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11,284자)
말하지 못하는 존재의 고통은 누가 알아보는가?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32년 가을, 마흔네 살의 쇼펜하우어는 라인강과 네카어강이 만나는 도시 만하임에 한 해 동안 머물고 있었다. 그해 10월 25일부터 11월 29일 사이에 그는 그 도시의 신문 「만하임 일보」에 여러 번 광고를 냈다. 혈통이 아주 순수하고 생김새가 좋은 수컷 푸들 강아지를 산다는 광고였다. 처음에는 두 달에서 넉 달 된 강아지를 찾았고, 나중에는 석 달에서 여섯 달 된 강아지로 범위를 넓혔다. 거래는 이루어졌다.[주 31-01] 그가 개와 함께 산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의 유산을 관리하고 첫 전기를 쓴 빌헬름 폰 그비너는, 괴팅겐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이미 곰 가죽 같은 털의 푸들 한 마리가 그의 방에 들어와 살았다고 적었다.[주 31-01]
세 해 뒤인 1835년 4월 29일, 라인강 가의 도시 본에서 어머니 요한나가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집안 재산 문제로 오가던 편지의 끝에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네 은둔처에서 네 고약한 푸들이랑 잘 지내거라. 그 녀석도 제 족속이 다 그렇듯 오래된 치즈 냄새가 나겠지. 우리 집의 귀여운 이리스를 네가 봐야 하는데. 그 애는 아주 다른 사람이란다.”[주 31-02]
어머니는 아들의 개를 놀렸고, 자기 개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 무렵 아들은 편지에 자기 푸들 이야기를 적어 보냈고, 어머니는 자기 개 이리스 이야기를 적어 보냈다.[주 31-03] 오랫동안 끊겼던 모자의 편지 사이로 두 마리 개가 오갔다. 아들이 무엇이라고 답했는지는 남아 있지 않다. 그의 편지 대부분은 뒷날 누이 아델레가 없앴다.[주 31-03]
*
네 해 뒤인 1839년, 쉰한 살의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덴마크 왕립 학술원에 낼 도덕 논문의 끝부분을 쓰고 있었다. 그 논문은 번호를 붙인 짧은 절로 나뉘는데, 19번째 절에서 그는 자기가 찾은 도덕의 동기, 곧 연민이 참된 동기라는 증거를 여럿 늘어놓았다. 그 일곱째 증거가 동물이었다. 그가 이 절을 쓸 때 곁에 개가 있었는지는 기록에 없다. 그가 이 절에 적어 넣은 것은 그해의 글이었다. 그는 1838년 인도 봄베이에서 나온 사냥꾼 윌리엄 해리스의 여행기를 인용했고, 런던의 한 자선 단체가 1837년 동물 학대를 막을 도덕적 근거를 묻는 현상 공모를 내걸어 1839년에 상을 주었다는 소식을 적었다. 그는 ‘요즘(1839년)’이라는 말까지 괄호에 넣어 두었다.[주 31-04]
그 절의 칼끝은 한 사람을 향해 있었다. 그보다 앞 세대의 독일 철학자 칸트였다. 칸트는 사람이 지켜야 할 덕의 의무를 다룬 『덕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의 16번째 절과 17번째 절에서 이렇게 썼다.
“사람은 사람 말고는 어떤 존재에게도 의무를 질 수 없다.”
그리고 이어서 썼다.
“동물을 잔인하게 다루는 것은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지는 의무에 어긋난다. 그런 짓은 동물의 고통에 대한 사람의 공감을 무디게 하고,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도덕에 아주 쓸모 있는 타고난 성향을 약하게 만든다.”[주 31-05]
칸트의 논리에는 질서가 있었다. 의무는 서로를 이성 있는 존재로 알아보는 사이에서 생긴다. 사람은 약속을 하고 약속을 지키고, 남의 권리를 알고 자기 권리를 주장한다. 동물은 그러지 못한다. 그러니 동물에게 직접 의무를 질 수는 없다. 그렇다고 칸트가 동물 학대를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동물을 괴롭히는 사람은 결국 사람에게도 잔인해진다. 그래서 동물 학대는 금지된다. 칸트의 논리는 동물을 보호했고, 동시에 도덕의 경계를 이성에 그었다.
쇼펜하우어는 그 두 문장을 덴마크 논문의 앞쪽, 칸트를 비판하는 8번째 절에 옮겨 놓고 이렇게 되받았다.
“그러니까 동물에게는 그저 연습 삼아 연민을 가지라는 말이다. 동물은 말하자면 사람에게 연민을 연습하기 위한 해부 실습용 인형이라는 말이다.”[주 31-06]
그가 보기에 그 논리는 동물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면서 동물을 지우고 있었다. 칸트의 말대로라면 매 맞는 말이 아픈 것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매질을 지켜본 사람의 마음이 무뎌지는 것이다. 그는 칸트의 도덕이 오직 자기 종, 그 표지가 이성인 종만 알아보며, 이성을 가졌다는 것을 도덕적으로 돌볼 대상이 되는 조건으로 삼는다고 썼다. 그 결과 동물은 그저 ‘물건’이 되고, 어떤 목적에든 쓸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산 동물을 가르는 실험에, 말을 탄 사냥개 몰이에, 투우와 경마에, 무거운 돌 수레를 끌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채찍질하는 데 쓰인다. 그리고 그는 그런 도덕이 놓치는 것을 이렇게 적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 안에 있고, 햇빛을 보는 모든 눈에서 헤아릴 수 없는 뜻을 띠고 빛나는 영원한 본질.”[주 31-06]
두 사람은 같은 물음을 두고 갈라섰다. 도덕의 대상이 되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칸트는 이성이라고 답했고, 쇼펜하우어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몸이라고 답했다.
그 논문은 1840년 상을 받지 못했고, 1841년 노르웨이 논문과 함께 책으로 나왔다. 그 책이 나오기 조금 전인 1839년 말에 흰 푸들 한 마리가 태어났다. 그 푸들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그와 살다가 1849년 12월에 죽었다. 이듬해 봄에 태어난 갈색 푸들이 그 자리를 이었고, 그 갈색 푸들은 주인보다 오래 살아 그의 유언에 따라 넉넉한 몫을 받았다.[주 31-07]
*
말하지 못하는 존재의 고통은 누가 알아보는가? 그 고통을 알아보는 데 필요한 것은 상대의 말이 아니라, 고통이 거기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눈이다. 그는 그 눈을 연민이라고 불렀고, 연민이 동물에게까지 닿는다는 사실을 자기 윤리학이 옳다는 증거로 내세웠다.
그의 논증은 이렇다. 도덕의 동기가 연민이라면, 연민은 고통이 있는 곳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바탕에 있지 않고 지성에 있다. 사람은 추상적인 생각을 하는 이성을 가졌고, 그 점에서 동물보다 비할 수 없이 높다. 그러나 그 높이는 뇌 한 부분이 더 발달한 데서 오는 양의 차이일 뿐이다. 원하고, 두려워하고, 아파하는 바탕에서는 사람과 동물이 같고, 몸과 마음의 같은 점은 다른 점보다 비할 수 없이 많다. 그는 동물을 깔보는 사람들에게, 사람이 제 어미의 젖을 먹고 자랐듯 개도 제 어미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것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고 썼다.[주 31-08] 그러니 연민이 동물 앞에서 멈춘다면, 그것은 연민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이 도덕을 정하고 있다는 표시다.
그는 그 다른 것이 말 속에도 숨어 있다고 보았다. 영어는 모든 동물을 성이 없는 말로 다루어, 생명 없는 물건처럼 ‘그것’이라는 대명사로 가리킨다. 사람 곁에서 평생을 사는 개나 사람을 가장 닮은 원숭이를 ‘그것’이라고 부르는 것은 몹시 거슬린다고 그는 썼다. 옛 이집트 사람들은 사람의 미라와 따오기나 악어의 미라를 한 무덤에 두었는데, 유럽에서는 충직한 개를 주인의 무덤 곁에 묻는 일을 끔찍한 죄로 여긴다고도 썼다. 그 개는 때로 사람에게서는 보기 드문 충직함으로 그 무덤 곁에서 자기 죽음을 기다렸다.[주 31-08] 말하지 못하는 존재의 고통은 그 존재가 말을 못 해서만 가려지지 않는다. 말하는 쪽이 그 존재를 가리키는 말로 먼저 가린다.
그리고 그는 동물에 대한 연민과 사람됨을 하나로 묶는다.
“동물에 대한 연민은 성격의 착함과 아주 단단히 이어져 있어서, 동물에게 잔인한 사람은 좋은 사람일 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연민도 사람에게 베푸는 덕과 같은 샘에서 솟는다.”[주 31-09]
그는 그 증거를 사람의 뉘우침에서 찾는다. 마음이 여린 사람은 언짢아서, 화가 나서, 술기운에 자기 개나 말이나 원숭이를 까닭 없이 혹은 지나치게 때린 일을 떠올리면, 사람에게 잘못했을 때와 똑같은 뉘우침과 자기 불만을 느낀다. 다른 것은 사람에게 잘못했을 때 그 뉘우침을 ‘양심의 소리’라고 부른다는 것뿐이다.[주 31-09] 그는 해리스의 이야기도 옮겼다. 해리스는 아프리카 깊숙이 들어가 처음으로 암코끼리 한 마리를 쏘았다. 이튿날 가 보니 다른 코끼리들은 모두 달아났는데, 새끼 한 마리만 밤새 죽은 어미 곁에 있었다. 새끼는 사냥꾼들을 보자 두려움도 잊고 다가와 작은 코로 그들을 감쌌다. 도와 달라는 듯했다. 그때 자기가 한 일에 진심으로 뉘우침을 느꼈고 살인이라도 저지른 것 같았다고 해리스는 썼다.[주 31-09]
새끼 코끼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고통은 쏜 사람의 눈에 닿았다. 고통을 알아보게 한 것은 이성의 대화가 아니라 그 앞에 서 있던 사람의 눈이었다. 말하지 못하는 존재의 고통은 그 고통을 고통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알아본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게 막는 것은 대개 눈이 아니라, 그 존재는 셈에 넣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는 생각이다.
*
그 대답에도 경계가 있다. 그는 같은 절에서 동물에 대한 연민이 고기를 끊는 데까지 가지는 않는다고 썼다. 고통을 느끼는 힘은 지성과 함께 커지므로, 특히 북쪽 땅에서 사람이 고기를 먹지 않으면 미리 알지 못한 채 빨리 죽는 동물보다 더 괴로울 것이라고 했다. 그 죽음은 마취제인 클로로포름으로 더 쉽게 해 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물에게 일을 시키는 것도 괜찮고, 지나친 짐을 지울 때부터 잔인함이 된다고 했다.[주 31-10] 연민의 문은 넓게 열렸지만 사람의 식탁 앞에서 한 번 좁아졌다. 그 선을 어디에 긋는지는 그의 계산이었고, 그 계산의 저울 한쪽에는 늘 사람이 앉아 있었다.
또 하나의 경계는 그의 말투에 있다. 그는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서양의 생각을 유대교에서 온 것으로 몰아세우며, 동물을 깔보는 사람들을 유대교에 물든 사람들이라고 불렀다.[주 31-08] 고통받는 동물을 감싸는 같은 문장이 한 민족의 종교를 깎아내렸다. 연민을 모든 생명으로 넓힌 사람이 자기 논적을 묶음으로 낮추었다.
그는 뒷날 『소품과 부록』 제2권의 「윤리학에 관하여」라는 장에서 더 어두운 쪽을 보았다. 이 대목은 1853년에 나온 책을 인용하고 있어서, 적어도 그 부분은 1851년 초판이 나온 뒤에 덧붙였다.
“사람은 다른 존재에게 아무 다른 목적 없이 오직 아픔을 주려고 아픔을 주는 유일한 동물이다. 다른 동물들은 배고픔을 채우거나 싸움에서 화가 났을 때 말고는 결코 그러지 않는다. 어떤 동물도 괴롭히려고 괴롭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한다.”[주 31-11]
그는 그 예를 어린아이에게서 찾았다. 어린 개 두 마리가 사이좋게 놀고 있을 때 세 살이나 네 살 난 아이가 다가오면, 아이는 거의 틀림없이 곧바로 채찍이나 막대기로 개들을 내려친다고 그는 썼다.[주 31-11] 말하지 못하는 존재의 고통을 가장 먼저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사람이고, 그 고통을 일부러 만드는 것도 사람이다.
그러니 연민은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싫어하기로 이름난 그가 개와 평생을 함께 살았고, 사람에게 쏟지 않은 말을 동물을 위해 쏟았다. 연민은 상대가 나에게 무엇을 돌려줄 수 있는지, 나와 말이 통하는지를 묻지 않는다. 상대가 아파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남는 물음은 이것이다. 나는 어떤 고통을 셈에 넣지 않아도 된다고 배워 왔는가? 그리고 그 배움은 누구의 말 없는 고통 위에 서 있는가?
후주
[주 31-01] 1832년 10월 25일부터 11월 29일 사이 「만하임 일보」(Mannheimer Tageblätter)에 수컷 푸들(von ganz ächter und schöner Race, 2 bis 4 Monate alt, 나중에 im Alter von 3-6 Monaten)을 사겠다는 광고를 여러 번 낸 것, 거래가 이루어진 것, 그비너(『쇼펜하우어의 생애』 제3판 1910, 66쪽)에 따르면 괴팅겐 시절 이미 곰 가죽 같은 털의 푸들(ein Pudel mit seinem Bärenfell)이 그의 방에 들어와 살았다는 것은 아르투어 휘브셔, 「요한나 쇼펜하우어가 아들에게 보낸 미공개 편지 제4부」, 『쇼펜하우어 연감』 제57호(1976), 126쪽 주 36. 마인츠 대학 쇼펜하우어 연구소 공개본(https://download.uni-mainz.de/fb05-philosophie-schopenhauer/files/2019/04/1976_H%C3%BCbscher02.pdf)을 그림으로 떠서 대조했다. 휘브셔는 「만하임 역사 소식지」 1931년 제1책 22쪽을 근거로 든다. 1832년 한 해 만하임에 머문 것은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생애 연표 1832년 항목. 괴팅겐 재학은 1809~1811년(생애 연표). 「곰 가죽 같은 털」은 Bärenfell을 서술자가 푼 말이며, 그비너의 원문은 직접 보지 못했다(재확인).
[주 31-02] 요한나 쇼펜하우어가 아르투어에게 보낸 1835년 4월 29일 본발 편지(휘브셔 번호 XIII) 끝. 휘브셔, 같은 글, 121쪽. 그림으로 대조했다. 한국어 의역. 원문은 Lebe wohl in deiner Eremitage mit Deinem garstigen Pudel, der wie alle seinesgleichen nach altem Käse riecht. Da solltest Du unsre zierliche Iris sehen, das ist eine andere Person. 편지가 재산 문제로 오갔다는 것은 같은 글 105~106쪽.
[주 31-03] 1832년 1월부터 다시 이어진 모자의 편지에서 아들이 자기 푸들 이야기를, 어머니가 자기 개 이리스 이야기를 적어 보냈다는 것(er schreibt ihr von seinem Pudel wie sie von ihrer Hündin Iris)은 휘브셔, 같은 글, 106쪽. 아델레가 어머니의 유고와 함께 아르투어의 편지를 없앴다는 것은 휘브셔, 「요한나 쇼펜하우어가 아들에게 보낸 미공개 편지」, 『쇼펜하우어 연감』 제52호(1971), 80쪽(마인츠 대학 공개본 https://download.uni-mainz.de/fb05-philosophie-schopenhauer/files/2019/05/1971_H%C3%BCbscher.pdf, 텍스트 층으로 읽음). 연감 호수 52는 1971년을 기준으로 한 셈이며 재확인.
[주 31-04] 「도덕의 기초에 관한 현상 논문」 §19 「제시한 도덕의 바탕에 대한 확증」의 일곱째 항목. 전집 제4권(1891년 브로크하우스판 전집 제4권) 인쇄 240~245쪽, PDF 466~471쪽. 해리스의 책(Bombay 1838)과 1836~1837년의 아프리카 사냥은 인쇄 242쪽(PDF 468, 스캔 대조). 런던 자선 단체(Philanthropic Society)의 1837년 현상 공모와 1839년 맥나마라의 수상, 브뤼셀에서 1839년에 나온 포스터의 『필로조이아』는 인쇄 243~244쪽에 있다. 「요즘(1839년)」은 240쪽(PDF 466)에서 스캔으로 대조했고(heut zu Tage (1839)), 243~244쪽 가운데 PDF 469쪽은 스캔 훼손으로 읽지 못해 영문 대조본(A. B. Bullock 역,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4929번, Part III, Chapter VIII, (7))으로 확인했다(재확인).
[주 31-05] 같은 논문 §8 「칸트 윤리학 최고 원칙의 파생된 형태에 관하여」에서 쇼펜하우어가 인용한 칸트 『덕론의 형이상학적 기초』 §16과 §17. 전집 제4권 인쇄 161~162쪽, PDF 387~388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한국어 의역. 원문은 „Der Mensch kann keine Pflicht gegen irgend ein Wesen haben, als bloß gegen den Menschen“; „Die grausame Behandlung der Thiere ist der Pflicht des Menschen gegen sich selbst entgegen; weil sie das Mitgefühl an ihrem Leiden im Menschen abstumpft, wodurch eine der Moralität im Verhältniß zu andern Menschen sehr dienliche, natürliche Anlage geschwächt wird.“ 칸트의 원전은 확보한 자료에 없어 쇼펜하우어의 인용으로만 확인했다. 칸트의 논리를 풀어 쓴 문단은 서술자의 정리다.
[주 31-06] 같은 절, 전집 제4권 인쇄 162쪽, PDF 388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첫 인용은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Also bloß zur Uebung soll man mit Thieren Mitleid haben, und sie sind gleichsam das pathologische Phantom zur Uebung des Mitleids mit Menschen. 「해부 실습용 인형」은 pathologische Phantom(의학 교육에서 쓰던 인체 모형)을 우리말로 푼 것이다. 둘째 인용은 같은 쪽 … die das ewige Wesen verkennt, welches in Allem, was Leben hat, da ist, und aus allen Augen, die das Sonnenlicht sehn, mit unergründlicher Bedeutsamkeit hervorleuchtet의 한국어 의역이다. 그 사이의 「물건」·「수단」·생체 해부·사냥·투우·경마·돌 수레(Vivisektionen, Parforcejagden, Stiergefechten, Wettrennen, zu Tode peitschen vor dem unbeweglichen Steinkarren)와 이성을 조건으로 삼는다는 대목은 취지를 옮겼다. 같은 쪽에서 그가 쓴 카스트 이름을 빌린 욕설(Parias-, Tschandalas- und Mlekhas-Moral)은 옮기지 않았다.
[주 31-07] 1839년 말에 태어나 1849년 12월에 죽은 흰 푸들, 1850년 봄에 태어난 갈색 후계 푸들, 갈색 푸들이 주인보다 오래 살아 넉넉한 유증(einem ansehnlichen Legat)을 받은 것은 휘브셔, 1976년 글 126쪽 주 36. 그림으로 대조했다. 개들의 이름은 이 자료에 없어 적지 않았다. 1841년 출간은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생애 연표. 서로 다른 시기의 개(괴팅겐, 만하임 1832, 프랑크푸르트 1839~1849, 1850~)를 한 마리로 합치지 않았다.
[주 31-08] 같은 논문 §19, 전집 제4권 인쇄 240~241쪽, PDF 466~467쪽. 241쪽은 스캔으로 대조했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가 지성의 정도와 뇌의 양적 차이에 있고 같은 점이 비할 수 없이 많다는 것(Hingegen ist des Gleichartigen zwischen Thier und Mensch, sowohl psychisch als somatisch, ohne allen Vergleich mehr), 개도 제 어미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것(daß, wie Er von seiner Mutter, so auch der Hund von der seinigen gesäugt worden ist)은 취지를 옮긴 것이다. 240쪽도 스캔으로 대조했다. 영어의 중성 대명사 it, 이집트의 따오기·악어 미라, 개를 주인 곁에 묻는 일(wenn der treue Hund neben der Ruhestätte seines Herrn begraben wird)은 240쪽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그가 같은 쪽에서 쓴 judaisirten Thierverächter 같은 말과 앞 쪽의 foetor Judaicus(영문 대조본 확인)를 본문은 「유대교에 물든 사람들」로 줄여 적었다.
[주 31-09] 같은 절, 전집 제4권 인쇄 242쪽, PDF 468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인용은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Mitleid mit Thieren hängt mit der Güte des Charakters so genau zusammen, daß man zuversichtlich behaupten darf, wer gegen Thiere grausam ist, könne kein guter Mensch seyn. Auch zeigt dieses Mitleid sich als aus der selben Quelle mit der gegen Menschen zu übenden Tugend entsprungen. 개·말·원숭이에 대한 뉘우침과 해리스의 새끼 코끼리 이야기는 같은 쪽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31-10] 같은 절, 전집 제4권 인쇄 245쪽, PDF 471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취지를 옮긴 것이다. 원문은 Daß übrigens das Mitleid mit Thieren nicht so weit führen muß, daß wir, wie die Brahmanen, uns der thierischen Nahrung zu enthalten hätten … welchen man jedoch mittelst Chloroform noch mehr erleichtern sollte … und nur das Uebermaaß der aufgelegten Anstrengung wird zur Grausamkeit.
[주 31-11] 쇼펜하우어, 『소품과 부록』 제2권 제8장 「윤리학에 관하여」. 전집 제6권(1891년 브로크하우스판), 인쇄 229쪽, PDF 239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인용은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denn der Mensch ist das einzige Thier, welches Andern Schmerz verursacht, ohne weitern Zweck, als eben diesen. Die andern Thiere thun es nie anders, als um ihren Hunger zu befriedigen, oder im Zorn des Kampfes. … Kein Thier jemals quält, bloß um zu quälen; aber dies thut der Mensch. 어린 개 두 마리와 아이의 예는 같은 쪽의 취지. 이 대목은 고비노의 『인종 불평등론』(des races humaines, 1853년부터 출간)을 인용하므로 1851년 초판 뒤에 덧붙인 것이며, 1891년판은 그의 손때 묻은 책에 남긴 덧붙임을 반영한 판본이다. 덧붙인 정확한 해는 재확인. 고비노가 사람을 l'animal méchant par excellence라 불렀다는 앞 문장은 옮기지 않았다.
사료에 근거한 것은 1832년 만하임의 푸들 광고와 구입, 그비너가 전하는 괴팅겐 시절의 푸들, 1835년 4월 29일 요한나의 편지, 모자가 서로의 개 이야기를 적어 보낸 일, 아델레가 편지를 없앤 일, 1839년 덴마크 논문 19번째 절의 내용과 그 안의 1838·1839년 소식, 칸트 인용과 그의 반박, 1839년 말~1849년 12월의 흰 푸들, 1850년의 갈색 푸들과 유증이다. 창작 대사는 없다. 그가 이 절을 쓸 때 곁에 개가 있었는지는 기록에 없다고 본문에 밝혔다. 칸트의 논리를 풀어 쓴 문단, 「저울 한쪽에는 늘 사람」, 「사람을 싫어하기로 이름난 그」, 새끼 코끼리 뒤의 해석은 서술자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