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10,964자)

어렵게 말해야 깊어 보이는가?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53년 4월, 런던에서 석 달마다 나오는 평론지 『웨스트민스터 리뷰』에 긴 글 한 편이 실렸다. 글에는 「독일 철학의 우상 파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필자의 이름은 없었다. 다룬 사람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예순다섯 살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였다.[주 34-01] 베를린의 신문 편집자 린트너가 곧 그 글을 독일어로 옮겨 신문에 실었다.[주 34-02]

그 글이 가장 길게 칭찬한 것은 그의 결론이 아니라 그의 문장이었다. 필자는 영국 독자에게 시험을 하나 내밀었다. 논리학을 한 과정쯤 배우고, 증명이 무엇인지 알 만큼 수학을 공부하고, 독일 철학자 칸트의 주요 저작까지 읽은 영국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이 칸트 뒤의 독일 철학자 헤겔의 이른바 학문적 저작을 아무거나 하나 집어 들고, 남을 가르치려고 쓴 책이 정말 이런 문장으로 쓰여야 하는지 정직하게 자기에게 물어보라고 했다.[주 34-03] 그리고 필자는 독일 형이상학자들의 공통된 잘못을 이렇게 짚었다.

“그들은 공격할 만한 자리조차 내주지 않는다. 체계는 이상하게 짜여 있고 낱말은 뜻이 하도 흐릿해서, 읽는 사람은 자기가 그림자와 싸우는지 실체와 싸우는지 알 수 없다. 묘한 재주에 감탄하든 짙어지는 어둠에 넌더리를 내든, 결국 아무 싸움도 걸지 못하고 그저 설득되지 않은 채 남는다. 쇼펜하우어는 다르다. 그는 알아들을 수 있는 체계를 분명한 말로 내놓는다. 그래서 그를 읽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절하는지 의심할 여지 없이 안다. 이토록 독자를 속이려 하지 않는 저자는 없었다.”[주 34-04]

그런데 같은 글의 끝에서 필자는 한 발 물러섰다. 자기는 저자의 문체를 칭찬한 것 말고는 그의 체계를 소개했을 뿐이고, 자기 글을 그런 극단적인 비관주의를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읽는 사람은 자기 뜻을 완전히 잘못 안 것이라고 적었다.[주 34-05] 그는 문장은 칭찬하고 결론은 거절했다.

*

쇼펜하우어는 그 서평을 바이에른 왕국의 수도 뮌헨에 사는 도스에게 보냈다. 도스는 정식 판사가 되기 전 법원에서 일을 배우는 시보였고, 몇 해째 그의 철학을 누구보다 열심히 읽어 온 사람이었다. 1853년 7월 25일, 도스는 긴 답장을 썼다.

도스는 먼저 기뻐했다. 스승의 천재가 마침내 나라 밖에서 길을 트기 시작했다고 썼다. 그러고는 영국 필자가 걸리는 데를 짚었다. 그 필자는 스승의 연구가 위안이 없다며 그 위안 없음을 스스로 부풀려 놓고 반대하면서, 훌륭한 방법만은 인정하겠다고 했다. 도스는 그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르치는 방법에만 진지하게 매달리면서 그 가르침 자체에, 그 정신에 사로잡히거나 설득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듣기 좋은 운율로 터무니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시인이 저를 끌지 못하듯, 아무리 모범적인 서술의 반짝이는 껍질로 감싸서 나쁜 가르침을 제 머릿속에 몰래 들여보내려는 철학자에게는 더욱 마음이 가지 않을 것입니다.”[주 34-06]

도스는 번역자 린트너의 해석도 덧붙였다. 영국 필자가 가르침에는 반대한다고 말한 것은 일종의 전략이었다. 먼저 자기 나라 사람들이 책을 집어 들게 하려는 것이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깊은 뜻이 열릴 때까지 쉽게 놓지 못할 터였다.[주 34-06]

두 사람의 논리는 둘 다 옳았다. 영국 필자에게 분명한 문장은 그 자체로 미덕이었다. 분명하게 쓰면 읽는 사람이 동의할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다. 흐릿하게 쓰면 읽는 사람은 동의도 거절도 못 한 채 감탄하거나 지친다. 그러니 분명함은 결론이 옳든 그르든 읽는 사람에게 판단할 자리를 내주는 예의였다. 도스에게 문장과 가르침은 떼어 낼 수 없었다. 문장이 아름다울수록 그 문장이 실어 나르는 생각이 더 쉽게 들어온다. 그래서 그는 문장만 칭찬하고 생각은 거절하는 태도를 정직하지 못하다고 보았다. 둘이 갈라선 자리는 문체가 진리를 증명하느냐는 물음이었다. 영국 필자는 증명하지 않는다고 보았고, 도스는 적어도 떼어 놓을 수는 없다고 보았다.

8월 15일, 쇼펜하우어는 도스에게 이렇게 답했다. 그대의 긴 편지를 큰 흥미를 가지고 읽었고, 모든 점에서 그대에게 동의한다. 그대는 아주 이치에 맞고 사려 깊게 썼다.[주 34-07] 그는 자기 문장을 칭찬하고 결론을 거절한 사람보다, 문장과 결론을 함께 받아들인 사람의 편에 섰다.

*

어렵게 말해야 깊어 보이는가? 어렵게 말하면 깊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깊이가 아니라 깊이의 탈이다.

이 물음에 그가 오래 생각해 둔 답은 영국 서평보다 두 해 먼저 나와 있었다. 1851년의 『소품과 부록』 제2권은 번호 붙은 짧은 절들을 주제별 장으로 묶은 책이고, 그 스물세 번째 장이 「저술과 문체에 관하여」다. 거기서 그는 생각이 모자란 글쓴이들이 무엇을 하는지부터 적는다. 그들은 생각이 실제보다 훨씬 멀리, 훨씬 깊이 나아간 것처럼 보이려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도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은 낱말과 문장을 늘어놓고, 다른 누군가가 거기서 무언가를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새로 만든 말이나 새 뜻으로 비튼 말을 써서 정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그렇게 몹시 아프게 느끼는 정신의 결핍을 메운다. 그는 그것을 정신을 흉내 낸 가면이라고 부른다. 한동안은 경험 없는 사람을 속이지만, 끝내 죽은 가면으로 드러나 비웃음을 사고 다른 가면으로 바뀐다.[주 34-08]

그는 그 가면 가운데 가장 오래 버틴 것을 지목한다. 알아들을 수 없게 쓰는 가면이다. 칸트의 뒤를 이었다고 자처한 피히테가 들여오고 셸링이 다듬고 헤겔에서 절정에 이른 그 가면은 독일에서만 통했고, 언제나 크게 성공했다고 그는 비꼰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쓴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게 쓰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다. 반대로 중요한 생각을 누구나 알아들을 수밖에 없게 말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주 34-09]

이 문장에서 어려움은 읽는 사람의 몫이 아니라 쓰는 사람의 몫으로 옮겨진다. 흐릿한 문장은 쓰는 사람이 할 일을 하지 않고 그 짐을 읽는 사람에게 넘긴 결과다.

그는 몇 쪽 뒤에서 이 생각을 논증으로 만든다. 그 논증은 네 걸음으로 간다. 첫째, 표현이 어둡고 흐릿한 것은 언제 어디서나 아주 나쁜 징조다. 둘째, 백 번 가운데 아흔아홉 번은 그 흐릿함이 생각의 흐릿함에서 온다. 그리고 생각이 흐릿한 것은 거의 언제나 그 생각 안에 처음부터 어긋남과 앞뒤 맞지 않음이 있어서이고, 그것은 곧 그 생각이 틀렸다는 표시다. 셋째, 머릿속에 옳은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은 저절로 분명해지려 애쓰고 곧 분명해진다. 분명하게 생각한 것은 제게 맞는 표현을 쉽게 찾는다. 넷째, 그러므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분명하고 알아듣기 쉽고 두 가지로 읽히지 않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주 34-10]

결론은 거기서 나온다. 어렵고 어둡고 얽히고 두 가지로 읽히는 문장을 짓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제대로 모른다. 그들은 생각이 되려고 아직 몸부림치는 흐릿한 의식만 가지고 있다. 또는 자기가 사실은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는 것을 자기와 남에게 숨기려 한다. 그들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은 것을 생각한 것처럼,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한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는 묻는다. 정말로 전할 것이 있는 사람이 흐릿하게 말하려고 애쓰겠는가?[주 34-10]

같은 책 스물네 번째 장에서 그는 칸트 뒤의 독일 철학을 한 문장으로 묶는다. 그 시대의 철학자들은 설득하는 대신 위압하려 했고, 철저하고 분명한 대신 화려하고 과장되려 했고, 무엇보다 알아들을 수 없으려 했다. 진리를 찾는 대신 술수를 부리려 했다.[주 34-11] 그가 보기에 어려운 문장은 깊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깊이를 빌리는 방법이었다.

그러니 이해하지 못한 것이 내 능력이 모자라서인지 설명이 잘못되어서인지 물을 때, 그의 대답은 먼저 설명 쪽을 보라는 것이다. 정말로 생각한 사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분명하지 않은 글 앞에서 자기 머리를 탓하기 전에, 그 글이 무엇을 말하는지 쓴 사람 자신은 알았는지를 먼저 의심해 볼 수 있다.

그는 이 판단에 옛 증인을 하나 세운다. 고대 로마의 수사학 교사 퀸틸리아누스는 가장 많이 배운 사람이 하는 말이 대개 가장 알아듣기 쉽고 훨씬 분명하며, 사람이 못할수록 더 어둡게 말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분명함에도 한도가 있다고 덧붙인다. 낱말은 생각을 알아듣게 해 주지만 어느 지점까지만 그렇다. 그 지점을 넘어 낱말을 쌓으면 생각은 다시 어두워지고 점점 더 어두워진다. 그 지점을 찾는 것이 문체의 일이고 판단력의 일이다. 남는 낱말 하나하나가 제 목적을 거스른다. 프랑스 문인 볼테르가 형용사는 명사의 적이라고 한 말이 그것을 가리킨다고 그는 쓴다.[주 34-10] 그러니 그가 말하는 분명함은 길게 풀어 주는 친절이 아니다. 꼭 필요한 낱말만 남기고 나머지를 덜어 내는 수고다. 어려운 문장과 장황한 문장은 같은 병의 두 얼굴이다. 하나는 생각을 감추고, 다른 하나는 생각을 묻어 버린다.

*

그러나 이 논증을 거꾸로 돌리면 틀린 말이 된다. 분명하게 쓴 글이 옳다는 보장은 없다. 영국 필자가 바로 그것을 보여 주었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문장이 분명하다고 칭찬했고, 그 분명함 덕분에 자기가 무엇을 거절하는지 정확히 알았다. 분명함은 진리의 증거가 아니라 판단받을 준비가 된 상태였다. 쇼펜하우어 자신의 논증도 그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 흐릿함은 틀린 생각의 징조이지만, 분명함은 옳은 생각의 증명이 아니다. 분명하게 틀린 생각도 얼마든지 있다. 도스가 두려워한 것도 그것이었다. 아름답고 분명한 문장은 나쁜 가르침을 더 쉽게 들여보낸다.

그리고 그의 문장은 쉽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문장이 다루는 것까지 쉬운 것은 아니었다. 1852년 7월 22일 도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자기 철학의 한계를 스스로 적었다. 우리의 지성은 본래 개체가 살아가는 데 쓰는 보잘것없는 도구다. 그런 지성이 존재의 근본 관계를 헤아리고 다 알아낼 수 있겠는가? 그는 지성이 그 일에 하도 서툴러서, 설령 그 문제들이 우리에게 정말로 계시된다 해도 우리는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고 전과 같이 모르는 채로 남을 것이라고 썼다. 그리고 자기가 우리 가까운 주변을 조금이라도 밝혔다면 그것으로 많은 일을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주 34-12] 가장 분명하게 쓰겠다는 사람도 끝까지 가면 분명하게 만들 수 없는 것 앞에 선다. 그 앞에서 어려운 것은 문장이 아니라 사물 자체다.

그러니 어려운 글이 모두 허세는 아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어려움이 아니라 어려움을 꾸며 내는 일이었다. 그가 보기에 정직한 글쓴이는 쉽게 말할 수 있는 데까지는 쉽게 말하고, 더는 밝힐 수 없는 데에 이르면 거기가 끝이라고 말한다. 허세 부리는 글쓴이는 밝힐 수 있는 것까지 어둡게 만들고, 그 어둠을 깊이라고 부른다.

1853년 여름, 그는 처음으로 나라 밖에서 자기 문장이 읽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를 읽은 사람이 맨 먼저 알아본 것은 그의 문장이 독자를 속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 독자는 그 정직한 문장 덕분에 그의 결론을 정확히 알아보고 거절했다. 독자가 따라올 수 있는 문장을 쓴다는 것은 독자가 떠날 수도 있는 문장을 쓴다는 것이었다. 그는 도스의 편에 서서 영국 필자의 거절을 넘겼다. 그러나 그 거절이야말로 그가 스물세 번째 장에서 요구한 분명함이 거둔 열매였다.

후주

[주 34-01] [John Oxenford], 「Iconoclasm in German Philosophy」, 『The Westminster Review』 제59권(새 시리즈 제3권) 제2호, 1853년 4월 1일, 388~407쪽. 인터넷 아카이브 sim_westminster-review_1853-04-01_59_2 의 전사 텍스트로 읽었다(2026-10-09). 서명 없이 실렸다는 것은 스탠퍼드 철학 백과의 쇼펜하우어 항목(published in 1853 without signature in the influential Westminster Review). 필자가 옥슨퍼드라는 것은 서신집의 편집자 주(den Oxenford'schen Artikel, 서신집 249쪽)에 따른 것이며, 쇼펜하우어도 뒤에 카를 베어에게 보낸 편지(서신집 380쪽, OCR로만 읽음, 연도 재확인)에서 옥슨퍼드의 이름을 든다. 「석 달마다」는 같은 해 1·4·7·10월 호가 있다는 아카이브 목록에 따른 것이다. 「예순다섯 살」은 1788년 2월생이므로 1853년 4월의 나이다.

[주 34-02] 영국 글이 독일어 번역으로도 나왔다는 것은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연표 1853년 항목. 번역자가 린트너라는 것은 도스의 1853년 7월 25일 편지(「번역자」)와 쇼펜하우어의 1853년 8월 15일 편지(린트너가 번역을 고쳐 소책자로 낸다는 대목), 그리고 서신집 편집자의 주(der Artikel der Westminster Review in der Lindner'schen Uebersetzung). 린트너가 베를린 『포스 신문』의 편집자였다는 것은 쇼펜하우어의 1852년 7월 22일 편지(서신집 248쪽, die er redigirt). 번역이 실린 날짜는 확인하지 못했다(재확인).

[주 34-03] 같은 글, 『웨스트민스터 리뷰』 391쪽(아카이브 전사 텍스트의 쪽 표시로 확인). 「Let any impartial Englishman … whether this is the style in which a work intended to convey instruction ought to be written」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34-04] 같은 글, 「The general fault of German metaphysicians is, that they do not even afford you a fair ground of attack. … Never did author less attempt to impose upon his reader.」의 한국어 의역. 393쪽(아카이브 전사 텍스트의 쪽 표시로 확인). 영문 원문이며 독일어 원전이 아니다.

[주 34-05] 같은 글 끝, 407쪽. 「Except so far as a commendation of the author's style is concerned, we intend it as an article of description—nothing more; and those who construe any of our remarks into an acceptance of such a system of ultra-pessimism, have totally misapprehended our meaning.」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34-06] 도스가 쇼펜하우어에게 보낸 편지, 1853년 7월 25일. 서신집 249~250쪽(PDF 309~310쪽), 스캔으로 확인했다. 249쪽 앞부분은 편집자 셰만이 요약한 꺾쇠 안의 글이고, 「Zumal den Engländern」부터가 도스의 문장이다. 인용은 250쪽의 Ich kann mir überhaupt nicht recht deutlich machen, wie man allen Ernstes sich bloß an die Methode des Lehrens hängen kann, ohne zugleich auch von der Lehre selbst, von ihrem Geiste ergriffen und überzeugt zu sein. So wenig mich ein Dichter anzuziehen vermöchte, der in den wohlklingendsten Versen ungereimte Sachen vorbrächte, ebensowenig, ja noch weniger könnte ich mich für einen Philosophen interessiren, der unter der schimmernden Hülle eines noch so musterhaften Vortrages eine verwerfliche Doctrin in mein Gehirn einzuschmuggeln versuchte. 의 한국어 의역이다. 「위안 없음을 스스로 부풀렸다」(die vermeintliche, von ihm selbst übertriebene Trostlosigkeit)와 린트너가 이를 「전략」(eine Art Kriegslist)으로 보았다는 대목은 249~250쪽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34-07] 쇼펜하우어가 도스에게 보낸 편지, 1853년 8월 15일. 서신집 256쪽(PDF 316쪽), 스캔 확인. Ihren ausführlichen Brief habe ich mit vielem Interesse gelesen u. stimme Ihnen in Allem bei. Sie haben recht vernünftig u. einsichtig geschrieben. 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날짜는 257쪽(PDF 317쪽) 스캔.

[주 34-08] 쇼펜하우어, 『소품과 부록』 제2권 제23장 「저술과 문체에 관하여」 §283 부근. 1891년 브로크하우스판 인쇄 552쪽, PDF 562쪽. 스캔 대조. 「Zudem aber schreiben sie auch Worte, ja, ganze Perioden hin, bei denen sie selbst nichts denken, jedoch hoffen, daß ein Anderer etwas dabei denken werde」, 「den Schein des Geistes hervorzubringen, um den so schmerzlich gefühlten Mangel desselben zu ersetzen」, 「eine den Geist vorstellende Maske」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절 번호는 재확인.

[주 34-09] 같은 장, 같은 쪽 아래(인쇄 552쪽, PDF 562쪽). 스캔 대조. 「Am längsten aber hält die Maske der Unverständlichkeit vor, jedoch nur in Deutschland … endlich in Hegel ihren höchsten Klimax erreicht hat: stets mit glücklichstem Erfolge」는 취지. 「Und doch ist nichts leichter, als so zu schreiben, daß kein Mensch es versteht; wie hingegen nichts schwerer, als bedeutende Gedanken so auszudrücken, daß Jeder sie verstehn muß.」는 한국어 의역이다.

[주 34-10] 같은 장, 인쇄 557~558쪽, PDF 567~568쪽. 스캔 대조. 「Dunkelheit und Undeutlichkeit des Ausdrucks ist allemal und überall ein sehr schlimmes Zeichen. Denn in 99 Fällen unter 100 rührt sie her von der Undeutlichkeit des Gedankens …」에서 「… zu wissen scheinen was sie nicht wissen, zu denken was sie nicht denken, und zu sagen was sie nicht sagen. Wird denn Einer, der etwas Rechtes mitzutheilen hat, sich bemühen, undeutlich zu reden, oder deutlich?」까지를 네 걸음으로 풀어 옮겼다. 취지를 옮긴 것이다. 퀸틸리아누스(Instit. Lib. II, c. 3)와 볼테르(l'adjectif est l'ennemi du substantif), 낱말이 어느 지점을 넘으면 생각이 다시 어두워진다는 대목도 같은 쪽(인쇄 558쪽, PDF 568쪽, 스캔 대조)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34-11] 같은 책 제24장 「독서와 책에 관하여」 §305, 인쇄 592쪽, PDF 602쪽. 스캔 대조. 「in welcher man sich bestrebte, statt zu überzeugen, zu imponiren; statt gründlich und klar, glänzend und hyperbolisch, zumal aber unverständlich zu seyn; ja sogar, statt die Wahrheit zu suchen, zu intriguiren」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34-12] 쇼펜하우어가 도스에게 보낸 편지, 1852년 7월 22일. 서신집 247쪽(PDF 307쪽), 스캔 확인. 「Wenn es mir gelungen ist, unsere nächste Umgebung ein wenig aufzuhellen; so hab' ich viel gethan」, 「Sie müßen nie aus den Augen verlieren, was unser Intellect eigentlich ist: ein bloßes Werkzeug zu den armsäligen Zwecken individueller Willenserscheinungen … Und der sollte die Urverhältniße alles Daseyns ergründen, verstehn u. erschöpfen?! Dazu ist er so unfähig, daß wenn uns eine wirkliche Offenbarung jener Probleme würde, wir gar nichts davon verstehn würden u. so klug bleiben wie vorher.」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원문의 물음꼴을 살려 물음표로 옮겼다.

사료에 근거한 것은 1853년 4월 『웨스트민스터 리뷰』의 서평과 그 문장, 린트너의 번역, 쇼펜하우어가 서평을 도스에게 보낸 일, 도스의 1853년 7월 25일 편지와 쇼펜하우어의 8월 15일 답장, 1852년 7월 22일 편지의 지성의 한계 대목이다. 창작 대사는 없다. 영국 필자와 도스의 논리를 견주어 풀어 쓴 문단과, 분명함이 진리의 증명이 아니라는 문단은 서술자의 해석이다. 『소품과 부록』의 문체론은 1851년에 나온 글이며, 1853년의 일을 그 글로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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