 불행으로 끝난다. 아픔과 병과 잃음과 근심과 가난과 부끄러움이 그것이다. 그는 깨달음이 너무 늦게 온다고 쓴다. 반대로 삶의 계획을 결핍과 병과 온갖 곤경을 피하는 데 두면, 그 목표는 실제로 있는 것이어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주 35-04] 그가 신중함을 권한 까닭은 겁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그의 준칙은 없는 것을 쫓다가 있는 것을 잃는 일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그 결론은 단호하다. 즐거움을 얻으려고 고통을 치러서는 안 되고, 고통의 위험만 치러서도 안 된다. 실제로 없는 것을 위해 실제로 있는 것을 내주는 셈이 되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손해로 본다. 반대로 고통을 피하려고 즐거움을 내주면 늘 남는 장사다. 그리고 그는 한 걸음 더 간다.
“설령 그가 불행을 너무 멀리 피해 다니다가 쓸데없이 즐거움을 내주었다 해도, 사실 잃은 것은 없다. 모든 즐거움은 헛것이니, 그것을 놓친 일을 슬퍼한다면 옹졸하고 우스운 일이다.”[주 35-05]
상처를 피하는 것이 삶의 전부가 되어도 괜찮은가? 그의 첫째 준칙만 따르면 괜찮다. 너무 멀리 피해서 놓친 것은 잃은 것이 아니다. 도스가 하루살이 같은 글을 쓰지 않아서 놓친 것도, 약혼한 채 앞날을 바라보기만 해서 놓친 것도 잃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같은 장의 마지막 준칙에서 그 대답을 스스로 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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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장의 마지막, 쉰셋째 준칙은 이렇게 시작한다. 분별 다음으로 우리의 행복에 아주 중요한 성질은 용기다. 그는 삶 전체가 싸움이고 걸음마다 다툼이 붙는다고 쓴다. 그러니 구름이 몰려오거나 지평선에 구름이 보이기만 해도 움츠러들어 낙담하고 탄식하는 마음은 비겁하다. 위험한 일의 결말이 아직 불확실한 동안, 좋게 끝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동안에는 망설임을 생각하지 말고 맞서는 것만 생각해야 한다. 하늘에 파란 조각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날씨를 두고 절망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는 삶 전체도, 하물며 삶이 주는 재화는 더욱, 그렇게 비겁하게 떨며 가슴을 졸일 만한 값어치가 없다고 쓰고, 호라티우스의 시 두 줄을 붙인다.[주 35-06]
그 두 줄은 그가 9월 11일 도스에게 써 보낸 바로 그 구절이었다. 그러니 용감하게 살라, 닥쳐오는 불운에 용감한 가슴을 내밀라. 그는 제자를 떠밀면서 자기 책의 마지막 준칙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그렇다면 첫째 준칙과 마지막 준칙은 어떻게 함께 서는가? 그는 그 둘을 하나로 묶는 열쇠를 같은 준칙 끝에 둔다. 용기도 지나치면 무모함이 되고, 어느 만큼의 두려움은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남는 데 꼭 필요하다. 비겁함이란 그 정도를 넘어선 두려움일 뿐이다.[주 35-06] 고통 없음을 좇으라는 말은 필요 없는 위험을 피하라는 말이었지, 아무 위험도 지지 말라는 말이 아니었다. 두려움이 제 몫을 넘어 해야 할 일까지 막으면, 그것은 분별이 아니라 비겁함이다.
그리고 그는 이 책 전체가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를 서론에서 미리 밝혀 두었다. 인생의 지혜란 삶을 될 수 있는 대로 즐겁고 행복하게 꾸려 가는 기술이고, 그것을 행복론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런데 행복론은 삶이 없는 것보다 낫다는 데서 출발한다. 자기 철학은 그것을 부정한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을 쓰려고 자기 철학이 이끄는 높은 형이상학적이고 윤리적인 자리를 떠나 보통 사람의 경험의 자리에 내려와야 했다. 그는 그것을 맞춰 주기라고 부르고, 그러니 이 가르침의 값은 조건이 붙은 값일 뿐이라고 쓴다.[주 35-07] 그는 다섯째 장 첫머리에서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행복하게 산다’는 말은 ‘덜 불행하게 산다’, 곧 견딜 만하게 산다는 뜻으로만 알아들어야 한다.[주 35-04]
주저에서 그가 말한 구원은 고통을 영리하게 피하는 데 있지 않았다. 그것은 원하는 마음 자체가 스스로 물러서는 일이었다. 『아포리즘』의 신중함은 그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아직 원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덜 다치는 법을 일러 주는 낮은 자리의 지혜였다. 그 낮은 자리에서조차 그는 신중함만으로 책을 끝내지 않았다. 마지막 준칙에 용기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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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가을의 편지들은 그 자신도 둘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 편지 안에서 그는 약혼을 미루는 일은 앞날을 바라보는 즐거움이라며 칭찬했고, 글을 내놓지 않는 일은 용기가 모자란 탓이라며 나무랐다. 둘 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아껴 두는 일이었다. 그는 한쪽에는 첫째 준칙을, 다른 쪽에는 마지막 준칙을 내밀었다. 무엇은 피해야 하고 무엇은 무릅써야 하는지를 가르는 잣대는 그의 책 어디에도 공식으로 적혀 있지 않았다.
그 잣대는 아마 이것이었다. 피해서 잃는 것이 헛것이면 피하고, 피해서 잃는 것이 자기만 가진 것이면 무릅쓴다. 도스가 본 실험의 기록은 도스만 가진 것이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그것만은 세상에 내놓으라고 했다. 그는 스물두 해 전 베를린에 콜레라가 번지자 그것을 피해 프랑크푸르트로 떠났고, 그 뒤로 그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주 35-08] 그러나 서른 해 넘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쓰는 일만은 피하지 않았다. 상처 없는 삶은 없었다. 그가 고른 것은 상처를 피하는 삶이 아니라, 어느 상처를 감당할지 고르는 삶이었다.
도스는 끝내 소박한 애호가의 자리를 지켰을까, 아니면 쓰라는 말을 따랐을까? 그해 가을 그가 받은 답장에는 용감하게 살라는 라틴어 두 줄이 적혀 있었다.
후주
[주 35-01] 쇼펜하우어가 도스에게 보낸 편지, 1853년 8월 15일, 프랑크푸르트. 루트비히 셰만 편 『쇼펜하우어 서신집』(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893), 257쪽(PDF 317쪽). 스캔으로 확인했다. 원문은 Und Sie, mein alter Apostel, dem zum Evangelisten nichts als die Courage fehlt, leben Sie glücklich fort in Ihrem 3jährigen Brautstand, der ein wahres Glück für Sie ist, weil man die Sachen am besten im Prospekt genießt, u. gedenken Sie Ihres Freundes. 한국어 의역이다. 「사도」와 「복음서를 쓰는 사람」(Evangelist)은 쇼펜하우어가 자기 철학의 지지자를 부르던 말이다. 도스가 1849년부터 편지를 썼다는 것은 서신집 목차.
[주 35-02] 도스가 쇼펜하우어에게 보낸 편지, 1853년 9월 2일. 서신집 257~264쪽. 인용한 대목은 263~264쪽(PDF 323쪽)으로 스캔에서 확인했다. Sie nennen mich am Schlusse Ihres Schreibens einen „alten Apostel, dem zum Evangelisten nichts als die Courage fehlt"; gewiß ein zu nachsichtiger Ausspruch … muß ich mich an den Vorsatz halten: zur Vielschreiberei des Tages nicht selbst auch einen ephemeren Beitrag zu liefern und dadurch aus dem Stande der Unschuld eines schlichten, wackeren Dilettanten zu treten. 의 한국어 의역이며, 중간의 몇 문장(지식을 쌓을 여가, 남이 마련해 둔 것에 기대지 않는 글, 일의 잡무 Plackereien des Berufes, 해 질 녘의 짧은 틈 Dämmerungsstündchen)을 줄여 이었다. 유혹과 표현을 찾지 못했다는 느낌, 격려 한마디로 충분하다는 대목은 같은 쪽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편지 앞부분이 탁자 돌리기 관찰이라는 것은 서신집 편집자의 요약(257쪽, PDF 317쪽, 스캔 확인).
[주 35-03] 쇼펜하우어가 도스에게 보낸 편지, 1853년 9월 11일. 서신집 264~265쪽(PDF 324~325쪽), 스캔 확인. 「sehr interessanten, belehrenden u. noch dazu auffallend wohlgeschriebenen Brief」, 「Sie würden dem Publiko einen Dienst erweisen, wenn Sie den Inhalt deßelben, mit Weglaßung der Personalia, in irgend einem Journal, etwan die Allg: Zeit, veröffentlichen wollten」의 취지를 옮겼다. 인용 「Sie gehören zu den seltenen Leuten, die von sich selbst zu gering denken.」은 한국어 의역. 프라우엔슈테트의 말(der Brief von Doss ist stellenweise klaßisch)과 호라티우스 구절(Quocirca vivite fortes, fortiaque adversis opponite pectora rebus!)도 같은 쪽. 호라티우스의 『풍자시』 제2권 2편 135~136행이라는 것은 서신집 편집자의 주. 라틴어 시는 한국어로 풀어 옮겼다. 날짜는 265쪽(PDF 325쪽) 스캔.
[주 35-04] 쇼펜하우어, 『소품과 부록』 제1권 「인생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 제5장 「준칙과 격언」, A 「일반 준칙」 제1항. 1913년 에른스트 올레판 전자 전사,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인용(»Nicht dem Vergnügen, der Schmerzlosigkeit geht der Vernünftige nach«)은 쇼펜하우어 자신이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7권 12장의 구절(ho phronimos to alypon diôkei, ou to hêdy)을 독일어로 옮긴 문장의 한국어 의역이다. 상처의 예, 결산은 피한 불행으로 하라는 대목, 가장 행복한 몫, 「행복하게 산다는 말은 덜 불행하게, 곧 견딜 만하게 산다는 뜻」(unter »glücklich leben« nur zu verstehn ist »weniger unglücklich«, also erträglich leben), 젊은이가 없는 사냥감을 쫓는다는 대목(Jagd nach einem Wilde, welches gar nicht existiert … Die Enttäuschung kommt zu spät)은 같은 항목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즐거움과 고통의 비대칭을 주저에서 따로 논증했다는 것은 쇼펜하우어 자신이 같은 항목에서 밝힌다(Hauptwerke Bd. I, § 58).
[주 35-05] 같은 항목. 「Hieraus nun folgt, daß man nie Genüsse durch Schmerzen, ja, auch nur durch die Gefahr derselben, erkaufen soll …」는 취지를 옮긴 것이다. 인용 「Selbst wenn er etwan ihnen zu weit aus dem Wege gegangen sein sollte und Genüsse unnötigerweise geopfert hätte; so ist eigentlich doch nichts verloren: denn alle Genüsse sind chimärisch, und über die Versäumnis derselben zu trauern wäre kleinlich, ja lächerlich.」은 한국어 의역이다.
[주 35-06] 같은 장 제53항.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Nächst der Klugheit aber ist Mut eine für unser Glück sehr wesentliche Eigenschaft」부터 「die Feigheit ist bloß das Überschreiten desselben」까지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호라티우스 구절은 원문에서 Quocirca vivite fortes, / Fortiaque adversis apponite pectora rebus 로 실려 있고(편지에서는 opponite), 같은 장에 베르길리우스(Tu ne cede malis)와 호라티우스(Si fractus illabatur orbis)의 구절도 함께 실려 있다. 용기가 무모함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과 어느 만큼의 두려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쇼펜하우어가 베이컨의 판 신 풀이를 빌려 덧붙인 대목이다.
[주 35-07] 같은 책 「서론」.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7406번. 「Ich nehme den Begriff der Lebensweisheit hier gänzlich im immanenten Sinne …」부터 「… da selbst das Wort Eudämonologie nur ein Euphemismus ist」까지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맞춰 주기」는 Akkommodation을 옮긴 말이고, 「조건이 붙은 값」은 ihr Wert nur ein bedingter sein을 옮긴 말이다. 행복론이 기대는 「타고난 오류」의 비판이 주저 제2권 제49장에서 시작된다고 그는 같은 대목에서 밝힌다.
[주 35-08] 1831년 콜레라를 피해 베를린을 떠나 프랑크푸르트에 머문 것은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생애 연표와 스탠퍼드 철학 백과, 그리고 쇼펜하우어가 에르트만에게 보낸 1851년 4월 9일 편지(서신집 332쪽, OCR로 읽음 — ging ich der nach Berlin vordringenden Cholera aus dem Wege, vorläufig hieher). 1833년 프랑크푸르트 정착은 스탠퍼드 철학 백과. 「서른 해 넘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은 1818년 주저 초판부터 1853년 영국 서평 전까지를 가리키는 서술자의 말이다.
사료에 근거한 것은 쇼펜하우어가 1853년 8월 15일과 9월 11일 도스에게 보낸 편지, 도스의 1853년 9월 2일 편지, 그 편지들이 다룬 약혼과 탁자 돌리기와 글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 프라우엔슈테트의 평, 호라티우스 구절, 1831년 콜레라를 피한 일이다. 편지들은 모두 실제 편지의 의역이며, 창작 대사는 없다. 도스의 물러섬과 쇼펜하우어의 떠밂을 견준 문단, 첫째 준칙과 마지막 준칙을 잇는 잣대를 짐작한 문단은 서술자의 해석이다. 『아포리즘』은 1851년에 나온 글이며, 1853년의 편지를 그 글로 비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