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9,906자)
읽는다는 핑계로 생각을 미루다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51년 봄, 마인강 가의 도시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예순세 살이었다. 그 전해 가을 그는 여섯 해 동안 붙들고 있던 원고를 끝냈다. 짧은 철학 논문과 생각의 조각을 두 권으로 묶은 책이었고, 그는 그것을 『소품과 부록』이라고 불렀다. 1850년 9월 8일, 그는 독일 북부의 대학 도시 괴팅겐에 있는 디터리히 출판사에 원고를 내밀며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앞서 낸 어느 책보다 훨씬 대중적이니 자기의 ‘세상을 위한 철학’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원고료는 받지 않겠다. 다만 찍는 부수는 칠백오십 부를 넘기지 말고, 인쇄한 종이는 한 장도 빠짐없이 원고와 함께 자기에게 보내 고치게 해 달라.[주 33-01]
책은 1851년에 베를린에서 나왔고, 그는 원고료를 한 푼도 받지 않았다.[주 33-02] 서른두 해 전에 낸 주저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 그는 돈 대신 자기 문장이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찍히는 것을 원했다.
그해 봄, 독일 중부의 대학 도시 할레에 사는 교수 에르트만이 편지를 보내왔다. 자기가 쓰려는 글에 쓰겠으니 생애에 관한 사실을 알려 달라는 부탁이었다. 쇼펜하우어는 답장 첫머리에서 망설임을 숨기지 않았다. 사람들이 작품을 두고 그 작품을 쓴 사람에게로 넘어가는 버릇은 옳다고 볼 수 없고, 자기는 언제나 자기 사람됨을 작품 밖에 두려 했다고 썼다. 그래도 그는 요청에 응했다.[주 33-03]
*
1851년 4월 9일, 그는 자기 생애를 순서대로 적어 내려갔다. 단치히에서 태어난 일, 괴팅겐과 베를린에서 공부한 일, 그리고 드레스덴에서 보낸 네 해였다. 그는 드레스덴 시절을 이렇게 적었다. 그 네 해 동안 자기 머릿속에서 철학의 체계가 거의 자기가 손대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모였다. 수정이 한가운데를 향해 빛살처럼 뻗으며 자라듯 생각들이 한 점으로 모여 굳었고, 그는 그것을 그대로 주저의 첫 권에 적었다. 그리고 한 문장을 덧붙였다.
“나를 키운 것은 책이 아니라 세상이었다.”[주 33-04]
그런데 바로 그 편지에는 그를 키운 책들이 적혀 있었다. 괴팅겐에서 스승에게 플라톤과 칸트부터 읽으라는 조언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드레스덴에 가기 전 바이마르에서 동양학자 프리드리히 마이어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그를 고대 인도의 문헌으로 이끌었고, 그 일이 자기에게 본질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주 33-04] 같은 편지가 책이 아니라 세상이라고 말하면서, 몇 줄 위에서는 그를 바꾼 책 이름을 차례로 대고 있었다.
그는 그 둘이 서로 어긋난다고 보지 않았다. 플라톤과 칸트와 인도의 문헌은 그에게 생각할 재료를 주었다. 그러나 그 재료로 무엇을 지을지는 책이 정해 주지 않았다. 드레스덴의 거리와 미술관과 강가에서 그가 본 것, 그 앞에서 그가 혼자 오래 머문 시간이 그것을 정했다. 그가 말한 ‘세상’은 책을 덮은 뒤 그가 직접 들여다본 세상이었다.
*
이듬해 여름, 같은 물음이 그보다 훨씬 젊은 사람의 일로 돌아왔다.
바이에른 왕국의 수도 뮌헨에서 정식 판사가 되기 전 법원에서 일을 배우는 시보로 있던 아담 루트비히 폰 도스는 1849년부터 그에게 편지를 쓰는 사람이었다. 쇼펜하우어는 그를 자기 철학을 퍼뜨리는 ‘사도’ 가운데 하나로 여겼다.[주 33-05] 1852년 여름, 도스는 걱정을 적어 보냈다. 법원이 자기를 시골로 보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도스가 보낸 편지는 서신집에 실려 있지 않고, 그가 무엇을 걱정했는지는 쇼펜하우어의 답장으로만 알 수 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시골에 가면 새로 나오는 모든 것에 관한 소식을 잃는다는 것이었다.
도스의 걱정에는 까닭이 있었다. 그는 법을 다루는 사람이었고, 법률과 판례와 학계의 논쟁은 해마다 새로 쌓였다. 뮌헨에는 서점이 있고, 신문이 있고, 새 책을 먼저 읽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있었다. 시골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남들이 무엇을 새로 생각했는지 모르는 채로 지내면, 자기 생각이 뒤처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도스에게 새 소식을 잃는 일은 생각할 거리를 잃는 일이었다.
7월 22일,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답했다.
“시골로 옮겨지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거기서 새로운 것에 관한 소식은 잃겠지만, 그 대신 여가와 마음의 고요를 얻습니다. 그때쯤이면 그대가 마음에 둔 아가씨와 혼인해 있을 거라는 전제에서 하는 말입니다. 아주 잘 고른 몇 권의 책과, 굳이 더한다면 잡지 하나만 있어도 사람은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은 대개 쓸데없이 방해만 됩니다.”[주 33-06]
두 사람의 말은 둘 다 옳았다. 도스는 받아들일 것이 끊기면 생각도 굶는다고 보았다. 쇼펜하우어는 받아들일 것이 끊이지 않으면 생각할 틈이 없다고 보았다. 도스에게 시골은 빈 곳이었고, 쇼펜하우어에게 시골은 빈 시간이었다. 둘이 다르게 본 것은 소식의 양이 아니라, 받아들인 것을 누가 언제 소화하느냐였다.
그런데 그 답장의 나머지 줄은 그 자신을 거슬렀다. 그는 이어서 이 주 전에 베를린의 신문 편집자 린트너가 오직 자기를 보러 프랑크푸르트까지 왔었다고 적었다. 베를린에 사는 헝가리 의사 코르만이 자기 돈을 들여 그의 사진을 옆얼굴과 앞얼굴로 두 장 찍게 했다는 일도 적었다. 지역 신문에 실린 짧은 글을 누가 썼는지 우연히 알아냈다는 일까지 적었다.[주 33-06] 새로운 것은 대개 방해라고 쓴 바로 그 편지에서, 그는 자기에 관해 새로 나온 글과 새로 찾아온 사람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세고 있었다.
*
남의 말을 계속 받아들이는 동안 내 판단은 언제 자라는가? 판단은 받아들이는 동안에는 자라지 않는다. 받아들이기를 멈추고, 받아들인 것을 다시 꺼내 씹는 동안에 자란다.
그해 나온 『소품과 부록』 제2권은 번호를 붙인 짧은 절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절들이 주제별로 서른한 개의 장으로 묶여 있다. 그 가운데 스물네 번째 장이 「독서와 책에 관하여」다. 그 장의 두 번째 절에서 그는 읽는 일이 머릿속에서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부터 따진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는 다른 사람이 우리 대신 생각한다. 우리는 그 사람이 거쳐 간 생각의 길을 그대로 따라갈 뿐이다. 글씨를 배우는 아이가 선생이 연필로 써 준 획을 펜으로 덧그리는 것과 같다. 그러니 읽는 동안 생각하는 수고는 대부분 우리에게서 덜어진다. 자기 생각에 몰두하다가 책을 집어 들면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는 까닭이 거기 있다. 그러나 읽는 동안 우리 머리는 남의 생각이 뛰노는 마당일 뿐이다.”[주 33-07]
그는 이 전제에서 결론을 하나씩 끌어낸다. 첫째, 읽는 일이 생각하는 수고를 덜어 준다면, 하루 종일 읽는 사람은 하루 종일 그 수고를 하지 않는다. 둘째, 쓰지 않는 힘은 줄어든다. 그래서 거의 온종일 읽고 쉬는 틈에는 생각 없는 소일로 머리를 식히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차츰 잃는다. 늘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 끝내 걷는 법을 잊는 것과 같다. 그는 많은 학자가 바로 그렇게 되었다고 쓴다. 그들은 너무 많이 읽어서 어리석어졌다.[주 33-07]
그는 손일과 견주어 이 결론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쉴 새 없이 하는 손일도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손을 놀리는 동안에는 자기 생각에 잠길 수 있다. 틈만 나면 곧바로 다시 책을 펴는 일은 그 틈마저 빼앗는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는 독서가 끊임없는 손일보다 정신을 더 마비시킨다고 쓴다. 용수철도 낯선 물체에 오래 눌려 있으면 끝내 탄력을 잃는다. 정신도 남의 생각에 쉼 없이 눌리면 제 탄력을 잃는다.[주 33-07]
다음 단계는 소화다.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위가 상하고 몸 전체가 해를 입는다. 정신의 음식도 지나치면 정신을 채우다 못해 숨 막히게 한다. 많이 읽을수록 읽은 것이 정신에 남기는 자국은 오히려 옅어지고, 정신은 여러 글씨를 겹쳐 쓴 칠판처럼 된다. 그러면 되새김질에 이르지 못한다. 그는 읽은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길은 그 되새김질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줄곧 읽기만 하고 나중에 그것을 더 생각하지 않으면, 읽은 것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대부분 사라진다.[주 33-08]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맺는다.
“종이에 옮겨 놓은 생각은 모래 위에 남은 나그네의 발자국과 다르지 않다. 그가 어느 길로 갔는지는 보인다. 그러나 그가 그 길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알려면 자기 눈을 써야 한다.”[주 33-08]
이 논증에서 판단이 자라는 자리는 분명하다. 책은 길을 보여 준다. 그 길 위에서 무엇을 볼지는 읽는 사람이 직접 걸어야 정해진다. 책을 덮고 걷는 시간이 없으면, 백 권을 읽은 사람은 백 개의 발자국을 외운 사람이 될 뿐이다. 읽는다는 핑계로 생각을 미루는 일은 미루는 줄도 모르게 일어난다. 읽는 동안에는 내내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남의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가면, 그것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내 생각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는 같은 장의 다섯 번째 절에서 ‘읽지 않는 기술’을 말한다. 그때그때 많은 사람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그 까닭만으로 집어 들지 말라고 한다. 정치나 교회를 두고 쏟아지는 소책자, 소설, 그해 소란을 피우는 시집이 그런 것이다. 바보를 위해 쓰는 사람은 언제나 많은 독자를 얻는다는 것을 떠올리고, 늘 빠듯하게 주어지는 읽는 시간을 모든 시대와 민족의 위대한 정신이 남긴 작품에만 돌리라고 그는 쓴다. 그가 보기에 사람을 정말로 가르치는 것은 그런 책뿐이다.[주 33-09] 그 절은 이렇게 끝난다.
“나쁜 것은 아무리 적게 읽어도 지나치지 않고, 좋은 것은 아무리 자주 읽어도 지나치지 않다.”[주 33-09]
뒷날 1891년에 나온 판에는 「독서와 책에 관하여」 뒤에 편집자가 덧붙인 ‘관련 대목’이 몇 쪽 붙어 있다. 거기에는 같은 생각이 더 짧게 적혀 있다. 책을 사면서 그 책을 읽을 시간까지 함께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들은 대개 책을 사들이는 일과 그 내용을 제 것으로 만드는 일을 혼동한다. 중요한 책은 곧바로 두 번 읽어야 한다. 두 번째에는 끝을 알고 처음을 읽으니 앞뒤의 이어짐이 더 잘 보이고, 첫 번째와 다른 기분으로 읽으니 같은 대목이 다른 빛 아래에서 보인다.[주 33-10] 여기서 판단이 자라는 조건이 하나 더 드러난다. 새 책을 하나 더 읽는 것보다,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이 판단을 키운다.
*
그러나 그는 책을 내던지라고 하지 않았다. 같은 장의 세 번째 절에서 그는 반대편을 스스로 세운다. 설득하는 힘, 비유를 풍부하게 쓰는 재주, 간결함이나 우아함 같은 글쓴이의 자질은 그런 자질을 가진 사람의 책을 읽는다고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자질이 싹으로라도 이미 자기 안에 있다면, 읽기는 그것을 깨워 의식하게 하고,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주고, 써 볼 용기를 준다. 바탕이 없는 사람은 읽어서 차갑게 죽은 흉내만 배운다.[주 33-11] 읽기는 없는 것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있는 것을 쓰는 법은 가르친다.
1851년의 편지도 그렇게 읽힌다. 플라톤과 칸트와 인도의 문헌이 그의 수정을 대신 키워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책들이 없었다면 드레스덴의 네 해에 무엇이 한가운데로 모였을지 아무도 모른다. ‘책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그의 말은 책을 적게 읽었다는 자랑이 아니었다. 그는 고른 책을 깊이 읽었고, 읽은 다음에는 오래 혼자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답장에는 조건이 하나 붙어 있었다. 시골에서 여가와 고요를 얻는다는 말은 도스가 그때쯤 혼인해 있을 것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었다. 여가는 책을 덜 읽는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혼자 생각할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삶이 먼저 있어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아버지가 남긴 재산으로 평생 그 시간을 샀다. 법원에 매인 도스에게는 그 시간을 살 돈이 없었다.
그는 여섯 해 동안 쓴 원고를 원고료 없이 내놓으면서, 인쇄된 종이를 한 장도 빠짐없이 자기가 고치겠다는 조건 하나만은 내려놓지 않았다. 그 두 권에 들어간 것은 그가 읽은 것이 아니라 그가 읽은 뒤에 생각한 것이었다. 받아들인 생각과 자기 생각을 가르는 일은 무엇을 읽느냐보다, 무엇을 자기 이름으로 남기느냐에서 끝났다.
후주
[주 33-01] 쇼펜하우어가 괴팅겐의 디터리히 출판사에 보낸 편지, 1850년 9월 8일. 루트비히 셰만 편 『쇼펜하우어 서신집』(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893), 327~328쪽. OCR로 읽었고 스캔 대조는 하지 않았다(재확인). 「여섯 해 작업 끝에 방금 끝냈다」(nach sechsjähriger Arbeit so eben vollendet), 「나의 ‘세상을 위한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gewissermaaßen meinen „Philosophen für die Welt" nennen — OCR 판독으로는 Philosophen, 뜻은 ‘세상을 위한 철학(자)’), 「원고료를 요구하지 않는다」, 「750부를 넘지 않게」, 「인쇄 전지마다 원고와 함께 교정을 보내 달라」는 조건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디터리히 출판사가 이 제안을 받아들였는지는 서신집에 나오지 않는다. 책은 베를린에서 나왔다.
[주 33-02] 『소품과 부록』이 1851년 원고료 없이 나왔다는 것은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51년 항목(ohne Honorar). 베를린에서 나왔다는 것은 1853년 『웨스트민스터 리뷰』 서평 첫머리의 서지(Parerga und Paralipomena. By A. Schopenhauer. Berlin. 1851).
[주 33-03] 쇼펜하우어가 할레의 에르트만 교수에게 보낸 편지, 1851년 4월 9일. 서신집 331~333쪽(PDF 391~393쪽). 첫머리는 PDF 391쪽 스캔으로 확인했다. 수신인 표기는 「Schopenhauer an Professor Erdmann in Halle」. 「작품에서 사람으로 넘어가는 대중의 버릇을 옳다고 할 수 없고, 나 자신은 언제나 내 사람을 작품 밖에 두었다」는 취지를 옮긴 것이다. 에르트만이 어떤 글에 쓰려 했는지는 이 편지에 적혀 있지 않아 「자기가 쓰려는 글」로만 두었다.
[주 33-04] 같은 편지, 서신집 332쪽(PDF 392쪽), 스캔으로 확인했다. 「Mich haben nicht die Bücher, sondern die Welt hat mich befruchtet.」의 한국어 의역이다. 수정에 빗댄 대목(strahlenweise wie ein Krystall zu einem Centro konvergirend, zusammenschoß)과 프리드리히 마이어 대목(unaufgefordert … in das Indische Alterthum ein, welches von wesentlichem Einfluß auf mich gewesen ist)은 취지를 옮긴 것이다. 괴팅겐의 스승 슐체가 플라톤과 칸트만 먼저 읽으라고 권했다는 대목은 같은 편지 331쪽(PDF 391쪽, 스캔 확인)에 있으며, 이 소설에서는 괴팅겐 시절을 다루는 화에 맡기고 여기서는 한 줄로만 가리켰다. 「바이마르에서」는 편지의 앞뒤 문맥(1813/14년 겨울 바이마르)에 따른 것이다.
[주 33-05] 도스가 쇼펜하우어에게 처음 보낸 편지가 1849년 4월 17일이라는 것은 서신집 목차(「Briefwechsel mit Adam Ludwig von Doß. 1849—1860」). 「법원 시보」(Gerichts-Assessor)는 서신집 326쪽의 수신인 표기를 OCR로 읽은 것이다(재확인). 「사도」라는 말은 쇼펜하우어가 도스를 mein alter Apostel(나의 오랜 사도)이라 부른 1853년 8월 15일 편지(서신집 257쪽, PDF 317쪽, 스캔 확인)에 따른 것이다.
[주 33-06] 쇼펜하우어가 도스에게 보낸 편지, 1852년 7월 22일, 프랑크푸르트. 서신집 246~249쪽. 인용한 대목은 248쪽(PDF 308쪽)으로 스캔에서 확인했다. 원문은 Auf das Land versetzt zu werden sollten Sie nicht so sehr fürchten. Was Sie dort an Kunde von allem Neuen verlieren, gewinnen Sie an Muße u. Geistesruhe; vorausgesetzt, daß Sie dann Ihre Dulcinea geheirathet haben. Mit wenigen, aber sehr ausgewählten Büchern u. allenfalls Einem Journal kann man weit kommen. Das Neue ist meistens eine unnütze Störung. 한국어 의역이며, 「둘시네아」(돈키호테가 마음에 둔 여인)는 「마음에 둔 아가씨」로 풀었다. 린트너의 방문, 코르만의 사진, 지역 신문의 글을 쓴 사람을 알아낸 일도 같은 쪽과 다음 쪽의 내용이다. 도스가 무엇을 걱정했는지는 이 답장에서 거꾸로 읽은 것이며, 도스의 편지(1852년 7월 12일)는 서신집에 다른 내용만 실려 있다. 도스의 걱정을 풀어 쓴 문단의 까닭(법률과 판례, 서점과 신문)은 서술자의 짐작이다.
[주 33-07] 쇼펜하우어, 『소품과 부록』 제2권 제24장 「독서와 책에 관하여」 §299. 1891년 브로크하우스판(전집 제6권), 인쇄 587~588쪽, PDF 597~598쪽. 스캔으로 원문을 대조했다. 첫 인용(Wann wir lesen, denkt ein Anderer für uns … nur der Tummelplatz fremder Gedanken)은 한국어 의역. 뒤의 세 문단(말 타는 사람, 학자들이 너무 읽어 어리석어졌다 sie haben sich dumm gelesen, 손일과의 비교, 용수철)은 같은 절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33-08] 같은 절, 인쇄 588쪽, PDF 598쪽. 스캔 대조. 되새김질 대목(Daher kommt es nicht zur Rumination: aber durch diese allein eignet man sich das Gelesene an)은 취지를 옮긴 것. 발자국 인용(zu Papier gebrachte Gedanken überhaupt nichts weiter sind, als die Spur eines Fußgängers im Sande …)은 한국어 의역이다.
[주 33-09] 같은 장 §303, 인쇄 590쪽, PDF 600쪽. 스캔 대조. 「읽지 않는 기술」(die Kunst, nicht zu lesen) 대목은 취지를 옮긴 것이고, 끝 인용(Vom Schlechten kann man nie zu wenig und das Gute nie zu oft lesen)은 한국어 의역이다.
[주 33-10] 같은 판, 제24장 뒤의 「관련 대목 부록」(Anhang verwandter Stellen), 인쇄 596~597쪽, PDF 606~607쪽. 스캔 대조. 책과 시간 대목(Es wäre gut Bücher kaufen, wenn man die Zeit, sie zu lesen, mitkaufen könnte …)과 두 번 읽기 대목(Repetitio est mater studiorum. Jedes irgend wichtige Buch soll man sogleich zwei Mal lesen …)의 취지를 옮겼다. 이 부록은 1891년판 편집자가 덧붙인 것으로, 1851년 초판 본문에 있던 것인지 쇼펜하우어의 유고에서 가져온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재확인). 그래서 본문에서 「편집자가 덧붙인」이라고 밝혔다.
[주 33-11] 같은 장 §300, 인쇄 588~589쪽, PDF 598~599쪽. 스캔 대조. 취지를 옮긴 것이다. 끝의 「차갑게 죽은 흉내」는 kalte todte Manier를 살린 말이다.
사료에 근거한 것은 1850년 디터리히 출판사에 보낸 제안과 그 조건, 1851년 원고료 없는 출간, 에르트만에게 보낸 1851년 4월 9일 편지의 내용, 도스와의 편지 왕래와 1852년 7월 22일 답장의 내용이다. 도스가 시골 발령을 걱정한 까닭을 풀어 쓴 부분과, 쇼펜하우어가 책과 세상을 어떻게 이어 보았는지에 관한 문단은 서술자의 해석이다. 창작 대사는 없다. 편지의 인용은 모두 실제 편지의 의역이다. 『소품과 부록』의 독서론은 1851년에 나온 그의 글이며, 1852년의 답장과 같은 시기의 생각으로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