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10,152자)
착한 행동에도 계산이 숨어 있다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37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있는 덴마크 왕립 학술원이 현상 공모의 물음을 내걸었다. 도덕의 샘과 바탕은 사람의 의식 안에 곧바로 들어 있는 도덕이라는 관념에서 찾아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앎의 원리에서 찾아야 하는가? 그 물음에 답한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주 29-01] 프랑크푸르트의 쇼펜하우어였다. 그는 노르웨이 물음에 답한 이듬해인 1839년에 이 물음에 답했다.[주 29-02]
그는 논문 첫 장에 자기가 1836년에 낸 책 『자연에서의 의지』의 한 줄을 표어로 달았다. 도덕을 설교하기는 쉽고, 도덕의 바탕을 세우기는 어렵다. 1840년 1월 30일, 학술원은 그 논문에 상을 주지 않았다.[주 29-03] 경쟁자가 없는 공모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학술원은 라틴어로 짧은 판정문을 남겼다. 판정문은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학술원은 도덕의 원리와 형이상학의 관계를 묻는 데 무게를 두었는데, 지은이는 그것을 덧붙인 글처럼 뒤에 붙였을 뿐이다. 둘째, 지은이는 연민을 도덕의 바탕으로 세우려 했으나 그 바탕이 충분하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 셋째는 이랬다.
“또 하나 덮어 둘 수 없는 것이 있다. 이 논문은 근래의 여러 최고 철학자들을 너무나 무례하게 들먹여서, 정당하고도 무거운 불쾌감을 준다.”[주 29-04]
*
쇼펜하우어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듬해 두 현상 논문을 한 권으로 묶어 내면서 그는 긴 머리말을 붙여 판정문에 하나하나 답했다. 첫째 물음에는 이렇게 답했다. 도덕의 원리를 어떤 형이상학에서 끌어내라고 했다면 학술원은 수많은 형이상학 가운데 어느 것에서 끌어내라는지 말했어야 한다. 그런 말이 물음에 없었으니 그는 현실에서 출발하는 길을 택했고, 그 길은 칸트도 걸은 길이었다. 노르웨이의 학술협회는 같은 결함을 지닌 그의 다른 논문에 상을 주었다고 그는 덧붙였다.[주 29-05]
셋째 물음에 대한 답이 가장 길었다. 학술원이 말한 ‘최고 철학자’는 누구인가? 그는 그것이 베를린 대학의 철학자 헤겔을 두고 한 말이라고 보았다. 그러고는 이렇게 썼다.
“내가 믿기로 그에게는 철학에 대한 공로가 하나도 없다. 그뿐 아니라 그는 철학에, 그리고 철학을 거쳐 독일의 글 전체에 아주 해로운 영향을 끼쳤다. 사람을 어리석게 만드는 영향, 전염병 같다고 해도 좋을 영향이었다. 그러니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회가 올 때마다 그 영향에 힘껏 맞서야 한다. 그것이 그의 의무다.”[주 29-05]
학술원과 그는 같은 것을 두고 맞섰다. 학술원이 지키려 한 것은 학문의 예의였다. 논문은 상대를 반박할 수 있지만 욕할 권리는 없다. 이름 높은 학자를 ‘돌팔이’라고 부르는 글에 상을 주면, 학술원은 그 욕에 도장을 찍어 주는 셈이 된다. 그 논리는 틀리지 않았다. 쇼펜하우어가 지키려 한 것은 진리가 이름값에 눌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 사람이 유명하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생각이 옳다는 증거는 아니다. 그 논리도 틀리지 않았다.
판정문의 첫째 사유 뒤에는 더 깊은 차이가 있었다. 학술원의 물음은 도덕의 바탕을 사람의 의식 안에 들어 있는 관념, 곧 무엇이 옳은지 아는 앎에서 찾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쇼펜하우어는 그 길을 버렸다. 그가 찾은 것은 사람이 무엇을 옳다고 아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실제로 사람을 움직이는가였다. 옳은 것을 아는 사람도 그 앎 때문에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옳은 일을 하는 사람도 사실은 남의 눈이나 뒷날의 보상 때문에 하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도덕의 바탕을 앎이 아니라 동기에서 찾았고, 동기를 따지자 착한 행동 속의 계산이 드러났다.
그런데 그 맞섬에는 하나가 더 걸려 있었다. 그는 헤겔과 싸우는 것이 의무라고 썼다. 그 의무만이 그를 움직였는가? 뒷날 그는 한 교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1818년 뒤로 자기 책이 아무 주목도 받지 못하고 헤겔의 영광이 이어지는 동안 분노를 삼키며 침묵했다고 썼다.[주 29-02] 같은 해 노르웨이 학술협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는 자기가 받아 마땅한 명성을 아직 얻지 못했다고 썼다. 의무라는 이름 밑에 상처받은 자존심이 없었다고 그 자신도 장담할 수 있었을까?
그 물음을 가장 날카롭게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가 판정문을 받은 바로 그 논문 안에 그 물음이 들어 있었다.
*
보상과 칭찬을 기대하며 한 선행도 같은 선행인가? 그 행동이 남긴 결과는 같을 수 있어도, 그 행동의 도덕적 값은 같지 않다. 덴마크 논문은 번호를 붙인 스물두 개의 절로 나뉜다. 그는 그 16번째 절에서 이 답을 몇 개의 전제에서 끌어낸다.
첫째, 어떤 행동도 충분한 동기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밀거나 당기는 힘 없이 돌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둘째, 의지를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누군가의 좋음과 아픔이다. 셋째, 그 누군가는 행동하는 사람 자신이거나, 그 행동을 받는 다른 사람이다. 넷째, 행동하는 사람 자신의 좋음과 아픔이 마지막 목적인 행동은 이기적이다. 다섯째, 이기심과 도덕적 값은 서로를 밀어낸다. 이기적인 목적이 동기인 행동에는 도덕적 값이 없다.
이 전제에서 결론이 나온다. 그는 이기적인 동기가 얼마나 멀리 숨을 수 있는지를 하나하나 짚는다. 이 세상에서든 저세상에서든 언젠가 돌아올 보상을 바라는 것은 이기적이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쓴다.
“자기의 명예, 사람들 사이의 평판, 누군가의 존경, 지켜보는 이들의 공감 따위를 바라고 행동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규칙을 지키되, 모두가 그 규칙을 따르면 언젠가 자기에게도 이익이 돌아오리라 여겨서 지킬 때도 그렇다. 정의의 규칙이나 서로 돕는 규칙이 그런 예다.”[주 29-06]
그의 목록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더 높은 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겨 따른다면, 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명령을 어겼을 때 닥칠 일에 대한 두려움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품은 높은 생각, 곧 자기의 값어치와 품위를 어떤 행동으로 지켜 내려 한다면, 그것은 그 생각을 내려놓았을 때 다칠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다. 자기를 완성하려고 착한 일을 하는 것도 결국 자기를 위한 일이다. 어떤 우회로를 거치든, 마지막에 행동하는 사람 자신의 좋음과 아픔이 걸려 있으면 그 행동은 이기적이고 도덕적 값이 없다고 그는 쓴다.[주 29-06]
그러면 남는 것은 하나뿐이다. 행동의 마지막 목적이 오로지 다른 사람의 좋음과 아픔일 때다. 그 사람이 다치지 않게 하거나, 그 사람에게 도움과 위로가 닿게 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때만 그 행동에 도덕적 값이 찍힌다.[주 29-06]
그러니 길에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는 손길 하나도 그의 기준에서는 셋으로 갈린다. 지켜보는 이들의 칭찬을 바라는 손길이 있고,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자기를 좋은 사람으로 여기던 생각이 무너질까 두려워 내미는 손길이 있고, 쓰러진 사람이 아파 보여서 내미는 손길이 있다. 쓰러진 사람에게 세 손은 같은 손이다. 그의 기준으로는 셋째 손길만 도덕적 값을 지닌다. 앞의 두 손길이 잘못은 아니지만, 그 값은 칭찬과 자존심 쪽으로 이미 치러졌다.
그렇다면 계산이 조금 섞인 선행은 어떻게 되는가? 그는 바로 앞의 15번째 절에서 기준을 세운다.
“이기적인 동기가 드러나면, 그것이 유일한 동기였을 경우 그 행동의 도덕적 값은 통째로 사라지고, 곁들여 작용했을 경우 그 값은 줄어든다. 그러니 이기적인 동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도덕적 값을 지닌 행동의 기준이다.”[주 29-07]
계산이 숨은 착한 행동은 같은 선행이 아니다. 계산이 곁들여졌으면 덜 착하고, 계산뿐이었으면 착한 행동이 아니라 영리한 행동이다. 그 기준은 반대쪽 끝도 가른다. 남의 아픔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행동, 곧 악의와 잔인함은 그 사람에게 이익이 없을 수도 있지만 남의 고통을 노린다는 표지 하나로 따로 갈린다고 그는 덧붙인다.[주 29-07]
그런데 그는 그 기준을 세우기 전에 먼저 한계를 인정한다. 경험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언제나 행동뿐이고 동기는 보여 주지 않는다. 그래서 정의롭거나 착해 보이는 일에도 이기적인 동기가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은 늘 남는다.[주 29-08] 그의 기준은 마음을 꿰뚫어 보는 저울이 아니다.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를 가리키는 표지다.
왜 남의 좋음만을 위한 행동이 그토록 드문가? 그는 14번째 절에서, 사람의 바탕에 있는 이기심이 엄청나게 크다고 답한다. 사람은 모든 것을 누리고 모든 것을 갖고 싶어 하고, 그럴 수 없으면 적어도 모든 것을 다스리고 싶어 한다.
“‘모든 것은 나를 위해, 남을 위해서는 아무것도’가 그 사람의 좌우명이다. 이기심은 거대하다. 그것은 세계를 넘어선다.”[주 29-09]
그러니 계산 없는 선행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그 거대한 이기심을 이기는 다른 힘이 있어서다. 그는 그 힘을 연민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연민을 남의 자리에 나를 상상으로 옮겨 놓는 일로 설명하는 사람들을 반박한다. 상상 속에서 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착각하는 것이라면 연민도 결국 나를 위한 감정이 된다. 그는 그렇지 않다고 쓴다.
“오히려 바로 그 순간마다 우리에게는 그가 아파하는 사람이지 우리가 아니라는 것이 또렷하고 생생하다. 우리는 우리 몸이 아니라 그의 몸에서 그 아픔을 느끼며 슬퍼한다.”[주 29-10]
착한 행동이 계산에서 벗어나는 자리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아니라, 저 사람이 지금 아프다는 앎이다.
*
그 기준을 판정문 앞의 그에게 돌려 보면 그의 머리말은 어떻게 되는가? 헤겔에게 맞서는 일은 남을 돕는 행동이 아니라 생각을 다투는 일이어서, 그의 기준이 곧바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그 싸움에 쏟은 분노의 크기는 그의 목록 한 줄을 떠올리게 한다. 자기에 대해 품은 높은 생각을 지키려는 행동은 이기적이다. 그는 그 줄을 1839년에 써 놓고, 1840년에 받은 판정문 앞에서 그 줄을 비켜 가지 못했다.
그의 기준에는 그 자신도 인정한 반대편이 있다. 동기는 보이지 않는다. 남의 마음속 계산을 다 볼 수 없듯이 자기 마음속 계산도 다 볼 수 없다. 그리고 그는 결과를 받는 사람의 자리를 거의 말하지 않는다. 칭찬을 바라고 건넨 빵도 굶은 사람의 배를 채운다. 도덕적 값이 없다는 판정은 그 빵을 받은 사람의 하루를 바꾸지 못한다.
그의 기준은 그 자신의 다른 결론과도 부딪친다. 그는 노르웨이 논문에서 성격이 타고나고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연민이 큰 사람은 그렇게 태어났고, 계산하는 사람도 그렇게 태어났다. 도덕적 값이 있다 없다는 판정은 애써서 얻은 상이 아니라 그 사람의 바탕에 대한 진단이 된다. 진단은 정직할 수 있지만, 진단만으로는 계산하는 사람에게 어디로 가라고 말해 주지 못한다.
그러니 그의 논문이 남기는 물음은 ‘나는 좋은 사람인가?’가 아니다. 그 물음을 붙들수록 사람은 자기 품위를 지키는 쪽으로 기운다. 그가 남긴 물음은 이것이다. 내가 방금 한 일은 누구의 아픔에 대답했는가? 저 사람의 아픔이었는가, 아니면 그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다쳤을 내 자존심이었는가?
1841년, 상을 받지 못한 논문은 상을 받은 논문과 한 권으로 묶여 독일의 서점에 놓였다. 그 책을 펴면 맨 먼저 학술원에 맞서는 그의 머리말이 나왔다.
후주
[주 29-01] 덴마크 왕립 학술원의 판정문(Judicium Regiae Danicae Scientiarum Societatis). 전집 제4권(1891년 브로크하우스판 전집 제4권), PDF 502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물음(Quaestionem anno 1837 propositam, „utrum philosophiae moralis fons et fundamentum in idea moralitatis, quae immediate conscientia contineatur, et ceteris notionibus fundamentalibus, quae ex illa prodeant, explicandis quaerenda sint, an in alio cognoscendi principio“)과 응모자가 한 사람뿐이었다는 것(unus tantum scriptor)은 이 판정문에 있다. 물음은 한국어 의역. 응모자가 하나뿐이었다는 것은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생애 연표 1840년 항목(obgleich einziger Einsender)과 스탠퍼드 철학 백과도 같다.
[주 29-02] 할레의 철학 교수 에르트만에게 보낸 1851년 편지. 쉐만 편 『쇼펜하우어 서간집』(1893), 인쇄 332~333쪽, PDF 392~393쪽(332쪽 스캔 대조). 「1838 & 39 die beiden skandinavischen Preisfragen」. 같은 편지의 앞부분(인쇄 332쪽, 스캔 대조)에 「in Folge der Nichtbeachtung meines Werkes, zugleich mit der Hegelgloria, im Schweigen der Indignation geblieben war」가 있고, 「분노를 삼키며 침묵했다」는 그 취지를 옮긴 것이다. 편지 일자는 재확인.
[주 29-03] 「도덕의 기초에 관한 현상 논문」 표제지(nicht gekrönt von der Königlich Dänischen Societät der Wissenschaften, zu Kopenhagen, am 30. Januar 1840. Motto: Moral predigen ist leicht, Moral begründen ist schwer. Schopenhauer, Ueber den Willen in der Natur, S. 128). 전집 제4권 PDF 329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판정문의 각주에 따르면 표어의 두 번째 「ist」는 학술원이 덧붙인 것이다(PDF 502쪽). 『자연에서의 의지』가 1836년에 나온 것은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35~1836년 항목.
[주 29-04] 같은 판정문, 전집 제4권 PDF 502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인용은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Neque reticendum videtur, plures recentioris aetatis summos philosophos tam indecenter commemorari, ut justam et gravem offensionem habeat.
[주 29-05] 『윤리학의 두 근본 문제』(1841) 제1판 머리말. 전집 제4권 인쇄 XIV쪽(PDF 198쪽)과 XVIII쪽(PDF 202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XIV쪽(분석적 정초, 칸트, 노르웨이 논문도 같은 결함을 지녔다는 말)은 취지를 옮긴 것이다. XVIII쪽 인용은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Denn ihm geht, meiner Ueberzeugung nach, nicht nur alles Verdienst um die Philosophie ab; sondern er hat auf dieselbe, und dadurch auf die Deutsche Litteratur überhaupt, einen höchst verderblichen, recht eigentlich verdummenden, man könnte sagen pestilenzialischen Einfluß gehabt, welchem daher, bei jeder Gelegenheit, auf das Nachdrücklichste entgegen zu wirken, die Pflicht jedes selbst zu denken und selbst zu urtheilen Fähigen ist. 같은 쪽에서 그는 판정문의 질책이 헤겔을 가리킨다고 밝힌다(Nebst Fichten also ist es Hegel …). 머리말이 쓰인 달은 확인하지 못했다(재확인). 「돌팔이」는 같은 머리말의 Philosophaster·Scharlatan 같은 말을 묶어 옮긴 서술자의 말이다.
[주 29-06] 「도덕의 기초에 관한 현상 논문」 §16. 전집 제4권 인쇄 206~207쪽, PDF 432~433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다섯 전제는 같은 절 첫머리(인쇄 205~206쪽)의 아홉 전제 가운데 다섯을 골라 취지를 옮긴 것이며 205쪽은 OCR로 읽었다(재확인). 인용은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 oder wenn man dabei seine Ehre, seinen Ruf bei den Leuten, die Hochachtung irgend Jemandes, die Sympathie der Zuschauer u. dgl. m. im Auge hat; nicht weniger, wenn man durch diese Handlung eine Maxime aufrecht zu erhalten beabsichtigt, von deren allgemeiner Befolgung man eventualiter einen Vortheil für sich selbst erwartet, wie etwan die der Gerechtigkeit, des allgemeinen hülfreichen Beistandes u. s. w. 두려움·자존심·볼프식 완성·「오직 다른 사람의 좋음과 아픔」 대목은 같은 쪽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29-07] 같은 논문 §15. 전집 제4권 인쇄 204쪽, PDF 430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Daher eben die Entdeckung eines eigennützigen Motivs, wenn es das einzige war, den moralischen Werth einer Handlung ganz aufhebt, und wenn es accessorisch wirkte, ihn schmälert. Die Abwesenheit aller egoistischen Motivation ist also das Kriterium einer Handlung von moralischem Werth. 악의와 잔인함의 표지(daß sie fremdes Leiden bezwecken)는 같은 쪽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29-08] 같은 논문 §15 첫머리. 전집 제4권 인쇄 203쪽, PDF 429쪽은 스캔이 심하게 훼손되어 읽을 수 없었다. 영문 대조본(A. B. Bullock 역 『The Basis of Morality』,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44929번, Part III, Chapter IV 첫 문단 it is invariably only the act that experience gives, the incentives not being apparent)으로 취지를 옮겼다. 독일어 원문 재확인.
[주 29-09] 같은 논문 §14 「반도덕적 동기」. 전집 제4권 인쇄 197쪽, PDF 423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Alles für mich, und nichts für die Andern“, ist sein Wahlspruch. Der Egoismus ist kolossal: er überragt die Welt. 「모든 것을 누리고 갖고 싶어 하고, 그럴 수 없으면 다스리고 싶어 한다」는 같은 문장 앞부분(Alles genießen, Alles haben; da aber dies unmöglich ist, wenigstens Alles beherrschen)의 취지를 옮긴 것이다.
[주 29-10] 같은 논문 §16. 전집 제4권 인쇄 211쪽, PDF 437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상상으로 자리를 바꾼다는 설명은 그가 이탈리아의 카시나(1788)를 들어 반박하는 견해의 취지다. 인용은 한국어 의역이며 원문은 sondern es bleibt uns gerade jeden Augenblick klar und gegenwärtig, daß Er der Leidende ist, nicht wir: und gerade in seiner Person, nicht in unserer, fühlen wir das Leiden, zu unserer Betrübniß.
사료에 근거한 것은 1837년의 덴마크 물음, 1839년의 응모, 응모자가 한 사람이었다는 것, 표어, 1840년 1월 30일 상을 주지 않은 일, 판정문의 세 사유, 1841년 책의 머리말과 그 안의 헤겔 비판, 1839년 노르웨이에 보낸 편지의 명성 고백이다. 1841년 책에서 머리말이 맨 앞에 온다는 것은 1891년판 전집 제4권의 배열(제1판 머리말이 두 논문 앞에 실림)에 따른 것이다. 창작 대사는 없다. 학술원과 그의 논리를 「예의」와 「이름값」으로 정리한 것, 의무 밑의 자존심을 묻는 것, 그의 목록을 그 자신에게 돌려 본 것,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는 세 손길과 빵의 비유, 성격론과의 충돌은 서술자의 해석이다. 세 손길은 사례가 아니라 그의 기준을 풀어 보인 가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