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11,750자)
상실 뒤에도 하루는 계속된다
쇼펜하우어의 삶 · 네오
1805년 4월, 함부르크의 쇼펜하우어 집안 창고 높은 곳에는 짐을 들이고 내리는 문이 하나 나 있었다. 그 문은 집 뒤 운하 쪽으로 열려 있었고, 아래로는 거룻배가 드나드는 검은 물이 흘렀다. 4월 20일, 하인리히 플로리스 쇼펜하우어가 그 창고 문에서 운하로 떨어져 죽었다.[주 3-01]
아들 아르투어는 그해 정월부터 시의원 예니슈의 상회에서 상인 수업을 받고 있었고, 열일곱 살이었다.[주 3-02] 아버지가 바라던 길에 들어선 지 넉 달이 채 안 되었다.
죽음의 모양이 사람들 입에 올랐다. 창고 일에 평생을 보낸 상인이 제 창고 문에서 발을 헛디뎠다는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재산을 잃었다고, 혹은 잃을 거라고 믿고 시름에 잠겨 있다가 스스로 몸을 던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말년에 까닭 없는 불안에 시달렸고, 기억이 끊기는 일이 있었다. 귀가 점점 먹으면서 성미도 급하고 거칠어졌다.[주 3-01] 쇼펜하우어 협회의 연표는 이 일을 ‘사고로 인한 죽음’이라고 적는다. 오늘의 철학 사전들은 ‘자살이었을 수도 있다’고 적는다.[주 3-03] 무엇이 맞는지 확정할 기록은 없다. 확실한 것은 하나다. 아들에게 상인의 길을 정해 준 사람이 사라졌고, 그 길은 그대로 남았다.
*
장례가 끝난 다음 날에도 예니슈 상회의 문은 아침에 열렸다. 장부는 어제 덮은 쪽에서 다시 펼쳐졌고, 항구에 들어온 배의 화물 목록이 책상에 올라왔다. 거래처에 보낼 편지는 같은 날 우편 마차를 타야 했다. 아르투어는 그 책상에 앉았다.
그는 그만두지 않았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는 미워하던 그 길을 아버지에 대한 의리로 계속 걸었다. 다만 겉으로만 걸었다. 책상 아래에 시집과 철학책을 숨겨 놓고 읽었고, 창고에서 짐을 세고 있어야 할 시간에 머리뼈 모양으로 사람의 성격을 읽는다는 학설을 편 의사 갈의 공개 강의에 가 앉아 있기도 했다. 상회 주인을 속이는 날이 늘었다.[주 3-04] 몸은 아버지가 남긴 자리에 있었고, 마음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런 날이 한 해 넘게 이어졌다.
어머니 요한나의 하루도 계속되었다. 요한나는 남편이 일군 상회를 정리했다.[주 3-05] 돈이 될 것은 돈으로 바꾸고, 거래는 닫고, 여덟 살 난 딸 아델레와 함께 떠날 곳을 골랐다. 그곳은 바이마르였다. 독일 한가운데의 작은 공국 수도인 바이마르에는 시인 괴테와 빌란트가 살았고, 학자와 화가들이 모여 있었다. 1806년 5월 바이마르에 먼저 가 본 그녀는 그곳에서 아들에게 이렇게 썼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이곳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을 자기 찻상 둘레에 모을 수 있을 것 같고, 아주 즐거운 삶을 꾸릴 수 있을 것 같다고.[주 3-06]
아들은 그 편지를 아버지의 상회에서 읽었다.
*
1806년 9월, 떠나기 전날 밤이었다. 아르투어는 어머니의 짐이 반쯤 꾸려진 방에 와 있었다. 그는 시가를 피웠고, 연기가 낮게 깔렸다. 두 사람은 그날 저녁 내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즐거움이 끝나 갈 무렵 아들이 말을 꺼냈다.
“어머니는 너무 빨리 정리하십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해 반입니다.”
“한 해 반이면 빠르니? 나는 그동안 하루도 놀지 않았다. 상회를 닫는 일은 슬퍼하는 일보다 오래 걸려.”
“상회를 닫는 걸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아버지가 평생 쌓은 걸 한 해 반 만에 다 치우고, 어머니는 즐거운 삶을 찾아 떠나십니다. 아버지가 그걸 보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요?”
요한나는 손에 든 것을 내려놓았다.
“네 아버지는 이제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슬픔은 남은 사람의 일이야. 나는 남은 사람이고, 아델레도 남은 사람이다. 우리가 여기서 날마다 그 창고 문을 올려다보며 살아야 네 아버지가 기뻐하실 것 같니?”
“그래도 저는 남습니다. 아버지가 정해 주신 자리에요.”
“네가 남는 건 네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아직 떠날 줄 몰라서다. 아르투어, 나는 네가 그 상회에서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안다.”
아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제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아버지를 위해 상회에 남는다는 말은 아버지에게 닿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죽은 사람이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고 해서 산 사람이 그를 금방 잊어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다투는 것은 상회가 아니었다. 죽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사랑한 것이 되느냐였다. 어머니에게 그것은 살아남은 사람을 다시 살게 하는 일이었고, 아들에게 그것은 죽은 사람이 남긴 자리를 지키는 일이었다.
아들이 돌아간 뒤 요한나는 편지를 썼다. 네가 방금 나갔다고, 아직 네 시가 연기 냄새가 난다고, 이 편지를 받을 때면 나는 이미 여기 없을 거라고 썼다. 그리고 털어놓았다. 오늘 처음으로 너를 속였다고, 말을 아침 여섯 시 반으로 불러 두었다고. 나는 작별을 견디지 못하고, 그런 순간에 내가 얼마나 약한지 알기에 나를 위해 그렇게 했다고 썼다.[주 3-07] 아들은 다음 날 아침 어머니를 배웅하러 갔다가 빈집을 보았을 것이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 그녀는 한 번도 아들 앞에서 무너지지 않았다. 그녀가 무너질까 두려워한 것은 아들과의 작별이었다.
*
어머니와 여동생이 떠난 뒤 아르투어는 혼자 함부르크에 남았다.[주 3-08] 바이마르에서 오는 편지들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요한나는 바이마르에 닿은 첫 아침에 아들의 편지를 받고 기뻐했다. 그녀는 너를 많이 생각한다고, 자리가 잡히면 몹시 그리울 거라고 쓰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운명이 그렇게 하자는 것이니, 사람이 끝내 익숙해지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고.[주 3-09] 보름 뒤 바이마르 바로 앞에서 나폴레옹의 군대가 프로이센 군대를 깨뜨린 예나 전투가 벌어졌다. 포탄이 집 둘레에 떨어지고 군인들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그녀는 그 날들을 견뎌 냈고, 부상병에게 포도주와 빵을 보냈다. 전투가 끝나고 보름 만에 그녀는 바이마르의 이름난 사람들과 모두 벗이 되어 있었다.
그해 11월, 남편이 죽은 지 한 해 반이 지났을 때 그녀는 아들에게 썼다.
“폭풍은 지나갔어. 우리를 몹시 흔들어 놓았지만 이제는 다 지나갔다. 나는 여기서 줄곧 조용하게, 그러니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어릴 적 이후로 지금만큼 마음이 흡족했던 때가 없구나.”[주 3-10]
아들은 그 편지를 장부 옆에 놓고 읽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 어머니는 어릴 적 이후 가장 행복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죽은 뒤 미워하는 책상을 떠나지 못했다. 같은 죽음 뒤에 두 사람의 하루는 정반대로 흘렀다. 만년의 쇼펜하우어를 가까이에서 알았던 빌헬름 폰 그비너는 이렇게 정리했다. 이 죽음이 과부와 아들에게 자유를 주었고, 그 자유가 두 사람을 저마다의 성격대로 곧 정반대 방향으로 데려갔다.[주 3-01]
*
소중한 사람을 잃었는데, 세상은 어떻게 아무 일 없이 움직이는가? 세상은 아무 일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바로 그 힘이 사람을 울게도 한다.
그 답을 그는 서른아홉 해 뒤에 적었다. 1844년, 쉰여섯 살의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둘째 권을 냈다. 스물여섯 해 전에 낸 첫째 권을 풀이하고 보충하는 책이었고, 쉰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 마흔한 번째 장에 그는 「죽음, 그리고 우리 본질 자체가 죽음으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에 관하여」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그 장을 철학의 말이 아니라 누구나 아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사람은 자기 죽음을 무엇보다 두려워할 뿐 아니라, 제 식구가 죽으면 몹시 운다. 그 울음은 분명히 자기가 잃은 것을 아까워하는 이기적인 울음이 아니다. 죽은 사람에게 닥친 큰 불행을 안타까워하는 울음이다. 그래서 사람은 그런 자리에서 울지 않고 슬픈 기색도 보이지 않는 사람을 모질고 사랑이 없다고 나무란다.”[주 3-11]
그는 이것을 ‘자연스러운 의식’이 하는 말이라고 부른다. 생각이 사람마다 시대마다 바뀌어도 이 목소리는 어디서나 같다. 그리고 이 목소리는 죽음이 큰 불행이라고 말한다.
그다음에 그는 그 두려움이 어디서 오는지 묻는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죽음을 아는 데서 오지 않는다.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짐승도 그 두려움을 안고 태어나 위험 앞에서 떨고 숨는다. 그러니 그 두려움은 앎보다 먼저 있다. 그것은 살려는 의지의 뒷면이다. 살려는 의지가 있는 곳에는 죽음을 피하려는 몸부림이 같이 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쓴다.
“삶에 그토록 강하게 매달리는 마음은 이치에 닿지 않고 눈이 멀었다. 그 마음을 설명할 길은 하나뿐이다. 우리 존재 전체가 이미 살려는 의지이고, 그 의지에게는 삶이 아무리 쓰고 짧고 불확실해도 가장 좋은 것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의지는 본래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눈먼 것이다. 반대로 인식은 삶에 매달리는 마음의 뿌리이기는커녕 그 마음을 거스른다. 인식은 삶이 그만한 값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그렇게 해서 죽음의 두려움과 싸운다.”[주 3-12]
여기서 그는 두 가지를 가른다. 하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의지다. 다른 하나는 죽음을 생각하는 인식이다. 의지는 생각하지 않고 매달린다. 인식은 매달리지 않고 따져 본다. 사람이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의지가 하는 일이고, 그 슬픔과 두려움을 들여다보는 것은 인식이 하는 일이다.
이 구분으로 1806년의 두 사람을 보면, 세상이 왜 멈추지 않는지가 보인다. 아버지가 죽은 다음 날 상회 문을 연 것도, 어머니가 새 도시에서 찻상을 차린 것도, 아들이 아버지의 책상에서 일어나지 못한 것도 모두 같은 힘이었다. 살려는 의지는 누가 죽었다고 쉬지 않는다. 그 의지가 남은 사람을 다음 날 아침으로 밀어낸다. 슬픔도 그 의지에서 나오고, 슬픔을 딛고 다시 살려는 몸부림도 그 의지에서 나온다. 바깥에서 보면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간다. 안에서 보면 남은 사람 하나하나가 같은 힘에 떠밀려 다음 날로 건너가고 있다. 울게 하는 힘과 살게 하는 힘은 둘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 생각이 슬픔을 곧바로 거두어 간다고 말하지 않는다. 인식은 두려움과 ‘싸운다’고 그는 썼다. 이긴다고 쓰지 않았다. 의지는 생각보다 먼저 있고, 생각보다 깊이 있다. 열여덟 살의 아르투어가 아버지의 책상을 떠나지 못한 것은 생각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그는 그 자리가 틀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는 것과 떠나는 것 사이에는 그 뒤로도 한 해가 더 걸렸다.
*
그는 마흔한 번째 장 첫머리에서 자기 자신을 겨누는 말을 적었다. 사람들은 울지 않는 사람을 모질고 사랑이 없다고 나무란다고 그는 썼다. 그는 그 나무람을 ‘자연스러운 의식’의 목소리로 적었다. 철학은 그 목소리를 듣되 그 목소리에 머물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그런데 그 자신은 그 목소리에 머물렀다.
일곱 해 뒤 바이마르의 어머니 집에서 그는 어머니를 정면으로 나무랐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기리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으니 자기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도 믿을 수 없다고 했다.[주 3-13] 아버지를 위해 울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들의 논리였다. 그것은 그가 뒷날 ‘자연스러운 의식’이라고 부른 바로 그 판단이었다.
요한나에게도 슬픔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1806년 11월, 아들이 함부르크에서 아는 사람의 부고를 전하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잠든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슬퍼하는 사람을 위해 슬퍼하라. 그 사람은 아마 끝없는 고통을 피해 갔을 것이고, 살아 있는 동안에는 겉보기에 가장 행복한 사람도 그 고통을 피하지 못한다.[주 3-14] 그녀가 남편을 사랑했는지는 기록이 말해 주지 않는다. 다만 그녀는 슬픔을 죽은 사람의 몫이 아니라 남은 사람의 몫으로 보았고, 남은 사람이 다시 사는 것을 슬픔을 저버리는 일로 보지 않았다. 아들은 슬픔을 오래 머무르는 것으로 보았고, 빨리 떠나는 사람을 슬퍼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았다.
어머니와 아들 가운데 누가 아버지를 더 사랑했는가? 그 물음에는 답할 길이 없다. 남는 물음은 그보다 작고, 그보다 오래간다. 나는 다른 사람이 슬퍼하는 속도를 보고 그 사람의 사랑을 재고 있지 않은가? 쇼펜하우어는 그 물음을 마흔한 번째 장의 첫 쪽에 적어 놓고도, 어머니에게는 끝내 그 물음을 돌려주지 않았다.
1806년 겨울, 함부르크의 상회에는 여전히 아침마다 장부가 펼쳐졌다. 아들은 그 앞에 앉아 바이마르에서 온 편지를 다시 접었다.
후주
[주 3-01] 빌헬름 폰 그비너, 『가까이에서 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aus persönlichem Umgange dargestellt), 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922, 34~35쪽. 인터넷 아카이브 전사본(archive.org/details/arthurschopenhau00gwin)으로 확인했다. 높은 창고 문에서 운하로 떨어졌다는 것(stürzte aus einer hohen Speicheröffnung in den Kanal), 재산 손실을 걱정한 시름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것, 말년의 불안·기억 끊김·난청·성마름, 과부와 아들의 말로 보아 그 소문이 거의 틀림없다는 그비너의 판단, 이 죽음이 두 사람에게 자유를 주어 정반대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대목(Dieser Todesfall gab der Witwe und dem Sohne eine Freiheit …)은 모두 그비너의 서술이며 마지막 대목은 의역이다. 그비너는 쇼펜하우어의 만년에 가까이 지낸 사람으로 이 사건을 직접 보지 않았다. 창고 문이 집 뒤 운하 쪽으로 나 있었다는 것과 물빛 묘사는 소설의 배치다.
[주 3-02] 1805년 정월 무렵부터 시의원 예니슈 밑에서 상인 수업을 받은 것은 그비너 같은 책 34쪽(nach Neujahr 1805 bei Senator Jenisch).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05년 항목과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연표 1805년 항목도 예니슈 상회의 수업과 4월 20일 아버지의 죽음을 적는다.
[주 3-03]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05년 항목(Am 20. April tödlicher Unfall des Vaters), schopenhauer.de/zeittafel. 스탠퍼드 철학 백과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항목(possibly by suicide), plato.stanford.edu/entries/schopenhauer.
[주 3-04] 그비너 같은 책 36쪽. 아버지에 대한 의리로 미워하던 길을 겉으로만 계속했다는 것(aus Pietät für denselben die verhasste Laufbahn … dem Scheine nach fortgesetzt), 책상 아래 책을 숨긴 것, 창고에 있어야 할 시간에 갈의 골상학 강의를 들은 것, 상회 주인을 속였다는 것은 그비너의 서술을 의역한 것이다.
[주 3-05] 1806년 9월 아버지의 상회를 정리한 뒤 요한나와 아델레가 함부르크를 떠난 것은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06년 항목(Nach Auflösung des väterlichen Geschäfts). 바이마르로 옮긴 것은 프랑크푸르트 대학 도서관 연표 1806년 항목. 아델레가 여덟 살이었다는 것은 그비너 같은 책 34쪽(mit ihrem achtjährigen Töchterchen Adele).
[주 3-06] 루트비히 셰만 편, 『쇼펜하우어 서신집』(Schopenhauer-Briefe), 라이프치히: 브로크하우스, 1893, 41~42쪽, 「바이마르, 1806년 5월」 편지. 스캔 PDF 94쪽(인쇄 42쪽)을 그림으로 떠서 읽었다. 원문은 … um meinen Theetisch zu versammeln und im ganzen ein sehr angenehmes Leben zu führen. 간접 인용으로 옮겼다.
[주 3-07] 같은 서신집 42쪽, 「날짜 없음, 1806년 9월 22일?」 편지. 스캔 PDF 94쪽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Du bist eben fortgegangen; noch rieche ich den Rauch von deiner Cigarre … Wir haben den Abend recht froh miteinander hingebracht … ich täuschte dich zum erstenmale; ich hatte die Pferde halb sieben bestellt … ich that es um meinetwillen; denn ich weiß, wie schwach ich in solchen Augenblicken bin. 간접 인용으로 의역했다. 날짜는 편자 셰만의 추정이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이 나눈 대화와 대사는 소설의 창작이며, 어머니의 대사는 그녀의 편지들([주 3-09]·[주 3-14])에 드러난 관점에, 아들의 대사는 아버지에 대한 의리로 상회에 남았다는 기록([주 3-04])에 근거했다. 아들이 이튿날 아침 빈집을 보았다는 것은 짐작이다.
[주 3-08] 쇼펜하우어 협회 연표 1806년 항목(Arthur bleibt allein zurück).
[주 3-09] 같은 서신집 42쪽, 1806년 9월 29일 편지. 스캔 PDF 94쪽 아래쪽에서 읽었다. 원문은 doch das Schicksal will es so, und woran gewöhnt man sich nicht zuletzt. 간접 인용으로 의역. 예나 전투 무렵의 체험(포격, 군인들의 난입, 부상병 돕기)은 같은 서신집 44~49쪽에 실린 10월 편지들의 OCR로 읽은 것이며 스캔 대조는 하지 않았다(재확인). 전투 보름 전에 바이마르에 닿았고 보름 뒤에는 도시의 이름난 사람들과 모두 벗이 되었다는 것은 그비너 같은 책 34~35쪽(Vierzehn Tage vor der Schlacht bei Jena … und vierzehn Tage danach … mit allen Zelebritäten der Stadt befreundet).
[주 3-10] 같은 서신집 51~52쪽, 1806년 11월 17일 편지(편자의 꺾쇠 설명으로 날짜를 셈). 인용 부분은 52쪽 첫머리로, 스캔 PDF 104쪽을 그림으로 떠서 대조했다. 원문은 Gottlob wir haben den Sturm überstanden, er hat uns arg mitgespielt, aber jetzt ists vorüber, ich lebe hier fortdauernd ruhig und folglich glücklich, seit lange, seit meinen Kinderjahren bin ich nicht so zufrieden als jetzt gewesen. 한국어 의역.
[주 3-11]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권 제4편 제41장 「죽음, 그리고 우리 본질 자체가 죽음으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에 관하여」(Ueber den Tod und sein Verhältniß zur Unzerstörbarkeit unseres Wesens an sich, 장 제목의 의역). 1891년 브로크하우스판(프라우엔슈테트 편), 인쇄 530쪽, PDF 540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Da liegt uns zunächst die unleugbare Thatsache vor, daß, dem natürlichen Bewußtseyn gemäß, der Mensch nicht bloß für seine Person den Tod mehr als alles Andere fürchtet, sondern auch über den der Seinigen heftig weint, und zwar offenbar nicht egoistisch über seinen eigenen Verlust, sondern aus Mitleid über das große Unglück, das Jene betroffen; daher er auch Den, welcher in solchem Falle nicht weint und keine Betrübniß zeigt, als hartherzig und lieblos tadelt. 한국어 의역. 「생각은 바뀌어도 자연의 목소리는 같다」는 같은 쪽 Meinungen wechseln nach Zeit und Ort; aber die Stimme der Natur bleibt sich stets und überall gleich의 취지를 옮긴 것. 제2권은 1844년에 나왔다.
[주 3-12] 같은 장, 인쇄 531~532쪽, PDF 541~542쪽. 스캔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Jene mächtige Anhänglichkeit an das Leben ist mithin eine unvernünftige und blinde: sie ist nur daraus erklärlich, daß unser ganzes Wesen an sich selbst schon Wille zum Leben ist, dem dieses daher als das höchste Gut gelten muß, so verbittert, kurz und ungewiß es auch immer seyn mag; und daß jener Wille, an sich und ursprünglich, erkenntnißlos und blind ist. Die Erkenntniß hingegen, weit entfernt der Ursprung jener Anhänglichkeit an das Leben zu seyn, wirkt ihr sogar entgegen, indem sie die Werthlosigkeit desselben aufdeckt und hiedurch die Todesfurcht bekämpft. 한국어 의역. 그 앞의 「죽음의 두려움은 앎보다 먼저 있고, 짐승도 지니며, 살려는 의지의 뒷면이다」는 531쪽 첫머리(In der That ist die Todesfurcht von aller Erkenntniß unabhängig … nur die Kehrseite des Willens zum Leben)의 취지를 옮긴 것으로, 이 부분은 OCR과 영문 대조본으로 읽었고 스캔 대조는 하지 않았다(재확인).
[주 3-13] 그비너 같은 책 49쪽. 1813년 바이마르에서 아들이 어머니가 아버지를 기리지 않았다고 나무라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으니 어머니의 사랑을 믿지 않았다는 것(Er warf ihr vor, das Andenken seines Vaters … nicht geehrt zu haben, glaubte auch, da sie diesen nicht geliebt habe, nicht an ihre … Mutterliebe)은 그비너의 서술이다. 「일곱 해 뒤」는 1806년에서 1813년까지를 센 것이다.
[주 3-14] 같은 서신집 50쪽, 1806년 11월 7일 편지. 스캔 PDF 102쪽으로 대조했다. 원문은 Traure um den Trauernden, nicht um den Entschlafenen … und doch ist sie wahrscheinlich unendlichen Leiden entgangen, denn im Leben entgeht man ihnen nie, auch der anscheinend glücklichste nicht. 간접 인용으로 의역했다. 죽은 사람은 편지에 「H.」로만 적혀 있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사료에 근거한 것은 아버지가 창고 문에서 운하로 떨어져 죽은 일과 그 경위를 둘러싼 소문, 아들이 예니슈 상회에서 겉으로만 수업을 이어 간 일, 어머니가 상회를 정리하고 1806년 9월 바이마르로 떠난 일, 떠나기 전날 저녁과 말 시간을 속인 일, 바이마르에서 온 편지들의 내용, 1813년 아들이 어머니를 나무란 일이다. 떠나기 전날 밤의 대화와 대사, 장례 다음 날 상회의 모습, 시가 연기가 낮게 깔린 방은 소설의 창작이다. 1844년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권은 열일곱·열여덟 살 아르투어의 생각이 아니라 쉰여섯 살의 저작으로 비춘 것이다.