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9,915자)
민폐를 끼치지 않고 살면 그것으로 충분한가?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40년 1월, 덴마크 왕립 학술원이 쇼펜하우어의 도덕 논문에 상을 주지 않으며 남긴 라틴어 판정문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 있었다.
“지은이는 연민을 윤리학의 바탕으로 세우려 했다. 그러나 그가 논의를 펼친 방식은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그가 실제로 이 바탕이 충분하다는 것을 입증하지도 못했다.”[주 30-01]
충분하지 않다는 말은 그 논문의 한가운데를 겨누었다. 쉰한 살의 쇼펜하우어는 그 논문에서 사람을 도덕적으로 만드는 힘은 하나뿐이고, 그것이 남의 아픔을 곧바로 자기 행동의 까닭으로 삼는 연민이라고 주장했다. 학술원은 그 하나로는 모자란다고 판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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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원의 의심에는 무게가 있었다. 연민은 느낌이다. 느낌은 오고 간다. 같은 사람도 어떤 날은 남의 아픔에 크게 흔들리고 어떤 날은 무덤덤하다. 연민이 큰 사람이 있고 거의 없는 사람이 있다. 도덕이 그런 느낌 위에 서 있다면, 느낌이 없는 날과 느낌이 없는 사람에게 도덕은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가? 게다가 정의는 내가 불쌍히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도 지켜야 한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물건도 훔치면 안 되고, 나와 아무 상관 없는 낯선 사람에게도 거짓말로 손해를 입히면 안 된다. 그런 의무를 그때그때의 느낌에 맡길 수 있는가? 학술원이 보기에 연민은 착한 마음씨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모두가 지켜야 할 의무를 받칠 만큼 단단하지 않았다.
쇼펜하우어의 대답은 이듬해 책의 머리말에 실렸다. 그는 판정문의 그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고 이렇게 받았다.
“이에 맞서 나는, 내가 도덕의 바탕을 정말로, 진지하게, 수학에 가까운 엄밀함으로 증명했다는 사실을 내세운다.”[주 30-02]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상을 받지 못한 논문을 고친 데 없이 그대로 책에 싣고, 학술원의 판정문도 함께 실었다. 판정문이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그는 썼다. 그러고는 고대 그리스의 한 묘비명을 붙였다. 물이 흐르고 나무가 자라는 한, 해와 달이 비치는 한, 나는 여기 미다스가 묻혀 있다고 지나가는 이에게 알리리라. 미다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당나귀 귀를 가졌다는 어리석은 왕이다. 그 판정문은 그가 세운, 학술원의 무덤 앞 비석이 되었다.[주 30-02] 1841년, 두 논문과 판정문은 함께 『윤리학의 두 근본 문제』로 나왔다.[주 30-03]
둘 다 옳은 데가 있었다. 학술원은 느낌 하나에 모든 의무를 걸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느낌이 어떻게 의무가 되는지를 이미 논문 안에서 보였다고 답했다. 두 쪽이 정말로 다툰 것은 연민이 착한 사람을 만드느냐가 아니었다. 남을 해치지 않는 일과 남을 돕는 일이 같은 뿌리에서 나오느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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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폐를 끼치지 않고 살면 그것으로 충분한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은 도덕의 첫 단계다.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것 없이는 다음 단계도 없다. 그는 이 답을 덴마크 논문 안에서 두 단계로 나누어 세운다. 그 논문은 번호를 붙인 짧은 절로 나뉘고, 그는 17번째 절과 18번째 절에서 두 덕을 하나씩 다룬다.
그는 먼저 18세기 독일 철학자 칸트가 ‘법의 의무’와 ‘덕의 의무’라고 부른 구별을 버리고, 그 자리에 두 덕을 놓는다. 정의와 인간애다. 그는 이 둘을 다른 모든 덕이 나오는 으뜸 덕이라고 부르고, 둘 다 사람이 타고난 연민에 뿌리를 둔다고 말한다. 연민은 교리나 교육이 심어 준 것이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있는 사람 의식의 사실이며, 그래서 연민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우리는 ‘사람답지 않다’고 부른다.[주 30-04]
그다음 그는 연민이 일하는 첫 단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의 필요와 욕망과 분노와 미움은 곧바로 우리 의식에 들어온다. 반면 우리가 저지르는 부당한 일로 남이 겪는 아픔은 머릿속 그림을 거쳐, 경험을 통해서야 간접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사람은 본디 남을 해치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첫 단계의 연민은 그 기울기를 막아선다.
“그러니 연민이 일하는 첫 단계는 이렇다. 내 안에 사는 반도덕적인 힘이 나를 몰아 남에게 아픔을 주려 할 때, 연민이 그 앞을 가로막고 나에게 ‘멈춰!’ 하고 외친다. 그리고 다른 사람 앞에 보호벽처럼 서서, 내 이기심이나 악의가 아니었다면 그에게 가하지 않았을 상처로부터 그를 지킨다.”[주 30-04]
이 첫 단계에서 ‘아무도 해치지 마라’는 준칙이 나오고, 그것이 정의의 원칙이다. 그는 그 정의가 무엇을 하지 않는 일인지 하나하나 적는다. 남의 몸만이 아니라 남의 재산에도 손대지 않는다. 몸의 상처만이 아니라 모욕과 걱정과 비방으로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일상적인 대목이 이어진다. 정의로운 사람은 삶이 누구에게나 지우는 짐과 괴로움을 힘이나 꾀를 써서 남의 어깨로 떠넘기지 않는다. 그는 자기 몫을 스스로 지고, 이웃의 몫을 두 배로 만들지 않는다.[주 30-05]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말을 그보다 정확하게 풀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학술원의 의심, 곧 느낌이 없는 날에는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어떻게 답하는가? 그는 매번 연민이 실제로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매번 기다리면 연민은 너무 늦게 올 때가 많다. 그 대신 고귀한 사람은 부당한 일이 반드시 남에게 아픔을 준다는 것을 한 번 깨달은 뒤, 그 앎에서 ‘아무도 해치지 마라’는 준칙을 세우고 이성으로 그것을 굳게 지킨다. 원칙은 도덕의 샘이 아니지만 도덕적으로 사는 데는 꼭 필요하다고 그는 쓴다.
“원칙은 그릇이고 저수지다. 모든 도덕의 샘은 언제나 흐르지는 않는다. 그 샘에서 솟은 마음가짐을 원칙이라는 저수지에 담아 두었다가, 쓸 일이 생기면 거기서 끌어다 쓴다.”[주 30-05]
연민이 마르는 날을 위해 연민이 미리 물을 받아 둔다. 그는 그렇게 학술원의 의심에 미리 답해 두었다.
그는 왜 정의를 굳이 연민에서 끌어내야 했는가? 더 쉬운 길이 있었다.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이 결국 나에게도 이롭다고 말하면 된다. 내가 남을 해치지 않아야 남도 나를 해치지 않고, 그래야 모두가 안전하다. 그는 그 길을 막는다. 정의가 그런 셈에서 나온다면 정의는 이기심 위에 서게 되고, 그것은 정의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없애는 것이라고 그는 쓴다.[주 30-05] 벌이 두려워 훔치지 않는 사람은 들키지 않을 자리에서는 훔친다.
그 칼끝은 칸트에게도 향했다. 칸트는 모두가 그렇게 행동해도 모순이 생기지 않는 원칙만 따르라고 했다. 칸트는 덕에 관한 책 『덕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에서 남을 도와야 하는 까닭을 들며, 누구나 도움받기를 바라니 돕지 않겠다는 원칙은 스스로와 부딪친다고 말했다. 쇼펜하우어는 그 말을 그대로 뒤집어 읽는다. 내가 돕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울 수 없는 것은 언젠가 내가 도움받을 처지에 놓일 수 있어서다. 그렇다면 그 의무는 서로 주고받는다는 전제 위에 서 있고, 그래서 철저히 이기적이라고 그는 쓴다. 자기가 언제나 힘센 쪽이고 결코 도움받을 쪽이 되지 않으리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칸트의 원칙만으로는 부당함과 냉정함을 원칙으로 삼아도 막을 길이 없다.[주 30-06] 해치지 않는 일도, 돕는 일도 셈에서 나오면 셈이 바뀌는 순간 무너진다. 그래서 그는 셈이 아닌 뿌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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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18번째 절에서 그는 인간애로 넘어간다. 고대 철학자들은 정의를 덕으로 알았지만 인간애는 덕으로 세우지 않았다. 원수에게까지 넓힌 사랑을 가장 큰 덕으로 세운 것은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공로이며, 아시아에서는 그보다 천 년 앞서 베다와 붓다의 가르침이 그것을 가르쳤다고 그는 쓴다.[주 30-07] 그리고 둘째 단계를 이렇게 말한다.
“둘째 단계는 그 행동이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첫 단계와 뚜렷이 갈린다. 이때 연민은 나를 남을 해치지 않게 붙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를 돕도록 나를 몰아간다. 그리고 내가 그 아픔을 얼마나 생생하고 깊이 함께 느끼는지, 남의 곤경이 얼마나 크고 급한지에 따라, 나는 그 순수한 도덕적 동기에 움직여 더 크거나 더 작은 희생을 치른다. 그 희생은 내 몸과 정신의 힘을 쓰는 일일 수도, 내 재산이나 건강이나 자유, 때로는 목숨을 내놓는 일일 수도 있다.”[주 30-08]
이 단계의 준칙은 ‘할 수 있는 만큼 모두를 도와라’다. 그는 같은 논문의 앞쪽에서 칸트를 비판하며 두 준칙을 이어 붙여 모든 도덕이 가려는 곳을 한 줄로 말한 적이 있다. 아무도 해치지 말고, 오히려 할 수 있는 만큼 모두를 도와라. 그 문장은 모든 아름다운 것처럼 벗겨 놓았을 때 가장 보기 좋다고 그는 덧붙였다.[주 30-09]
그러니 해치지 않는 삶은 첫 줄을 지킨 삶이다. 그것만으로도 이웃의 짐을 두 배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 삶은 아직 둘째 줄에 닿지 않았다. 남의 곤경이 내 눈앞에 있는데 나는 그를 해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나간다면, 그 사람의 곤경은 그대로 남는다.
다만 그 둘째 줄에는 단서가 붙어 있다. 할 수 있는 만큼이다. 그는 희생의 크기를 정해 두지 않는다. 그 크기는 남의 곤경이 얼마나 크고 급한지, 그리고 내가 그것을 얼마나 깊이 함께 느끼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 말은 끝없는 자기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내 힘과 내 처지를 셈에 넣으라는 말이기도 하다. 다만 그 셈을 하는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데서 어려움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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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서가 그의 답의 한계다. 할 수 있는 만큼은 누가 정하는가? 연민을 깊이 느끼는 사람은 많이 돕고, 얕게 느끼는 사람은 조금 돕는다. 그 둘이 똑같이 도덕적 값을 지닌다면, 학술원의 의심은 다른 모양으로 돌아온다. 정의는 원칙이라는 저수지에 담아 둘 수 있지만, 인간애의 크기는 그렇게 담아 두기 어렵다. 그는 수학에 가까운 엄밀함으로 증명했다고 말했지만, 그의 증명이 보여 준 것은 두 덕이 어디서 나오는가였지, 얼마나 해야 충분한가가 아니었다. 느낌을 바탕으로 삼은 윤리학이 수학처럼 증명된다는 말 자체가 학술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점에서 학술원의 의심은 판정의 무례함과 상관없이 정당한 물음으로 남는다.
그가 제시한 정의의 목록에도 빈칸이 있다. 짐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는 일은 그 짐이 어디서 왔는지를 묻지 않는다. 남에게 떠넘기지 않고 자기 몫을 지는 사람도, 남이 이미 떠넘겨 받은 짐 앞에서는 할 일이 남는다. 그 일은 정의가 아니라 인간애의 몫이고, 그래서 얼마나 할지는 다시 그 사람에게 맡겨진다.
그러니 남는 물음은 이것이다. 나는 아무도 해치지 않았는가? 그리고 내 힘과 내 처지를 정직하게 셈했을 때, 나는 어디까지 도울 수 있는가? 1841년 그가 판정문을 책에 실어 보존한 것은 학술원을 조롱하려는 뜻이었다. 그 판정문이 던진 ‘충분한가’라는 물음은 그의 책 안에서 지금도 답을 기다린다.
후주
[주 30-01] 덴마크 왕립 학술원의 판정문(Judicium Regiae Danicae Scientiarum Societatis, 1840년 1월). 전집 제4권(1891년 브로크하우스판 전집 제4권), PDF 502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한국어 의역. 원문은 Quod autem scriptor in sympathia fundamentum ethicae constituere conatus est, neque ipsa disserendi forma nobis satisfecit, neque reapse, hoc fundamentum sufficere, evicit. 1840년 1월 30일이라는 날짜는 같은 책 논문 표제지(PDF 329쪽).
[주 30-02] 『윤리학의 두 근본 문제』(1841) 제1판 머리말. 전집 제4권 인쇄 XV~XVI쪽, PDF 199~200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인용은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Dagegen berufe ich mich darauf, daß ich meine Begründung der Moral wirklich und ernstlich bewiesen habe, mit einer Strenge, welche der mathematischen nahe kommt. 판정문을 함께 싣는 까닭(damit es nicht verloren gehe, sondern aufbewahrt bleibe), 고친 데 없이 실었다는 것(daß ich hier die Abhandlung so gebe, wie ich sie eingesandt habe), 미다스 묘비명(그리스어 원문과 라틴어 옮김 Dum fluit unda levis … Usque Midam viatori narro hic esse sepultum)은 같은 쪽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머리말은 제1판 뒤의 작은 덧붙임에 십자 표시를 했다고 밝히며, 「고친 데 없이」는 그 말을 따른 것이다. 미다스를 「당나귀 귀를 가졌다는 어리석은 왕」으로 푼 것과 「비석」의 비유는 서술자의 말이다.
[주 30-03] 1841년 두 논문을 『윤리학의 두 근본 문제』로 펴낸 것은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생애 연표 1841년 항목,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38~1841년 항목. 판정문을 함께 실었다는 것은 [주 30-02]의 머리말(derselben das Urtheil beifüge)에 따른다.
[주 30-04] 「도덕의 기초에 관한 현상 논문」 §17 「정의의 덕」. 전집 제4권 인쇄 213쪽, PDF 439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두 으뜸 덕(Kardinaltugenden)과 연민이 사람 의식의 사실이라는 대목, 욕망은 곧바로·남의 아픔은 간접으로 의식에 들어온다는 대목은 취지를 옮긴 것이다. 「법의 의무와 덕의 의무」 구별을 버린다는 것은 같은 절 앞쪽(인쇄 212~213쪽)의 취지이며 212쪽은 OCR로 읽었다(재확인). 인용은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Der erste Grad der Wirkung des Mitleids ist also, daß es den von mir selbst, in Folge der mir einwohnenden antimoralischen Potenzen, Andern zu verursachenden Leiden hemmend entgegentritt, mir „Halt!“ zuruft und sich als eine Schutzwehr vor den Andern stellt, die ihn vor der Verletzung bewahrt, zu welcher außerdem mein Egoismus, oder Bosheit, mich treiben würde.
[주 30-05] 같은 절, 전집 제4권 인쇄 214쪽, PDF 440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재산·마음의 상처, 정의가 이기심에서 나오면 안 된다는 대목(weil sie sonst auf Egoismus beruhen müßte), 짐을 떠넘기지 않는다는 대목(nicht die Lasten und Leiden des Lebens, welche die Umstände Jedem zuführen, durch Gewalt oder List auf Andere zu wälzen, sondern sein beschiedenes Theil selbst zu tragen, um nicht das eines Andern zu verdoppeln), 매번 연민이 일어날 필요는 없다는 대목은 취지를 옮긴 것이다. 같은 쪽의 성적 착취에 관한 대목은 옮기지 않았다. 인용은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Denn obwohl Grundsätze und abstrakte Erkenntniß überhaupt keineswegs die Urquelle, oder erste Grundlage der Moralität sind; so sind sie doch zu einem moralischen Lebenswandel unentbehrlich, als das Behältniß, das Reservoir, in welchem die aus der Quelle aller Moralität, als welche nicht in jedem Augenblicke fließt, entsprungene Gesinnung aufbewahrt wird, um, wenn der Fall der Anwendung kommt, … 이며, 문장의 끝(인쇄 215쪽)은 스캔 대조하지 않았다(재확인).
[주 30-06] 같은 논문 §7 「칸트 윤리학의 최고 원칙에 관하여」. 전집 제4권 인쇄 157쪽, PDF 383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쇼펜하우어가 인용한 칸트 『덕론의 형이상학적 기초』 §30(Denn Jeder wünscht, daß ihm geholfen werde)과 그의 판단(daß die moralische Verpflichtung ganz und gar auf vorausgesetzter Reciprocität beruhe, folglich schlechthin egoistisch ist), 늘 능동적인 쪽이라고 믿는 사람은 부당함과 냉정함을 보편 준칙으로 삼을 수 있다는 대목(stets nur als den aktiven und nie als den passiven Theil)은 취지를 옮긴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행동해도 모순이 생기지 않는 원칙」은 같은 쪽이 인용하는 칸트 『기초 놓기』의 원칙을 서술자가 푼 말이다.
[주 30-07] 같은 논문 §18 「인간애의 덕」. 전집 제4권 인쇄 226쪽, PDF 452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고대 철학자와 그리스도교, 베다·다르마샤스트라·붓다의 가르침에 관한 대목은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30-08] 같은 절, 전집 제4권 인쇄 227쪽, PDF 453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Der zweite Grad … sondert sich von dem ersten deutlich ab, durch den positiven Charakter der daraus hervorgehenden Handlungen; indem alsdann das Mitleid nicht bloß mich abhält, den Andern zu verletzen, sondern sogar mich antreibt, ihm zu helfen. Je nachdem nun theils jene unmittelbare Theilnahme lebhaft und tief gefühlt, theils die fremde Noth groß und dringend ist, werde ich durch jenes rein moralische Motiv bewogen werden, ein größeres oder geringeres Opfer dem Bedürfniß oder der Noth des Andern zu bringen, welches in der Anstrengung meiner leiblichen oder geistigen Kräfte für ihn, in meinem Eigenthum, in meiner Gesundheit, Freiheit, sogar in meinem Leben bestehn kann. 준칙 omnes, quantum potes, juva는 같은 쪽.
[주 30-09] 같은 논문 §8. 전집 제4권 인쇄 162쪽, PDF 388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 der letzte wahre Zielpunkt aller Moral und alles Moralisirens ist: Neminem laede, imo omnes, quantum potes, juva: welcher Satz, wie alles Schöne, sich nackt am besten ausnimmt. 한국어 의역(라틴어 준칙은 우리말로 옮김).
사료에 근거한 것은 판정문의 둘째 사유, 1841년 책 머리말의 대답과 판정문을 함께 실은 일, 미다스 묘비명, 1841년 출간이다. 창작 대사는 없다. 학술원의 의심을 「느낌은 오고 간다」와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지켜야 하는 정의」로 풀어 쓴 것은 판정문의 짧은 문장을 서술자가 펼친 것이며, 학술원이 그렇게 썼다는 뜻이 아니다. 저수지가 학술원의 의심에 「미리 답해 두었다」는 것, 해치지 않는 삶과 돕는 삶을 두 줄로 나눈 것, 「할 수 있는 만큼」의 한계와 정의의 빈칸, 「벌이 두려워 훔치지 않는 사람」의 문장, 학술원의 의심이 정당한 물음으로 남는다는 판단은 서술자의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